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화. 연금술사 경매장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완전히 넋을 잃은 채 이준의 손에 들린 휘장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노부인과 구씨 가문의 노인은 물론이고 한리마저 받지 못한 7레벨 중급 휘장을 정말로 저 어린 것이 받아냈단 말인가!
한편 유종길은 연신 웃으며 수염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노부인의 멍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통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잠시 후,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이준의 손에 들린 휘장을 쳐다보던 노부인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한 의장, 정말 시험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까?”
그녀의 질문에 한리가 눈을 부라리며 되물었다.
“지금 내 판단을 의심하는 거요?”
한리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노부인이 황급히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요, 몰락한 유씨 가문에서 이렇게 어린 7레벨 연금술사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요.”
노부인의 옆에 서있던 백색 옷의 여자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나 이준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흥. 7레벨 중급 연금술사 하나 나왔다고 이제 와서 유씨 가문이 다시 예전의 위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노부인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그 한마디를 내뱉은 뒤 곧바로 몸을 돌렸다.
“가자!”
“잠깐.”
하지만 노부인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감히 나를 불러 세운 게냐?”
“그런데요.”
노부인을 바라보는 이준의 시선에는 싸늘한 살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자 상대의 눈에 깃든 살기를 읽은 노부인의 눈빛에도 마찬가지로 한기가 어렸다.
“후배님, 시험 한번 잘 봤다고 너무 거만하게 구는 것 아닌가?”
그 순간,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이준의 몸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곧이어 노부인의 가슴 앞에 공간의 파동이 일어나며 새하얀 주먹 하나가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퍽!
당황한 노부인이 황급히 손을 휘둘러 이준의 주먹을 막아내는 찰나, 그녀의 입에서 새빨간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커헉……!”
노부인이 피를 토하며 자리에 쓰러지자, 주위에 있던 백씨 가문의 젊은 연금술사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를 부축할 생각조차 하지 못 하고 이준을 바라봤다.
노부인을 쓰러뜨린 이준은 사람들의 시선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뒤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참는데도 한계가 있어.”
금방이라도 노부인을 죽여 버릴 것만 같은 이준의 표정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한 의장님, 소동을 벌여 죄송합니다.”
이준은 무심한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진 노부인을 바라보다 한리에게로 시선을 돌려 예의 바른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후…….”
이준의 예의바른 태도에 한리는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됐네. 백씨 가문에서 계속해서 자네를 도발했으니 이번 일은 이렇게 넘어가지. 하지만 이 이상은 안 되네. 백미연, 데리고 가게나.”
그의 말에 백색 옷을 입은 여자는 겁먹은 눈빛으로 이준의 눈치를 살피며 노부인을 부축해 시험실을 빠져나갔고, 옆에 있던 구씨 가문의 세 사람 역시 다소 겁먹은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허허……정말 손을 쓰다니, 마음은 시원하지만 백씨 가문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입니다.”
두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빠져나가자, 유종길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해두지 않으면 백씨 가문은 계속해서 유씨 가문을 괴롭힐 테니까요.”
“허허, 이번에는 정말로 유씨 가문이 심사에 통과할 것 같구려. 유종길, 축하하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리가 유종길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앙심을 품은 백씨 가문이 심사를 방해할까 걱정 되는군요.”
유종길이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지요. 하지만 백씨 가문은 예전부터 유씨 가문을 좋게 보지 않았으니, 이러나저러나 유씨 가문을 방해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한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백씨 가문의 젊은이 중 가장 뛰어난 자는 백용이라는 젊은이입니다. 그 자는 서른이 되기 전에 7레벨 중급 연금술사가 되었고, 지금은 삼년 정도가 지났으니 더 높은 경지에 올랐겠지요. 만일 백씨 가문에서 그 자를 참가시킨다면 유씨 가문이 삼등안에 들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백용이라……. 조단을 능가하는 실력을 가졌다는 그 젊은이 말입니까?”
유종길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백씨 가문에서 정말로 백용을 내보낸다면 제 아무리 이준이라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조씨 가문과의 관계는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졌으니, 조씨 가문에서도 대단한 인재를 내보낼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오대 가문 중 최고의 실력을 가진 단씨 가문에도 뛰어난 인재들이 많으니, 이대로라면 이준이 삼등 안에 드는 것이 어려울지도 몰랐다.
“됐소, 이렇게 된 거 하늘의 뜻에 맡깁시다.”
유종길의 어두운 표정을 본 한리는 위로하듯 그렇게 말한 뒤 이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유씨 가문에서 모셔온 이 조력자 역시 보통이 아니니 이 세 가문의 천재들을 마주한다 해도 맞설 수 있을 것이오.”
그의 말에 유종길 역시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야지요.”
* * *
이준과 유종길은 한리와 작별 인사를 한 뒤 연금성의 외곽지역으로 향했다.
