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화. 조씨 가문의 마녀
열 개의 알록달록한 화염으로 만들어진 화염 마수가 서서히 하늘로 떠올라 넋을 놓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췄다.
열 개의 화염에 대지의 불꽃까지, 이준은 자그마치 열한 개의 화염을 한 번에 조종하고 있었다.
조종하는 화염이 하나 더 늘어날 때마다 더 많은 영혼의 힘이 필요했고, 현재 조단의 능력으로는 최고 네 개의 화염을 조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중주 전체에서 천재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네 개의 화염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을 천재라고 한다면, 열한 개의 화염을 다룰 수 있는 이준은 무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온 천지를 불태울 듯 타오르는 화염에 의해 조단의 입속이 메말랐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조단이 완전히 넋이 나간 채 중얼거렸다. 이준의 나이는 그보다 훨씬 젊어보였는데, 어떻게 열한 개의 화염을 동시에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가문 내에서 ‘마녀’라로 불리우고 있는 그녀의 여동생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말도 안 돼……!”
그 순간, 네 마리의 화염 마수가 이준의 화염 마수들을 향해 돌진했다.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조단을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이준이 픽, 하고 차갑게 웃으며 소맷자락을 펄럭이자 열한 마리의 화염 마수가 사나운 호랑이처럼 조단의 마수들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결국 조단의 불꽃들이 모두 사라졌음에도 이준에게는 아직 아홉 마리나 되는 마수가 남아있었다.
마지막 화염 마수가 사라지는 순간, 조단의 몸이 살짝 떨리더니 그의 목구멍에서 ‘윽’하는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영혼의 힘이 섞여 있는 화염마수가 사라지면서 영혼에도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조단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그의 뒤에 있던 두 명의 노인이 날아와 조단을 부축했다.
이를 바라보던 이준은 자신의 화염 마수를 모두 회수한 뒤 조단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조단 도련님, 제가 이겼네요.”
열 한 마리의 화염 마수를 다루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 이준의 모습에 조단은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껏 불장난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건만, 이준과는 백 번을 붙어도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유종길이 왜 너에게 희망을 거나 했더니, 아주 대단하구나. 너무 얕보았군.”
조단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졌다. 난 내 입으로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니 한동안 조씨 가문이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다.”
말을 마친 조단은 싸늘한 눈빛으로 시선을 돌려 유종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유씨 가문이 장로석에 다시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조씨 가문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거고.”
“그건 제가 알아서 할테니 어서 돌아가시지요.”
그 때, 가만히 조단의 말을 듣고 있던 이준이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이준의 언행에 조단의 눈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고의존자를 내보내 그를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이준의 등 뒤에 서있는 두 명의 투존 때문에 차마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연금술사라면 분명 연금대회에 참가하겠군. 그 때 우리 조씨 가문에서 널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가자!”
결국 조단은 그 말만을 남기고 씩씩 대며 앞마당을 빠져나갔다. 이에 조씨 가문 강자들은 멍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조용히 한숨을 쉬며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조씨 가문이 패배하고 떠나자, 유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쉰 뒤 존경 어린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선배, 정말 감사합니다.”
선화 역시 가슴을 쓸어내리며 오랜만에 마음 놓고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아니야. 약속을 지키는 것뿐인데 뭐.”
이준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준 선생, 선생의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유씨 가문의 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반드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유종길은 이준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유종길 장로님,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준 역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유종길을 향해 예를 갖췄다.
잠시 후, 유종길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전 조단이 한 말을 들어보니, 조씨 가문의 그 마녀가 돌아왔나 보군요.”
“마녀요?”
그의 말에 이준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이준 선생님은 조단의 실력이 어떤 것 같습니까?”
“화염을 다루는 능력은 확실히 좋더군요. 특히 저 나이에 7레벨 연금술사가 되었으니, 결코 무시할만한 상대는 아니었죠.”
조단은 거만했지만 실력이 없다고 말할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단도 조씨 가문의 그 마녀 앞에서는 입조차 열지 못 합니다…….”
유종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만일 유씨 가문에 이 정도의 인물만 있었더라도 이런 걱정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조씨 가문은, 그 ‘마녀’ 한 사람으로 가문 전체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녀라는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이준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조단만 해도 여태 본 적이 없는 실력자였는데, 그를 뛰어넘는 인재라니. 중주가 넓긴 넓은 모양이었다.
“그 마녀의 이름은 조영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영혼의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어머니도 그 영혼의 힘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7살이 되던 해에 정식으로 연금술사가 되어 15살에 연금탑의 내탑 제자를 무너뜨리고, 오 년간 수련한 뒤 20살에 조씨 가문의 가장 젊은 7레벨 연금술사가 되었지요. 그리고 이제 22살이 되었습니다…….”
유종길의 설명에 모든 유씨 가문의 젊은이들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조영과 비교하면 그들은 하등 쓸모가 없는 애송이들이었다.
이준의 표정 역시 심각해졌다. 조영이라는 사람의 재능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보였다.
“스무 살에 7레벨이 되고 2년 동안 아무런 발전이 없을 리가 없는데,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을지…….”
유종길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 꼬리를 흐렸다.
“지금의 그녀는 못해도 7레벨 최고급은 되었을 것입니다.”
