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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26화 (526/818)

526화. 전멸

“빙학, 그 녀석을 죽이게!”

천화존자의 등장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던 빙학은 빙부혁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곤 곧바로 이준을 가리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서 저 녀석을 쳐라!”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무섭게 빙학이 새하얀 염력을 쏟아내며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고, 주위에 서있던 빙하곡 제자들도 일제히 염력을 폭발시키며 이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 위에 떠있던 빙부혁은 또다시 염력을 폭발시키며 천화존자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려면 자신이 8성 투종을 붙잡고 있는 사이에 빙학과 제자들이 요괴와 영혼체의 주인인 이준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돌진해오는 빙하곡 사람들을 본 이준은 달아나기는커녕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내가 처리할게. 넌 움직이지 마.”

이준의 말에 아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을 공격하는 이들 중 가장 강한 사람인 빙학은 2성 투종이었고, 나머지는 몇 명의 투황을 제외하면 모두 투왕 수준에 불과했으니 결코 이준의 상대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이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인을 맺자, 그의 미간에서 은빛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와 꿈틀거리다 이준과 똑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그가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최근 가장 공들여 수련한 무투기 중 하나인 ‘번개의 분신’ 이었다. 천목산에 다녀온 이후 번개 분신의 실력은 투황 최고급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이는 빙학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빙하곡 제자들을 저지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가라!”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분신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빙하곡 제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갑자기 나타난 영혼 분신에 놀란 빙학은 잠시 당황하다 이내 정신을 되찾고는 이준을 노려보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신기한 것들을 많이도 가지고 있구나. 하지만 1성 투종의 실력으론 나의 상대가 될 수 없지!”

그때, 뼛속까지 얼어붙은 듯한 냉기가 빙학의 열 개 손가락 끝에 모여 열 개의 날카로운 얼음 손톱으로 변했다.

“오늘 일이 빙하곡에 알려진다면, 이 연금성 어디에도 발 불일 수 없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빙학은 세차게 허공에 발을 구르며 번개처럼 이준에게 돌진했다.

쿵!

다음 순간, 빙학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이준의 가슴팍 부분을 빠르게 내리그었다.

하지만 이준이 청록색 화염으로 둘러싸인 손을 들어 빙부혁의 손을 막아내자, 화염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열기가 날카로운 얼음 손톱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2성 투종인 빙학의 냉기를 완벽하게 억누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빙하곡의 2성 투종이 이렇게까지 견디지 못한다니,”

자신의 얼음 속성 염력이 이준의 화염에 의해 완벽하게 봉쇄당하자, 빙학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준의 손에서 불타고 있는 불꽃을 바라봤다.

“처, 천지의 불꽃?”

“정답.”

빙학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빼려는 찰나, 이준의 반대쪽 주먹에서 무시무시한 염력이 터져 나왔다.

“태초의 힘!”

쾅!

이준의 주먹이 빙학의 주먹과 강하게 부딪히자,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무시무시한 힘이 번개처럼 빙학의 몸을 꿰뚫었다.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는 일격이었지만, 이준의 화염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얼음 속성 염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빙학은 단번에 피를 토하고 말았다.

“이……이놈!”

당황한 빙학은 전력으로 염력을 끌어모아 자신의 팔에 두꺼운 얼음층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팔뚝 위에 생겨난 얼음층은 평소의 그것보다 절반 가까이 얇았다.

“얼음 이무기의 주먹!”

다음 순간, 얼음으로 뒤덮인 그의 팔뚝에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는 이무기의 형상이 떠올랐다.

곧이어 주위의 공기가 빠르게 얼어붙으며 날카로운 얼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상대의 매서운 기운에도 이준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빠르게 인을 맺어 청록색 화염 늑대를 만들어냈다.

청록색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늑대가 나타나는 순간, 서늘하게 얼어붙었던 주위의 공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며 얼음들이 사라졌고, 청록색의 늑대가 사냥감을 노리는 야수마냥 빙학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한 빙학이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지르자, 그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백색의 염력과 청록색의 화염 늑대가 맞부딪히며 허공에 거대한 파문이 일었다.

거대한 화염 늑대는 빙학의 염력을 뚫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고, 늑대가 내뿜는 열기로 인해 그의 팔 위를 뒤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층이 빠르게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푸흡!”

곧이어 빙학의 팔뚝을 뒤덮고 있던 얼음이 모조리 부서지며 얼음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튀었다.

쾅!

얼음 부스러기가 모두 부서지는 순간, 청록색의 화염 늑대가 그대로 빙학에게 몸을 부딪쳐 그를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커헉!”

화염 늑대와 부딪힌 빙학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과 함께 새빨간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그의 몸이 절벽 아래 있던 거대한 바위에 세차게 처박히고 말았다.

그리고 바위에 처박힌 빙학이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발버둥을 치는 찰나, 이준의 몸이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귀신처럼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몸을 일으키려는 빙학 앞에 나타난 이준은 곧바로 발을 들어 그의 머리를 짓눌렀다.

빙학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만일 자신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한다면 자신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진 수박처럼 퍽, 소리와 함께 쪼개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일 날 죽인다면 빙하곡의 모든 투사들이…….”

“빙하곡인가 뭔가 하는 게 무서웠으면 싸우지도 않았지.”

“네, 네 이놈! 이것이 우리 빙하곡의 실력의 전부라고 생각하느냐! 빙하곡에는 이곳에 있는 장로들보다 훨씬 더 막강한 실력자들이 가득하다.”

