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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22화 (522/818)

522화. 꽃잎성

천황성 중앙에 있는 거대한 광장 위에서는 거대한 공간 통로가 서서히 회전하며 공간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중부지역에선 최대한 조심해야해. 언제 어디서 어떤 괴물을 만날지 모르는 곳이 중주니까.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곧바로 천황성으로 와. 우리 가문이 얼마나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덜 도와줄게.”

류지안은 이준을 혼자 보내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시종일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이 해결되고 시간이 되면 반드시 천황성으로 돌아올게요.”

“이곳에서 중주 지역까지 가려면 5일 정도는 더 가야해.”

류지안이 손으로 이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몸 조심하고.”

“선배도 참, 그 말만 벌써 몇 번째예요.”

계속되는 류지안의 걱정에 이준은 피식하고 웃은 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다녀올게요.”

이준은 그 말만을 남기고 고민 없이 몸을 돌려 공간 통로 안으로 향했다.

공간 통로 안으로 점점 사라지는 이준의 뒷모습을 보며 임동수와 류지안은 서로를 바라보다 쓴 웃음을 지었다.

“정말 대단한 놈이야. 어떻게 해도 따라갈 수가 없겠어.”

류지안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자, 임동수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걸 이제 안거야? 난 진작부터 포기했다고.”

* * *

한편, 공간의 배 뱃머리에 앉아 있는 이준은 심각한 표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재난독체가 중주에서도 문제가 되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 이었다. 게다가 빙하곡이 이 문제에 끼어들었다니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휴……. 일단 최대한 빨리 아라를 찾아야겠어.”

사대각에 이어 불의 협곡에 빙하곡까지, 중주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내로라하는 세력을 하나하나 만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자신의 몸에 강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기운이라도 붙어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중부 지역에 도착하면 우선 최대한 빨리 약재를 수집해야겠어. 천화존자 선생님의 몸을 만들어 드리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상대가 빙하곡이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마수의 불꽃도 빨리 모아야하고, 할 일이 산더미 같네.’

중부에서 할 일에 대해 생각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눈을 감고 천계의 불꽃의 수련법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중부에 도달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실력을 키우려면 천계의 불꽃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 *

계속해서 다가오는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바로 실력을 기르는 것.

지금은 빙하곡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지만, 계속해서 실력을 기른다면 언젠가는 그보다 더 거대한 벽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공간 통로에 들어온 이래 이준의 정신은 온통 천계의 불꽃의 수련법에 쏠려 있었다.

본래 천계의 불꽃같은 고급 비술을 수련하는 데는 최소한 몇 달이 필요했지만, 불완전하게나마 몇 년간 사용해왔던 비술이었으니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게 수련이 진행됐다.

게다가 불의 협곡의 수많은 선조들의 경험까지 머릿속에 있었으니 어쩌면 조만간 완벽한 천계의 불꽃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는 기대가 들었다.

그렇게 5일이라는 시간이 눈 깜박할 새에 지나갔다. 이준이 눈을 떴을 때는 저 멀리 공간 통로의 출구가 보이고 있었다.

“거의 다 온 건가…….”

은빛 구멍을 바라보던 이준은 주먹을 움켜쥐며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공간 이동의 배는 은색 빛줄기가 되어 시커먼 통로를 소리 없이 가로질렀고, 목적지에 다다르자 공간의 힘에 의해 배가 거세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공간의 배가 은빛 구멍을 통과하는 순간, 길고 긴 어둠이 끝나고 눈부신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 * *

하얀 암색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석대는 거대한 십여 개의 돌기둥을 다리삼아 백 미터 가까운 상공에 우뚝 서 있었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돌기둥이 광활한 석대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은 중부가 아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석대 위에 위치한 공간의 통로 주위로는 공간의 힘에 의해 생겨난 균열이 가득했다.

이 왜곡된 공간에서 은색 빛이 번쩍일 때마다 수많은 그림자들이 공간 안에서 튀어나와 석대 위로 떨어졌다.

왜곡된 공간에 또 하나의 은색 빛줄기가 나타나더니 마른 체격의 사내 하나가 가볍게 허공을 밟으며 서서히 석대 위로 걸어 내려왔다.

석대 위에 착지한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사방을 둘러보다 높다란 석대를 보곤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이곳이 중부구나. 역시 투기대륙의 중심답게 공간 통로가 위치한 곳도 남다른걸.”

소란스러운 석대 위를 훑던 이준은 주위에 연금술사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을 발견하고는 또 다시 감탄사를 내뱉었다.

‘연금성이라더니……. 내가 평생 본 연금술사보다 이곳에서 볼 연금술사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는걸.’

“중부지역 최신소식이오! 빙하곡에서 재난독체를 갖고 있는 여자에게 현상금을 걸었소!”

그 때, 석대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준의 귀를 잡아끌었다.

고개를 돌리자, 왜소해 보이는 남자 하나가 석대위에 있는 돌기둥에 종이를 붙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종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재난독체를 가진 여자는 분명 아라였다. 빙하곡에서 아라를 잡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던 이준의 입에서 또 한 번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왜소한 사내에게 다가갔다. 가볍게 주먹을 쥐자, 왜소한 사내의 손에 있던 종이가 이준의 손으로 날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종이 위에 새겨진 얼굴은 틀림없이 자신의 오랜 친구인 아라였다.

“허허, 젊은 친구, 연금성은 처음이오? 이 여자는 전설 속의 재난독체라네. 예전에 중부지역에서 엄청난 재앙을 일으켰지. 많은 세력들이 연합해서 죽이려했는데, 아니 글쎄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니까.”

“빙하곡 사람들이 예전에 이 여인과 붙은 적이 있다던데?”

