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4화. 놀라운 실력
석비 위에 수치가 나타나자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백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성 장로는 거울판 위에 써있는 수치를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성적이라면 이미 상위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백씨 가문이 최근 기고만장해 진 것도 이해가 갈만한 점수였다.
“자네들 차례요.”
백용이 물러서자 성 장로가 나머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나가보겠소.”
세 번째 시험자는 바로 조씨 가문의 ‘조휴’였다. 그가 손으로 석비를 짚고 가만히 숨을 내쉬자, 막강한 영혼의 힘이 그의 몸에서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와아…….”
조휴의 점수가 석판 위에 떠오르는 순간, 관객석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점수는 앞선 두 사람보다 훨씬 더 높은 846이었다.
“이제 당신들 차례요.”
조휴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단헌과 이준을 향해 말했다.
그의 말에 단헌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곁에 있는 이준을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단헌의 차례가 오자 대전 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심지어 시종일관 구슬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조영마저도 가만히 석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헌은 오대 가문의 수장이라는 단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에서도 최고의 인물로, 재능과 노력, 인품을 모두 갖춘 진정한 인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많은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단헌은 석비 앞에 다가가 전혀 긴장되지 않은 듯평온한 표정으로 그 위에 손을 올렸다.
단헌은 천천히 눈을 감는 순간 엄청난 영혼의 힘이 그의 몸에서 서서히 터져 나오면서 주위의 공간을 왜곡시켰다. 이를 본 성 장로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903!”
거울판에 새겨진 새빨간 수치에 대전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역시 단씨 가문 최고의 인재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그의 영혼의 힘은 다른 세 명을 적잖이 상회하고 있었다.
성 장로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영혼의 힘이라면 머지않아 7레벨 고급 연금술사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어쩌면 8레벨 연금술사가 될지도 몰랐다.
마지막은 이준의 차례였다. 동시에 오늘 이 시험은 유씨 가문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였다. 만일 이준의 영혼수치가 백용을 뛰어넘지 못하면, 유씨 가문은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
관객석에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 한시도 이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유종길을 비롯한 유씨 가문의 사람들은 초조함을 이기지 못 하고 연신 마른 침을 삼키며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일 첫 번째 심사에서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그 다음의 심사는 불 보듯 뻔했다.
조영 역시 눈을 살짝 치켜뜬 채 흥미롭다는 듯 이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이준이 정말로 유씨 가문을 구원할만한 인재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마침내 이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석비 위에 손을 올렸다.
장내의 모든 시선이 석비 앞으로 걸어 나온 이준에게 꽂혔다. 앞서 시험을 봤던 사람들의 점수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도 남을 점수였지만, 사람들이 가장 결과를 기대하고 있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이준의 영혼수치였다.
심사에 처음으로 참가한 그에게 오대 가문 중 하나인 유씨 가문의 운명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조단은 이준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싸늘한 눈빛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직접 맞붙어 본 적이 있었던 만큼, 조단은 이준이 절대로 삼등 안에 들지 못 하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석비에 이준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미세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영혼 깊은 곳까지 무언가가 파고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준, 이번 테스트에서 통과하려면 반드시 3등 안에 들어야 한다. 현재 3위는 785점의 백용이다. 이 자만 뛰어 넘는다면 유씨 가문은 심사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석비 옆에 서있던 성 장로가 이준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 삼등 안에 들지 못한다면 그도 더 이상 유씨 가문을 도와줄 수 없었다.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지금 자신의 손에 유씨 가문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고요함이 대전 안을 가득 메우면서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고, 무거운 분위기가 대전 전체를 감쌌다.
적막이 깔린 지 삼십 초 정도 지났을 때, 이상하리만치 폭발적이고 강력한 영혼의 힘이 막 잠에서 깬 거대한 용처럼 이준의 몸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쾅!
낮은 폭발음이 이준이 서있는 주변 공간에서 터져 나오며 투명한 영혼폭풍이 형성되어 주변의 공간을 강하게 왜곡시켰다.
영혼 폭풍이 나타나는 순간, 이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성 장로가 놀란 듯 두 눈을 치켜뜬 채 왜곡된 공간 속에 있는 희미한 형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석비 앞에 있던 단헌, 조휴, 백용 등 네 사람 역시 이 갑작스런 변화에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특히 백용은 너무 놀란 나머지 완전히 파랗게 질려 버리고 말았다. 설마하니 이준이 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조씨 가문의 좌석에서 둥근 구슬을 만지작거리던 조영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투명한 영혼폭풍은 대전 전체를 마구 헤집다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가라앉았고, 몇 십 초가 지난 뒤에야 완전히 사라졌다.
영혼 폭풍이 사라지자 석비를 짚고 있던 이준이 천천히 손을 내려놓은 뒤 석비 중앙에 있는 거울판 위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1395-
석비 위에 새겨진 선명한 붉은 글씨에 광장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석비 위의 글씨만을 바라봤다.
1395라니!
