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화. 죽음의 문턱
한편, 송청의 곁에 있는 조영은 완전히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그녀가 오대 가문 심사장에서 본 것은 이준의 영혼의 힘 뿐이었고, 아직까지 그의 전투 실력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영혼의 힘과 연금술 실력 뿐 아니라 전투실력까지 그녀를 놀래키기에 충분했다. 언제나 주위 사람들을 시시하다고 느끼던 조영의 입장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다.
“죽고 싶은 것이냐!”
소종주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 나오자, 현명종의 두 장로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진한의 곁으로 날아왔다. 그들의 얼굴은 자신이 직접 공격을 당한 것보다 더욱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저 놈을 죽여, 아주 갈기갈기 찢어 죽이란 말이야!”
이준의 주먹 한 방에 완전히 체면을 구긴 진한은 분을 참지 못 하고 길길이 날뛰며 두 장로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에 두 노인은 잠시 눈짓을 주고 받은후 한 명만이 앞으로 나섰다. 다시 한번 이준을 놓치면 이번에는 정말로 진한이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4성 투종이 이렇게까지 강할 수 있지?’
이준을 상대하기 위해 나선 현명종의 장로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이준과 자신이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절대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준이 작정하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진한을 노린다면……. 솔직히 말해 소종주를 지킬 자신이 없었다.
“감히 소종주님을 죽이려 들다니, 현명종을 무엇으로 보는 것이냐?”
노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나를 죽이려 드는 사람을 그냥 둬야하나?”
이준의 답변에 노인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문제를 키운 것은 소종주인 진한이었다. 경매장에서의 사소한 시비로 영혼의 궁전을 끌어들여 이준을 죽이려 든 것은 진한이었고, 이준은 그 일에 대해 복수를 하려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초지종이야 어찌되었든 소종주를 죽게 둘 수는 없었으니 노인은 더 이상 말싸움을 벌이지 않고 이준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노인의 모습에 이준이 피식 웃으며 질문을 던지더니 이내 눈을 돌려 진한을 바라봤다.
“백 장로, 어서 저 놈을 죽여!”
바로 그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는 진한이 매섭게 소리쳤다.
진한의 날카로운 외침에 노인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염력으로 장검을 만들어내더니 곧바로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노인이 칼을 제대로 휘둘러보기도 전에 이준의 발밑에서 눈부신 은빛 섬광이 터져 나오더니 그의 모습이 또 다시 시야에서 사라졌다.
쾅!
목표를 놓친 노인의 장검이 지면을 내리치자, 굉음과 함께 대지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실로 9성 투종다운 무시무시한 파괴력이었다.
노인의 일검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에 주위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저도 모르게 찬숨을 들이마시며 저 멀리 있는 다른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괜히 주위에 있다가 말려들어 부상이라도 입을까 겁이 난 것이다.
또 다시 이준을 놓친 노인의 얼굴이 순간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4성 투종이 이렇게까지 빠를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당장 나와라!”
날카로운 시선으로 허공을 훑던 노인이 자신의 왼쪽을 향해 장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챙!
그 순간, 거대한 검은 송곳과 장검이 맞부딪히며 이준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준이 몸을 회전시키며 손에 들린 검은 송곳을 내리긋자, 노인 역시 힘차게 검을 휘둘러 이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 후로도 이준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사방에서 노인을 공격했지만, 단 한 번도 공격을 적중시키지는 못 했다.
이대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고 판단한 이준은 우선 노인과 거리를 벌려 허공에 멈춰선 뒤 인을 맺기 시작했다 .
‘천계의 불꽃, 제 1장!’
인이 완성되는 것과 동시에 이준의 염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검은 송곳 위에 청록색 화염이 피어났다.
채앵!
청록색 화염을 두른 검은 송곳이 다시 한 번 노인의 장검과 맞부딪히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고리모양의 충격파가 폭풍처럼 퍼져 나갔다.
‘이럴수가!’
팔에서 전해지는 강한 압력에 노인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상대의 실력이 눈 깜짝할 새에 너무나 크게 상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검은 송곳에서 또 한 번 강한 힘이 폭발하며 노인의 장검을 쳐냈다.
자신의 공격에 의해 노인이 잠시 균형을 잃자, 이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은빛 섬광과 함께 진한을 향해 돌진했다.
“죽고 싶구나!”
갑자기 방향을 틀어 목표를 바꾸는 이준의 모습에 진한의 옆을 지키고 있던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을 내질렀다.
쾅!
그 순간, 묵직한 굉음이 울려퍼지며 사방에 흙먼지가 흩날렸다.
하지만 그의 주먹을 막아낸 것은 이준이 아니라 강철처럼 단단한 몸을 한 은색의 요괴였다.
은빛 요괴를 이용해 노인을 막아낸 이준은 마치 쏘아진 화살처럼 방향을 틀지 않고 그대로 진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직감한 진한은 황급히 뒤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그가 채 두 발자국도 떼기 전에 시커먼 그림자가 날아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가려고.”
