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화. 7레벨 중급 연금술사
“허허, 유씨 가문 사람들도 왔군.”
방의 중앙에는 자주색 연금술사 의복을 입은 백발의 노인이 서 있었는데, 그는 앞선 두 가문의 사람과 달리 유종길을 보자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한리 장로님, 번거롭게 해드렸군요.”
유종길은 백발의 노인을 향해 공손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사과할 것이 뭐가 있겠소.”
“저 자가 유씨 가문에서 심사를 받을 사람인가? 왜 등급 휘장이 없지?”
그 때, 백씨 가문의 노부인이 이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아직 연금탑에서 휘장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연금탑에 온 것이 처음이라.”
“허, 이 특실에는 5레벨 이상의 등급휘장이 있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데, 유종길 장로님, 설마 잊으신 것은 아니죠?”
이준의 답변에 노부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쳐댔다.
“우리 가문 일이네, 신경 끄게.”
“흥, 이번 심사에서 삼등 안에 들지 못하면 오대 가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잊은 건가요?”
회색 옷을 입은 노부인이 또 다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만들 하지 그래. 더 이상 떠들어대면 시험관의 자격으로 백씨 가문을 이번 심사에서 탈락시키겠네.”
노부인의 계속되는 시비에 심사를 맡은 노인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노인의 서슬 퍼런 한마디에 노부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씰룩이며 고개를 돌렸다.
“그럼 구씨 가문 먼저 시험을 시작하겠소.”
백발의 노인이 줄곧 대화에 끼지 않던 구씨 가문의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구씨 가문 노인 뒤에 있던 남녀 둘이 빠르게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자네 두 사람은 어떤 시험을 볼 것인가?”
“6레벨 중급입니다.”
6레벨 중급이라는 말에 백발의 노인은 조금 놀란 듯 두 사람을 바라보며 헛기침을 해댔다. 그 나이에 6레벨 중급을 시험 본다는 것은 두 사람이 상당히 뛰어난 인재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번 심사에서 유씨 가문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어려워 보였다.
“자네 둘은 잠시 기다리시게. 저 검은 문으로 들어가면 자네들의 심사를 봐줄 사람이 있을 것이네.”
백발의 노인이 그의 뒤에 있는 네 개의 대문 중 왼쪽에서 두 번째 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용모가 비슷한 두 남녀는 나란히 고개를 끄덕인 뒤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서로를 한번 쳐다보았다.
“백씨 가문.”
백발의 노인이 시선을 옮기자 회색 옷을 입은 노부인 뒤에 서있던 두 명의 남자가 먼저 앞으로 나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6레벨 중급입니다.”
잠시 후, 차가운 인상의 여자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
“6레벨 고급입니다.”
“대단하군.”
백발의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오늘부로 유씨 가문이 오대 가문의 자리를 내려놓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유씨 가문 차례입니다.”
노인이 아쉬운 표정으로 유종길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모두의 시선이 이준에게로 쏠렸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된 가운데 이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몇 레벨까지 지원이 가능합니까?”
그의 말에 백발의 장로는 잠시 당황한 듯 머뭇거렸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음을 참지 못 했다.
“내가 7레벨 하급이기 때문에 7레벨 중급까지만 심사를 할 수 있다네.”
“그럼 7레벨 중급으로 하죠.”
이어지는 한마디에 백씨 가문과 구씨 가문 사람들의 입가에 걸려있던 비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보게 젊은이, 이곳은 연금탑 시험장이네, 유씨 가문의 시험장이 아니라.”
회색 옷을 입은 노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비웃음에 옆에 있던 백씨 가문 사람들 역시 경멸 어린 시선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구씨 가문 세 사람은 백씨 가문처럼 비웃지는 않았지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이준의 몸을 훑어봤다.
“여기는 농담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말로 7레벨 중급 시험을 보겠는가?”
백발의 노인 역시 놀란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예. 한 장로님, 7레벨 중급 연금술사 휘장을 얻으려면 어떤 심사를 거쳐야 하죠?”
이준의 일관된 대답에 백발의 노인의 표정이 더욱 굳어갔다. 유종길의 태도로 보나 이준의 태도로 보나 진심이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처음 시험을 보러 온 자가 7레벨 중급 시험을 보겠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정 그렇다면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마시게. 그리고 나는 의장이네. 장로가 아니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한리 장로가 말했다.
“그럼 시작합시다.”
한리 장로는 손을 흔들어 상황을 정리한 뒤, 그의 뒤에 있는 네 개의 대문을 가리켰다. 그 대문 위에는 각각 천(天), 지(地), 현(玄), 황(黃)이라는 글자가 고풍스럽게 적혀 있었다.
“6레벨 중급 시험을 볼 사람은 현급 방으로 들어가고, 고급은 지급 방으로 들어가시오.”
말을 마친 그가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들의 시험이 끝난 뒤에 내가 직접 자네를 데리고 천급 방으로 들어가 시험을 보겠네.”
한리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각자 방으로 들어가시오.”
그의 말에 이준을 제외한 다섯 명의 가문 대표 젊은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뒤 각각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하얀 옷을 입은 여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혼자 지급 방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네 사람은 모두 현급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다섯 명이 각자 주어진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시험실 안에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백씨 가문의 노부인이 또 다시 시비를 걸어왔다.