왜소한 사내가 실실 웃으며 다가오자, 이준은 골드를 한 움큼 내밀며 질문을 던졌다. 돈을 받아든 사내는 연신 싱글벙글 웃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소식을 늘어놓았다.

“반 년 전에 빙하곡의 강자가 재난독체를 가진 이 재난독녀를 찾아서 싸웠는데 아주 참혹했지요. 빙하곡에서는 빙원구와 빙부혁 두 장로를 내보내 그 여자를 잡으려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은 중부지역에서 이름 깨나 날린 강자로, 두 사람 모두 6성 투종에 이른 실력자입니다.”

순간 이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결과는 어떻게 됐소?”

“하지만 그 재난독녀도 보통 인물이 아니라 빙하곡 투사들이 우르르 덤벼들었는데도 빙하곡의 강자들을 죽여 버리고 빙원구와 빙부혁 두 장로의 손에서 달아나는데 성공했지요. 하지만 두 장로의 공격에 큰 부상을 입은 탓인지 어디론가 숨어들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빙하곡에서 이렇게 수배령을 내린 것이지요.”

이어지는 설명에 짙은 어둠이 깔려있던 이준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던 한기가 더욱 깊어졌다.

“당시 빙하곡이 재난독녀를 포위했던 곳이 어디입니까?”

“북쪽에 있는 낙신골이요. 재난독녀를 잡기 위해 빙하곡 사람들이 주위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다녔는데도 통 잡히질 않으니 이미 다른 곳으로 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군요.”

“재난독녀를 잡으려는 곳이 빙하곡 뿐입니까?”

“본래는 많은 세력들이 나섰지만, 재난독녀의 손에 빙하곡 사람들이 죽은 이후로는 완전히 빙하곡의 소관이 되었지요.”

원하던 정보를 모두 얻은 이준은 손에 들린 종이를 불태운 뒤 곧바로 몸을 돌려 석대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석대의 끝자락까지 걸어간 이준은 저장 반지에서 류지안이 줬던 지도를 꺼내들어 자세히 훑은 뒤 북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낙신골이든 꽃잎성이든 모두 이 방향이군. 꽃잎성은 하루면 도착할 수 있다 고 했는데, 빨리 출발해야겠어. 아라의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는 것 같은데…….”

아라의 실력이라면 재난독체를 이용해 6성 투종까지는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두 명의 투종이 한꺼번에 덤빈다면 혼자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아라를 찾아내야 했다.

* * *

이준은 꽃잎성으로 향하는 도중 보이는 도시들의 경매장에 들려 마수의 불꽃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연금성은 투기대륙의 중심답게 연금술사에게 필요한 모든 물건을 다른 곳에서 보다 훨씬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충분한 돈이나 다른 사람과 맞바꿀 수 있는 물건이 필요했지만 말이다.

꽃잎성으로 가는 동안 이준은 총 다섯 군데를 들려 총 열 두 개의 마수의 불꽃과 천화존자의 몸을 제련하기 위해 필요한 약재들을 모았다. 생각보다 수확이 쏠쏠했던 탓에 줄곧 어두웠던 안색도 조금은 밝아졌다.

이준은 수집한 열 두 개의 불꽃 중 가장 신기한 마수의 불꽃 하나만을 남겨두고 모두 몸속에서 제련해 악마의 불꽃의 먹이로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불꽃의 제련을 마치는 순간, 저 멀리 짙은 녹색 빛의 도시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도시는 거대한 평원에 위치하고 있었고, 도시 주위로는 수풀이 무성해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녹색만이 가득했다.

중주에 온 이후 들렀던 모든 도시 중에 가장 생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도착한 건가…….”

삼림 안에 세워진 도시를 바라보던 이준은 가벼운 숨을 내쉰 뒤 정신을 집중해 다시금 속도를 올렸다.

* * *

꽃잎성의 주인은 바로 한 때 연금탑의 오대 세력 중 하나였던 유씨 가문이었다. 물론 지금의 유씨 가문은 당시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처럼 이 꽃잎성 안에는 여전히 유씨 가문에게 덤빌 수 있는 힘을 가진 세력이 없었다.

이 도시의 주인인 유씨 가문은 도시의 가장 중심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반경 천 미터 안은 모두 유씨 가문의 영역이었다.

이곳은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그 누구도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절대 그 자식에게 시집 안 갈 거예요!”

유씨 가문의 회의실에서는 파란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분을 참지 못하고 바락바락 악을 써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러자, 청색 옷을 입은 장로 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 가문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 않느냐. 조씨 가문은 오대 가문 중 하나다. 우리 유씨 가문과 집안도 비슷하고, 게다가 조단은 조씨 가문에서도 보기 드문 연금술사란 말이다. 네가 시집만 가면 유씨 가문이 오대 가문에서 쫓겨날 위기도 면할 수 있고, 너도 좋은 사람과 살 수 있지 않느냐.”

“제가 조단에게 시집가면 정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생각하시는 거예요? 조씨 가문은 우리 유씨 가문을 예전부터 없애고 싶어 했어요. 이건 우리 가문을 지키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우리 가문을 가져다 바치는 거라고요!”

여인의 말에 청색 옷을 입은 노인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설마 네 입에서 나온 그 가람 아카데미의 인재인가 뭔가 하는 놈이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냐? 꿈 깨거라! 네가 그 놈을 데리고 온다고 말한 지가 언제인데 그 놈은 아직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지 않느냐! 내가 보기엔 진작에 도망을 간 것이 틀림없다.”

노인의 호통에 할 말을 잃은 여인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도망간 놈 여기 있습니다.”

바로 그 때, 회의실 안에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대청 입구에서 검은 옷을 입은 청년 하나가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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