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3화. 천 년 묵은 땅의 정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이준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흔들어 연금세계의 지도를 펼쳐들었다. 지도를 열자 지도 위에 있는 세 지역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건……설마 그 재료들이 있는 위치인가?”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지역을 본 이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봐도 밑도 끝도 없이 그 약재들을 찾으라고 한다면 열흘이 아니라 열 달을 준다고 해도 약재를 구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런 것은 애시당초에 시험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쉬익!
그 때, 평원 위의 공간이 다시 왜곡되면서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동시에 나타나 바닥에 착지했다.
쾅!
그들의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모래 언덕 같이 보이던 지면에서 열 개가 넘는 거대한 구렁이가 번개처럼 튀어나와 그대로 한 연금술사의 머리를 집어삼키려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그 연금술사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엄청난 염력 폭풍을 만들어내 거대한 구렁이의 정수리를 거세게 내리쳤고, 거대 구렁이의 머리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거대 구렁이를 처치한 그 연금술사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눈앞이 뿌옇게 변하면서 교활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큭큭, 실력이 제법이군.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되지!”
다음 순간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쇠몽둥이가 강하게 그의 가슴팍에 꽂혔다. 구렁이를 물리친 연금술사는 공포스러운 힘에 의해 뒤로 백 미터 정도를 밀려나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그 연금술사가 서서히 멈춰서는 순간, 가슴팍에서 하얀 빛이 퍼져나오더니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면서 그의 몸이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아무래도 공간석이 깨진 모양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눈빛으로 그 연금술사를 공격한 사람을 바라봤다.
사내의 얼굴은 한 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험상 궂었고, 어깨에는 피가 잔뜩 묻은 쇠몽둥이를 걸치고 있었다.
“크큭, 아주 빨리 도망가는 구나.”
쇠몽둥이를 든 사내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흉악한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다른 참가자들은 표정을 굳히며 급히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 사내는 무심하게 입을 삐죽이며 혈흔이 묻은 쇠몽둥이를 강하게 휘둘러 자신을 덮치려 드는 거대한 구렁이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거대한 구렁이가 날아가자 모래언덕에 움푹 파인 모래구덩이가 생겨났는데, 그 모래구덩이 안에는 작은 아이 머리 크기만 한 진황색의 열매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땅의 정근?”
머리 크기만 한 뿌리를 본 이준의 눈에는 놀라움이 스쳤다. 땅의 정근은 대지의 힘을 모아둔 희귀한 약재로, 수련을 하다가 염력을 통제하지 못 할 때 땅의 정근이나 땅의 정근으로 제련한 연금비약이 있다면 아주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땅의 정근은 백년 묵은 것이라 해도 보통 주먹 크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거의 어린 아이 머리만큼이나 컸다. 이 정도 크기가 되려면 적어도 천 년은 땅의 정기를 흡수해야 했다. 밖에서 이 땅의 정근이 발견되었다면 틀림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앞 다투어 그것을 차지하려 했을 것이다.
‘보기엔 거칠어보여도 빈틈없이 꼼꼼한 사람이군……. 이곳에 땅의 정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분명 황구렁이를 알아봤기 때문이었을 거야.’
이준은 거대한 구렁이를 살짝 흘겨보았다. 황구렁이가 나타나는 자리에는 반드시 땅의 정근이 숨겨져 있는데, 황구렁이와 보통 구렁이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아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구별해내기 어려웠다.
쇠몽둥이를 든 사내는 땅의 정근의 크기를 보고는 아주 기뻐하며 곧바로 그 뿌리를 캐내기 시작했다.
“죽기 싫으면 저리 꺼져!”
그의 고함소리에 이곳에 있던 열 명 남짓의 연금술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사내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기는 했지만, 조금 전 그가 보여준 행동이 머릿속 깊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이라면 그들 역시 자신이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사내의 실력은 투황 최고 수준 정도로, 그 곳에 있던 사람들 중 오직 두 사람만이 그보다 실력이 낮았다. 하지만 불필요한 싸움을 벌였다가 부상을 입기라도 한다면 그 뒤가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 뻔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하지만 사내가 막 땅의 정근을 자신의 저장반지에 넣으려던 찰나, 강한 흡입력이 터져나와 그 약재를 빨아들였다.
“어떤 놈이 내 물건에 손을 대는 거야!”
땅의 정근이 손에서 벗어나자 사내의 표정이 야수처럼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젊은 사내 하나가 둥둥 떠있었다.
“꺼져.”
이준이 냉담한 눈빛으로 사내를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
그 순간, 하늘에 떠있는 이준을 본 사내의 표정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날개 없이 하늘에 떠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대가 최소한 1성 투종이라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쇠몽둥이를 든 사내는 이를 꽉 깨물었다. 머릿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준 손에 놓인 천 년 묵은 땅의 정근을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날개를 펼쳐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이준은 아무 변함없는 표정으로 그 사내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리다 천 년 묵은 땅의 정근을 저장반지에 넣고 구덩이가 있는 쪽으로 서서히 내려왔다.
천년 묵은 땅의 정근이 귀하지만, 이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그의 눈길을 끈 것은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어떤 물건이었다.
이준은 약로가 남겼던 약재고적 상에는 땅의 정근이 아주 두껍고 조용한 대지의 힘에 의해 생겨난다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모든 땅의 정근은 백 년이 지나면 포화 상태가 되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사실 백 년 이상 된 땅의 정근은 매우 보기 드물었다.
