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화. 영혼의 손바닥
잠시 후, 조영이 보기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 혼전이 그렇게 걱정되시면서 왜 참가를 금지시키지 않는거죠?”
“연금대회에 참가한 연금술사들 중 누가 영혼의 궁전의 연금술사인지 알 수가 없구나. 설령 안다고 해도 아무 이유 없이 금지시킬 수는 없고. 연금탑의 규율에 따라 실력있는 연금술사라면 참가 자격을 가지게 되니 연금탑과 적이더라도 그들의 자격을 박탈시킬 수는 없지……. 골치 아픈 규율이지만 연금탑은 이 규칙을 지켜왔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게다.”
현공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네 사람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7일 후에 선발전이 시작된다네. 이 기간 동안 자네들은 최대한 연금탑 안에 머물러주게. 놈들이 대회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하고.”
이어지는 현공자의 말에 네 사람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연금대회가 무사히 시작되도록 하는 것이네.”
현공자는 웃으며 따뜻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집어 이준에게 건넸다.
“영이가 갖고 있는 영혼 무투기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네. 가져가서 한 번 보게.”
두루마리를 받은 이준은 환히 웃으며 급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현로님.”
“허허, 별 거 아니네.”
현공자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잠시 후, 이준과 나머지 세 사람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천천히 대전 밖으로 빠져 나왔다.
네 사람이 그 곳을 빠져나가자 현공자의 입가에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약선, 그 때 우리가 한 내기의 결과는 이준과 영이 중에 누가 연금대회 우승자가 될 지로 봐야겠군. 이번에는 자네가 나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 * *
대전 밖으로 나온 이준은 세 사람과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곧장 연금탑 아래층으로 향하는 통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준씨, 잠깐만요.”
이준이 발을 내딛는 순간, 조영이 그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시죠, 조영 아가씨?”
“지난 번 이준 씨와 별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 같아서, 시간 있으면 얘기 좀 할래요?”
“됐습니다.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시간 있을 때 이야기 나누도록 하죠.”
이준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조영의 표정이 금세 싸늘하게 굳었다.
“아쉽네요.”
“그럼 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며칠 동안 수련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연금대회가 시작할 때 다시 얘기 하죠.”
말을 마친 이준은 조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달아나듯 몸을 돌려 통로를 벗어났다. 그는 조영같이 예측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재밌는 걸…….”
이준이 떠나자, 잠시 굳어있던 조영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 * *
길을 따라 내려오던 이준은 거대한 연금탑 안을 한 시간 정도 서성이고 나서야 성 장로가 마련해준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금탑 안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는데 그들 모두가 연금탑의 연금술사들이었으며, 대사급 인물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이준은 함께 왔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방에 들어선 이준은 곧바로 호흡을 고른 뒤 현공자가 건넨 두루마리를 펼쳤다.
두루마리에서는 글자 하나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은은하게 투명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었다. 영혼의 힘을 사용해 그것을 만지자, 두루마리 안에 있는 정보가 물 흐르듯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보가 완전히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이준은 두루마리를 내려두고 정신을 집중해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정리했다.
이준이 훔쳐배운 영혼무투기의 이름은 ‘영혼의 인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과거 영혼무투기는 염력처럼 1격에서 4격까지 네 단계로 나뉘었으며, 이 무투기는 3격에 해당하는 무투기였다.
현공자의 말대로 높은 단계의 무투기라고 할 수 는 없었지만, 영혼 무투기가 거의 다 사라진 이 시대에는 이 정도도 구하기 어려운 무투기였다.
심지어 이준은 이런 무투기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영혼의 인결은 모두 세 가지 인결로 나뉘었는데, 이준이 훔쳐배운 것은 그 중 한 가지 뿐이었다. 다행히 이 두루마리에는 세 개의 인결이 모두 완벽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게 바로 영혼무투기인가……. 역시 무투기의 시전 방식과는 조금 다르네.”
일반적인 무투기 중에는 인결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많았지만, 영혼 무투기는 반드시 인을 맺어야만 사용할 수 있었고, 인결에 맞춰 영혼의 힘의 움직임 역시 달라져야 했다. 즉 염력을 사용하느냐 영혼의 힘을 사용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대략적인 원리는 일반적인 무투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
깊은 숨을 내쉰 이준이 서서히 정신을 집중하고 손을 움직여 머릿속에 있는 인결을 토대로 인을 맺기 시작했다.
이준의 인결은 거북이처럼 느렸지만 얼굴표정 만큼은 아주 진지했다. 곧이어 이준의 미간에서 영혼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와 인결과 융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인결을 반복하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이준은 점점 더 영혼 무투기의 인결에 익숙해졌다.
“영혼의 극한……. 천령의 수호……. 영혼수련흡수…….”
심신을 완전히 집중하자, 저도 모르게 영혼의 힘을 모을 때 사용했던 주문이 입 안에서 흘러나왔다.
이준이 주문을 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방 안의 공기가 조금씩 요동치기 시작하다가 아주 옅은 영기가 공간 안에 퍼지면서 이준의 미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준은 점점 더 영혼의 힘을 제어하는 것이 쉬워지고, 인결을 그릴 때 느껴지던 어색함도 많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 * *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빠르게 지나가 어느새 연금술 경연대회 날짜가 코앞에 다가왔다.
