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화. 상승
“빌어먹을 애송이가……. 천지의 불꽃을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단 말이냐!”
이준이 두 번째 천계의 불꽃을 사용하자, 천이 장로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두 개의 천지의 불꽃을 이용해 천계의 불꽃을 사용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듣도보도 못한 일이었다.
“이건 제법 쓸 만 하구나. 하지만 6성 투종 정도로 내 상대가 되겠느냐?”
이번에는 도영호 역시 조금 놀란 듯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6성 투종 정도의 실력으로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도영호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의 눈앞에 있는 애송이의 몸에서 서늘한 냉기를 띤 기이한 백색 화염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끝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천계의 불꽃 제3장!”
많은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품은 백색의 화염이 이준의 몸으로 흡수됐다.
세 번째 천계의 불꽃이 시전되자, 이준의 몸 주위에 있는 공간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에너지의 폭발력은 이준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세 개의 이화를 동시에 폭발시키면서 생겨난 에너지가 이 정도로 강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것이다.
“후…….”
한숨을 내쉬자, 마치 화룡의 숨결처럼 뜨거운 입김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곧이어 붉게 물들었던 얼굴이 서서히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온몸의 혈관이 미친 듯이 팽창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온갖 진귀한 연금비약을 복용해오지 않았더라면 그 폭발적인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온몸이 터져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당진 곡주가 천계현의 불꽃 제3장을 쓰지 말라 한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이준은 자신의 실력이 7성 투종까지 상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
불의 협곡의 장로들의 경우, 천계의 불꽃을 전부 사용하더라도 고작해야 3성 정도의 실력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천계의 불꽃은 화염을 매개로 사용하는 비술이었고, 비술을 통해 얼마나 실력이 늘어날지는 얼마나 강한 화염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그러니 세 개의 천지의 불꽃을 가진 이준이 천계의 불꽃을 사용한다면 불의 협곡의 장로들보다도 더 강한 위력을 내는 것이 당연했다.
이준의 변화에 대치만 할뿐 여태 손을 쓰지 않고 있던 천화존자와 천상 장로 역시 놀란 표정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준의 비술이 제아무리 대단하다해도, 투존인 두 사람에게 맞설 정도는 아니었다. 이에 천상 장로는 곧바로 이준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눈앞의 천화존자를 바라봤다.
그 사이 천계의 불꽃으로 인해 상승된 힘에 적응한 이준이 검은 송곳을 움켜쥔 채 도영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의 악연도 오늘로 끝이다.”
자신만만한 이준의 태도에 도영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건방진 놈……. 그래봤자 비술로 얻은 힘에는 시간제한이 있을 텐데,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구나.”
“그 전에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말을 마치는 찰나, 이준의 몸이 가볍게 흔들리며 잔상만을 남기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수많은 전투 속에서 갈고 닦아 온 도영호의 직감이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
이에 도영호는 생각할 틈도 없이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가 몸을 날리는 찰나, 눈앞의 공간에 돌연 거대한 파문이 일며 청록색 화염에 둘러싸인 검은 형체 하나가 나타나 공포스러운 힘으로 허공을 갈랐다.
검은 송곳이 도영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비록 닿지는 않았지만, 검은 송곳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만으로도 도영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가까스로 이준의 공격을 피해낸 도영호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그의 등 역시 어느새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조금만 더 반응이 늦었더라면 방금 전의 그 공격에 의해 그대로 다진 고기가 되어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이런, 잠깐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겠구나. 그 애송이가 몇 년 만에 이런 괴물이 되어서 돌아올 줄이야.’
도영호가 번개처럼 인을 맺자, 와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 속에서 수 백 개의 쇠사슬이 튀어나왔다.
“영혼의 사슬!”
곧이어 도영호의 외침에 따라 검은 안개에서 그림자가 솟아나오며 수 백개의 쇠사슬 위에 들러붙었다 녹아내렸고, 영혼을 흡수한 검은 사슬은 기이한 광택과 함께 음산한 곡소리를 흘렸다.
“합(合)!”
도영호가 다시 한번 고함을 내지르며 인을 맺자, 수 백개의 쇠사슬이 한데 뭉쳐 거대한 뱀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가라!”
사슬로 이루어진 검은 뱀이 완성되기 무섭게 도영호의 손가락이 이준을 가리켰다. 그러자 음산한 죽음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검은 뱀이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번개처럼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허공에 떠있던 이준은 숨을 살짝 들이마시며 검은 송곳을 움켜쥔 뒤 폭발적인 기세로 거대한 구렁이에게로 달려들었다.
“태양검!”
이준이 손에 들린 검은 송곳을 휘두르는 순간, 몇 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빛이 터져 나오며 시커먼 구렁이를 내리쳤다.
쾅!
청록색의 빛과 검은 뱀이 맞부딪히는 찰나, 눈부신 섬광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일격에도 검은 뱀은 꿈쩍도 하지 않고 더욱 험악한 기세로 이준에게 달려들었다.
“육합자의 검, 합일!”
태양검으로도 검은 뱀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준은 곧바로 육합자의 검을 시전하며 다시 한 번 뱀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거대한 에너지를 머금은 송곳이 검은 뱀의 머리를 내리찍는 찰나, 놈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고, 놈의 머리에서는 검은 안개가 새어나왔다.
펑!
놈의 머리에서 새어나온 검은 안개는 이준의 청록색 화염에 닿기 무섭게 새하얀 연기로 변해 허공에 흩어졌다.
