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화. 불바다
위기에 몰린 도영호를 구해준다면 영혼의 궁전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면 좋은 점이 아주 많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이 장로 역시 이준에게 살의를 품고 있었으니, 도영호의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걱정마시오. 영혼의 궁전의 사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저놈을 죽여버릴테니.”
말을 마친 천이 장로는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이준에게 시선을 돌렸다.
“빙현국, 빙화석. 지금부터 너희 둘과 내가 손을 잡고 저 녀석을 붙잡는다.”
천이 장로의 명령에 옆에 있던 두 명의 빙하곡 장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 장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우리 셋이 후배 한 명에게 덤벼드는 것은 조금…….”
“후배?”
빙현국의 말에 천이 장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들 둘이서 이 녀석에게 덤벼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실치 않은데, 저 녀석이 후배라고?”
이어지는 천이 장로의 말에 두 사람은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제 막 7성 투종이 된 실력자로, 나름대로 자기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8성 투종인 도영호가 이준에게 당해 저 모양 저 꼴이 되었으니, 차마 천이 장로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결국 빙현국과 빙화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움직여 천이 장로와 함께 세 방향에서 이준을 포위했다.
빙하곡의 세 장로가 자신들의 나이에 반도 안되는 청년 하나를 둘러싸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지만, 천이 장로는 그런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염력을 끌어올렸다.
“애송이치고는 제법이다만, 비술의 효과가 끝날 때까지 우리 셋을 물리칠 수 있겠느냐?”
천이 장로의 말에 이준은 콧방귀를 뀌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7성 투종 둘과 투종 최고 수준의 강자를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글쎄? 방금 전에도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말을 마친 이준이 두 손을 모은 뒤 인을 맺자, 주위의 온도가 또다시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륜이화법!”
이준의 인이 완성되는 순간, 짙은 청색의 화염이 그의 손에서 피어났다.
그 짙은 청색 화염은 ‘바다 마수의 불꽃’으로, 최근 이준이 수집한 마수의 불꽃 중 하나였다. 이 마수는 7레벨 바다 마수에게서 빼앗은 불꽃으로, 천지의 불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마수의 불꽃 중에서는 상당히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물건이었다.
그러니 현재 이준이 오륜이화법을 사용하려면 이 바다 마수의 불꽃이 빠질 수 없었다.
짙은 파란색의 화염은 빠르게 팽창해 십 미터 정도 되는 크기의 늑대로 변화했다.
오륜이화법은 다섯 개의 화염을 사용해 늑대, 표범, 사자, 호랑이, 용 이 다섯 개의 불의 정령을 만들고, 다시 그 다섯 개의 화염으로 진을 만들어 파괴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무투기였다. 천화존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영혼체가 되기 전 이 무투기로 투기대륙 전체를 호령했다고 했다.
물론 다섯 개 중 세 개의 불꽃만이 천지의 불꽃이고 나머지 두 개는 다른 불꽃으로 채워야 하는 만큼 최대의 위력을 끌어낼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시험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무투기였다.
화염 늑대의 영혼을 만들어낸 이준이 인을 바꾸자, 붉은 구슬 하나가 그의 손바닥에 떠올랐다가 이내 그 안에서 새하얀 불씨 하나를 토해냈다.
대지의 구슬에서 튀어나온 백색의 화염은 이준의 인에 따라 빠른 속도로 모양을 바꾸더니 이내 새하얀 표범으로 변화했다.
화염으로 만들어진 두 맹수가 나타나자, 천이 장로 일행은 잠시 주춤거리며 섣불리 이준에게 손을 쓰지 못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 꺼낸 무투기이니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이준의 손에서 차례차례 청색의 화염과 유백색의 반투명한 불꽃, 그리고 냉기를 내뿜는 백색 화염이 피어올랐다.
무려 세 개에 달하는 천지의 불꽃이 피어오르니 온 천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수 백 명의 빙하곡 제자들이 만들어낸 냉기의 장막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개의 천지의 불꽃은 이내 사자, 호랑이, 용의 형상으로 변화해 이준의 곁으로 날아들었다.
