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화. 전갈이무기의 죽음
“크아악!”
이준이 마수 떼를 불태우고 있는 사이, 갑자기 전갈이무기가 우렁찬 포효 소리를 내뱉었고, 이에 하늘 위에 떠있던 독구름이 놈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저 정도의 에너지라면 천화존자 선생님과 하늘 요괴라도 힘들지 몰라.’
생각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구름불꽃을 다시 대지의 불꽃과 융합시킨 뒤 그것을 거대한 화염 늑대로 변화시켰다.
청록색의 화염 늑대는 곧바로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며 전갈 이무기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독안개를 눈 깜짝할 새에 불살라 버렸다.
“천지의 불꽃?”
하늘 요괴와 천화존자의 영혼체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던 전갈 이무기는 저 멀리 하늘에서 거대한 화염 늑대가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고는 빠르게 표정을 굳히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 눈 팔 때가 아닐 텐데!”
전갈 이무기가 화염 늑대에 정신이 팔린 사이, 강력한 힘이 실린 주먹이 정확하게 그의 등에 내리 꽂혔다.
“푸흡!”
강한 충격에 전갈이무기의 입에서는 곧바로 새빨간 선혈이 터져 나왔다.
맹독을 머금은 그의 피가 요괴의 얼굴에 닿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독향이 퍼져 나왔지만 하늘 요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또 다시 힘차게 주먹을 날려댔다.
“네 이놈, 감히 요괴 따위가!”
전갈 이무기의 목구멍에서 분노에 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백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마수로 변화했다.
본 모습으로 돌아간 전갈 이무기는 곧바로 마수 떼의 독기운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구름쪽으로 황급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그 모습을 본 이준이 차갑게 웃으며 인을 맺자, 화염 늑대가 입에서 거대한 불기둥을 뿜어내며 검은 독구름을 불살랐다.
청록색 화염의 공포스러운 열기와 만나는 순간, 검은 구름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 안에 들어있던 독기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렸다.
독구름을 흡수하는데 실패한 전갈이무기는 또 다시 분노에 찬 포효를 내뱉으며 거대한 기둥과도 같은 꼬리를 휘두르며 이준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이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인을 맺어 화염 늑대를 조종해 전갈 이무기의 꼬리를 공격했다.
“억!”
꼬리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열기에 전갈 이무기는 하늘을 향해 날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끊기기도 전에 은색 형체가 그대로 그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주저하지 않고 그 커다란 눈알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쾅!
낮은 폭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새빨간 피가 비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고, 전갈이무기의 거대한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전갈이무기의 거대한 몸집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대지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팔뚝만한 균열이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전갈이무기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고통에 찬 신음이 흘러 나왔고, 하늘 요괴에게 얻어맞은 부위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악! 이놈들!”
전갈이무기의 목소리에는 살기와 분노가 가득했다. 그가 인간의 모습을 갖춘 이래, 이토록 참혹한 패배는 처음이었다.
한참을 울부짖던 전갈 이무기는 갑자기 거대한 입을 크게 벌려 농후한 핏빛에너지를 빠르게 끌어 모아 널따란 핏빛 빛기둥을 만들었다.
새빨간 빛기둥이 완성되는 순간, 주위의 공간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쉬익!
놈이 거대한 머리를 흔들자, 핏빛 빛기둥이 쉭 소리를 내며 번개처럼 허공을 가르며 미친 듯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조심하게!”
핏빛 빛기둥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느낀 천화존자는 곧바로 이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7레벨 마수의 모든 힘을 쏟아 부은 공격에 당한다면 2성 투종에 불과한 이준은 단숨에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이준 역시 그 핏빛 빛기둥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황급히 번개의 움직임을 발동해 하늘에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핏빛 에너지에 담긴 위력은 이준을 단숨에 무로 돌려보내기에 충분했지만, 닿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게다가 전갈 이무기는 부상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기에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아나는 이준을 맞출 수가 없었고 핏빛 빛기둥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사라졌다.
