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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33화 (533/818)

533화. 계란으로 바위치기

“투존?”

그 간단한 두 글자에 천이 장로는 물론이고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골짜기 안쪽에서 걸어 나온 이준은 바닥에 처박혀 있던 아라를 부축하면서 살기 어린 눈빛으로 천이 장로를 노려봤다.

“성공한 거야?”

아라가 이준 뒤에 서있는 천화존자를 바라보며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이준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괜찮아. 별거 아니야.”

아라가 입에 묻은 혈흔을 닦으며 말했다. 부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번에는 얼음의 힘이 체내에 들어가지 않았다.

게다가 천이 장로는 아라를 산채로 데려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부상도 그리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한편, 천이 장로의 시선은 갑자기 나타난 투존 강자에게 못 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으음, 곡주님과 그 노인네를 제외하고 이런 수준의 강자는 처음 보는군, 헌데 지난번에 보았을 때는 8성 투종 정도의 실력에 육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말없이 상대의 힘을 가늠해보던 천이 장로의 얼굴이 점점 더 어둡게 내려앉았다.

“우리 빙하곡의 장로를 죽인 일은 우리가 추궁하지 않겠으나, 저 여자는 우리 곡주님의 명에 따라 반드시 데려가야겠소.”

한참을 망설이던 천이 장로는 결국 투존과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한껏 예의바른 태도로 아라를 내줄 것을 요구했다.

본래 영혼체는 물론이고 이준과 요괴를 모두 죽이고 아라만을 데려갈 생각이었으나, 투존 강자가 나타난 이상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허허, 그거야 자네 사정이지.”

천화존자가 가볍게 팔을 돌려 몸을 풀며 말했다. 이제 막 이 몸과 융합이 되어 아직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육체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기분이 좋았다.

상대의 무례한 언사에도 불구하고 천이 장로가 곧바로 손을 쓰지 않자, 뒤에 있던 세 장로의 표정 역시 눈에 띄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투종 최고급 강자인 그가 함부로 손을 쓰지 못 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실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껄껄, 뭐하나 이 사람아. 설마 대빙하곡의 장로가 이런 모욕을 듣고도 가만히 물러날 텐가?”

천이 장로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천화존자가 다시 웃으며 그를 도발했다.

“내가 맡겠네. 자네는 물러나있게.”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아라를 부축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천화존자의 의복이 물결처럼 빠르게 일렁이며 엄청난 힘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정말로 우리 빙하곡과 적이 되고 싶은 것인가! 제 아무리 투존이라 해도 우리 빙하곡을 적으로 돌리고 무사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상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낀 천이 장로가 손에 들린 지팡이로 허공을 강하게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천화존자는 귀가 먹은 사람마냥 계속해서 염력을 뿜어냈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염력과 공간의 힘에 의해 주위에 있는 돌조각들이 빠르게 부서져 모래알로 변했다.

“빙하곡의 제자들은 들어라, 어서 빙하의 진을 만들 거라!”

천이 장로의 외침에 빙하곡의 제자들은 빠르게 흩어져 천이 장로를 중심으로 기묘한 진형을 짜기 시작했다.

“하압!”

곧이어 빙하곡 제자들의 입에서 힘찬 기합소리가 터져 나오며 그들의 몸에서 새하얀 염력이 뿜어져 나와 천이 장로에게 흘러들었다.

얼음의 힘이 가득 담긴 염력이 자신의 몸으로 흡수되는 것을 느낀 천이장로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인을 맺기 시작했다.

“빙룡 소환!”

인을 완성한 천이장로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손끝을 깨물어 피를 낸 뒤 그것을 거대한 염력 덩어리에 흩뿌렸다.

노인의 피를 흡수한 거대한 염력 덩어리는 이내 더욱 엄청난 냉기를 내뿜으며 빠르게 응집되기 시작했고, 이내 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얼음용의 형상으로 변화했다.

거대한 얼음용의 피부는 보석처럼 반짝였고, 두 눈은 피를 머금은 듯 섬뜩한 붉은 빛을 품고 있었다.

거대한 얼음용이 나타나자 천이장로와 모든 빙하곡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일부 제자들은 거의 죽을 것처럼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늘에 둥둥 떠있는 거대한 얼음용의 위용에 천화존자마저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어지간한 투종 최고 수준의 강자의 그것을 뛰어넘고 있었다.

“지금 물러난다면 조용히 저 여자만 데리고 사라지겠다. 끝까지 해보겠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결코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천이 장로가 온 몸에서 염력을 뿜어내고 있는 천화존자를 바라보며 외쳤다.

“허풍이 심하군.”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천화존자의 담담한 한마디에 천이 장로의 눈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 설마하니 상대가 이 무시무시한 빙룡의 힘을 느끼고도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가라!”

천이장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명령을 내리자, 거대한 빙룡이 순간 하늘을 향해 울음소리를 내지른 뒤 날카로운 이빨이 빽빽하게 들어찬 입을 벌린 채 천화존자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오오오!”

다음 순간, 거대한 빙룡의 입으로 차가운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모여 들더니 이내 온 천지가 차갑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냉기가 정점에 이르자, 빙룡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를 천화존자를 향해 내뱉었다.

하지만 천화존자는 그 무시무시한 공격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가볍게 손가락으로 허공을 그을 뿐이었다.

투존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자 공간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시커먼 공간이 생겨났고, 빙룡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냉기가 거짓말처럼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용의 입김이 검은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천화존자가 손으로 공간을 문지르니 갈라졌던 공간이 다시 아물며 산골짜기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간단하게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천화존자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 빙룡을 가리켰다.