마침내 다섯 개의 불의 정령이 완성되자, 천지의 에너지가 맹렬하게 요동치며 주위에 있던 불속성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한 곳으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껄껄, 저 나이에 오륜이화법을 완성해 내다니, 젊은 친구가 정말 대단하군.”
타인의 손에서 펼쳐지는 자신의 무투기를 본 천화존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 * *
다섯 정령이 뿜어내는 심상찮은 열기에 천이 장로를 비롯한 빙하곡의 세 장로는 자신들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염늑대와 표범이 만들어졌을 때 곧바로 이준을 공격했어야 했다. 신중하게 일을 처리한답시고 상대가 비장의 수를 꺼내들 기회를 주고 만 것이다.
“더 이상 시간 끌지 말아라!”
천이 장로가 어두운 표정으로 뱀 지팡이를 휘두르며 명령을 내리자, 나머지 두 장로의 몸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염력이 솟아나 날카로운 얼음 장검으로 변화했다.
쉭!
다음 순간, 두 장로가 서늘한 냉기가 피어오르는 얼음 장검을 휘두르며 이준의 등 뒤를 덮쳤다.
그러나 이준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일 뿐이었고,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짙은 청색의 화염 늑대와 백색의 화염 표범이 입에서 화염을 뿜어내 두 장로의 얼음 장검을 녹여버렸다.
“오륜이화법! 화염 마수의 진!”
가볍게 두 장로의 공격을 막아낸 이준이 다시 한 번 인을 변화시키자, 다섯 마리의 화염 마수가 다섯 방향으로 달려나가 자리를 잡았다.
크르릉!
곧이어 다섯 마리의 화염 마수가 낮은 포효를 내뱉으며 서로를 향해 화염을 토해냈다.
치익!
늑대는 표범에게, 표범은 다시 사자에게, 사자는 호랑이에게, 호랑이는 용에게, 용은 다시 늑대에게, 그렇게 다섯 가지 색의 화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완벽한 오각형을 만들어내자, 거대한 에너지가 더욱 무서운 속도로 치솟으며 그 안의 공간을 불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불감옥에 갇힌 빙하곡의 세 장로는 황급히 얼음 속성의 염력을 폭발시켜 불의 장막을 뚫으려 했지만, 불의 감옥을 깨기는커녕 얼음을 만들어 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천 장로, 이 진안에 있는 불속성 에너지가 너무 엄청나서 얼음을 만드는 것도 어렵소.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오?”
체내의 염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낀 빙현국이 굳은 표정으로 천이 장로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황할 것 없소. 저 녀석이 아무리 기이한 무투기를 쓴다 해도, 투종 강자 셋이 모여 만든 진을 깨뜨릴 수 있을 리가 없소!”
천이 장로가 염력을 폭발시키며 외치자, 이준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모르지…….”
곧이어 이준의 인이 또 한번 변화하더니 오색의 불감옥이 미친 듯이 하늘로 솟구치며 온 하늘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천이 장로의 얼굴 역시 눈에 띄게 일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세 개의 천지의 불꽃과 한 개의 마수의 불꽃, 그리고 태양의 불꽃까지, 다섯 개의 화염이 서로 융화되며 만들어 진 화염 감옥은 투종 최고 수준의 강자가 아니라 투존이 온다 해도 막아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화염의 관!”
다음 순간, 이준의 손가락이 오각형의 불감옥 중앙에 서 있는 세 사람을 가리켰다.
하늘을 불태울듯한 기세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오각형의 불감옥의 위용에 꽃잎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그 안에 갇힌 세 사람에 비할바가 못 됐다.
“천 장로, 어떡하오?”