“유종길, 마지막 발악치고는 조금 추하군.”
이에 유종길이 차갑게 웃으며 답했다.
“마지막이 될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나?”
유종길의 대답에 노부인의 얼굴색이 순간 새파랗게 질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래? 유씨 가문이 오대 가문의 지위를 내려놓게 되면 반드시 그 말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계속되는 노부인의 공격적인 언사에 구씨 가문의 노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역시 점점 몰락해가는 유씨 가문을 얕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함께 오대 가문에 이름을 올리고 있던 세력끼리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참 시끄럽군요.”
그 때, 이준이 눈을 천천히 뜨며 차가운 노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린 것이 건방지게!”
이준의 말에 회색 옷을 입은 노부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유종길이야 그녀보다 강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비웃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 이준은 그저 어린 후배일 뿐이었다.
화가 난 노부인은 돌연 칼날같이 뾰족한 손톱을 세우더니 번개처럼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멈추시오!”
이준의 염력이 몸에서 터져 나오며 손을 쓰려는 순간, 한리가 번개처럼 노부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곳은 백씨 가문이 아니라 연금탑의 분탑이오!”
이에 회색 옷의 노부인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물러서며 음산한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보았다.
“흥, 시험이 끝나고도 그렇게 건방진 태도를 유지할 수 있나 보자꾸나.”
말을 마친 노부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이준의 옆에서 미동도 않고 있는 유종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싸늘한 시선을 본 유종길의 얼굴에는 묘한 웃음이 피어났다. 빙하곡의 천이장로마저도 이준의 손에 무너졌다는 것을 안다면,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이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눈빛으로 노부인을 쳐다보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이준의 태도에 노부인의 두 뺨이 파르르 떨렸다.
끼익-.
그 때, 굳게 닫혀있던 현급 방문이 열리며 네 명의 젊은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가슴팍에는 자주색과 금빛이 섞인 별 여섯 개가 박힌 휘장이 달려있었다.
“6레벨 중급 시험이 끝났소. 구씨 가문 두 명 통과, 백씨 가문 한 명 통과.”
한리가 네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구씨 가문의 노인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지만, 노부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남자를 노려보았다.
한리의 말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굳게 닫혀있던 지급 방의 문이 서서히 열리며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거만한 발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가슴팍에는 다른 네 명의 것보다 더욱 밝은 별 모양이 새겨진 휘장이 달려있었다.
“6레벨 고급 시험이 끝났소. 백씨 가문, 통과.”
한리의 발표에 그 여자 아이의 얼굴에 거만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 다음, 7레벨 중급 심사가 있겠소. 이번 심사는 내가 직접 나서지. 따라오시오.”
한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이준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내저은 뒤 몸을 돌려 천급 시험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준도 망설임 없이 그를 따라 그 방 안으로 사라졌다.
한리와 이준이 시험장에 들어간 뒤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백씨 가문과 구씨 가문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의 심사는 끝이 났지만, 이준이 정말로 7레벨 중급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슬슬 지루함을 느낄 무렵, 굳게 닫혀있던 천급의 방문이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한리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고개를 저으며 서서히 걸어 나왔다.
한리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한 노부인은 기대가 가득한 표정으로 얼른 그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준이 나타나는 순간,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가슴팍에 머물렀다.
그의 가슴팍에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았다.
“깔깔깔!”
이준의 가슴팍에 등급휘장이 달려있지 않자, 노부인이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렸다.
노부인 옆에 서있던 백색 옷의 여자 역시 픽, 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편 구씨 가문의 노인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유종길을 바라봤다.
그러나 정작 유종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준이 7레벨 중급 시험에 떨어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하하하하! 유씨 가문은 이제 망했군.”
노부인의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노부인의 날카로운 웃음소리에 한리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무 조급하군. 누가 시험에서 탈락했다고 말했소?”
한리의 목소리에 노부인의 웃음소리가 일순 멈추며 표정이 부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한 의장, 이 녀석이 성공했다면 왜 등급 휘장이 없는 거죠?”
그녀의 질문에 한리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7레벨 중급의 시험은 이미 무사히 통과했소. 이 자에게 등급휘장을 주지 않은 건 그보다 더 높은 휘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연금탑 총부로 가 다시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어떨지 고민 중이기 때문이오.”
청천벽력 같은 한리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한 의장님, 총부에서 시험을 봐야한다면 안 하는 게 좋겠네요.”
이준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말에 한리는 잠시 멈칫하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저장반지에서 일곱 개의 별이 달린 휘장을 꺼내 공손히 이준에게 건네주었다.
“자네가 정 그렇다면 그리 하시게. 시간이 있다면 연금탑에 가 시험을 보길 바라네.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낮은 등급의 휘장을 달고 다 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휘장을 받아들었다.
휘장을 에워싼 화염 속에는 하늘을 뚫고 올라간 탑 모양이 새겨져 있었고, 자주색과 금색이 섞인 별 일곱 개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일곱 개의 별 중 일곱 번째 있는 별은 다른 별들 보다 조금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 이는 휘장을 받은 자가 7레벨 ‘중급’에 해당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