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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77화 (577/818)

577화. 영혼의 점액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이준의 시선을 느낀 송청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이준, 진한 선생은 잠시나마 우리의 동맹이요. 당신이 우리와 힘을 합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자유이지만, 우리 동맹을 해치는 것은 문제가 다르지.”

송청의 말에 이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이 자는 이전에도 날 죽이기 위해 투존을 보냈다. 그런데 이 자를 살려두라고? 그 말은 나더러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이 없는데?”

“흥, 그것은 당신들끼리 알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가. 우리는 만약산맥에 있는 마수들을 해치우고 약재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을 텐데! 지금 당신의 행동은 진한 선생뿐 아니라 동맹에 참여한 모든 연금술사들을 방해하는 것이야!”

“그래? 그럼 왜 다른 사람들은 날 말리지 않지? 진한 저 자가 투존급 마수를 잡는데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강자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

송청의 억지에 이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다른 연금술사들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연금술사들은 그런 문제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누구도 송청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준보다 송청의 행동이 더 이상했다. 진한이 현명종의 후계자라고는 하나, 현명종이 만약산맥의 마수들을 처리해주지 않는 이상 그것은 이 자리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반면 괜히 진한의 편을 들었다가 이준과 싸움이 벌어지면 자신들만 골치가 아파질 것이 뻔했으니, 이런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게 두는 것이 현명했다.

“좋소. 다른 분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나도 더는 방해하지 않지…….”

다른 연금술사들이 딱히 자신의 의견에 동의를 표하지 않자, 결국 송청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진한을 위해 이준과 싸움을 벌일 생각이 없는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연금술사들이 자신에게 손을 들어준다면 모를까, 송청 역시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이준과 한판 붙으면서까지 진한을 살릴 마음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전문 분야는 연금술이었지, 전투가 아니었으니 여기서 이준과 맞붙었다가는 이대로 대회에서 탈락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진한의 말에 혹해 이 기회에 이준을 탈락시켜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계획이 실패한다고 해도 본선에서 승부를 보면 그만이라는 것이 송청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송청은 이준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자신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머저리로 만들어 버렸으니 지는 것을 싫어하는 그의 성품상 절대로 이 일을 잊을 리가 없었다.

바로 그 때, 현명종의 장로가 진한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새파랗게 질려 이준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쁜 놈, 단전을 부숴놓다니!”

단전은 염력 회오리가 모이는 곳이었으니, 그 곳이 파괴된다면 염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물론 최고급 연금비약 중에는 부서진 단전을 고치는데 도움이 되는 물건들도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단전이 부서져 모아둔 염력이 새어나간다면 연금비약을 사용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했다.

노인의 분노 어린 외침에 송청의 미간에도 깊은 주름이 잡혔다. 설마하니 정말로 현명종의 소종주를 폐인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진한과 친구라고 할 수는 없어도 제법 안면이 있었던 사이였으니 썩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흐음……. 일단 연금탑으로 돌아가 도움을 줄 사람을 찾는 게 좋겠네요. 염력이 다 새어나가고 나면 정말로 처음부터 수련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겁니다. 그 전에 빨리 조치를 취하는 편이 낫겠어요.”

모두가 침묵하던 그 때, 조영이 천천히 다가와 달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조영의 말에 현명종의 장로들은 이준과 은빛 요괴를 번갈아 바라보며 이를 갈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요괴가 없다면 모를까, 9성 투종급의 힘을 가지고 있는 요괴의 보호를 받고 있는 이준을 죽이려면 그들 역시 목숨을 걸어야 했고, 설사 이준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최대한 빨리 진한을 구해내는 것이 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재료를 얻어야 이번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요.”

조영이 맑은 눈망울로 하늘에 떠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진한도 빠졌으니 함께 투존급 마수를 잡아도 될 것 같은데. 어때요?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나요?”

갑작스런 조영의 제안에 송청의 표정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이준은 현명종에 죄를 지었어. 그와 함께 한다면 진한쪽 사람들과 틀어질 수 도 있다고.”

하지만 조영은 송청의 말을 무시한 채 그대로 이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조영 아가씨, 제안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제가 혼자 다니고 싶다는 것은 꼭 저 자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이준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찰나, 그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을 받은 이준은 잽싸게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쏠린 곳은 언덕의 가장자리였다. 그 곳에는 흑색 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연금 대회에는 역시 숨은 인재가 넘치는 구나. 엄청난 실력이야…….’

신비로운 남자에게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기운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한편, 아래에 있던 조영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이를 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말을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반대로 옆에 있던 송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영아, 됐어. 저렇게 나오는데 괜히 열 내지 말고 관두자.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알아서 찾아올 거야.”