“이준, 내가 저 놈을 붙잡을 테니 하늘 요괴에게 놈의 머리를 공격하도록 명령하거라!”
“네!”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움직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갈 이무기는 8성 투종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기회가 왔을 때 숨통을 끊어 놓아야 했다.
하늘 요괴가 거대하게 변화한 전갈 이무기의 머리를 향해 몸을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영혼의 힘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거대한 그물로 변화했다.
“가라!”
천화존자가 소맷자락을 휘두르는 순간, 영혼의 힘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그물이 그대로 전갈이무기의 몸을 뒤덮었다.
엄청난 힘으로 옥죄어 오는 그물망의 힘에 전갈이무기는 크게 당황하며 미친 듯이 발버둥 쳤지만,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거대한 영혼 그물은 더욱 더 그의 몸을 옥죄어 왔다.
“지금이다.”
그 순간, 천화존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허공에 떠있던 하늘요괴가 그대로 포탄처럼 전갈이무기의 거대한 몸 위로 돌진했다.
“크르릉!”
몸 위에서 전해지는 무시무시한 힘에 전갈이무기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댔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준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화염 늑대를 조종해 전갈 이무기의 꼬리를 공격했다.
청록색의 화염 늑대가 사냥감을 덮치는 야수마냥 전갈 이무기에게 달려들어 거대한 꼬리를 물어뜯자, 놈의 몸에서 새하얀 연기가 퍼져 나오며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펑!
영혼의 그물과 천지의 불꽃으로 만들어진 화염 늑대에 의해 사지와 꼬리가 모두 제압당한 전갈 이무기는 저항다운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거의 무방비 상태로 하늘 요괴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은빛의 요괴는 몇 번이나 연달아 거대한 마수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하늘 요괴의 진정한 힘은 염력이나 영혼의 힘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육체에 있었고, 단순한 힘과 힘의 충돌이라면 8성 투종의 힘을 가진 7레벨 마수의 육체로도 도저히 당할 도리가 없었다.
무시무시한 힘이 실린 주먹이 연달아 머리 위에 내리 꽂히자 전갈 이무기의 머리에서 역겨운 독향을 내뿜는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와 무형의 영혼 그물을 녹이기 시작했다.
펑! 펑! 펑!
그물이 녹아내리는 것을 본 이준은 다시 한 번 요괴에게 명령을 내렸고, 은빛 요괴는 망치로 말뚝을 박듯 사정없이 이무기의 머리를 내리쳤다.
하지만 전갈 이무기의 몸에서 터져 나온 피에 담긴 독성에 의해 하늘 요괴의 몸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몸의 강도로만 치자면 투존 강자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하늘 요괴의 몸에 균열이 생길 정도이니, 전갈 이무기의 혈액에 담긴 독성이 얼마나 강한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제길, 상상 이상인데…….’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전갈 이무기의 맹독에 당황한 이준은 다시 한 번 인을 맺어 하늘 요괴를 재촉했다.
지금 요괴의 주먹은 8성 투종이라 하더라도 일격에 피를 토하고 말 정도의 힘이 담겨 있었고, 제대로 맞는다면 투종 수준의 강자 중에는 무사히 넘어갈 수 있는 자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갈이무기는 벌써 몇 십 번을 얻어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으니, 용족의 7레벨 마수가 얼마나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공격에 그의 단단한 껍질은 결국 완전히 박살이 나고 말았다.
처음 겪어보는 위기에 공포를 느낀 전갈 이무기는 반쯤 애원하듯 이준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멈춰!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난 전갈용족의 사람이라고! 날 죽이면 전갈용족이 너희를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다.”
“됐어. 나에겐 네 마정석이 필요해.”
그러나 그런 협박 따위에 겁을 먹을 이준이 아니었다.
