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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42화 (542/818)

542화. 빙존자

“지금 당장 도영호를 풀어 주거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청해의 말에 천화존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천화존자가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천상 장로가 날아와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천화존자가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허허, 비키게 해보시게.”

천화존자의 앞을 가로막은 천상 장로가 청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해 존자님, 이 자는 제가 맡을 테니 안심하고 저 녀석을 붙잡으시면 됩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천화존자의 몸을 훑던 청해는 잠시 놀란 듯 미간을 찌푸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부탁하겠네, 이준을 잡은 뒤 자네를 도와주도록 하지.”

천상 장로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인 뒤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천화존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말을 마친 청해가 허공을 밟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자, 공간이 빠르게 왜곡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투존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잽싸게 번개의 움직임을 활용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준이 후퇴하기 무섭게 눈앞의 공간이 왜곡되며 마른 나무껍질 같은 손 하나가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염력이 가득한 상태라면 모를까, 천계의 불꽃을 사용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이준은 청해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이준을 붙잡는 데 성공한 청해는 곧바로 손을 뻗어 이준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청해의 손이 막 이준의 목에 닿으려는 찰나, 돌연 무시무시한 공간의 힘이 그의 손을 가로막았다.

깜짝 놀란 청해가 고개를 돌리자, 백발의 여인 하나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새하얀 옷을 입은 백발의 여인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공간이 동결되며 청해를 에워쌌다.

이에 청해는 황급히 몸을 빼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넌 누구냐! 감히 영혼의 궁전의 일에 끼어들다니!”

“성공한 거야?”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아라를 바라보는 이준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이준의 질문에 아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청해존자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이준은 자신의 영혼 탐지능력으로도 더 이상 아라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는 그녀가 투종을 넘어 투존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는 수년간 자신의 몸을 괴롭히던 독기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재난독체의 모든 에너지를 마정석에 응축시키는 것을 통해 남들이 수십 년에 걸쳐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투존이 된 거야?”

이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나고 있었고, 아라의 얼굴 역시 전에 없이 밝았다.

“이번 일은 우리 영혼의 궁전과 저 놈 사이의 일이오. 귀하께서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혼의 궁전과 적이 되고 싶지 않다면 이 일에서 빠져주시오.”

상대의 실력이 자신보다 높은 3성 투존 정도에 이른다는 것을 느낀 청해 존자는 잽싸게 태도를 바꿔 짐짓 예의 바른 말투로 아라에게 경고를 보냈다.

‘제길……. 투존이 둘이나 붙어 있을 줄이야.’

청해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몰래 미간을 찌푸렸다.

“난 적이 되어도 별로 상관이 없는데 말이지.”

하지만 아라는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청해를 바라보았고, 이에 청해의 얼굴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흥, 감태, 저 녀석을 잡아라. 이 년은 내가 맡도록 하지!”

아라가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자, 청해는 곧바로 태도를 바꿔 자신과 함께 온 영혼의 궁전의 사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염력을 끌어올렸다.

그와 함께 온 아홉명의 사자들은 천이 장로에 비하자면 조금 실력이 떨어졌지만, 지금 이준의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감태라 불린 자만 해도 7성 투종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나머지는 감태보다 실력이 떨어졌지만, 막 사투를 끝낸 이준이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 이준에게로 달려들려는 순간, 옅은 회색 안개가 퍼져 나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감태와 아홉 명의 사자는 회색 안개 안에서 느껴지는 짙은 독기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너…….”

잠시 후, 감태가 같이 온 사자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말에 흑색 옷을 입고 있던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 염력으로 몸을 에워싼 뒤 조심스로 회색 안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흑색 옷을 입은 남자의 몸을 감싸고 있던 염력이 회색 안개에 닿는 순간, ‘치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회색으로 물들었다. 당황한 흑색 옷의 남자는 부리나케 뒤로 후퇴한 뒤 하늘 위로 떠올라 독을 빼냈다.

회색 안개 속에 담긴 독성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한 감태는 이를 악물며 아라를 노려봤다.

하지만 아라는 그들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청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나도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궁금했는데, 오늘 네가 도와줘야겠구나.”

다음 순간 아라의 예쁜 얼굴에 웃음이 번지며 회색 기체가 그녀의 손끝에 피어올랐고, 주위의 공간에도 미세한 파동이 일기 시작했다.

이를 본 청해는 곧바로 몸을 날려 독수리 발톱과 같은 메마른 손으로 아라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아라는 가볍게 청해의 공격을 피한 뒤 회색 염력을 두른 손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펑!

그 순간, 청해의 주먹 위에 영롱한 청색 빛이 솟구치며 공간의 힘이 아라의 손 위에 강하게 부딪혔다.

두 투존이 맞붙자 곧바로 공간 위에 새까만 균열이 생겨났다.

하지만 아라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데 비해, 청해는 두세 발짝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곧이어 뒤로 물러난 청해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을 들자, 그의 손끝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대체 이 독은 뭐지?’

청해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번 손이 닿았을 뿐인데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을 지경이라니……. 이 정도 수준의 독속성 염력은 투존 강자인 그 역시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청해를 격퇴한 아라는 더 이상 그를 공격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 이준의 옆으로 날아간 뒤 독안개를 거두었고, 이어서 천화존자 역시 이준 곁으로 날아왔다.

“이준의 부상이 심하니 일단은 물러서는 게 좋겠네.”