개막식 날짜가 가까워짐에 따라 더욱 많은 인파들이 연금성을 찾으며 온 성안이 시장통처럼 북적거렸다.
본래 연금탑의 연금술 경연대회는 중주 최고의 행사 중 하나였지만, 올해는 유독 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이처럼 수많은 세력에서 실력있는 연금술사를 파견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별의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물론 대회에 참가하는 기본적인 목적은 평생을 바쳐 수련한 실력을 뽐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모든 연금술사들의 보물인 천지의 불꽃이 상품으로 걸렸으니 그간 대회에 관심이 없었거나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연금술사들도 모조리 연금성으로 달려온 것이다.
또 다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대회 하루 전……. 연금탑 한구석에서 조용히 수련에 몰두하던 한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 * *
이준이 감은 눈을 뜨는 순간, 무형의 파동이 맹렬하게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가 깊은 숨을 들이 마시며 두 손을 강하게 움직이자, 기이한 각인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여러 잔영을 남기며 춤추듯 요동쳤다. 곧이어 그의 손바닥 중심에서 투명한 영혼의 힘이 번개처럼 모여 눈 깜짝할 새에 손바닥 모양으로 변화했다.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손바닥 모양이 앞으로 나아가며 더욱 복잡한 인결 두 개가 나타났다.
서로 다른 세 개의 손바닥 인결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인 것처럼 완벽하게 합쳐졌다. 이 정도 숙련도라면 조영이 시전했던 영혼 무투기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영혼 무투기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된 이준은 기쁜 얼굴로 침상에서 내려와 바닥에 발을 딛고 선 뒤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영혼 속에서 퍼져 나오는 영기가 그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해보니 자신의 영혼의 힘이 어떤 투명한 막에 의해 막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마치…….
승급 전의 느낌과 비슷했다.
“이건…….”
마음속으로 씩 웃은 이준은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방 밖에서는 아라가 눈을 감은 채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난 번 습격 이후 아라는 한시도 이준의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 했고, 그가 영혼 무투기의 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내내 그의 방 앞에 앉아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준이 문을 열고 나오자, 아라 역시 빠르게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이준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수련 끝난 거야?”
“응, 고생 했어…….”
“아참, 그 동안 그 조영이라는 여자가 널 한 번 찾아왔었는데 내가 막아서 그냥 돌아갔어. 만나러 가볼래?”
아라의 전언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설마하니 조영이 숙소까지 찾아오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니, 가급적이면 그 여자랑은 얽히고 싶지 않아.”
이준의 말에 아라는 피식 웃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대회는 언제 시작이야?”
이준이 대청 안을 한 번 둘러보며 물었다.
“내일.”
“내일이라고? 그렇게 빨리?”
대회가 내일이라는 말에 이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비명을 지르듯 되물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가버릴 줄은 몰랐다. 눈 깜짝한 사이에 대회 하루 전이라니…….
“오늘 안 깨어났으면 내가 들어가서 깨우려 했어.”
아라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다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약재가 충분하지 않은데, 오늘내로 어떻게 약재를 다 구하지?”
연금술사 경매장에서 약재 두 가지를 구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하나인 만년청의 영혼넝쿨은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대회가 고작 하루 남았다니, 이대로라면 약재가 없어서 연금비약을 못만들지도 몰랐다.
“허허, 약재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그 때, 유종길, 선화, 천화존자 세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유종길이 빙긋 웃으며 이준에게 다가와 손을 살짝 흔들자 얼음 염력이 느껴지는 옥함 몇 개가 앞에 있던 탁상 위에 나타났다.
“만년청의 영혼넝쿨과 요괴의 열매입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약재에 두 개씩 더 준비해두었습니다. 설사 선생께서 제련에 실패하더라도, 한 번 정도는 더 만들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이준은 잠시 당황하다 급히 옥함을 집어 뚜껑을 열어보았다. 옥함 안에는 짙은 생기를 머금은 청록색의 나무줄기가 담겨 있었다.
“정말 만년청의 영혼넝쿨이네요. 이걸 어떻게 구하신 거예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이준이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유씨 가문 지하 창고에도 없던 이 물건이 어떻게 두 개나 있고, 요괴의 열매까지 하나 더 있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제가 얻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연금탑의 어느 장로님에게 필요한 약재들을 말씀 들렸더니 다음 날 직접 약재들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유종길의 말에 이준은 곧바로 현공자가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마음속으로 현공자에게 감사를 표한 이준은 앞에 놓여있는 약재들을 저장반지 속에 넣었다. 이것들은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들이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은혜는 다음에 기회가 될 때 갚으면 그만이었다.
“연금대회에 참여하는 인원이 역대 최고를 넘길 것 같습니다. 지금 내곽 지역은 이미 연금대회 참가자들로 가득 차있다고 하더군요. 그 중에는 이미 명성이 자자한 영감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름난 연금술사들이 모두 별의 불꽃을 얻기 위해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이준 역시 이번 연금대회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 별의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위권에 들어야 했다.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조용히 속으로 투지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