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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52화 (552/818)

552화. 불장난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이준의 태도에 회색 옷의 노인의 눈빛에 살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발만 더 다가오면 여기가 바로 네 무덤이 될 거야.”

상대가 이준을 위협하자, 이준의 등 뒤에 서 있던 아라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 순간, 붉은 옷을 입은 두 노인을 선두로 조씨 가문의 투사들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염력을 내뿜었다.

홍색 의복을 입은 두 사람이 앞으로 나오자 천화존자 역시 함께 앞으로 나와 염력을 폭발시켜 그대로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의 기운을 눌러버렸다.

“아직도 밀어붙이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니죠? 설마 1성 투존 한 명으로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준은 옅게 웃으며 말했다.

“이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그래. 우리 조씨 가문과 틀어지는 게 좋은 일은 아닐 텐데. 이번에는 우리가 진 것으로 하지만 다음엔 분명 더 강한 사람들이 찾아올 거야. 그 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조단이 살기로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이들이 언제까지 유씨 가문을 지켜줄 거라 생각하십니까? 저희는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이들이 떠나면 유씨 가문을 치면 그만입니다.”

조단이 시선을 유종길에게로 옮기며 말을 이어나갔다.

확실히 조씨 가문이 그렇게 나온다면 유씨 가문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화와 조씨 가문이 혼인을 하게 내버려 둔다면 몇 년 이내로 유씨 가문은 조씨 가문에 완전히 집어삼켜지고 말 것이 뻔했다.

유종길은 한참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연신 한숨을 내쉬다가 무언가 결단을 내린 듯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유씨 가문은 조씨 가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소.”

유종길의 말에 조단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다가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을 내뱉었다.

“좋아. 후회하지 않길 바라지.”

“그렇다는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준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유종길의 선택은 이준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다. 지금 그의 말은 이준에게 가문의 흥망성쇠를 걸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준은 반드시 심사를 통과하고 연금술 대회에서도 성과를 내야만 했다. 그 정도 성과는 내야 연금탑에서도 이준을 중히 여길 것이고, 그래야 조씨 가문에서도 이준의 눈치를 보느라 함부로 유씨 가문을 건드릴 수 없었다.

협박도 회유도 먹히지 않자, 조단은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며 이준과 유종길을 번갈아가며 노려봤다. 이렇게 직접 발걸음을 하고도 아무런 성과없이 조용히 물러간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겠는가?

하지만 이대로 힘으로 밀어붙이자니 상대편에는 투존이 둘이나 있었다. 게다가 두 명의 투존을 거느리고 있는 이준은 영혼의 궁전의 사자를 죽여 버릴 만큼 제 정신이 아닌 자였다. 이 자리에서 강제로 유씨 가문을 무릎 꿇리려 한다면 정말로 자신을 죽여 버릴지도 몰랐다.

물론, 그 후에는 조씨 가문에서 불러 모은 투존 강자들이 이준을 죽여 버릴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죽고 나서 가문에서 복수를 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참을 생각하던 조단이 이준의 몸을 훑으며 말했다.

“자네도 연금술사라던데?”

“연금술을 조금 익혔지요.”

“그럼 나와 내기를 하지? 만일 내가 진다면 이번 혼사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내가 이긴다면 너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 걸로 하지. 어때?”

조단의 제안에 이준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무슨 내기를 하고 싶으신지요?”

“우리 둘 다 연금술사이니 상스럽게 치고 박고 싸우지 말고, 연금술사의 규칙에 따라 불장난을 좀 해볼까.”

말이 끝나자, 조단의 손에서 검은 색 화염이 솟아나 두 개의 검은 용으로 변하더니 그의 손가락 사이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이준 선생님,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조단은 화염을 다루는데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어 조씨 가문 안에서도 그를 넘어설 자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조단의 말에 유종길이 황급히 이준을 말리려 했다.

“어때?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말해. 난 싫다는데 억지로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러자 조단이 이준을 노려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이 도련님 입에서 나오다니……. 재미있군요.”

“입만 살았구나.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안 하겠다면 오늘은 그냥 돌아가도록 하지. 하지만 네가 이 곳을 떠나는 대로 유씨 가문을 찾아올 거야.”

조단이 계속해서 자신을 도발하자, 이준의 표정도 점점 차갑게 굳어갔다.

“도련님이 정 원한다면, 한 번 해 보죠.”

이준이 내기를 받아들이자, 조단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역시 배짱이 대단하군!”

말을 마친 조단은 고개를 돌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을 바라봤다.

“고 장로님, 이번 일은 제게 맡기시죠.”

그의 말에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조단이 이 곳에서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가 눈앞의 두 투존의 성질을 건드리기라도 했다면, 이제 막 투존에 오른 그로써는 목숨을 잃을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모두 물러 나거라.”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뒤로 물러나자, 조단이 자신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이준 선생님, 정말 이 내기를 받아들이실 생각입니까?”

조단의 명에 따라 조씨 가문의 투사들이 뒤로 물러서는 사이 유종길이 이준에게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조단은 화염을 다루는데 있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였으니, 제 아무리 7레벨 연금술사인 이준이라 해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 ‘불장난’에 걸려있는 것은 유씨 가문의 미래가 아니던가.

그러나 야속하게도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선생님을 믿도록 하지요.”