그 순간, 빙룡 주위의 공간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새까만 선이 그어지더니 그대로 빙룡의 몸을 집어삼켰다.

우직!

“쿠오오오오!”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육신을 조여 오는 공간의 힘에 고통을 느낀 빙룡은 다시 한 번 우렁찬 포효를 내뱉으며 천화존자를 향해 돌진했다.

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용이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자, 천화존자는 차갑게 웃으며 더욱 강하게 주먹을 쥐어보였다.

찌익! 찌익! 찌익!

천화존자가 제대로 힘을 쓰기 시작하자 공간이 더욱 빠르게 일그러지며 사방에서 새까만 공간의 균일이 나타났고, 결국 거대한 얼음용은 천화존자에게 닿지도 못 한 채 산산이 찢겨 검은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달걀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지나…….”

그리고 얼음용이 사라지는 순간, 천이장로 일행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며 일제히 피를 뿜어냈다.

피를 토해낸 천이 장로는 그대로 하늘에서 미끄러지듯 추락해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원래도 주름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은 이미 시체의 그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펑! 펑!

천이장로의 상태가 이러한데, 빙하곡의 제자들이라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대다수의 제자들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천이 장로의 뒤를 따르던 세 장로 역시 연신 피를 토해내며 간신히 버티고 서있을 뿐이었다.

‘이, 이럴 수가……. 공간의 힘을 이 정도까지 다루다니, 설마 저 자가 곡주님 수준의 강자란 말인가.’

상대의 무시무시한 힘을 확인한 천이장로는 황망한 눈빛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제자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쿨럭! 네 이놈, 빙하곡의 일을 방해하다니……. 내 반드시 이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로 천화존자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천이 장로는 곧바로 남은 염력을 쥐어짜내 지팡이로 허공을 내리쳤다.

그러자 텅 빈 허공이 뒤틀리며 칠흑같이 검은 공간 통로가 그의 등 뒤에 생겨났다.

“빙소천, 나를 따라 오너라!”

곧이어 천이장로의 손에서 폭발적인 흡인력이 쏟아져 나와 세 장로를 통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선생님!”

상대가 달아나려는 것을 눈치 챈 이준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천화존자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형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천이 장로의 등 뒤에 생겨난 검은 통로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공간통로가 무너지자 천이 장로는 잠시 망설이다 손을 뻗어 눈앞에 있던 세 장로 중 한명의 등을 내리쳤다.

그러자 천이 장로에 의해 등을 떠밀린 그 장로의 몸이 얼음에 휩싸이더니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쾅!

다음 순간, 그의 몸이 굉음을 내며 폭발을 일으켰고, 무수한 얼음파편과 함께 거대한 에너지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빙하곡의 장로를 희생시켜 자리를 벗어나려는 천이 장로의 비열한 행동에 천화존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가볍게 팔을 휘둘러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얼음조각과 염력 폭풍을 걷어냈다.

장로 하나를 희생시켜 만든 폭발로도 상대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하자, 천이장로의 얼굴에서 점점 더 핏기가 가셨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두 장로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몸을 돌려 천이 장로에게서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천이 장로는 차갑게 웃으며 그들의 등 뒤에 손을 가져다 댔고, 이내 그들의 몸 역시 다른 한 명의 장로와 마찬가지로 얼음으로 변했다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펑! 펑!

다시 거대한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지며 매서운 얼음 폭풍이 사방을 휩쓸었고, 바닥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빙하곡 제자들 역시 얼음 조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세 명의 장로를 희생시켜 거대한 얼음폭풍을 만들어 낸 천이 장로는 천화 존자가 그것을 막아내는 사이 시커먼 공간 통로 안으로 번개처럼 달아났다.

“두고 보자. 반드시 이 원한을 갚아주마.”

공간 통로가 사라진 곳에서 분노가 가득 섞인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와 협곡 가득 울려 퍼졌다.

천이장로를 놓친 천화존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못 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설마하니 상대가 이렇게 악독한 수단까지 동원해가며 달아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놓쳤어?”

아라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준 역시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공중에 떠있는 천화존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이제 막 몸이 생긴터라 아직 염력을 회복하지 못하셨어. 사실상 방금전의 전투도 거의 영혼의 힘에만 의존한 거였어. 그렇지 않았다면 저 늙은이도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야.”

곧이어 허공 위에 있는 천화존자의 몸이 빠르게 움직여 이준의 옆에 나타났다.

“그 공간통로를 없애려 했는데, 설마하니 그 악랄한 놈이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달아날 줄은 몰랐구나.”

“괜찮습니다 선생님. 일단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아직은 빙하곡과 정면으로 싸울 수 없으니 아라가 재난독체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몸을 숨기는 게 어떨까요?”

이준의 의견에 천화존자 역시 동의한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성기 시절의 힘을 찾기 위해서는 그 역시 아직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네 뜻대로 하게. 어차피 나도 염력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 자네 덕에 생긴 몸이니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자네를 지켜줌세.”

몸을 되찾은 천화존자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연신 웃음을 지어보였다.

“천이장로가 도망갔으니 빙하곡에서 곧바로 사람을 보낼 거예요. 그러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어요. 게다가 이 낙신골은 독기로 가득해서 아라의 재난독체를 통제하기에 좋은 곳도 아니고요. 아라의 재난독체를 완벽히 통제하려면 우선 햇빛이 잘 드는 장소를 찾아야 해요.”

“햇빛이 잘 드는 곳?”

이어지는 이준의 말에 천화존자와 아라 모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연금성에서 그런 곳은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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