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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51화 (551/818)

551화. 마찰

널따란 밀실 안은 이준의 불꽃으로 인해 완전히 끓는 가마솥처럼 변해 있었다.

유씨 가문의 밀실은 화산에서 가져온 적홍색의 특수한 암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연금비약을 제련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짙은 약향을 내뿜는 상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방의 정중앙에는 청록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는 붉은 약솥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간 이준은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오로지 연금술을 단련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약솥 안에서 청록색 화염이 끓어오르는 순간, 막 만들어진 연금비약이 신비한 빛을 발하며 짙은 약향을 뿜어냈다.

이준의 손에 들어온 것은 엄지손가락만한 둥근 연금비약이었다. 이 연금비약은 크기는 작았지만 다른 곳에 내다 판다면 틀림없이 엄청난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물건으로, 7레벨 하급에 해당하는 염력 회복용 비약이었다.

단순한 염력 회복용 연금비약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7레벨의 염력 회복용 연금비약은 투종 강자가 복용해도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물론, 효능이 대단한 만큼 들어가는 약재와 가격 역시 만만치 않아 7레벨 연금술사인 이준이라 해도 여태까지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 했던 물건이었다.

저장반지 안에서 옥병을 꺼낸 이준은 손에 들린 ‘기력의 결정’을 옥병에 넣었다. 약병 안에는 무려 이십일에 걸쳐 제조한 여섯 개의 ‘기력의 결정’이 들어 있었다.

지난 3주간 이준은 단 한 번도 방 밖에 나가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문 앞에 서있는 시종에게 부탁을 하면 그만이었으니, 문자 그대로 모든 시간을 연금비약 제련에 쏟아 부을 수 있었다.

덕분에 불과 이십여 일 만에 이준은 자신의 연금술 실력이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필사적으로 연금비약을 제조하는 동안 막대한 염력과 영혼의 힘을 소모하면서 자연스럽게 염력과 영혼의 힘도 단련할 수 있었다.

방 안에 앉아 연금비약을 제조하느라 소모된 염력을 회복한 이준은 긴 한숨을 내뱉은 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7레벨 하급 연금비약 제련 성공률은 꽤 괜찮아. 7레벨 중급 연금비약도 조금 어렵지만 해낼 수 있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으로 대회에서 10위 안에 들 수 있을까?”

한참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이준은 약재가 가득한 옥 상자 하나를 끌어당겨 그 안에 있는 약재를 바닥에 펼쳐 보았다.

곧이어 그가 손을 튕기자 진한 약향을 내뿜는 약재가 하나하나 약솥 안으로 날아갔다.

* * *

어느새 이준이 연금비약 제련실에 들어간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한 달간 이준은 단 한 번도 제련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실로 놀라운 끈기와 집중력이었다.

그 사이 7레벨 하급, 중급의 연금비약 제련 성공률은 물론이고 7레벨 고급연금비약의 제련 성공률도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조만간 7레벨 고급 연금비약도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염력을 회복한 이준이 또 다시 새로운 연금비약을 만들려는 찰나, 밀실 안에 있던 방울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방울은 밀실 안에 있는 이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달아둔 것으로, 어지간히 급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울리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 한 달간 단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었다.

“유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미간을 찌푸린 이준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제련실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제련실 밖으로 나가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라가 보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원래 그 곳을 지키던 유씨 가문의 호위병도 어느새 철수해 있었다. 무언가 일이 터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일 있어?”

이준의 질문에 아라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했다.

“유씨 가문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긴 것 같아. 조씨 가문이라는 곳에서 찾아왔어.”

“조씨 가문?”

조씨 가문이 찾아왔다는 말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기억대로라면, 조씨 가문은 분명히 연금탑의 오대 가문 중 하나였다.

선화와 유종길의 말에 따르면 현재 오대 가문 중 가장 강성한 곳은 단씨 가문과 조씨 가문이었다.

“왜?”

“조씨 가문에서 선화를 데려가겠다고 한다나 봐.”

아라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이준의 표정이 곧장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천화존자 선생님은?”

“앞마당에서 조씨 가문 놈들이 밀고 들어오지 못 하도록 지키고 계셔.”

아라의 말에 이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몸을 돌려 앞마당으로 향했다.

“가자.”

* * *

유씨 가문 앞마당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 대치하고 있었다.

대치하고 있는 두 진영 중 한 쪽은 유씨 가문, 또 다른 쪽은 담홍색 의복을 입고 있는 백 명 정도의 조씨 가문 사람들이었다.

조씨 가문의 무리 중 가장 앞에 서있는 홍색 의복의 노인 두 명은 험악한 표정을 지은 채 유씨 가문의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의 눈길을 끈 것은 그 두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뒤에 서 있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과 보라색의 연금술사 복장을 한 사내였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의 몸에서는 조씨 가문의 다른 투사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리고 보라색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사내의 가슴에 일곱 개의 별이 그려진 탑 모양의 휘장이 걸려 있었다.

“그 동안 아무런 답도 않으시다가 갑자기 이렇게 찾아온 연유가 무엇입니까?”

유종길이 인상을 찌푸린 채 질문을 돌리자, 보라색 옷을 입은 청년이 손가락 끝에 화염을 피워내며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허허, 유종길 장로님, 혼인이 무슨 애들 장난 입니까? 게다가 그 혼사는 유씨 가문이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닙니까? 설마 우리 조씨 가문을 가지고 논 것은 아니겠지요?”

그의 말에 유종길의 표정이 대번에 어둡게 내려앉았다.