이 숫자는 조영이 기록했던 숫자보다도 400점이나 더 높은 수치였다.
과거 조영은 976 점이라는 수치를 기록하고 ‘마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렇다면 1395라는 점수를 얻은 이준에게는 무슨 별명을 붙여주어야 한단 말인가!
“재밌어……. 역시 중주에는 숨겨진 인재가 많군. 보아 하니 이번 연금대회는 꽤나 재미있겠어.”
조영은 구불구불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한편 그녀의 뒤에 있던 조단은 새하얗게 질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유씨 가문 좌석 위에서 줄곧 긴장한 상태로 결과를 기다리던 유종길과 선화 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준의 실력을 의심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첫 심사에서 조영 이상의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그들이었다.
심지어 유종길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손까지 떨고 있었다. 그동안 마음속에 가득했던 걱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정도 점수라면 나머지 두 심사에서도 반드시 삼등 안에 들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세 심사 모두에서 압도적인 점수차로 일등을 할지도 몰랐다.
석비 위에 적힌 붉은 글자를 바라보던 성 장로는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이준을 바라봤다.
1395점, 다른 사람들은 이 수치에 담긴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겠지만, 그는 이준의 영혼의 힘이 이미 7레벨 고급 단계에 달했다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이준의 나이였다. 이 나이에 7레벨 고급단계가 된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 중 오로지 하나, 조영뿐이었다. 이는 지금 이준이 연금탑의 차기 수장으로 거론되는 조영과 동등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한편, 1395점이라는 점수에 놀라기는 이준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조휴나 단헌이 굉장한 영혼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자신의 점수가 그들을 크게 웃돌았으니, 스스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준은 그것이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영기에는 영혼을 질적으로 변화 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두 명의 동급 연금술사 중 한 명은 영혼 속에 영기가 있고, 한 명은 없다고 한다면 두 사람의 영혼의 힘이나 제련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혼 폭풍이 나타났을 때, 이준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영혼의 힘이 완전히 폭발하지 않게 억눌렀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전력을 보이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허허, 대단하군, 대단해!”
성 장로는 아주 흥미롭다는 듯 수염을 쓸어내리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이번 일이 윗선에 보고된다면,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영혼 수치 심사가 끝났소. 1등을 차지한 유씨 가문의 이준의 신기록 달성을 축하하오. 이 기록은 앞으로 긴 시간동안 깨는 자가 없을 것 같군.”
장내에 울려 퍼진 성 장로의 목소리를 들은 대전 내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다 무너져가는 유씨 가문이 이렇게 기사회생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그가 보여준 실력으로 미루어보아 이후 이어지는 두 개의 심사에서 삼등 안에 들지 못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리고 이번 심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유씨 가문은 다시 예전 못지않은 힘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권세를 손에 넣을지도 몰랐다.
“자, 이제 두 개의 심사가 남아있습니다. 이 두 항목이 끝나고 나면 이번 오대가문 심사의 최종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성 장로가 이준을 향해 따뜻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성 장로의 친절한 태도에 이준 역시 미소로 답하며 뒤로 물러났다.
바로 그 때, 돌연 섬뜩한 느낌이 이준의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조영이 한 손으로는 자신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동시에 다른 한손으로 연신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음은 영혼 제어력 심사입니다.”
성 장로는 웃으며 이준을 비롯한 네 사람을 바라본 뒤 저장반지에서 새까만 쇠구슬을 꺼냈다. 쇠구슬은 매끈하고 아무런 광택이 나지 않으며, 어딘지 모르게 무겁고 어두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이것은 영혼의 강철로 만든 구슬로, 보기에는 아주 가벼워 보이지만, 이걸 들게 된다면 아주 무거운 물건을 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심사가 시작되면 천장 위에서 수많은 구슬이 떨어질 것이고, 여러분은 염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영혼의 힘만으로 최대한 많은 구슬을 받으면 됩니다.”
말을 마친 성 장로는 먼저 조영을 바라본 후 이준에게 시선을 돌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 심사에서 조영은 한 번에 89개를 받아내 신기록을 세웠고, 이 기록 역시 아직까지 깬 자가 없습니다.”
성 장로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순간 이준에게로 쏠렸다. 그가 또 다시 조영이 만든 기록을 깰 수 있을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첫 번째 심사는 연금술사의 ‘힘’을 측정하는 것이라면, 이 시험은 그 ‘힘’을 얼마나 민첩하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연금비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섬세한 기술을 고려한다면, 연금술사의 진정한 실력은 첫 번째 심사보다 두 번째 심사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떤가? 다들 준비가 되셨소?”
성 장로가 웃으며 물었다.
그의 말에 모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정신을 집중해 영혼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한 번에 모두 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영혼의 힘을 분산시키는 것은 이 심사에서 가장 바보 같은 행동입니다.”
성 장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의를 준 뒤 번개처럼 빠르게 뒤로 후퇴했다. 그 순간, 천장 쪽에서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빽빽한 검은 구멍에서 쇠구슬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