너무나도 확고한 이준의 태도에 유종길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단의 손에 있는 검은 화염은 아주 대단한 마수의 불꽃입니다. 무려 8레벨 마수의 불꽃이라고 하더군요. 천지의 불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천지의 불꽃을 제외한 다른 불꽃 중에는 저 불꽃에 맞설만한 화염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유종길의 설명에 이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검은 화염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끼고 있었다.

이준에게 주의를 준 유종길이 손을 휘두르자, 이번에는 유씨 가문 사람들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만을 위한 무대가 마련된 듯하자 조단은 곧바로 앞으로 나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검은색 화염이 솟구치면서 그의 머리 위에서 빠르게 요동치다 거대한 독수리로 변화하며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이 달빛마수의 불꽃은 8레벨 삼두 달빛 마수에게서 얻은 것이지.”

자신의 불꽃을 소개하는 조단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연금탑의 오대 가문 중 하나인 조씨 가문이 총력을 동원해 얻은 불꽃인 만큼 확실히 대단한 위력을 가진 불꽃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마냥 날개를 퍼덕이는 검은 독수리를 바라보던 이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확실히 대단한 불꽃이고, 이만한 화염 통제력을 가진 인물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적어도 이 정도로 젊은 사람 중에 이 정도로 훌륭한 불꽃과 정교한 화염 통제력을 가진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화염 통제력이라면 이준 역시 자신이 있었지만.

가만히 상대를 지켜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새파란 화염이 피어나 거대한 화염 늑대로 변화하더니 우렁찬 포효를 내뱉었다.

청색의 화염 늑대가 나타나기 무섭게 주위의 온도가 뜨겁게 치솟았고, 조단의 눈빛이 탐욕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역시 이 녀석이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불장난은 화염의 힘만 보는 게 아니지……. 그러니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고 이기는 게 아니라고!”

말을 마친 조단이 손가락으로 화염 늑대를 가리키자, 검은 독수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으며 번개처럼 푸른 늑대를 향해 돌진했다.

이어서 검은 독수리와 푸른 늑대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내밀며 상대를 할퀴고, 물어뜯기 시작했다.

하늘 위에서 어지럽게 뒤엉켜 서로를 공격하는 두 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무투기나 염력을 겨루는 것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화염만으로 겨루는 대결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정도 수준의 화염으로 대결을 벌이는 것은 평생 가야 한번 볼까 말까한 진풍경이었다. 하늘 위에서 정신없이 공방을 주고받는 두 개의 화염 마수를 바라보던 조단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둡게 내려앉았다.

상대가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떠나, 그의 화염 통제력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교하고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달빛 마수의 불꽃이 견뎌낼 수 없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조단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검은 독수리가 점점 더 흐릿해지며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에 조단은 곧바로 저장반지 안에서 붉은색 약병 하나를 꺼내 자신의 중지를 깨물어 피를 낸 뒤 그것을 약병안으로 흘려 넣었다.

“큭큭, 천지의 불꽃이 있다고 내 두 화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곧이어 약병 안에서 새빨간 화염이 격렬하게 요동치다가 붉은 색의 화염 사냥개가 튀어나왔다.

붉은 사냥개는 두 눈에서 음산한 빛을 내뿜으며 곧바로 허공 위로 날아가 검은 독수리와 힘을 합쳐 푸른 늑대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새로운 화염의 등장에 조씨 가문의 투사들의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유씨 가문의 투사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설마하니 조단이 두 개의 화염을 동시에 다룰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니의 화염을 조종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영혼의 힘이 필요했고, 두 개의 화염을 조종하려면 영혼의 힘도 그만큼 더 많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여러 개의 화염을 동시에 움직일 능력을 가진 연금술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확실히 조씨 가문에서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는 찬사를 듣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손을 휘둘러 푸른 늑대를 피신시켰다.

이준의 화염 늑대가 무사히 두 화염 마수에게서 달아나자, 조단이 아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천지의 불꽃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이번 협공을 이겨내지 못 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 후로도 푸른 늑대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민첩한 동작으로 두 화염 마수의 협공을 버텨냈고, 이에 조단의 인상이 점점 더 험악하게 구겨졌다.

“흥, 시시하군.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길래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했는데……. 이제 끝내도록 하지.”

한참동안 세 화염 마수의 추격전을 지켜보던 조단이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저장 반지 안에서 두 개의 약병을 꺼내들더니 그 안에서 회색과 자주색의 화염을 끄집어냈다.

두 개의 화염에 더해 또 다시 두 개의 화염이 나타나자, 유종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네 개의 화염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니! 조단의 실력이 이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던 그였다.

“어떻게 천지의 불꽃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그 정도 화염 통제력이라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군.”

조단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두 개의 불꽃이 일렁이며 마수의 형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 개의 화염을 다루는 것이 힘에 부쳤는지, 조단의 얼굴은 어느새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준, 불장난은 힘도 중요하지만 수도 중요하다. 앞으로 다른 사람과 싸울 때 는 이 사실을 마음에 새겨둬. 크하하!”

조단의 말에 이준은 재미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양으로 승부를 봐야겠군요.”

그 순간, 십여 개의 약병이 깨지며 서로 다른 색깔의 화염 십 여개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네 개 보다는 열 개가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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