천화존자의 제안에 아라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천화존자와 자신을 무시하고 죽기 살기로 이준을 잡으려 든다면 일이 복잡해 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냉기 장막을 깰 테니 자네가 이준을 데리고 가게.”

천화존자는 하늘 위에 퍼져있는 냉기의 장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을 마친 천화존자는 아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 반투명한 청색 장막을 내리쳤다.

쾅!

투존의 주먹이 닿는 순간, 청색의 장막이 격렬하게 요동치며 얼음 안개가 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청해존자, 저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하시오!”

천화존자의 행동을 본 천상 장로는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곤 잽싸게 몸을 날리며 청해존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렇게 많은 제자들과 장로들을 동원하고도 이준을 잡지 못한다면 빙하곡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상과 청해, 두 투존이 천화존자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달려드는 순간, 천화존자의 아래쪽에 순식간에 아라가 나타나 회색 독 안개를 뿜어내며 두 사람을 막아섰다.

콰앙!

그들이 자리에 멈춰 서자, 천화존자가 다시 한 번 얼음장막을 강하게 내리쳤고, 마침내 냉기의 장막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천화존자는 이준을 붙잡고 아라를 향해 외쳤다.

“가자!”

하지만 그들이 통로로 빠져나가려는 순간, 주위의 공간이 일렁이며 다시 냉기의 장막이 드리웠다.

“재난독체를 지배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구나. 내가 실수했군.”

곧이어 가벼운 한숨소리와 함께 얼음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의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얼음의자 위에는 새하얀 의복을 입고 전신에서 한기를 뿜어내고 있는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얼음의자에 앉아있던 사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눈보라가 몰아치며 꽃잎성 전체가 백색으로 뒤덮였다.

앞으로 달려가던 이준 일행은 위험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서있던 곳에 새까만 균열이 생겨나며 의자부터 그들이 있는 곳까지 새하얀 얼음 계단이 만들어졌다.

의자 위에 앉아있던 사내의 얼굴은 그야말로 얼음처럼 싸늘했고,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내의 미간에는 검은 눈꽃 모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기이한 문양에서부터 쉴 새 없이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빙하곡주!”

“빙하곡주……라고!?”

사내의 정체를 알아본 누군가가 입을 열자, 꽃잎성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다.

빙하곡주가 직접 나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씨 가문의 사람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설마하니 이준을 잡기 위해 삼대협곡 중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빙하곡의 최강자가 직접 손을 쓰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곡주님!”

천상 장로는 갑자기 나타난 흰 옷의 남자를 보자마자 기쁜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천이 장로는 어디 갔느냐?”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던 빙하곡주가 질문을 던지자, 천상 장로의 얼굴이 어둡게 내려앉으며 그의 손끝이 꽃잎성 주위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 순간, 온 하늘을 뒤덮고 있던 새하얀 눈보라가 더욱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허허, 빙 곡주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군요.”

청해 역시 하얀 옷의 남자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 역시 중주를 호령할만한 실력을 가진 투존 강자였지만, 빙하곡주와 비교하자면 아직 어린 애송이에 불과했다. 빙하곡주가 고개만 살짝 끄덕여 그의 인사를 받았지만 청해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저 싱긋 웃었다.

“빙 곡주님, 저 이준이라는 자는 저희 전주님께서 친히 명을 내려 잡아오라고 명한 자입니다. 저 자를 저희에게 넘겨주실 수 있으신지요?”

청해의 말에 빙존자의 싸늘한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영혼의 궁전의 전주가 직접 명을 내려 잡아오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 아직 서른도 채 안된 젊은이라는 사실이 그의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알겠네. 내가 필요한 것은 재난독체이니 저 자는 자네에게 넘겨주지.”

말을 마친 빙존자의 시선이 천천히 아라의 몸에 멈췄다. 빙존자의 시선을 느낀 이준 일행은 서로 가까이 붙어서며 굳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준, 내가 그들을 막아설 테니 너와 선생님은 도망갈 기회를 찾아.”

이준이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던 그때, 아라가 그의 손을 붙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닐세, 자네가 나선다 해도 달아나기는 어려울 게야.”

이준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찰나, 천화존자가 먼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얌전히 따라 오거라. 그럼 목숨은 살려주지.”

그렇게 세 사람이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빙존자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꿈 깨!”

그 순간, 아라의 얼굴이 차갑게 변하며 그녀의 손 위에 매캐한 독향을 내뿜는 회색 기류가 피어올랐다. 치명적인 맹독을 품은 회색 안개는 순식간에 날카로운 화살로 변해 빙존자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빙존자가 픽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의 입에서 엄청난 흡인력이 터져 나와 아라의 독기를 그대로 흡수해버렸다.

회색 독기를 집어삼킨 빙존자는 고통스러워하기는커녕 피식 웃으며 눈을 빛냈다.

“이것이 가장 순수한 재난독체의 독이구나. 확실히 널 이용하면 나의 재난독체가 더욱 강해질 수 있겠어.”

이어지는 빙존자의 말에 세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보아하니 재난독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재난독체는 후천적으로도 생겨날 수 있지. 바로 나처럼 말이야. 하지만 저 아이처럼 타고난 재난독체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거든.”

빙존자가 입술을 훑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거야?”

빙존자의 말에 이준은 빙하곡에서 왜 그리 지독하게 아라를 쫓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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