“조단, 당치도 않는 말로 억지 부리지 마. 조씨 가문이 우리 유씨 가문을 집어 삼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 누가 모르는 줄 알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선화가 분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조단이라는 청년의 입에 조롱 섞인 미소가 걸렸다.

“정혼자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조단 도련님, 저희가 혼사를 제안했을 때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고 아무런 답을 하지 않은 것은 조씨 가문이 아닙니까? 그러니 아직 정혼자는 아니지요. 게다가 아무런 답변도 없다가 이제 와서 혼약을 깼다며 이렇게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는 것은 조금 억지 아니요?”

유종길의 말에 조단은 두 눈을 얇게 뜨며 코웃음을 쳤다.

“허허, 유종길 장로님, 설마 지난 번 꽃잎성에서 있었던 대전 이후 유씨 가문이 다시 과거의 위세를 찾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지요? 조씨 가문은 빙하곡이 아닙니다.”

조씨 가문의 행동은 참으로 뻔뻔스러운 것이었지만, 유종길은 감히 그의 말을 면전에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조씨 가문이 마음먹고 강자들을 모집한다면 투종은 물론이고 투존을 불러와 유씨 가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유종길 장로, 먼저 혼사를 제안해놓고 멋대로 취소하면 우리 조씨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소? 그리고 우리 조씨 가문과 혼약을 맺는다면 다 쓰러져가는 유씨 가문도 조금은 형편이 나아지지 않겠소?”

그 때, 회색 옷의 노인이 눈을 치켜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가주님의 명을 받아 온 것이오.”

그의 말에 유종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가주님께서 직접 명을 내리시다니, 그것 참 의외로군요. 지금의 우리 가문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조씨 가문의 가주가 명령을 내렸다고 우리 유씨 가문이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유종길의 질문에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거대한 염력이 퍼져 나오며 유씨 가문의 사람들을 압박했다.

“허!”

그 순간, 새하얀 그림자 하나가 유종길의 앞을 막아서며 손을 휘둘러 회색 노인의 염력을 몰아냈다.

“조씨 가문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되는군.”

유종길의 앞을 막아선 천화존자가 회색 옷의 노인을 응시하며 말했다.

“투존?”

갑작스러운 투존의 등장에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천화존자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선배님, 전 조단이라고 합니다. 오늘 일은 조씨 가문과 유씨 가문의 일이니 개입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대신 앞으로 선배님께서 연금비약이 필요하시다면 저희 조씨 가문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회색 옷의 노인과 달리 조던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한 채 천화존자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그는 나이는 어리지만 7레벨 연금술사였고, 덕분에 투종 최고 수준의 강자들이나 투존들과도 어느 정도 안면이 있었기에 투존을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연금비약?”

조단의 제안에 천화존자는 재미있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 나에게는 이미 아주 믿음직한 연금술사가 있어서 말이지.”

천화존자가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조단의 얼굴 역시 어둡게 내려앉았다.

“선배님,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지요. 이번 일을 방해하신다면 저희 조씨 가문과는 껄끄러운 관계가 될텐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투존을 협박하다니, 조씨 가문도 배짱이 대단한데.”

바로 그 때, 대청 안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옷을 입은 청년 하나와 백발의 여인 하나가 천천히 마당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차가운 웃음소리가 앞마당에 울려 퍼지자, 조단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유씨 가문이 왜 갑자기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나 했더니, 조력자들을 찾은 모양이군.”

조단은 서서히 다가오는 이준과 아라를 발견하고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유종길에게로 시야를 돌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름이 이준이었나? 저쪽은 연금성을 뜨겁게 달궜던 재난독녀고?”

조단이 이준과 아라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준 선생, 저 자는 조단이라고 조씨 가문에서 백 년 만에 나온 천재라고 불리는 연금술사입니다. 어린 나이에 7레벨 연금술사가 되면서 연금성 안에서 명성이 자자하지요.”

유종길이 이준에게 다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에 이준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조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조단 도련님, 유씨 가문과 조씨 가문 간에 문제가 좀 있었나본데, 각자 한 발짝씩 물러나는 게 어떻소?”

이준의 말에 조단의 눈에 순간 한기가 스쳤다.

“한 발짝? 이게 한 발짝 물러설 수 있는 문제인가? 유씨 가문에서 멋대로 혼사를 제안했다가 파혼을 했는데, 이 일이 알려지면 중주 사람들이 모두 우리 조씨 가문을 우습게 알지 않겠어?”

“그러지 말고 제 이야기를 좀 들어보시지요.”

이준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 순간, 이준의 몸에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조단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역시 7레벨 연금술사다운 영혼 탐지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준의 실력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듣던대로 실력이 쓸 만하군. 하지만 우리 조씨 가문은 빙하곡과 다르다. 네 놈 정도가 어찌 할 수 있는 가문이 아니란 말이야.”

“난 영혼의 궁전 사람도 죽였는데, 조씨 가문이 영혼의 궁전보다도 강합니까?”

이준이 조단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조단은 자신의 두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금탑과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영혼의 궁전을 건드리다니, 제 정신이 박힌 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왜 이런 다 무너져 가는 가문을 위해 나서는 거지? 차라리 우리와 손을 잡지 그래?”

이어지는 조단의 말에 이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지 아무에게나 잘도 손을 내미는군요. 됐습니다. 오늘은 돌아가시죠. 선화는 데려갈 수 없습니다.”

“이준! 상황파악이 안 되나 보구나!”

이준에게 단호히 거절당한 조단이 버럭 성을 내며 소리쳤다.

하지만 팔짱을 낀 채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결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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