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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55화 (555/818)

555화. 단씨 가문

공간 통로는 조용하고 지루했지만 혼자서 조용히 수련을 하는 것에 익숙한 이준 일행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천화존자가 한 말을 듣고 영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난 이준은 며칠 동안 줄곧 방 안에서 영혼의 힘을 연구하였다.

하지만 이 연구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자신이 최근에 만든 연금비약이 과거에 만들었던 것에 비해 품질이 좋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어떻게 하면 영혼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도통 알 도리가 없었다.

* * *

3일이 지나 청령성에 도착한 이준 일행은 잠깐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청령성의 공간 통로를 이용해 연금성으로 출발했다.

청령성에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연금술사들로 가득했다. 가람제국에서 열렸던 연금술 경연대회와 비교해보면 가람제국의 그것은 ‘대회’라고 할 수도 없는 정도였다.

게다가 청령성은 연금성으로 가는 수많은 통로 중 하나였으니 대회장에 도착하면 얼마나 많은 연금술사가 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수많은 화염과 약솥, 그리고 연금비약을 상상하니 이준의 마음이 불타오르고 피가 끓기 시작했다.

* * *

공간의 배는 새까만 하늘을 유성처럼 날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이준 일행이 타고 있던 새까만 공간의 배 역시 수많은 배를 따라 공간 통로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눈부신 빛덩어리로 뛰어들었다.

은색 광장 안으로 들어가자 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십 초도 채 지나지 않아 서서히 잦아들었고, 시야를 가득 메운 은색 빛 역시 점점 사그라졌다.

곧이어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며 긴장하고 있던 이준 일행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하지만 모처럼 만난 햇살을 만끽하기도 전에 떠들썩한 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색 암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암석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붉은색의 광장은 그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넓었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준 일행은 거대한 바위 위에 서있는 개미 한 무리에 불과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광장에 울려 퍼지는 왁자지껄한 소리는 하늘을 뚫고 구름에 닿을 것만 같았다.

“이곳이 바로 연금성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광장을 바라보던 이준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여전히 그의 등 뒤에 있는 공간 통로에서는 끊임없이 공간의 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은 연금성 외곽지역에 위치한 공간 통로 중 한 곳일 뿐입니다. 연금성에는 총 여덟 개의 공간 통로가 있지요.”

유종길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유씨 가문이 몰락한 이후 이곳에 올 때마다 쓰디쓴 실패를 맛보곤 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이준은 바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광장 하나만 해도 꽃잎성 십분의 일에 가까운 크기인데, 이런 곳이 여덟 개나 더 있다니!

“허허, 놀랄 필요 없습니다. 연금성은 외곽 지역과 내곽 지역으로 나뉘는데, 지금 우리가 있는 위치는 외곽 지역입니다. 연금탑은 내곽 지역에 있고, 외곽 내곽 할 것 없이 모두 연금탑의 영역이지요.”

유종길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연금성은 성이라고 불리지만 일반 도시와는 거리가 멉니다. 면적으로만 봐도 꽃잎성 몇 개를 합친 것보다 크죠.”

이어지는 유종길의 설명에 이준은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이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흑각성 주위의 검은 뿔 구역 전체를 합친 것보다도 더 넓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직 대회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았으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아직도 올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이준은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중주에 온 이후 나름대로 식견이 넓어졌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죠?”

이준과 아라가 동시에 유종길을 바라보며 물었다.

“며칠 더 지나면 오대가문의 심사가 시작되는데 오늘 하루는 길에서 보냈으니 먼저 쉴 곳을 찾읍시다. 내일 연금탑에 있는 시험장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연금탑이 인정한 연금술사 등급 휘장을 받아야 합니다.”

“연금술사 등급 휘장이요? 그것도 필요하단 말이에요?”

이준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가한제국에서 3레벨 연금술사 휘장을 만든 이래로 아직까지 그것을 갱신하지 않고 있을 정도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한없이 귀찮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허허, 연금탑은 다른 곳들과 다르게 까다롭기로 유명하지요. 그래서 연금탑의 등급 휘장은 대륙 전체에서 통용되어 어느 지역에서든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그리고 대회에 참가하려면 반드시 이 휘장이 필요하지요.”

유종길의 설명에 이준은 할 수 없다는 듯 살짝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을 마친 유종길이 이준 일행을 이끌고 숙소를 찾으러 떠나려는 찰나, 먼 하늘에서 갑자기 격렬한 공간 파동이 일어나면서 온몸이 은색으로 번쩍이는 하얀 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갑자기 나타난 하얀 새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곳으로 쏠렸고,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게 허공천마수인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기에 저걸 타고 온 거야?”

“허공천마수?”

밑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이준은 눈썹을 살짝 움찔거리며 놀란 눈빛으로 하얀 새를 쳐다보았다.

허공천마수는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이동의 배보다 훨씬 편하고 빨라 수많은 사람들이 탐내는 마수였다.

레벨은 6레벨로 그리 높지 않았지만, 찾는 사람은 많고 숫자는 적다보니 그야말로 부르는 것이 값인 물건이었다.

“유종길 장로님은 저 새의 주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한 이준이 유종길에게 물었다.

