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화. 심사 시작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연금성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야말로 중추 전체의 시선이 연금성으로 집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날이었다.
매 연금대회 우승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투기대륙 역사에 이름을 남겼기 때문에, 수많은 세력들이 이 대회의 결과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오늘 이준은 연금탑이 특별히 제작한 자주색 연금술사 의복을 입고, 가슴팍에는 연금탑에서 발급한 휘장을 달았다. 그 휘장에는 자주색과 금색이 섞인 별 일곱 개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복장은 이준이 몇 년 동안 입어본 옷들 중 가장 화려한 옷이었다. 그는 본래 이렇게 눈에 띄는 옷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연금탑의 대회에 참가하는 이상 이 정도 복식은 갖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한 이준은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갑시다.”
말을 마친 이준이 앞장 서 대청 밖으로 향하자, 유종길과 아라, 천화존자 역시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 * *
연금대회 개최지는 내곽 지역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은 이미 며칠 전부터 엄청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이준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수 백 미터 밖에서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광장의 허공에는 수많은 석대가 둥둥 떠 있었는데, 그 석대에서는 신비한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이 석대가 바로 시험에 통과하고 남은 사람들의 의석입니다.”
유종길은 허공에 둥둥 떠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석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들의 의석이요?”
“허허, 본선에 오르려면 광장에 들어서기 전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지요.”
이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자, 유종길이 손을 들어 넓은 광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짙은 회색의 공간이 보이십니까?”
이준은 유종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짙은 회색을 띠는 공간이 하나 있었는데, 왜곡된 공간 안에는 시야를 막을 정도로 짙은 회색 기체가 가득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최소 5레벨 연금술사는 되어야 합니다. 영혼의 검문소라 불리는 저 검문소에서 나오는 짙은 회색 기체는 영혼 마수라는 마수의 체내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저 기체는 사람의 시야를 가릴 뿐만 아니라 영혼탐지능력을 떨어뜨리지요.
게다가 저 공간 안에 들어가면 마치 미궁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방향감을 상실하고 길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일정 시간 안에 저곳을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게 되지요.”
유종길의 설명에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연 연금탑에서 주최하는 대회의 첫 심사답게 생전 처음 듣는 신기한 방식으로 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검문소를 통과하게 되면 연금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연금세계를 언급하는 순간 유종길의 표정이 매우 엄숙해졌다.
“연금세계요?”
“제가 며칠 전에 연금대회가 시작하고 난 뒤 모든 참가자들은 신기한 장소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그곳이 바로 연금세계입니다. 연금세계에 들어가면 한 공간이 나타나는데, 아주 오래 전 연금탑의 투성급 강자가 만든 곳이라고 하더군요.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연금세계가 무너졌지만,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꿈꾸는 곳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지요. 그곳에는 수많은 희귀 보물과 바깥 세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한 약재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연금술사들에게는 보자기를 지급하는데, 그 보자기에 희귀한 약재들을 챙길 수 있지요.
그리고 저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약재들을 최대한 많이 수집해 출구에 있는 석비를 찾아 연금세계에서 나와야 합니다. 진정한 대결은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명을 마친 유종길은 다시 허공에 떠있는 석대를 가리켰다.
“하늘에 있는 저 석대들은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을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한 사람들만이 오를 수 있지요.”
“정말 대단하네요…….”
연금세계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준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투성에, 신비한 약재가 가득한 이공간이라니……. 그야말로 전설 속으로 들어가 시험을 치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연금탑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너무 잔혹하지만, 현실은 시합보다 냉정하니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투기 대륙을 어떻게 돌아다닐 수 있고, 또 어떻게 진정한 종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유종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 현명종의 진한이라는 자를 처리하시려면 연금세계 안에서 일을 벌이십시오.”
그 순간, 이준의 검은 눈동자에 한기가 스쳤다.
대앵-!
이준과 유종길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맑은 종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면서 광장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곧이어 광장안에 모여든 구경꾼과 연금술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광장 동쪽에 탑처럼 우뚝 솟아있는 석대로 향했다.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일더니 석대 위 공간이 왜곡되면서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연금탑을 이끄는 십 여명의 연금술사들 중 가장 중앙에 서있는 것은 바로 현공자였고, 그의 양쪽에는 그 못지않게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는 두 사람이 서있었다.
왼쪽에 서있는 노인은 피부가 아주 새까맣고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며, 칼날같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오른쪽에 서있는 사람에게로 눈을 돌리는 순간, 이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현공자의 곁에 있는 또 한 명의 수장 중 하나는 얼핏 보기에 서른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여인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젊은 사람이……?’
세 사람이 나타나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석대 위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연금탑 세 수장은 중주에서, 아니 투기대륙 전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허, 나는 현공자라 하오. 연금탑을 대표해 이곳에 찾아온 연금술사들을 환영하오. 앞으로 이곳은 여러분들의 실력을 맘껏 뽐낼 무대가 될 것이오.”