그리고 고적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땅의 정근이 백 년을 넘겼을 때부터는 대지의 힘이 아닌 또 다른 천지의 영물을 빌려야만 자라날 수 있었다.
이에 이준은 천년된 땅의 정근을 본 순간부터 그 아래에 다른 보물이 묻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하, 역시 연금세계구나!”
이준이 땅바닥에 손을 대고 염력을 폭발시키자, 강한 흡인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며 바닥에 있던 흙들이 전부 파헤쳐졌다.
하지만 한참동안 구덩이를 팠음에도 이준이 기대하고 있던 영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설마 고적에 쓰여 있는 게 가짜인 건가?”
5미터가 넘게 구덩이를 팠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이준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천 년산 땅의 정근을 실제로 보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으니 그 아래에 정말로 영물이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준은 전보다 느린 속도로 1미터 정도를 더 파보다가 몸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준이 막 포기하려던 그 때, 그의 시선이 돌연 파헤쳐진 흙 위에 멈추었다.
무릎을 꿇고 흙을 손에 쥐어보자, 축축한 느낌과 함께 기이한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이준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뒤 두더지마냥 다시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펑!
그렇게 힘차게 구덩이를 파기 시작한지 대략 5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구덩이 아래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준은 황급히 구덩이 아래로 내려가 쪼그려 앉은 뒤 더욱 더 힘차게 흙을 파헤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축축한 흙 사이로 순백색의 옥이 나타났다.
“이건……. 대지의 옥이잖아?”
대지의 옥은 대지의 힘이 무수한 세월을 거쳐 응집되어 만들어지는 보물로, 수련을 하거나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 이 대지의 옥석으로 만든 방석을 사용하면 체내에서 제어하기 어려운 에너지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대지의 옥의 용도는 이준이 대지의 불꽃을 찾을 때 발견한 연화대와 비슷했지만, 대지의 옥이 몇 배는 더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하하! 보물이다 보물이야!”
이준은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리며 대지의 옥을 힘차게 뽑아냈다.
두텁게 쌓인 흙 사이에서 뽑아낸 대지의 옥은 그의 팔뚝만큼이나 굵었고, 높이는 거의 1미터에 달했다. 이 정도 크기의 대지의 옥석이라면 바깥 세계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와아…….”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옥의 크기에 이준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보다 이준을 더욱 놀래킨 것은 그 대지의 옥에 묻어있던 끈적한 액체의 존재였다.
“이건…….”
점성을 띤 액체를 발견한 순간, 이준은 심장이 멎을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설마!”
대지의 옥은 투사들에게 있어 확실히 천하에 둘도 없는 보배였지만, 지금 그의 손에 묻어있는 액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손을 비벼 자신의 손에 묻은 액체의 감촉을 확인한 뒤 곧바로 청록색 화염으로 얇은 칼을 만들어 새하얀 옥을 잘라냈다.
치이익!
화염칼이 대지의 옥을 가르는 순간, 그 안에 호두만한 크기의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호두만한 크기의 빈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새하얀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준이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자, 새하얀 연기가 코를 타고 흘러들어오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쉭! 쉭!
계속해서 옥을 잘라내다보니 손톱만한 것부터 호두만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십 개의 구멍 중 몇 몇 구멍에서는 말랑말랑한 고체 형태의 유백색 구슬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역시! 대지의 구슬이야!”
유백색 구슬을 발견한 이준은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환호성을 내질렀다.
대지의 구슬은 대지의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대지의 옥이 오랜 세월에 걸쳐 또 다시 응집되어 만들어지는 것으로, 영혼을 단련시키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효과를 자랑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영혼을 단련한다는 것은 염력을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양이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영혼의 ‘순도’가 중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금술사들은 영혼 에너지를 늘리는 것도 벅차 영혼의 힘의 순도를 올리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 앞에 있는 유백색 구슬은……. 영혼의 순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어 모든 연금술사들이 꿈에도 그리는 보물이었다. 이것만 있다면 ‘영혼단계’에 이르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니었다.
이준은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뒤 조심스럽게 대지의 옥을 다듬어 옥함을 만들고는 그 안에 대지의 구슬을 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대지의 구슬을 긁어모은 이준은 누가 볼세라 겁이라도 나는 듯 옥함을 저장반지 안에 넣은 뒤 기쁨을 주체하지 못 하고 구덩이 안에서 연신 주먹을 쥔 채 발을 굴러댔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그 광경을 보고 무언가를 눈치 챈다면 적잖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정말 연금술사의 천국이구나.”
저장반지를 톡톡 두드린 이준은 씩 웃으며 잘라낸 대지의 옥을 모두 저장반지 안에 넣었다.
보물을 모두 챙긴 이준은 다시 구덩이 위로 올라간 뒤 번개처럼 손을 휘둘러 주위의 흙으로 구덩이를 덮었다.
할 일을 모두 마친 이준은 손을 탁탁 턴 뒤 몸을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
“허허, 이보시게, 보물은 발견한 모든 자의 몫인데 이렇게 전부 가져가버리는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이준이 몸을 돌리는 순간 어디선가 기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자, 황색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오셨습니까? 전 계속 숨어계시려는 줄 알았지요.”
하지만 이준은 이미 그 노인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처음에는 대지의 구슬에 정신이 팔려 노인의 기운을 눈치 채지 못 했지만, 모든 작업을 마쳤을 무렵 이준은 누군가가 자신의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