살기가 가득한 이준의 싸늘한 목소리를 듣고 진한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모든 염력을 오른팔에 모았다.
짙은 화홍빛 염력이 진한의 오른손에 모이자 그의 팔 전체가 불에 타오르는 숯처럼 변했다가 이내 날카로운 검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불의 검!”
진한이 손을 휘두르자 화홍빛 염력이 모여 만들어진 화염검이 날카로운 강풍을 일으키며 허공에 검은 균열을 만들어냈다.
진한은 투종이었으니 온 힘을 한 점에 집중시킨 그의 공격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진한의 매서운 반격에 이준은 곧바로 청록색 화염을 자신의 손 위에 두른 뒤 화염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쾅!
주먹과 칼이 맞닿는 순간,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사방으로 몰아치며 바닥에 있던 나뭇잎과 풀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고, 거대한 바위를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진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어가고 있는 것에 비해 이준의 얼굴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염검이 주인의 얼굴 마냥 빠르게 빛을 잃더니, 이내 진한의 입에서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죽어라.”
이준이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더욱 힘차게 주먹을 내지르자, 진한의 오른팔에서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쾅!
다음 순간, 진한의 몸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 거대한 바위 위에 그대로 처박혔다. 바위는 강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우직’하는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고, 진한의 하반신이 무너져 내린 바위의 잔해에 그대로 깔려버리고 말았다.
천계의 불꽃 1장을 시전한 이준의 실력은 대략 7성에서 8성 투종 정도로, 사실 9성 투종을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진한 정도를 죽이려면 이 정도의 힘으로도 충분했다.
멀리 있는 언덕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연금술사들은 이준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집어 삼켰다.
대회에 참가한 연금술사들 중 상당수는 투황 끝자락에 걸쳐있거나 1, 2 성 투종 정도였고, 그보다 실력이 높다 해도 전투 경험은 부족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데 이준은 마치 연금술사가 아니라 순수한 투사인 것처럼 엄청난 전투 실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송청과 조영의 시선 역시 바위에 깔려버린 진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송청과 달리 조영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다.
진한이 죽든 말든, 그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상대가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온 자신의 맞수가 되어줄 수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녀의 관심사였다.
“네 이놈! 감히 소종주님을!”
그 때, 두 노인 중 하나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준을 향해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준은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진한이 묻혀버린 바위더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마도 진한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으려는 모양이었다.
이준의 이런 행동에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온 몸에 오싹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 * *
살기를 가득 띤 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이준의 모습에 진한의 눈에는 분노 대신 공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상태로는 이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준, 감히 날 죽이려 들다니. 현명종이 절대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진한은 평생 습관처럼 입에 올리던 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 말을 내뱉은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세상의 어느 누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사람을 살려두겠는가.
게다가 그는 이미 경매장에서의 사소한 다툼에 원한을 품고 영혼의 궁전의 힘을 빌어 이준을 죽이려 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이 하는 ‘가만두지 않겠다.’ 는 말은 ‘어서 나를 죽여 후환을 없애라!’ 라는 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준이 자신의 협박을 듣고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리며 날아오자, 진한의 표정은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그 순간 진한은 자신이 했던 모든 행동을 가슴 깊이 후회했다. 처음부터 이런 놈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리 위에는 시커먼 송곳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다음 생에는 마지막 말을 잘 고르도록 해라!”
“멈추거라!”
그 순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번개처럼 이준의 귀에 꽂혔다.
하지만 이준은 그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 그대로 검은 송곳을 내리쳤다.
“대지의 방패!”
그 순간, 진한의 앞에 있던 땅바닥이 격렬하게 요동치더니 ‘펑’하는 소리와 함께 진황색 화염이 섞인 흙이 솟구치며 두터운 진흙 방패를 만들어냈다.
쾅!
화염으로 뒤덮인 진흙 방패가 만들어지는 순간, 검은 송곳이 그 위에 내리 꽂히며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청록색 화염에 뒤덮인 검은 송곳에 얻어맞은 방패는 순식간에 녹아내리고 말았지만, 어찌됐든 진한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진흙 방패가 이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과 거의 동시에 현명종의 장로가 이준을 향해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준은 아랑곳 않고 곧바로 발을 들어 진한의 하복부를 온 힘을 다해 걷어찼고, 묵직한 충격이 하복부에 전해지는 순간, 진한의 몸이 시체처럼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진한의 하복부를 걷어찬 이준은 곧바로 검은 송곳을 휘둘러 백 장로의 장검을 막아냈다.
펑!
장검과 검은 송곳이 부딪히는 순간 또 다시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갔고, 이준은 즉시 허공을 밟으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속도면에 있어서는 이준이 월등히 뛰어났지만, 어찌됐거나 상대는 9성 투종이었으니 정면 승부로는 당해낼 수 없었다.
백 장로의 공격을 피해 허공으로 달아난 이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곧바로 송청에게로 향했다. 조금 전 진한을 죽이려던 이준의 공격을 갑자기 막아낸 사람이 바로 송청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