이준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은빛 요괴는 기계처럼 쉬지 않고 마수의 머리통을 연신 내리찍고 있었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공간에 파동이 일었고, 투명한 파동이 사방으로 확산 되면서 전갈이무기의 몸에서 분수처럼 피가 터져 나왔다.
마침내 놈의 숨통이 끊어지려는 찰나, 전갈이무기의 한쪽 눈이 얼굴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섬뜩한 붉은 빛을 내뿜는 안개로 변화해 이준에게 날아들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이준은 미처 피하지 못 하고 그 안개에 그대로 맞고 말았다.
“큭큭……. 그래, 나는 죽지만…… 네 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전갈 이무기의 마지막 말이었다.
전갈이무기의 머리가 완전히 박살나자, 주위를 둘러싸고 소동을 벌이던 수많은 마수 떼가 바람에 날려가는 연기처럼 단박에 흩어져 버렸다.
전갈 이무기의 머리가 터져버리자, 아라와 싸우던 두 마수의 얼굴이 완전히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오랜 세월 낙신골의 왕으로 군림해오던 전갈 이무기가 이토록 허무하게 최후를 맞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투종은커녕 투존마저도 전갈 이무기가 두려워 감히 낙신골에 발을 들이지 못 했다. 그런데 왠 젊은 투종 둘이 나타나 그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감히 주인님을 죽이다니! 전갈용족이 결코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뚱뚱한 마수가 잠시 멍하니 서있다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까누, 가자! 저 놈들을 죽여 주인님의 넋을 위로하자!”
하지만 ‘까누’라 불린 삐쩍 마른 마수는 뚱뚱한 마수와는 생각이 달랐던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달아났다.
까누가 달아나자, 뚱보 마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더러운 배신자!”
“왜? 내가 보기에는 현명한 것 같은데?”
그 때, 아라가 피식 웃으며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뚱뚱한 마수에게로 다가왔다.
아라가 천천히 다가오자 그 뚱뚱한 마수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까누와 함께 협공해도 간신히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는데, 혼자서 어떻게 그녀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전갈용족이 너희를 절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뚱보 마수는 분에 겨워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한마디를 남긴 뒤 꽈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빛줄기로 변해 사라졌다.
아라는 멀리 날아가는 뚱보를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리고는 이준의 곁으로 가볍게 날아왔다.
“끝난 거야?”
아라의 물음에 이준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갈이무기의 실력은 확실히 대단했다. 만일 하늘 요괴와 천화존자가 없었다면 절대로 놈을 제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어서 필요한 걸 챙겨서 떠나자. 낙신골 내에 있던 다른 마수들이 몰려올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러는 게 좋겠어. 빙하곡 놈들도 언제 몰려올지 모르니까.”
말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화염 늑대를 이용해 전갈 이무기의 거대한 시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천지의 불꽃이 전갈이무기를 휘감자, 온도가 무섭게 오르며 공간을 왜곡시켰다.
청록색의 화염이 타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갈이무기의 거대한 몸이 빠르게 작아지면서 털, 뼈, 피부 모두 빠르게 잿가루로 변했다.
곧이어 전갈이무기의 피부에 묻은 피도 빠르게 증발하였고, 상처 부위의 혈관이 새하얀 재로 변화했다.
마침내 전갈이무기의 몸이 일 미터 정도의 크기로 줄어들었을 때, 핏빛 살덩어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주먹의 크기 정도의 핏빛 수정체가 되어 이준에게 날아왔다.
맑은 피 같은 수정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에너지에 이준의 얼굴에는 대번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흐뭇한 표정으로 7레벨 마수의 마정석을 만져보던 이준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저장 반지 안에 넣었다.
마정석을 손에 넣은 이준이 다시 한 번 가볍게 주먹을 쥐자, 핏빛 살덩어리를 중심으로 돌고 있던 청록색 화염이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남은 살덩어리를 강하게 짓누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