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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32화 (532/818)

532화. 천이 장로의 힘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성공한 이준은 곧바로 약솥을 치우고 저장반지 안에서 익숙한 시체 한 구를 꺼내들었다.

그가 이번에 사용하기로 한 것은 운남종의 종주였던 투종 강자 운산의 시신이었다. 본래 그 시체는 약로를 위해 준비해둔 것이었지만, 이 정도 실력의 시체는 지금의 이준에게 더 이상 귀한 물건이 아니었다.

이준은 머릿속으로 약로가 말해준 신체 제련법을 되짚어 본 뒤 곧바로 청연의 불꽃으로 운산의 시신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에게 영혼의 힘을 주세요!”

얼어붙은 시체가 녹기 시작하자, 이준이 천화존자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다음 순간, 천화존자의 미간에서 영혼의 힘이 빠져나와 이준에게 향했다.

이준은 그 영혼의 힘을 시체 속에 넣은 뒤 잽싸게 손에 있는 반혼의 비약을 천화존자에게 던졌다.

“드세요, 제가 말을 하면 선생님은 곧바로 이 몸속으로 들어가세요!”

천화존자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연금비약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천화존자가 연금비약을 먹자 이준은 저장 반지에서 빠르게 옥병을 꺼냈다. 자홍색 혈액이 가득 들어있는 옥병에서는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바로 전갈이무기의 피였다.

곧이어 옥병이 터지며 그 안에 들어있던 자주색의 핏방울이 운산의 시신 위로 쏟아졌다.

피가 시체에 닿는 순간, 치이익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며 시체의 피부가 빠르게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도 이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불꽃의 온도를 높였다.

화염의 온도가 높아지자, 시체 위에 붙어있던 피가 천천히 스며들며 창백하던 피부색과 굳어있던 근육이 점점 활력을 되찾았다.

피가 시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지 대략 삼십분, ‘운산’의 감겨있던 두 눈이 떠지더니 텅빈 두 눈동자 속에 생기가 조금씩 일렁이기 시작했다. 물론, 생기를 찾은 것은 운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천화존자’의 영혼 때문이었다.

“선생님, 지금이에요!”

가만히 지시를 기다리고 있던 천화존자는 이준의 외침을 듣자마자 그대로 불꽃을 뚫고 온몸이 새빨간 빛으로 뒤덮인 시체 안으로 돌진했다.

천화존자의 영혼이 시체와 맞닿는 순간, 그의 미간에서 검은빛과 빨간빛이 섞인 기이한 물결무늬가 뿜어져 나와 온 몸으로 퍼져 나갔다.

쉬익!

“성공이에요?!”

천화존자의 영혼이 그 몸속으로 들어가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선화와 아라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선생님이 이화의 불길을 버텨내면서 이 몸의 지배권을 움켜쥐어야 성공이야.”

이준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한 단계였다. 만일 천화존자가 불길을 견디지 못한다면, 육체도 못 쓰게 될 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너희 먼저 가서 협곡 입구를 지키고 있어. 하늘 요괴가 너흴 따라갈 거야. 어느 누구도 이곳에 들어오면 안 돼!”

이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라와 선화는 하늘 요괴와 함께 번개처럼 협곡 입구로 날아갔다.

두 사람이 떠나자, 이준은 다시 시선을 돌려 불길 속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시체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버티셔야 해요!”

* * *

천화존자의 영혼이 운산의 몸으로 들어간 지 이틀이 지났지만, 시체 위에서 타오르는 불길은 꺼질 줄을 몰랐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나자, 협곡의 먼 곳에서 뱀지팡이를 든 백색 옷의 장로와 빙하곡의 투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 낙신골의 독안개가 너무 짙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다만, 네놈들이 가봐야 어딜 가겠느냐.”

뱀지팡이를 든 장로가 싸늘한 미소를 띤 채 협곡을 바라보며 말했다.

널따란 통로가 위치한 산골짜기 입구에서는 아라와 선화, 그리고 은빛 요괴가 바위처럼 선채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미 사흘이 지났건만 천화존자의 몸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질 않았다.

지루해진 선화가 느릿느릿 기지개를 켜며 옆에 있는 아라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아라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왜 그래요?”

아라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선화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빙하곡…….”

아라는 그 짤막한 세 글자를 내뱉은 뒤 곧바로 살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라의 말에 선화 역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바깥 쪽을 바라봤다. 아니나 다를까, 먼 곳에서 백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네가 바로 재난독녀구나.”

그 때, 나이든 목소리 하나가 두 사람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아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곧바로 손을 펼쳐 보라색의 염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나이든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산골짜리 입구 쪽에서 갑자기 공간이 왜곡되더니 지팡이를 짚은 노인 하나가 나타났다.

그 뒤로 다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하얀 형체들이 노인의 뒤를 가득 메웠다.

“끈질긴 놈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허허, 재난독녀가 상대라면 이 몸이 직접 나서는 것이 예의지. 게다가 우리 협곡의 장로가 죽었으니 기필코 그 녀석을 우리 손으로 잡아서 죽여 버려야 하지 않겠나.”

“저 사람은 빙하곡의 천이장로?”

천이 장로를 알아본 선화의 얼굴은 시신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천이장로?”

공포에 질린 선화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에 아라의 얼굴 역시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천이 장로의 명성은 그녀처럼 연금성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는 투존이 되기 직전의 실력을 갖춘 강자 중에 강자로, 빙하곡 고유의 힘인 ‘얼음의 힘’에 있어서도 최고 수준에 달한 빙하곡주 다음가는 강자였다. 들리는 말로는 평범한 투종 강자 열이 달려들어도 그를 당해낼 수 없다고 했었다.