“저 새 위에 달린 둥근 휘장이 보이십니까? 저건 단씨 가문의 특별 휘장입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이 새에 타고 있는 자는 분명 연금탑의 심사나 연금대회에 참가하려고 온 단씨 가문 사람일 겁니다.”

유종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준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하얀 새를 바라보았다. 과연 유종길의 설명대로, 새의 배 쪽에 연금비약 같이 생긴 원형의 황금빛 가문 휘장이 달려있었다.

“단씨 가문이라…….”

이준은 조용히 그 이름을 읊조리며 입속에서 하늘 위를 천천히 비행하고 있는 우아한 새의 날갯짓을 감상했다.

단씨 가문은 연금탑의 오대가문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을 자랑하는 곳 이었고, 조씨 가문조차도 아직은 그들의 발아래에 있었다. 그 아래로는 다시 백씨 가문과 구씨 가문이 있었는데, 두 가문 모두 단씨 가문과 조씨 가문만은 못해도 유씨 가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한 세력이었다.

“단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왔으니 나머지 삼대가문도 곧 도착할 겁니다. 올해 심사에 참가하는 단씨 가문 사람은 누구일지 궁금하군요.”

“단씨 가문에도 조씨 가문의 조영과 견줄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이준이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가문에도 천재들이 아주 많죠. 얼마 전에는 연금탑 장로석 중 세 자리가 그들의 차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심사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은 대부분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저희와 달리 심사에서 통과만 하면 되는 입장이니 굳이 외부에 자신들의 힘을 보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유종길의 설명에 이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역시 이번 심사가 유씨 가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허공천마수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갑시다, 먼저 쉴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한 뒤 내일 바로 연금탑 시험장으로 가서 등급휘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유종길이 웃으며 말했다. 이준의 실력이라면 휘장을 받는 것 정도야 간단한 일이었지만, 나머지 사대 가문에서 나온 젊은이들을 꺾을 수 있을지는 조금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준 일행은 유종길을 따라 연금성 외곽지역을 삼십 분 정도 돌다가 남쪽에 위치한 작은 저택으로 들어섰다.

* * *

이준 일행이 도착한 곳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널찍한 정원이 있었는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 조금 너저분하고 먼지가 쌓여 있었다. 널따란 정원의 바로 앞에는 ‘유가 별장’ 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이 붙어 있었다.

“이곳은 유씨 가문의 별장입니다. 장로석을 잃은 이후로는 거의 이곳에 올 일이 없어 관리가 되어있지는 않지만 잠시 머무르기에는 무리가 없지요.”

정원을 둘러보던 유종길이 고개를 돌려 이준 일행을 향해 말했다.

유종길은 이준의 성격을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준은 사치스럽고 사람이 많은 곳 보다는 조금 낡았더라도 외진 곳을 좋아했고, 유종길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성 중심에 위치한 고급 여관이 아니라 이곳으로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게다가 아라와 천화존자 역시 사치스러운 사람이 아니었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다보니 조금 낡았더라도 성의 중심에서 떨어진 이곳에서 묶는 것이 더 마음이 편했다.

* * *

유씨 정원에 있는 작은 안뜰에서 뒷짐을 진 채 별들을 바라보던 이준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으음……. 성내에 들어왔는데도 별의 불꽃의 힘이 느껴지질 않네. 연금탑의 강자들이 불꽃을 봉인해뒀기 때문인 건가.”

이준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려던 그 때, 정원 입구쪽에 새하얀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

“아직 안 자?”

아라를 발견한 이준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이은이 떠나기 전에 널 잘 보호해달라고 부탁했었어. 네가 다치면 날 잡아먹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누가 널 해치지 못 하게 몰래 지키고 있었지.”

아라가 웃으며 농을 건네자, 이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생각해보니 이 몇 년간 아라가 농담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아마도 재난독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성격도 조금 밝아진 모양이었다.

“재난독체는 어때, 이제 완전히 괜찮은 것 같아?”

“아직은 아무 일 없는 것 같아. 독이 새어나오는 일도 없고.”

이준의 질문에 아라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나도 여기까지 밖에 도와줄 수 없어. 아직까지 재난독체를 완전히 제어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솔직히 나도 이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거든.”

“별일 없겠지. 있다면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고. 어차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면 걱정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참, 혹시 이은이 채린이 일을 알고 있어?”

갑작스런 아라의 질문에 이준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은에게 채린의 ‘아이’에 대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떠올려보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어쩌면 그 아이가 벌써 세상에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메두사 여왕의 성격에 이은에게 제대로 된 해명을 해줄 것 같지도 않았고, 두 사람이 맞붙을 것을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뒷골이 저렸다.

두 사람이 진심으로 맞붙는다면 이는 이준 입장에서는 영혼의 궁전과 맞붙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재난이었다.

어쩌면 실제로도 영혼의 궁전의 영존과 싸우는 편이 마음이 편할지도 몰랐다. 그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다가 목숨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어……음, 어떻게든 되겠지. 은이는 날 믿으니까……. 아무리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내 말을 믿어줄 거야.”

이준의 말에 아라는 재미있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무서운 아가씨인 것 같던데 말 잘해. 아니면 투성이 되기 전까지는 그 말을 안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투존 정도로는 그 애한테 맞아 죽을 것 같던데 말이야.”

아라의 농담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재난독체를 통제하게 된 이후로 한층 밝아진 그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에게 가장 큰 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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