빙학의 말에 이준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빙하곡은 삼대협곡 중 하나였으니, 불의 협곡보다 약할 리가 없었다. 불의 협곡의 경우 셋째 장로가 8성 투종이었고, 둘째 장로는 곧 투존이 될지도 모르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곡주인 당진은 그 힘의 바닥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확신할 수는 없어도 나정필보다는 명백하게 몇 수 위의 강자일 것이 분명했다.

이런 불의 협곡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 빙하곡 역시 그에 못지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빙학은 상대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한결 부드러워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만일 재난독녀를 빙하곡에 넘겨준다면 우리 빙하곡은 절대 자네를 해치지 않겠네. 게다가 자네 정도의 자질이라면 틀림없이 곡주님께서도 자네를 좋게 볼 걸세. 우리 곡주님은 강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시니까.”

하지만 빙학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의 얼굴에 서늘한 미소가 번지며 번개처럼 발을 내딛어 빙학의 어깨를 세차게 걷어찼다.

쾅!

어깨를 얻어맞은 빙학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거대한 돌 위에 부딪히며 또다시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이, 이놈! 조만간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쿵!

빙학의 말이 끝나는 찰나, 새하얀 그림자 하나가 하늘에서 추락해 선혈을 내뿜으며 바닥에 축 늘어졌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곁을 바라보니 온몸이 피범벅이 된 빙부혁이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고, 몸이 없으니 투종 하나 처리하는 것도 힘들구나.”

곧이어 반투명한 영혼체 하나가 천천히 이준의 곁에 나타났다. 바로 천화존자였다. 그는 시체처럼 쓰러져있는 빙부혁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처리해 두었다. 남은 일은 자네에게 맡겨도 되겠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제 약재도 거의 다 구했으니 곧 선생님의 몸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이준의 말에 천화존자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그가 줄곧 자신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자신의 몸이 생길 때까지 이제 멀지 않은 듯했다.

“역시 믿을 만한 녀석이야. 하하.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있어.”

천화존자의 말을 들은 빙학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앞에 계신 선배님, 몸을 제련하는 일은 우리 빙하곡이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특별한 능력도 가질 수 있으니 우리 빙하곡을 위해서 사건 하나만 처리해주면 무료로 제련해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이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시더니, 두 눈에서 음산한 살기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천화존자는 이준을 한번 쳐다보곤 난감하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빙학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인가? 들어나 봅세.”

“우리 빙하곡 대신 재난독녀를 찾아주시면 반드시 선배님이 만족할 만한 몸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상대가 자신의 거래에 응한 것이라 생각한 빙학의 얼굴에 순간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천화존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연 빙학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우직!

반투명한 영혼체는 상대에게 입을 열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의 목을 구십 도로 꺾어버렸고, 빙학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다음부터 이런 놈에게는 말할 기회도 주지 말게, 무슨 변수라도 생길 수 있으니.”

점점 차가워지는 빙학의 몸을 손에서 내려놓은 천화존자는 고개를 돌려 이준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잠시나마 천화존자를 의심했던 것이 민망했는지, 이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쪽은 다 끝난 것 같네요.”

말을 마치자, 한줄기 은색 섬광이 번뜩이더니 하늘 요괴가 이준의 앞으로 날아왔다. 요괴의 손에는 얼굴이 핏자국으로 가득한 빙원구가 잡혀 있었다.

시체처럼 누워있던 빙부혁과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빙학을 발견한 빙원구는 이준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네 이놈! 감히 빙하곡을 상대로!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하지만 가소롭다는 듯 이준은 픽 웃음을 터뜨리고는 빙원구를 건네받은 뒤 빙하곡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다시 요괴에게 명령을 내렸다.

“죽여라, 남김없이.”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늘 요괴는 번개처럼 몸을 날려 양 떼를 쫓는 늑대처럼 빙하곡의 제자들을 습격했고, 이내 처량한 비명소리가 산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요괴의 습격에 빙하곡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지만, 그들의 속도로 하늘 요괴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 깜짝할 새에 빙하곡의 제자들을 몰살시킨 하늘 요괴는 은색 육체를 새빨갛게 물들인 채 이준의 영혼분신과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영혼분신을 회수한 이준은 고개를 돌려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빙부혁을 바라보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좀 있는데…….”

설마하니 이준이 빙하곡의 제자들을 몰살시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듯, 빙부혁의 눈에는 공포와 원한이 가득했다. 하지만 빙하곡 장로의 자존심인지, 죽음을 직감한 자의 용기인지, 그는 또다시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이준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이런 사악한 놈! 어린놈이 악독하기 이를 데 없구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인다고 빙하곡이 이 일을 모를 거라 생각하지 마라! 얼마 가지 않아 곡주님과 다른 장로들이 너를 찾아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빙부혁의 발악에 이준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들어 청록색의 화염을 피워 올린 뒤 그것을 빙부혁의 어깨에 가져다 댔다.

“으아아아아악!”

그 순간, 처참한 비명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아까 너희가 말한 ‘얼음의 힘’이 뭐지?”

잠시 후 , 이준이 빙부혁의 어깨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하지만 빙부혁은 고통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이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자, 청록색 화염이 다시 빙부혁의 어깨를 지졌다.

쉬익!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빙부혁의 온몸이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또다시 고막을 찢을듯한 비명소리가 이준의 귓등을 때렸다.

“말 안 해?”

결국 참다못한 빙부혁이 이를 꽉 깨문 채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얼음의 힘은 우리 빙하곡 특유의 염력이다. 투종 계급이 되어야만 수련을 할 수 있지. 얼음의 힘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몸속에 잠복하면서 피와 혈관을 서서히 얼려버리지.”

“어떻게 빼낼 수 있는 거지?”

“우리 빙하곡의 곡주님이 손을 대지 않는 한 방법이 없지.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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