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영혼의 경지
뚜렷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유종길과 다른 이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준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라와 천화존자 역시 이준의 그런 변화를 느낀 듯 이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준은 연금비약 제련실 앞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조금 놀라며 당황스럽다는 듯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유종길 장로님, 이 정도까지 하실 필요는…….”
“허허.”
그의 말에 유종길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휘둘러 가문 사람들을 돌려보낸 뒤 앞으로 다가왔다.
“연금성으로 향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밀실에 들어간 지 어느새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으셨지요?”
무언가를 느낀 유종길이 질문을 던지자, 이준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한 달 내내 밀실에만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을리가요.”
그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미세한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이준의 대답에 유종길은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착각이 아니오. 이 녀석의 영혼의 힘이 수련을 하는 동안 성장한 듯싶소.”
그 때, 천화존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영혼의 힘이요?”
천화존자의 지적에 이준은 그제야 무언가 생각나는 것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 예전보다 더 수월해졌다는 걸 느끼긴 했어요. 화염 통제력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하지만 4성 투종이 되면서 영혼의 힘을 다루는 게 좀 더 능숙해진 것이겠죠. 영혼의 힘은 등급이 상승할 때만 강해지는 거잖아요.”
이준의 말에 천화존자가 조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다 눈썹을 움찔거리며 말했다.
“허허, 자네의 스승이 영혼의 힘과 관련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지 않은 것 같군. 영혼의 힘에는 등급의 차이가 없지만 단계가 나뉘어져 있다네. 사실 많은 연금술사들이 7레벨 단계에서 끝나는 이유가 바로 이 ‘영혼의 경지’를 상승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지.”
천화존자가 웃으며 말했다.
“영혼의 경지요?”
영혼의 경지에 대해 처음 들어본 이준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영혼은 생명의 근본으로 영혼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몸은 없어도 생명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늘 영혼을 소중하게 여겼다.
하지만 이준은 자신의 영혼의 힘이 약하지 않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제대로 알지 못 하고 있었다. 게다가 약로가 붙잡혀 갈 때 이준은 5레벨 연금술사에 불과했기 때문에 영혼의 경지라는 것에 대해 알 이유도, 알 기회도 없었다. 약로가 잡혀간 이후로는 더 이상 그를 가르칠 사람이 없었으니, 7레벨 연금술사들이 부딪히는 벽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허허, 하긴……. 영혼의 경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무니, 자네에게 이런 것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겠지. 영혼의 경지는 일반 단계, 영혼, 하늘, 황제단계로 나뉘는데, 8레벨 이하의 대다수 연금술사들은 일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얼마 전까지는 자네도 일반 단계에 머물러 있었지.”
천화존자가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일부 7레벨 연금술사들 중 운 좋게 영혼단계에 도달하는 자들이 나타나네. 영혼의 힘이 성장해 영혼 단계에 오르면 연금비약에 영기를 부여할 수 있는 ‘영기부여’ 효과가 생기지. 8레벨 연금비약에는 뛰어난 영기가 있다는 것은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리고 이 영기가 있어야만 연금비약이 8레벨에 달할 수 있네. 영혼의 경지가 낮은 연금술사들이 아무리 연금술이 뛰어나다 해도 결코 8레벨 연금비약을 만들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
이런 이야기는 이준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천화존자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더 나아가 9레벨 연금비약의 영성은 거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어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하지만 그런 영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혼의 힘과 천지의 힘을 하나로 융합시킬 수 있어야 하네. 그리고 그 두 힘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영혼의 경지가 하늘 단계에 이르러야 하지.”
천화존자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황제단계는 전설로 남아있어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봤네. 황제단계에 대해 자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건, 이 단계는 황제 레벨의 연금비약과 관련이 있고 그 황제레벨 연금비약이 전설 속의 투제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네. 하지만 아주 오랜 세월동안 그런 자가 나타나지 않았지.”
천화존자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바라봤다.
이 자리에서 이런 사실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유종길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 역시 천화존자에 비하면 식견이 얕았으니, 영혼의 경지에 대해 얼핏 들어본 적이 있을 뿐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 했다.
“으음……. 저도 얼핏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자세히 알지는 못 했습니다.”
한참 후, 유종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씨 가문의 선조들 중에도 8레벨 연금술사가 있었지만 이 영혼의 경지와 관련된 정보는 남겨두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식견이 정말 높으시군요.”
“영혼 자체가 아주 신비한 존재이니 일부 연금술사들이 운 좋게 정보를 얻었다 하여도 자세히 알진 못할 것이오.”
천화존자가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네 스승이 알려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구나.”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의 입가에도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스승님이 영혼의 궁전 놈들에게 잡혀갈 때 저는 그저 5레벨 연금술사에 불과했으니까요. 아직 이런 것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죠.”
“흐음, 어쨌든 지금 자네의 영혼의 경지는 영혼 단계에 닿은 것 같네. 아주 옛날에는 ‘영혼무투기’라 불리는 특별한 영혼 수련법이 있었다고 하던데……. 하지만 나도 이 영혼무투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더 이상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없다네.”
