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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61화 (561/818)

561화. 영혼의 가루

계단에서 내려 온 이준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유종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로님, 저 녀석이 마음에 걸리십니까?”

그의 말에 유종길은 씁쓸하게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명종과 이곳에서 마주치게 될 줄 몰랐군요. 저 사내를 보필하는 자들의 실력을 보니 틀림없이 현명종에서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일겁니다. 오늘 그와 마찰이 있었으니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유종길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이준은 담담하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일이 생기면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이준의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투종 최고급 강자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았고, 화련을 사용한다면 투존 강자라 해도 무사히 넘어가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두 명의 투존을 대동하고 있으니, 설령 정말로 현명종과 맞붙게 된다 해도 자신이 있었다.

이준의 호언장담에 유종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번 에 겪었던 일로 그는 줄곧 이준의 배후에 엄청난 세력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다.

2층으로 내려온 이준은 곧바로 선화가 잡아둔 노점으로 향했다.

무료하게 앉아있던 선화는 이준 일행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땠어?”

이준이 웃으며 물었다.

“헤헤, 선배가 올라가자마자 쪼르르 와서 팔겠다고 하더라고요.”

선화가 멀지 않은 곳에서 눈이 빠지게 이준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홍색 의복의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수확은 없었고?”

“없었어요. 만년청의 영혼넝쿨은 가지도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선화가 아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이준은 이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년청의 영혼넝쿨은 정말 보기 드문 약재인데다 고급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 반드시 필요한 약재이기 때문에 이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교환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준은 몸을 돌려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홍색 의복의 노인에게 다가가 웃으며 저장반지에서 옥병을 꺼냈다.

“너무 아쉬워 하지 마세요. 이건 명상의 비약입니다. 요괴열매와 바꿔도 당신이 이득일 겁니다.”

명상의 비약이라는 말에 홍색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급히 옥병을 건네받았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연금비약을 꺼내 꼼꼼하게 확인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연신 웃음을 지어댔다.

“요괴의 열매나 만년청의 영혼넝쿨, 눈꽃 인삼 이 세 가지 약재가 있다면 북쪽에 있는 유씨 가문의 별장에 와서 절 찾으세요. 가격은 만족할 만큼 쳐드리지요.”

이준이 수정대 위에 있는 요괴열매를 저장반지 안에 넣으며 말했다.

거래를 마친 이준은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간 뒤 연금술사 경매장을 빠져 나와 유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

* * *

유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한 이준은 지체없이 천화존자, 아라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온 세 사람은 책상 앞에 모여 앉아 경매장에서 얻은 동판을 살피기 시작했다.

옅은 황색을 띠는 동판 위에는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녹이 슬어있었고, 그 녹이 동판 위에 그려진 무늬를 부식시키고 있었다.

“선생님, 이 물건이 정말로 명상의 비약의 조합표보다 가치가 있을까요?”

눈을 씻고 다시 봐도 동판에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자, 이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허허, 그렇게 쉽게 특별한 점을 알아볼 수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물건을 알아봤겠지.”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선생님, 이 물건이 도대체 왜 대단한 물건인지 알려주십시오.”

천화존자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동판을 손바닥 위에 올린 후 비스듬히 등불에 비추어 보였다.

“무엇이 보이느냐?”

하지만 이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한 녹 뿐이었다.

“천화존자 선생님, 뜸들이지 마세요.”

“참을성이 없구나, 참…….”

말을 마친 천화존자가 고개를 저으며 두 손가락을 굽히자, 손가락 끝에 염력이 모여들어 작은 바늘이 되었다.

곧이어 천화존자가 투존의 염력이 압축된 바늘로 동판 표면에 묻어있는 녹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이준과 아라는 그의 행동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후 천화존자는 두 사람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삼십 분 동안 꼼꼼히 녹을 떼어냈다.

한참동안 꼼꼼하게 녹을 벗겨낸 천화존자는 동판을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바닥에 툭, 하고 내던졌다.

“선생님?”

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이준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화존자를 바라봤다.

“허허허, 두 사람 모두 실력은 대단하지만 경험이 너무 부족하군.”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의 표정을 본 천화존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정성스럽게 떼어낸 녹들을 주물러 황색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진짜 비밀은 동판이 아닌 바로 볼품없어 보이는 이 녹안에 있네.”

천화존자가 손가락을 튕겨 누르스름한 공을 이준에게 던지며 말했다.

“천지의 불꽃으로 구워보게.”

황색 구체를 받아 든 이준은 공을 위아래로 훑은 뒤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청록색 화염을 피워냈다.

“응?”

그 순간, 청록색 화염을 황색 구체에 가져다 댄 이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였던 동판 위의 녹은 천지의 불꽃으로 둘러싸도 녹아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이게…….”

이준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자, 천화존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계속 태워보게.”

천화존자의 지시에 따라 십 분 정도를 달구어보니, 그제서야 황색 구체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오 분 정도를 더 가열하자, 황색 구체가 옅은 황금색의 가루로 변화했다. 황금색의 가루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짙은 영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건?”

그 때, 천화존자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분명 영혼의 가루일 것이네. 허허, 이 정도 물건이라면 7레벨 중급 연금비약의 조합표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영혼의 가루요?”