검은 구렁이의 공격을 저지한 이준은 곧바로 검은 송곳을 저장 반지에 넣은 뒤 두 번개처럼 빠르게 인을 맺기 시작했고, 이내 그의 두 손 위에 반짝이는 빛이 모여들었다.
“산의 힘!”
다음 순간, 이준의 왼손에서 눈부신 수정체가 뿜어져 나와 검은 구렁이의 이마를 매섭게 내리찍었다.
그러자 검은 뱀의 이마에 있던 수백 개의 쇠사슬이 갈라지며 또 다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다의 힘!”
거대한 에너지에 얻어맞은 검은 뱀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이준의 오른손에서 또 다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쾅!
또 한 번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시커먼 검은 뱀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가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닥에 드러누운 검은 뱀은 힘없이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고, 이내 뱀의 몸을 이루고 있던 수백 개의 쇠사슬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검은 뱀이 무력하게 쓰러지자 도영호는 돌처럼 굳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이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가 막 정신을 차리려는 찰나, 돌연 공간이 왜곡되면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눈앞에 솟아났다.
도영호의 눈앞에 나타난 검은 형상의 입가에는 섬뜩한 웃음이 피어올라 있었고, 그의 손 안에는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가 눈부신 빛을 발하며 회전하고 있었다.
“자, 이제 죽어라.”
쾅!
귀청을 찢어놓을 듯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 파도가 온 하늘을 뒤덮었고, 그 열기로 인해 연꽃성을 둘러싼 냉기의 장막이 모두 녹아내렸다.
온 하늘을 수놓은 청록색의 화염이 뿜어내는 장관에 성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입조차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빙하곡의 장로와 제자들 역시 이준이 만들어 낸 거대한 화염을 피해 저만치 달아난 채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준의 실력에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바로 유씨 가문 사람들이었다.
유씨 가문이 연금탑의 장로석 자리를 되찾게 도와준다고 약속한 청년이 이 정도로 공포스러운 실력을 갖추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화가 저 청년이 유씨 가문을 구해줄 것이라고 호언장담 한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하늘을 올려다보던 유종길이 혼잣말을 하듯 그렇게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유씨 가문의 다른 장로들 역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 하늘을 뒤덮고 있던 화염파도가 서서히 잦아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이준에게로 향했다.
이 정도의 무투기를 펼친 것이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청년이라는 사실에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화염 파도가 사라진 곳에는 검은 색의 형체 하나가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도영호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는 이미 모조리 사라진지 오래였고, 그의 몸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흐릿해져 있었다.
“영혼체였어?”
“이럴 수가, 영혼의 궁전의 사자들이 영혼체였다니! 그들이 영혼을 수집하는 것도 그것 때문인가!”
아래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도영호는 치욕스러운 듯 이를 악문 채 이준을 노려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간신히 투황에 이른 애송이가 아니었던가……. 대체 어떻게…….’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진정으로 그를 두렵게 만든 것은 이준이 가진 ‘불꽃’이었다.
투종이 아니라 투존 강자라 해도 영혼체로 이루어진 영호들을 상대하는 것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준의 불꽃은 영혼체들의 천적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이런 놈이 더욱 성장해 투존에 이른다면 영혼의 궁전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영혼의 궁전에 소식을 전해 영호들을 더 불러야겠어.’
도영호의 머릿속에 막 그런 생각이 스치는 찰나, 그의 눈 앞에 청록색 화염을 두른 주먹 하나가 날아들었다.
“헉!”
공간에 파문을 일으키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청록색의 화염에 도영호는 사자를 피해 달아나는 토끼마냥 전력으로 몸을 뒤쪽으로 날렸다.
“검은 안개가 사라지면 네놈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아무 쓸모도 없어지는군.”
안개가 사라지자마자 공포에 떨며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도영호의 모습에 이준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준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지자, 도영호는 온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화련에 의해 타격을 입은 지금의 상태로는 도저히 이준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차이라면 맞서 싸우기는커녕 달아나는 것조차 불가능할지도 몰랐다.
궁지에 몰린 도영호는 서둘러 인을 맺어 다시 한 번 검은 안개를 불러내려 했지만 검은 안개가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청록색 화염에 둘러싸인 주먹이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쾅!
“억!”
이준의 주먹에 얻어맞은 도영호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화련에 의해 이미 눈에 띄게 흐릿해졌던 그의 영혼체는 어느새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져 있었다.
“천이 장로, 도와주시오!”
그리고 또 한 차례 이준의 주먹이 날아드는 순간, 도영호의 입에서 애처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상태로 한번만 더 공격을 당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쾅!
하지만 이준의 주먹이 막 도영호의 머리에 닿으려는 찰나, 새하얀 옷을 입은 노인 하나가 번개처럼 날아와 이준의 주먹을 막아냈다.
“젊은이, 살기가 그렇게 넘쳐서 되겠소?”
천이 장로가 뱀지팡이를 짚은 채 나머지 한쪽 손으로 이준의 주먹을 꽉 쥐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못 참겠나 보군?”
천이 장로의 등장에 이준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얼굴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쾅!
이에 천이 장로는 뱀지팡이를 기울여 이준의 발을 막아내며 도영호의 앞을 막아섰다.
“천이 장로, 이미 신호를 보냈으니 얼마 뒤 영혼의 궁전에서 영호들이 올 것이오! 그때까지만 저놈을 좀 막아주시오!”
지금 도영호의 말투와 표정에서는 처음의 그 여유와 자신감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영호의 그런 태도에 천이 장로는 속으로 몰래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