마당 전체가 적막으로 뒤덮였다. 22살의 7레벨 최고급 연금술사라면 투기대륙의 연금술 역사 전체를 놓고 봐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인재였다.
“이번 연금대회에는 분명 조영도 참가할 것이오. 연금탑의 우두머리가 되려면 반드시 연금대회에서 우승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유종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준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종길의 말대로라면, 조영이 자신의 앞길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조영…….”
그녀의 이름을 낮게 읊조린 이준의 검은 눈동자에 불꽃이 튀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조영 같은 천재를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비슷한 나이 또래에서는 오늘 만난 조단만큼 뛰어난 인재를 만나본 적이 없는 이준이었다. 허나 조영은 그보다 더 뛰어난 인재라고 하니, 기대와 걱정으로 가슴이 뛰었다.
‘역시 스승님은 대단하시네. 이런 인재들이 출전하는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셨단 말이야?’
약로가 과거 연금술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는 것을 기억한 이준의 입가에 설핏 미소가 어렸다.
다만 한가지, 왜 그런 경력을 가지고도 연금탑의 일원이 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었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연금탑의 우두머리가 될지도 몰랐을 테고, 그랬다면 영혼의 궁전도 감히 그를 건드리지 못 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일까?
“허허, 이준 선생 너무 걱정 마십시오. 조영이 대단하기는 하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아직 8레벨 연금술사가 되지는 못 했을 것입니다.”
이준이 혼자 생각에 잠겨있자, 그가 겁을 먹었다고 지레짐작한 유종길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8레벨과 7레벨 연금술사 간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준의 수준이라면 7레벨 최고급 연금술사를 만나도 약간의 운만 따라준다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이정도 등급의 연금술사는 투존 계급의 강자로, 투사로써도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진정한 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스승인 약로도 과거 ‘약존’이라고 불리던 투존 강자였다.
생각을 거둔 이준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얼마나 강한 상대를 만나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유종길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 선생, 오대가문의 심사가 시작되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미리 연금성에 도착해야하니, 이십 일 안으로 움직여야 할 겁니다.”
일정이 촉박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아직까지 안정적으로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지만, 하급과 중급 정도는 전혀 어렵지 않게 제조할 수 있었다. 이 속도라면 조만간 7레벨 고급 연금비약도 성공적으로 제련해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출발할 때 알려주세요. 전 하루 쉬고 다시 수련을 해야겠습니다.”
“예, 안심하고 수련하시지요. 약재가 부족하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유씨 가문의 모든 약재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선생의 수련을 지원하겠습니다.
유종길과 연금대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친 이준은 아라와 함께 돌아가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 * *
조씨 가문과의 충돌이 있었던 다음 날, 이준은 다시 연금비약 제련실로 들어가 수련에 몰두했고, 유씨 가문에서는 온갖 진귀한 약재들을 가져다 그의 수련을 지원했다.
조씨 가문의 7레벨 연금술사를 몰아낸 연금술사와 두 명의 투존이 있다는 소문이 돌며 누구도 유씨 가문 근처에 얼씬 거리지 못하게 되었고, 덕분에 이준은 조용히 수련에 열중할 수 있었다.
* * *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연금성 전체가 점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고, 어느 곳을 가나 연금술사들을 볼 수 있었다.
연금술 경연 대회는 연금술사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중주에서 가장 성대한 행사로 꼽히기 때문에 대회가 시작할 때마다 중주, 더 나아가 대륙의 시선이 모두 연금성에 집중되었다.
투기대륙에서 가장 귀한 직업으로 꼽히는 연금술사는 능력으로 보나 힘으로 보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전투력으로 봤을 때 일부 연금술사들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지만, 좋은 연금비약만 있으면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한 강자들의 목숨도 빼앗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실력 있는 연금술사들을 ‘벌집’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들에게 빚을 진 적이 있거나 무언가 받고 싶은 것이 있는 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기 때문이었다.
또, 고급 연금술사는 대부분의 세력들이 가장 탐내는 인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을 손에 넣기 위해 여러 세력들은 그들에게 엄청난 조건을 내걸고, 고급 연금술사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 위상을 가진 연금술사들 중 당대 최고를 뽑는 대회인 만큼,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투기대륙에 존재하는 온갖 세력들이 이 대회에서 뛰어난 연금술사를 발견해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 * *
연금성에 인파가 가득 차기 시작하면서 오대가문의 심사일도 점점 가까워졌다.
유씨 가문의 밀실 밖에서는 유종길, 선화를 비롯한 유씨 가문의 주요 인사들이 이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이준의 수련이 끝나는 날이자 연금성으로 향하는 날이었다.
지난 20일간 유씨 가문의 뒷마당에는 종종 검은 먹구름이 드리웠고, 가끔은 번개가 치기도 했었다. 다만 비뢰가 내리치지는 않았으니 7레벨 고급 수준의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드륵-.
곧이어 굳게 닫힌 돌문이 서서히 열리며 그 안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이준이 걸어 나왔다.
의복이 조금 흐트러진 채 머리를 풀어헤친 그의 얼굴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 있어 조금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의 검은 눈동자는 이상하리만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순간 이준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그가 이전과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