빙현국이 침을 삼키며 두려운 표정으로 말했다. ‘화염의 관’이라니, 실로 그 이름에 걸맞는 무시무시한 무투기였다. 그들이 평생을 단련해 온 얼음 염력은 이 거대한 화염 지옥 속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
“걱정 마시오. 비술의 효과가 끝나면 저놈의 실력으로는 결코 이 무투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오. 우선 우리 셋이서 빙하의 방벽을 만들어 이 공격을 버텨내 봅시다. 서두르시오.”
하지만 천이 장로는 역시 연금성 전체에서 이름을 날린 강자답게 아직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천이 장로의 말에 조금 냉정을 되찾은 두 장로는 서둘러 인을 맺으며 염력을 폭발시켰다.
두 사람의 염력이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오자, 천이 장로는 곧바로 자신의 뱀지팡이로 허공을 내리치며 두 사람의 염력과 자신의 염력을 뒤섞어 거대한 얼음 장벽을 만들어 냈다.
무려 세 명의 투종 강자가 힘을 합쳐 만들어 낸 거대한 얼음 장벽은 거대한 불감옥 속에서도 차가운 냉기를 내뿜으며 세 사람을 보호했다.
오색의 화염이 투명한 얼음 장벽에 닿는 순간,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연기가 미친 듯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표정으로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투명한 얼음 장벽을 바라보던 이준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피어올랐다.
완벽한 천계의 불꽃과 오륜 이화법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그 역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터였다.
오색의 화염이 활활 타오르며 내뿜는 열기에 얼음 장벽 주위의 공간이 새까맣게 변했고, 결국 투종 셋의 염력을 모아 만들어진 두터운 얼음 장벽마저 버티지 못하고 점점 더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천 장로, 이대로 가다간 저 녀석의 비술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계속해서 얼음 장벽에 염력을 불어넣던 빙현국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 장벽이 깨지는 순간, 자네들의 몸속에 있는 얼음의 힘을 모조리 내 체내로 주입시키게! 그럼 내가 저놈을 죽여 버리겠네.”
천이 장로의 명령에 빙현국과 빙화석은 잠시 머뭇거리다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불바다 속에서 염력을 자신에게 모두 넘기라니, 만일 천이 장로의 공격이 실패한다면 두 사람은 곧바로 화염에 휩싸여 재가 되고 말 것이 뻔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천이 장로에게 염력을 넘겨주는 것뿐이었다.
우직-.
잠시 후, 수 미터는 되었던 두꺼운 얼음 장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준의 화염이 끝내 그들의 얼음 장벽을 뚫고 만 것이다.
우직-.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거대한 화염 감옥 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 무투기는 대체 뭐지? 빙하곡의 세 장로가 힘을 합쳐도 견뎌내지 못하다니…….”
쾅!
구경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오며 무수히 많은 얼음 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오각형의 화염 감옥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부신 빛이 절정에 달했다.
그와 동시에 빙현국과 빙화석은 천이 장로의 등에 손을 올려 자신들의 염력을 쏟아부었다.
곧이어 두 7성 투종의 염력을 받은 천이 장로의 몸 위에 투명한 얼음 갑옷이 생겨나 화염을 막아냈다.
세 사람의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얼음 갑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에 의해 지옥의 화염처럼 느껴지던 이준의 오색 화염마저 잠시 주춤거리며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자신의 몸 주위에서 타오르던 화염이 모두 잦아드는 것을 느낀 천이 장로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들어 이준을 가리켰다.
“푸하하! 애송이! 여기까지다!”
천이가 주먹을 움켜쥐자, 미세한 얼음 파편이 빼곡하게 들어찬 하늘색의 염력이 솟아났다.
천이 장로는 곧바로 인을 맺어 그 하늘색의 염력을 거대한 얼음 활로 변화시켰다.
세 투종의 염력이 응집된 얼음 활이 모습을 드러내자, 하늘을 가득 메운 오색화염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얼음신의 활.”
천이 장로가 굳은 표정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빠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으로 이루어진 활시위가 팽팽히 당겨지며 주위의 얼음 염력이 응집되어 거대한 얼음 화살로 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