천화존자의 눈썹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본 이준이 눈썹을 움찔거리며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 영혼의 가루는 어디에 쓰는거죠?”

이준의 질문에 천화존자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구슬은 아주 먼 옛날에 8레벨, 혹은 그 이상의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취급됐었지.”

천화존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의 입이 귀에 걸렸다.

“아주 옛날에 영혼의 힘을 영혼단계로 끌어올려야 하는 연금술사들은 하나 같이 온 힘을 다 쏟아 이 영혼의 가루를 얻으려 했지. 이 물건은 영기를 빨아들이는 자석 같은 것이네. 이 물건이 영혼 안에 들어오면 영혼 속의 영기가 부지불식간에 점점 불어나 영혼의 힘이 성장하게 되지.”

천화존자가 설명을 마치자, 이준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영혼의 힘을 증가시켜주는 물건을 만나다니, 하늘이 자신을 돕는 것만 같았다.

“이 영혼의 가루는 소수의 8레벨 연금술사만이 제련해낼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 제조법을 아는 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네.”

천화존자 역시 이준 못지 않게 영혼의 가루에서 눈을 떼지 못 하고 있었다. 이 물건은 그도 고적에서만 봤을 뿐,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혼의 가루가 있다면 8레벨 연금술사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지. 게다가 이 영혼의 구슬을 사용한 뒤에 연금비약을 만들면 이전보다 훨씬 좋은 품질의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다더군. 어찌됐든, 나에게 다시 몸을 만들어 준 빚은 그럭저럭 갚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네.”

말을 마친 천화존자는 넋이 나간 이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날도 어두워졌으니 일찍 쉬게. 내일 오대가문의 심사가 있으니 준비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천화존자가 자리를 뜨자, 아라 역시 이준에게 인사를 남기고 방을 떠났다.

이준은 두 사람이 밖에 나간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영혼의 가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영혼의 가루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이준이 눈을 감자, 강한 흡인력이 터져 나오며 반짝거리는 가루가 별똥별처럼 이준의 이마를 향해 빠르게 날아간 뒤 사라졌다.

분진이 이마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준의 몸이 강하게 뒤흔들리며 머리가 띵하고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단단한 무언가가 두개골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이었다.

그러나 그 통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고, 통증이 사라질 무렵에는 숨을 내쉴 때 마다 천지의 영기가 몸 속으로 흘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기가……?!”

이준은 지금까지 영혼 속의 영기를 높이려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보았지만, 승급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영혼의 힘이 증가하는 것을 느끼지 못 했었다.

하지만 지금, 영혼의 가루의 힘을 빌려 일반적인 방법으론 절대 얻을 수 없는 영기를 영혼 속에 불어 넣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신을 집중해보자, 머릿속에 황금색의 빛나는 구체가 나타나더니 주위의 영기가 더욱 빠른 속도로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황금색 구체에서 퍼져 나오는 빛과 흡인력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영혼의 가루의 효력이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황금색 구체가 완전히 빛을 잃는 순간, 우직, 하는 미세한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며 끊임없이 그의 미간 속으로 빨려들어 오던 영기의 흐름이 멈췄다.

하지만 이준이 눈을 뜨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사라져가던 영혼의 가루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다시 한번 머리가 깨질듯 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극심하던 통증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고, 그의 머릿속에 희미하게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혼의 극한……. 천령의 수호……. 영혼수련흡수…….”

통증이 잦아들자, 이준은 곧바로 입 속으로 노인이 했던 말을 되뇌어 보았다.

“영혼의 극한……천령의 수호……영혼수련흡수…….”

그가 알기로 일부 강자들은 물체에 영혼의 기억을 남길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 목소리는 영혼의 가루를 남긴 고대 강자의 것이 분명했다.

“한 문장 같은데 완벽하게 들리지 않아서 어떤 효과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네…….”

한참 생각해봐도 결론이 나지 않자 이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남아있는 영혼의 가루 네 개를 저장반지 안에 넣었다. 영기를 흡수하는 효과를 가진 이 물건은 이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지만,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앞으로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도 이 물건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영혼의 극한……. 천령의 수호……. 영혼수련흡수…….”

이준은 한참동안 의자에 앉아 그 말을 되뇌어보았다. 어떻게 이어보아도 말이 되지 않았다.

“영혼의 극한……. 천령의 수호……. 영혼수련흡수……. 영혼의 가루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강자가 남긴 말이라면 반드시 뭔가 중요한 말일텐데…….”

바로 그 때, 조용한 방안에 돌연 기이한 파동이 일며 천지의 영기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방 안에서 일렁이는 영기를 느낀 이준의 얼굴에는 주체할 수 없는 환희가 흘렀다.

지금까지 그가 이렇게 진한 영기를 느껴본 것은 ‘연금혼의 상태’에 들어갔었던 몇 번에 불과했다.

“설마…… 그 말 때문인가?”

영기는 아주 심오한 에너지로, 염력과 같은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영혼의 힘을 키우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기는 천지의 에너지와 달리 염력 수련법을 통해 흡수할 수 없었고, 연금혼의 상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천지의 영기를 느끼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주 오래 전에는 영혼의 힘을 단련하는 수련법이 존재했다고 전해지고는 있지만, 지금은 그 수련법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연금술사들도 영기를 어떻게 탐지하고 흡수해야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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