대회가 다가오면서 연금성 전체가 밤낮없이 사람들로 붐볐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만큼 신비한 약재나 보물들의 거래도 활발해졌고, 이에 이준은 유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경매장에 들려 쓸 만한 물건이 있나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준의 눈에 들 만 한 물건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고, 고작 희귀한 약재 몇 개 정도를 구했을 뿐이었다.
“이준 선생, 좋은 물건을 얻고 싶으면 내일 모레 열리는 연금술사 경매회에 참가해 보시지요. 그곳에는 이 경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한 물건들이 올라오니, 원하는 것들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유종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유씨 가문의 별장에 도착한 이준은 또 다시 정원으로 나아가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으음……. 오늘은 별의 불꽃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네. 어떻게 된거지?”
이준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별의 불꽃의 기운과 다시 접촉할 수만 있다면 영혼의 힘도 더 강해질 것이고, 그것이 반복되다보면 영혼의 힘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연금 대회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 영혼의 힘을 강하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보다 더 힘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생각은 그의 바람에 불과했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별의 불꽃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일 모레 열리는 그 연금술사 경매장에 가서 영혼 에너지를 단련할 수 있는 물건을 좀 찾아봐야겠는걸.”
이준은 결국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몸을 돌려 방 안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이준은 하루 종일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고, 아라와 천화존자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자신의 처소에 머물렀다. 이준의 방안에서 퍼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만 봐도 그가 제련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다음 날, 태양이 어둠을 가르며 유씨 가문의 작은 정원 위로 밝게 비칠 때가 되어서야 굳게 닫혀 있던 이준의 방문이 서서히 열렸다.
방에서 서서히 걸어 나와 신선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저장반지를 문지르던 이준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시간이 조금 촉박했지만, 이전에 저장해둔 물건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이 정도 준비를 마쳤다면 내일 연금술사 경매회 에서도 좋은 물건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준이 방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유종길과 아라, 천화존자, 그리고 선화가 웃는 얼굴로 정원 입구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허, 준비 되셨습니까?”
유종길이 웃으며 말했다.
“가죠, 이 연금성의 연금술사 경매회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봐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준은 나는 듯이 걸어 정원을 빠져나와 유종길의 뒤를 따랐고, 네 사람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연금성의 연금술사 경매장은 외곽지역과 내부지역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었다.
“연금술사 경매장이라…….”
거대한 건축물 앞에 선 이준은 연청색 현판 위에 새겨진 글자를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여들고 있었으며 연금술사 의복을 입은 사람들이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경매장 입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이곳인가요?”
“예.”
이준의 질문에 유종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도 이곳에 오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군요.”
이준이 경매장 가까이 다가서자, 그의 가슴에 달린 휘장을 본 호위병이 천천히 뒤로 물러선 뒤 허리를 숙여 예를 갖췄다.
연금술사 경매장의 규칙에 따라 7레벨 이상의 연금술사들은 다른 사람들을 동반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선화와 다른 이들은 아무런 제지 없이 이준을 따라 그 넓은 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대문을 통과하니 널찍한 통로가 나타났다. 이준 일행이 통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끌벅적한 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대청 안에 가지런히 수많은 석대가 노점상처럼 깔려있었고, 석대 뒤에는 노점상의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가만히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모두 연금술사 복장을 하고 있었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 역시 모두 연금술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허허, 이 연금술사 경매장은 등급별로 구역이 나뉘어집니다. 이곳은 3등 구역이고 2등 구역은 2층에 있지요. 1등 구역은 꼭대기 층에 있는데 그곳은 출입 조건이 있습니다.”
가만히 이 광경을 바라보던 유종길이 웃으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려면 6레벨, 3층은 최소 7레벨, 혹은 투존 강자여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종길의 설명에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우선 이곳을 좀 둘러봐야겠어요.”
말을 마친 이준은 대청 안으로 들어가 주변에 깔린 노점상들을 둘러보며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노점상들을 둘러보았지만, 아쉽게도 이준의 눈에 들만한 물건은 찾지 못 했다.
“허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곳에서는 선생의 눈에 들만한 물건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준이 계속해서 소득도 없이 노점상을 돌아다니자, 결국 그의 뒤를 따르던 유종길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보물을 찾으려면 2층이나 3층으로 가야합니다.”
그의 말에 이준은 아쉽다는 듯 입술을 비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러본 건데…….”
이준 일행이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호위병들이 그들을 막아섰지만, 이준의 가슴에 달린 7레벨 중급 휘장을 보고는 황급히 길을 비켜주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2층에는 반짝거리는 수정들이 바닥에 깔려 매끈한 거울처럼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 수정바닥 위에 있는 가판 위에는 아래층에서 봤던 것들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물건들이 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