천화존자가 웃으며 말했다.
“영혼을 수련할 수 있다고요?”
그의 말에 이준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그가 아는 바로는 등급이 상승하거나, 연금비약이나 특수한 약재를 복용하는 것 외에 영혼의 힘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네. 아주 오래전에 그런 수련법이 있었다고 하더군.”
이어지는 천화존자의 답변에 이준의 머릿속에 번쩍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요 며칠사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지쳐서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기 직전에 실패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피로에 의해 실수가 있었을 뿐 이전보다 훨씬 쉽게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었다.
“앞으로 잘 생각해봐야 겠군요. 8레벨 연금술사가 되려면 반드시 영혼의 경지를 올려야 할테니까요.”
말을 마친 이준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영혼을 수련하는 영혼 무투기를 익힐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역시 그런 물건을 구하기는 어렵겠지.’
생각을 마친 이준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 * *
다음 날, 유씨 가문 입구에 모든 사람들이 나와 뜨거운 눈빛으로 이준 일행을 바라보았다.
유씨 가문이 다시 연금탑 장로석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이제 이준이 오대 가문의 심사에서 몇 등을 차지하는 지에 달려 있었다.
이준이 성공적으로 3등 안에 들어간다면, 유씨 가문은 당당히 어깨를 펴고 연금탑의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시간 안에 조씨 가문 등 다른 가문들을 뛰어넘는 건 어렵겠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 그 시간동안 열심히 정진하면 다시 예전의 영광을 손에 쥘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장로님들, 연금성에 다녀오는 동안 장로님들에게 유씨 가문을 맡기겠소.”
유종길이 선두에 서있는 두 명의 노인에게 조용히 말했다.
“예, 안심하시고 다녀오시지요. 유씨 가문은 몰락했지만 다른 가문들과의 연이 모두 끊긴 것은 아니니 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한 장로가 정중히 말하자, 그의 곁에 있던 다른 장로들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유씨 가문의 명성이 끝없이 몰락하면서 많은 세력들이 돌아섰지만, 모든 사람들이 조씨 가문처럼 의리가 없지는 않았다. 심사에 두 번이나 탈락하고도 아직 이 정도의 지위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준이 서서히 어두워져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거의 다 됐군요. 유종길 장로님, 갑시다.”
천화존자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 이준은 영혼의 힘을 단련시킬 방법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영혼의 네 단계는 연금술사들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 같았고, 염력을 수련할 때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처럼 영혼을 수련하는 것과 염력을 수련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으니, 과거에는 영혼을 수련하는 방법이 따로 존재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는 더 이상 그 수련법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 이었다.
이준의 말에 유종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꽃잎성 북쪽에 위치한 광장으로 향했다. 꽃잎성 안에도 공간 통로가 하나 있지만, 연금성으로 바로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금성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을 거쳐야만 했다.
유종길을 따라 십여 분을 걸어가자, 공간통로가 위치한 광장이 나타났다. 유씨 가문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꽃잎성의 공간 통로는 아직 그들의 차지였다.
유종길의 명에 따라 유씨 가문에서는 이미 공간 통로를 지나기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쳐둔 상태였다. 하지만 공간 통로에서 흘러나오는 공간의 힘이 안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 유씨 가문이 빛나던 시기에는 투존 강자 두 명이 이 웜홀을 관리했지만, 가문이 몰락하면서 투존 계급의 강자를 모시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공간 통로를 바라보던 유종길이 씁쓸하게 말하자, 이준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요, 돌아오면 아라와 천화존자 선생님이 도와주실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가시죠.”
유종길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저장 반지에서 검은색 배를 꺼내 천천히 회전하는 공간 통로 속으로 들어갔고, 이준 일행 역시 그 뒤를 따라 공간 통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간 통로 안으로 들어선 유종길이 손을 비비자, 검은 색의 작은 배에 바람이 일며 거대한 배로 변신했다. 유종길이 꺼낸 이 공간의 배는 이준이 중주에 와서 본 배 중 가장 훌륭한 물건이었다. 역시 몰락하기는 했어도 연금탑 오대가문중 하나 다웠다.
거대한 배 위로 올라간 유종길이 익숙한 몸짓으로 뱃머리에 손을 올리자, 빛의 장막이 펼쳐져 선체를 에워싸더니 이내 ‘쉭’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공간 통로 안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꽃잎성에는 연금성으로 향하는 직항통로가 없어 먼저 청령성이라는 도시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 있는 공간 통로를 지나야 연금성으로 갈 수 있지요.”
유종길이 몸을 돌려 배 위에 있는 이준 일행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청령성까지는 3일이 걸리고, 다시 청령성에서 성연금성까지 나흘 정도 가 걸리니 앞으로 7, 8일 정도 가야만 연금성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배 안에 개인실이 있으니 들어가 쉬십시오. 배는 저와 선화가 조종하겠습니다.”
유종길의 말에 이준 일행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각자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