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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37화 (537/818)

537화. 대지의 구슬

20분 정도 염력을 불어넣자, 또다시 핏빛 수정 하나가 느릿느릿 튀어나와 백색의 화염으로 변했다.

이에 이준은 망설임 없이 그 불꽃을 청연의 불꽃으로 감싼 뒤 덥석 집어삼켰다.

그렇게 신나게 핏빛 수정을 캐내기를 대여섯 번, 마침내 아무리 염력을 불어넣어도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설마 진짜 다 빼낸 건가?”

어느새 이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아쉬운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이준은 돌연 눈을 감고 영혼의 힘을 끌어내 지하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영혼의 힘이 지하구멍으로 들어가자마자 무시무시한 열기가 느껴졌지만, 천지의 불꽃이 영혼을 보호하고 있어 영혼이 다치는 일은 없었다.

영혼의 힘이 밑으로 내려갈수록 타오르는 느낌은 더욱 심해졌고, 천지의 불꽃으로 보호하고 있음에도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현기증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 아래에 화독이 가득하다는 의미였다.

화독이 있다는 것을 느낀 이준은 곧바로 영혼의 힘을 회수하려 했다. 억지로 밀어 넣다가는 영혼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준이 영혼의 힘을 다시 거두어들이려는 찰나, 칠흑 같은 구멍의 깊은 곳에서 새빨간 빛이 번쩍이는 것이 느껴졌다.

“에?”

붉은 빛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힘을 감지한 이준은 잠시 고민하다 다시 한번 영혼의 힘을 구멍 아래쪽으로 이동시켰다.

그 빨간빛은 점성을 띤 핏빛 액체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으며, 지하 구멍이 막힌 것 역시 그 붉은 액체 때문인 것 같았다.

‘아주 놀라운 불속성 에너지야.’

붉은 액체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에너지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찬숨을 들이켰다.

그 끈끈한 핏빛 액체는 무수한 불속성 에너지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그 끈적한 액체를 제거한다면 유씨 가문이 다시 태양의 불꽃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액체를 제거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붉은 액체 안에 담긴 불속성 에너지가 너무 짙어 자칫하면 자신의 영혼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손상이 가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준은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영혼의 힘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안에 담긴 불속성 에너지가 탐나기는 했지만, 섣불리 모험을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나 그가 영혼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려는 찰나, 붉은 액체 속에서 더욱 눈부신 붉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천천히 그 붉은 빛을 따라가 보니 핏빛 점성 액체 속에서 엄지손가락만한 빨간 구슬이 둥둥 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후, 그 붉은 구슬을 바라보던 이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대지의 구슬?”

대지의 구슬은 대지 깊은 곳에 흐르는 순수한 에너지가 무수한 세월을 거쳐 응집되어 만들어진 에너지의 결정체로, 그 구슬 안에 들어있는 방대한 에너지를 활용하면 8레벨, 심지어 9레벨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지는 물건이었다.

대지의 구슬은 보통 대지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매우 찾기가 어렵지만, 화산이 분출될 때 바닥에 숨겨져 있던 대지의 구슬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오늘 이준처럼 직접 지하 깊은 곳에서 대지의 구슬을 발견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대지의 구슬’은 ‘번개 구슬’을 제련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재료였다.

번개구슬은 연금비약이 아니라서 사람이 복용할 수는 없었지만, 비상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소형 폭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력은……. 투존 강자에게도 중상을 입힐 수 있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으음…….”

번개 구슬에 대한 정보를 떠올린 이준은 한참을 망설이다 자신의 영혼의 힘 위에 다시 한번 천지의 불꽃을 덧씌웠다.

번개 구슬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투종, 더 나아가 투존과의 싸움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었으니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대지의 구슬에 손을 댔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에 이준은 가만히 대지의 구슬을 지켜보며 때를 기다렸다.

한참 동안 붉은 액체를 관찰하다 보니 액체가 뿜어내는 불빛이 강해졌다 약해지기를 반복하며 그 안에 있던 에너지 역시 잠시 잦아드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혼의 힘은 칠흑같이 어두운 구멍 속에서 독사처럼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적막 속에서 때를 기다리기를 한참, 액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빛이 일순 꺼질 듯이 잦아들었다.

쉭!

그 순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영혼의 힘이 맹수처럼 대지의 구슬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익!

영혼의 힘은 빛과 같은 속도로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 액체 속으로 들어갔다.

대지의 구슬과 영혼의 힘이 맞닿는 순간, 마치 용암에 뛰어든 것만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천지의 불꽃으로 보호막을 만들어 둔 덕에 곧바로 영혼에 타격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지의 불꽃이라 해도 언제까지고 대지 구슬의 화독을 막아줄 수는 없었다. 이에 이준은 대지의 구슬을 낚아챈 뒤 혼신의 힘을 다해 영혼의 힘을 구멍 밖으로 끌어당겼다.

쾅!

대지의 구슬을 끌어내는 순간, 끈적한 붉은 액체가 다시 눈부신 빛을 발하며 밖으로 달아나는 영혼의 힘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준 역시 전력을 다해 영혼의 힘을 조종하고 있었지만, 새빨간 액체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순식간에 이준의 영혼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붉은 색 액체에 의해 그의 영혼이 막 붙잡히려는 찰나, 어둠이 끝나고 눈부신 빛이 내리쬐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 순간, 영혼의 힘이 번개처럼 지하구멍을 빠져나와 이준의 미간 속으로 들어갔고, 대지의 구슬이 이준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영혼의 힘을 회수한 이준은 곧바로 손가락으로 새까만 석비를 움직여 지하 구멍을 틀어막았다.