송청의 말에 조영은 입술을 비죽이며 아쉬운 듯 발걸음을 돌렸다.

사실 그녀도 이준에게 마냥 흥미를 느껴서 한 제안은 아니었다.

방금 전 대결에서 보여준 실력으로 보았을 때 이곳에서 이준보다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고, 그가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번에도 보기 좋게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으니 그녀도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가보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준은 그 신비로운 흑색 옷의 남자를 한 번 더 바라본 뒤 조영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꾸벅인 뒤 요괴를 회수해 자리를 떠났다.

눈 깜짝할 새에 시야에서 사라진 이준을 보고 현명종 두 장로는 분통을 터뜨리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 흑색 옷의 남자는 이준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준, 넌 도망갈 수 없다…….”

조영이 있는 언덕에서 멀어진 이준은 끝없이 늘어진 만약산맥을 향해 날아가 상공을 배회하다 천천히 그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산맥 안으로 들어온 이준이 처음으로 느낀 것은 바로 그 곳에 넘쳐나는 천지의 에너지였다. 과연 만약산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에 천지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이 정도 에너지라면 바깥 세계에서 보기 어려운 온갖 진귀한 약재들이 자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산맥 안에서 살기가 가득한 마수의 울음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은 아마 최근 들어 끊임없이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산봉우리에 착지한 이준은 곧바로 영혼 탐지 능력을 활용해 동북쪽에 엄청난 힘을 가진 마수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흐음……. 이게 송청이 말한 8레벨 마수의 기운인가.”

8레벨 마수라면 인간으로 치면 투존 강자와 맞먹을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레벨에 다다를 수 있는 마수라면 틀림없이 평범한 놈들은 아니었다. 8레벨 마수들은 보통 상고 시대의 피가 흐르는 강력한 놈들이었으니, 무언가 골치 아픈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잠시 정신을 집중해 주위를 탐색해보니, 제법 진귀한 약재들이 도처에 퍼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산맥의 이름에 걸맞는 진정한 보물들이나, 심사에 통과하기에 필요한 약재들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저 8레벨 마수가 이 산맥에 있는 보물들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더니, 역시 그 쪽에 가봐야 하는 건가.’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운 이준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방향을 잡은 뒤 천천히 동북쪽으로 날아갔다.

만약산맥에 있는 수많은 마수들에게 발목을 잡히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으니 속도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마수들의 눈을 피해 이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만약산맥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마수들의 기운도 점점 더 강해졌으며, 심지어 7레벨 마수들의 기운도 드물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마수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수 십 분, 거대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한 이준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 자신의 앞에 우뚝 선 거대한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거대한 면적의 산봉우리는 마치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구름 위로 솟아있었고, 산중턱에는 농후한 에너지 안개가 가득해 도통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 거대한 산봉우리는 만약산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봉우리에서 퍼져 나오는 짙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준을 놀라게 한 것은 짙은 에너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수의 기운이었다.

그의 영혼 탐지 능력에 의하면, 최소한 세 마리의 7레벨 마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는 인간으로 치자면 투종 수준의 존재 셋이 그 산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투종급의 마수 세 마리의 기운을 크게 상회하는 에너지 하나가 느껴졌다. 아마도 만약산맥의 주인이라는 그 8레벨 마수의 에너지인 듯 싶었다.

‘역시 강력하군…….’

조심스럽게 영혼탐지능력을 거둔 이준은 거대한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그 산봉우리 안으로 날아갔다.

산봉우리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이준은 아주 미세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훑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영혼의 힘으로 급히 몸을 감쌌다. 그러자, 그 기운은 잠시 멈칫거리며 근처를 배회하다 서서히 사라졌다.

상대의 탐지 능력을 무사히 피했다고 판단한 이준은 다시 몸을 날려 천천히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 숲 속을 걸어가자, 어느 순간부터 거의 마수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약한 마수들이 8레벨 마수와 7레벨 마수들을 피해 달아났기 때문인 듯 했다.

어찌됐든 마수의 수가 줄어들었으니 이준 입장에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 십분 가량을 더 날아가던 중에 돌연 희미한 약향 하나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이건…….”

다시 한 번 정신을 집중하고 약향을 들이킨 이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약향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에너지는 틀림없이 ‘영혼의 점액’의 것이었다.

영혼의 점액은 대지의 구슬을 제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로, 대지의 구슬 못지 않게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다. 숲에 들어온지 하루도 되지 않아 이런 물건을 찾을 수 있다니, 과연 만약산맥의 중심부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었다.

영혼의 점액은 현재 이준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 중 하나였으니, 이준은 곧바로 원숭이처럼 숲을 달려 약향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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