“어찌 너희 둘만 있는 것이냐? 그 젊은 놈과 늙은 영혼체도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천이 장로가 바닥에 가볍게 지팡이를 짚으며 말했다.

“너희들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다. 그 둘을 불러 내거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노인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아라가 고개를 돌려 선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산골짜기 안으로 가서 선생님의 몸이 다 만들어졌는지 확인해줘.”

자신이 이곳에 남아있으면 아라에게 방해만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선화는 이를 악물고 빠르게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이 산골짜기에만 있는 걸 보니, 지난 번 전갈이무기와의 싸움에서 크게 다쳤나보지?”

선화가 멀어지자 천이장로가 기세등등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라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천 장로님, 이 여자는 저희에게 맡기시죠.”

그러자 천이 장로 옆에 서있던 백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장로가 아라를 바라보며 천이 장로에게 말했다.

“아니다. 나도 저 재난독녀의 실력이 궁금하구나.”

말을 마친 천이 장로가 갑자기 귀를 문질렀다. 그의 귀에 남아있는 고동색의 흉터에는 징그러운 구멍이 하나 있었다. 살점이 뜯겨나간 것 같은 그 흉터는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끔찍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재난독체와의 마지막 싸움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구나.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 오늘 이 재난독체는 얼마나 강한지 한 번 보고 싶다.”

그의 말에 백색 옷을 입은 세 명의 장로들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천이 장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 흉터는 과거 재난 독체를 가진 강자에게 패배했을 때 생긴 것이었다.

“자네들은 저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주위를 지켜주게.”

뱀 지팡이를 짚은 천이장로가 천천히 허공을 밟으며 하늘 위로 올라가 아라와 그녀 옆에 있는 요괴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이 산골짜기에서 자네 말고는 어느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다.”

아라는 초조한 표정으로 산골짜기 안을 한 번 힐끗 바라보고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산골짜기 안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 걸 보니, 천화존자의 육체융합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최대한 시간을 끄는 수밖에 없겠어. 이준, 속도 좀 내줘……!’

아라가 발걸음을 돌려 반대쪽 발을 앞으로 내딛는 순간, 옆에 있던 하늘 요괴가 강한 힘에 이끌린 것처럼 바닥을 강하게 구른 뒤 그대로 천이장로를 향해 돌진했다.

하늘 요괴의 갑작스런 행동에 아라 역시 급히 그 뒤를 따라 노인에게 돌진하며 손 위에 피어오른 보라색 염력을 거대한 자주색 구렁이로 변화시켜 천이 장로에게 날렸다.

“이게 요괴인가? 역시 대단하군. 하지만, 진정한 투종 최고 수준의 강자를 상대하기에는 조금 모자라구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드는 요괴를 본 천이 장로가 가볍게 웃으며 주름이 가득한 손을 움켜쥐자, 공간이 요동치며 단단한 벽 하나가 생겨났다.

펑!

하늘 요괴가 공간 벽에 부딪히는 순간, 커다란 굉음과 함께 요괴의 은빛 몸뚱이가 반대 방향으로 화살처럼 튕겨나갔다.

단숨에 요괴를 막아낸 천이장로는 곧바로 나무껍질마냥 메마른 손을 들어 아라를 겨눈 뒤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냉기를 뿜어내는 두 개의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아라의 염력으로 만들어 진 거대한 구렁이를 붙잡았고, 두 마리의 구렁이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순간, 아라는 노인이 뿜어낸 한기에 의해 자신의 염력이 얼어붙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정도로 강한 냉기라니…….”

곧이어 아라의 몸속에서 짙은 자주색 염력이 빠르게 튀어나와 번개처럼 그녀의 정수리로 모여들었다.

펑!

얼음처럼 차가운 손바닥이 짙은 자주색 염력과 부딪히는 찰나, 더욱 공포스러운 한기가 터져 나오면서 자주색 염력 위에 얼음 가루가 생겨났다. 거대한 손바닥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아라의 염력을 꿰뚫고 그녀의 몸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푸흡!”

아라는 그렇게 단 한 수만에 입에서 피를 토하며 거대한 산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눈앞의 노인은 지금껏 만나보았던 모든 상대 중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투종 최고 수준의 강자다운 힘이었다.

아라를 때려눕힌 천이장로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손을 들려는 순간, 은빛 그림자가 다시 돌진해오며 단단한 주먹을 휘둘렀다.

하늘 요괴의 주먹에서 생겨난 매서운 바람을 느낀 천이장로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얼음으로 자신의 팔뚝을 뒤덮었다.

펑!

새하얀 얼음 주먹과 요괴의 은빛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사방으로 얼음가루가 튀며 거대한 파문이 퍼져나갔다.

쾅!

그러나 하늘 요괴도 천이 장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천이장로가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며 염력을 폭발시키자, 갑옷처럼 단단한 요괴의 은빛 가슴팍에 손가락 반 마디 정도 되는 깊은 주먹의 흔적이 생겨났다.

노인의 공격에 의해 뒤로 날아간 요괴는 거대한 바위 몇 덩어리를 부수고 나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이것 밖에 안 되는군…….”

두 사람을 간단하게 제압한 노인은 손에 든 뱀지팡이로 가볍게 바닥을 두드리며 가소롭다는 듯 픽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 봤던 재난독체와 비교하면 부족하기 짝이 없구나. 네 실력으로는 이 노부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얌전히 우리 빙하곡으로 돌아온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아라가 싸늘한 표정으로 피를 닦아내며 인을 맺어 막 재난독체의 봉인을 풀려는 찰나, 익숙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쪽이 할 소리야. 얌전히 꺼진다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허공에 떠있던 천이 장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두 개의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시종일관 여유가 가득하던 천이 장로가 귀신이라도 본 것마냥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투, 투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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