펑!

새까만 석비가 지하구멍을 덮는 순간, 거대한 에너지가 그 아래 부분을 때리며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석비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멈추자, 이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하 구멍에 도사리고 있던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막아낸 것을 보니 평범한 물질로 만들어진 물건은 아닌 듯싶었다.

“정말 위험했어…….”

무사히 대지의 구슬을 손에 넣은 이준은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대지의 구슬은 손에 넣지도 못하고 큰 부상만 입고 말았을 것이다.

이준은 일렁이던 마음이 점점 가라앉자 시선을 돌려 아라를 바라보았다. 아라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마정석에 담긴 재난독체의 에너지를 가다듬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아라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이준은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에 들린 붉은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이것이 대지의 구슬이구나…….”

주먹을 살짝 움켜쥐자, 구슬에서 뜨거운 열기가 퍼져 나오며 주위의 불속성 에너지를 끌어 모으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불속성 에너지가 당겨지는 것을 느낀 이준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대지의 구슬을 몇 번이나 훑어봤다.

대지의 구슬에 화속성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신기한 효과도 있다니! 이 효과를 이용하면 더욱 빠른 속도로 실력을 높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역시 신기한 구슬이야…….”

뜻밖의 보물을 건진 이준은 새빨간 구슬을 연신 만지작거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제 함부로 석비를 열 수 없다는 게 아쉽네. 그 빨간 액체의 방해만 없다면 대지 불꽃의 씨앗이 다시 나타나 태양의 불꽃을 만드는 속도도 빨라질 텐데…….”

손으로 구슬을 만지작거리던 이준은 석비를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액체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계속해서 태양의 불꽃을 흡수해 악마의 불꽃을 키울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 순간, 검은 비석에 반사된 뜨거운 햇볕이 그의 손에 있는 대지의 구슬을 비추었다.

치익!

대지의 구슬이 햇빛에 닿자 시뻘건 구슬이 부르르 떨리며 짙은 하얀색 연기가 솟아났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이준이 황급히 손을 저어 연기를 걷어내자, 대지의 구슬 안에서 돌연 새하얀 불씨 하나가 톡 하고 튀어나왔다.

“이건 태양의 불꽃이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대지의 구슬이 뱉어낸 것이 태양의 불꽃임을 확인한 이준은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았다.

“설마 대지의 구슬이 그 구멍을 막고 있으면서 불꽃의 씨앗을 흡수했다가 햇볕을 만나면서 그 안에 있던 씨앗이 태양의 불꽃으로 변하는 건가?”

생각을 마친 이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이유야 어찌 됐든, 대지의 구슬이 계속해서 태양의 불꽃을 토해준다면 이를 이용해 빠르게 악마의 불꽃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엔 진짜 귀한 걸 얻어 냈군.”

이준은 입이 귀에 걸린 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힌 이준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 아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에게서는 여전히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이준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대지의 구슬에서 뿜어져 나온 태양의 불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 * *

재난독체의 에너지를 갈무리 하고 있는 아라를 앞에 두고 이준이 태양의 불꽃을 흡수한지 삼일 째 되던 날, 갑자기 꽃잎성의 하늘 위에 서늘한 냉기가 돌더니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팍에 같은 휘장을 단 백색 그림자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꽃잎성 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성 밖을 빼곡하게 채운 하얀색 그림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빙하곡 사람들이 왜……?”

“설마 유씨 가문을 노리고 온 건가?”

“무슨 소리야, 빙하곡은 유씨 가문, 아니 오대 가문보다도 훨씬 강한데, 왜 유씨 가문을 탐내겠어?

“그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꽃잎성에 소풍이라도 왔단 말이야?”

꽃잎성 사람들은 살기등등한 기세로 성 밖을 에워싼 빙하곡 제자들의 모습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삼대협곡 중 하나인 빙하곡이 꽃잎성을 포위한 것이란 말인가?

잠시 후, 서늘한 냉기의 장막이 꽃잎성 전체를 물샐 틈 없이 틀어막았다.

“유씨 가문은 재난독녀 일행을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오늘 유씨 가문을 파멸시키겠다.”

사람들이 새하얀 장막에 겁을 먹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성 밖에서 염력이 실린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난독녀? 재난독녀 때문에 이곳에 온 거라니, 설마…….”

“유씨 가문에 재난독녀가 있다고?”

나이든 장로의 목소리를 들은 성 안 사람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조금 안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빙하곡은 재난독녀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으니, 성이 포위되었어도 무모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백색 형체 몇몇이 하늘을 밟으며 천천히 내려오더니 땅과 가까운 허공에 멈춰서 유씨 가문이 위치한 성 중심 쪽을 바라보았다.

빙하곡 투사들의 선두에 서있는 것은 바로 천화존자의 손에서 간신히 달아났던 ‘천이’ 장로였다.

그리고 그의 바로 뒤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백발의 노인 하나가 서있었다.

노인의 입가에는 온화한 미소가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천이 장로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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