곧이어 현공자가 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걸어나와 여유로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연금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으니, 더 이상 시간 뺏지 않겠소. 허허, 연금대회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세 단계로 나누어 진행되오. 첫 번째는…….”
이후 이어지는 현공자의 설명은 유종길에게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세 가지 선발에 통과하여 마지막까지 최종 자리를 지킨 자가 바로 이번 대회의 우승자가 될 것이오.”
‘우승자’라는 세 글자에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이 모두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연금탑의 수장 후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오래된 영혼 수련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그 수련법이 있다면 8레벨, 심지어 9레벨에 오르는 것도 꿈이 아닐 것입니다.”
와아아!
현공자가 말을 마치는 순간 빽빽하게 늘어선 사람들의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영혼 수련법’이라는 말에 이준의 투지에도 단숨에 불이 붙었다. 영혼수련법에 별의 불꽃은 모든 연금술사들이 탐낼만한 진정한 보물이었고, 그 두 가지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었다.
게다가 연금탑의 수장이 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어지니, 이 대회의 우승자가 된다는 것은 곧 투기대륙 최고의 연금술사가 된다는 의미나 다름이 없었다.
이준은 연금탑의 수장 자리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영혼 수련법과 별의 불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손에 넣고 싶었다. 그 두 가지를 손에 넣는다면 영혼의 궁전을 박살내고 아버지와 스승님을 구해내는 것도 더 이상 꿈이 아니었다.
말을 마친 현공자가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투명한 파동이 확산되어 허공에 부딪히면서 커다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이 다 됐으니 5레벨 이상의 모든 참가자들은 첫 번째 관문, 영혼 검문소로 들어가시오!”
현공자가 거대한 광장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끝이 향한 곳에서는 짙은 회색빛이 퍼져 나오는 공간이 빠르게 왜곡되면서 기이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쾅!
현공자가 말을 마치는 순간, 5레벨 이상의 연금술사들이 앞다투어 왜곡된 공간 안으로 날아갔다.
폭우가 쏟아지듯 왜곡된 공간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이준 역시 깊은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힘내!”
아라의 응원소리를 들은 이준은 가볍게 웃은 뒤 허공을 가로질러 짙은 회색빛이 가득한 공간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높은 석대 위에서 메뚜기 떼처럼 첫 번째 시험 장소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현공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연금대회는 재미있겠소. 아직까지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던 노인네들도 모두 찾아왔구려.”
“별의 불꽃은 평범한 천지의 불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으니 아직 대회에 참가한적이 없는 연금술사라면 누구라도 탐내지 않겠습니까.”
현공자 옆에 있던 새까만 피부의 노인이 검문소로 들어가는 인파들을 훑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이와 실력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번 대회에는 젊은 천재들도 많으니 아주 기대가 됩니다.”
젊은 여자 수장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허허, 젊은이들 중에서 확실히 대단한 인재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래도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약선의 제자밖에 없구려.”
이어지는 현공자의 말에 까만 피부의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약선의 제자 말이오?”
“약선이라…….”
여인 역시 약선의 제자라는 말에 적잖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혼잣말을 중얼 거렸다.
그녀는 오랜 시간 두문불출하며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별의 불꽃과 관련된 일만 아니었다면 오늘도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그녀가 연금탑의 세 수장 중 하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연금탑의 세 수장 중 하나가 여자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연금탑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녀가 겉보기와는 달리 약선, 현공자와 비슷한 연배의 연금술사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이 신비로운 여성은 투기대륙의 가장 찬란히 빛나던 세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하나로, 그 명성은 약존자나 연금탑의 나머지 두 수장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이준의 말로는 약선 그 영감이 혼전의 손에 넘어갔다고 하더군. 대회가 끝난 뒤 가능하다면 그 영감을 도와야겠네. 어찌됐든 우리 연금탑을 크게 도왔던 사람 아닌가.”
현공자의 말에 여인의 표정이 단박에 어둡게 내려앉았다.
“흥, 바보 같은 영감이……. 영혼의 궁전놈들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걸 뻔히 알면서도 온 투기대륙을 돌아다녔으니 당연한 결과죠.”
“쯧쯧, 말은……. 그래도 자네가 그 영감을 가장 걱정한다는 걸 누가 모르겠소. 그때 몰래 많은 사람들을 보내 약선의 행방을 쫓은 것도 당신 아니오.”
현공자의 지적에 여인은 벌컥 성을 내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그자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이에 그녀의 괴팍한 성질머리를 알고 있는 나머지 두 수장은 말없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대회가 끝나면 그 녀석을 한 번 만나봐야겠어요.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요.”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 한참 뒤에 그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나머지 두 수장은 또 다시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