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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21화 (521/818)

521화. 아라의 소식

두 사람이 앉은 지 반나절이 지났지만, 이준의 몸은 마치 바위처럼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넓은 전각 안에는 새빨간 수정 구슬이 쉴 새 없이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고, 이준의 몸에서도 기이한 붉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직도 안 끝나는 거예요? 제가 계승받을 땐 한 시간 밖에 안 걸렸는데…….”

참다못한 당화윤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너는 수정 구슬 안에 있는 선조들의 경험을 모두 살피지 않았으니 그렇지.”

“저야 흡수했던 경험들을 소화시켜버린 후에 다시 흡수하면 되니까요.”

아버지의 핀잔에 당화윤은 또 다시 못 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혓바닥을 삐죽 내밀었다.

“이 선생을 보고 느끼는 것이 없느냐? 그렇게 인내심이 부족하기에 네 재능을 다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너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네, 네에~”

당진이 한숨을 내쉬며 잔소리를 늘어놓자 당화윤은 듣기 싫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며 연신 입을 비죽였다.

쉭!

당진이 무언가 다시 말을 하려는 찰나, 돌연 수정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빛이 사라지며 이준이 눈을 떴다.

“이 선생, 정신이 드시오?”

당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준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넘쳐나는 방대한 정보를 정리하기 위해 잠시 말없이 서 있다가 천천히 몸을 돌려 당진에게 감사인사를 올렸다.

“당 곡주님, 아낌없이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준의 공손한 태도에 당진은 손사래를 치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허허, 나는 그저 약속을 지켰을 뿐이네. 수련법은 잘 익혔는가?”

정신을 집중해 머릿속의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이준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천계의 불꽃은 위력도 대단하지만 그만큼 제어하기도 어려우니 조심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걸세.”

“네, 명심하겠습니다.”

당진의 조언에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이제 이 선생이 천계의 불꽃을 손에 넣었으니, 밖으로 나가자꾸나.”

이준이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은 것을 확인한 당진은 앞장서서 아래층으로 발걸음 옮겼다.

비밀 전각을 나오자, 콧속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가슴속이 뚫리는 것만 같았다.

“곡주님. 약속을 지켜주셔서 정말 감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이후에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천계의 불꽃도 이미 손에 넣었으니 더 이상 불의 협곡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이준은 곧바로 당진에게 작별을 고했다.

당진은 이준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나는 것을 애써 억누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니 붙잡지 않겠네. 그리고 천계의 불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곡주님께서 이리 큰 은혜를 베풀었는데 제가 어찌 감히 불의 협곡의 귀한 비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릴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상대가 먼저 불의 협곡의 비술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당진은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지으며 격려하듯 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언제든 다시 찾아오시게. 내가 곡주로 있는 한 자네는 언제나 우리 불의 협곡의 가장 귀한 손님일세.”

“감사합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이준은 곧바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불의 협곡 출구로 날아갔다.

* * *

불의 협곡에서 나온 이준은 머릿속으로 천계의 불꽃의 수련법을 되새기며 곧바로 천황성으로 향했다.

천계의 불꽃은 어떤 사람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는 비술이었지만, 강한 불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용한다면 그 어떤 비술보다도 막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려 세 개에 달하는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이준의 손 안에서라면 천계의 불꽃은 투기 대륙에 존재하는 그 어떤 비술보다도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비술이었다. 만일 이 비술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면 비천이나 오진과 상대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세 개의 불꽃을 모두 폭발시켜 천계의 불꽃을 사용했을 때 몸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 개의 불꽃을 폭발시켰을 때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으니, 세 개라면 그 반동 역시 상상 이상이리라.

‘그래도 완벽한 천계의 불꽃을 익혀두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큰 힘이 될 거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날아가다 보니, 어느새 천황성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흠, 선배가 아라의 소식을 알아냈으면 좋을 텐데.’

* * *

이준이 류씨 가문의 정원에 도착하자, 호위병 몇이 급히 달려 나와 그를 맞이했다.

“임현 선생님이십니까?”

이미 천황성에는 류씨 가문에 7레벨의 젊은 연금술사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쫙 퍼져있었지만, 정작 소문의 당사자인 이준은 자신이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모르고 있었으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호위병들 중 하나가 급히 안으로 들어가 류지안에게 임현 선생님이 도착했다고 알렸다.

나머지 호위병들은 선망과 존경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그를 정원으로 안내했다.

정원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멀리서 류지안과 임동수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불의 협곡에서 뭔 일 있는 줄 알았잖아.”

류지안은 이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는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이준을 덥썩 끌어안았다.

“별 일 없었어요. 그냥 불의 협곡에서 연금비약을 제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말이죠.”

“아무 일 없으면 됐어. 그나저나 너 때문에 우리 류씨 가문이 아주 위세가 등등해졌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류지안이 웃으며 말했다.

“저 때문에요? 왜요?”

“7레벨 연금술사가 와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온갖 세력들이 우리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이 나있어. 너와 내가 친분이 있어 보이니까 류씨 가문을 통해서 어떻게든 너와 친분을 쌓고 싶나봐.”

류지안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곁에 있던 임동수가 혀를 차며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난리도 아니었어. 강한 세력들도 꽤 많이 왔었는데, 다들 너를 한번 초대하고 싶다고 말하더군.”

“됐어요, 그런 부탁을 일일이 들어주다보면 끝도 없는걸요.”

이준이 웃으며 고개를 젓자, 류지안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럴 것 같아서 미리 다 거절해뒀지.”

“그보다 선배, 혹시 지난번에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의 말에 웃음기 가득하던 류지안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응, 소식이 있었어. 네가 말한 선화라는 사람은 유씨 가문 사람이야.”

류지안이 정원 구석에 있는 작은 정자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 유씨 집안은 실력이 어느 정도죠?”

“강하지. 최소 우리 류씨 가문보단 강해. 우선 평범한 세력이라면 연금탑에서 장로를 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말이야.”

정자에 도착하자, 류지안은 이준에게 앉을 자리를 권한 뒤 자리에 앉아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유씨 가문은 연금탑의 권력을 쥐고 있는 5대 가문 중 하나야. 하지만 지금은 크게 힘을 잃어서 이미 5대 가문 자리에서 쫓겨날 지경에 이르렀지. 몇 년 전에는 장로석마저 빼앗겼으니, 이제 다른 가문이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고.”

류지안의 설명에 이준은 곧바로 선화가 그렇게 다급하게 뛰어난 연금술사를 찾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연금탑 장로석에 오를 수 있는 조건이 뭐죠?”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어찌됐든 중주에서도 손에 꼽는 세력이니 쉽지는 않겠지.”

류지안이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아라에 대한 소식을 물었다.

“그럼 아라와 관련된 소식은?”

그의 물음에 류지안은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한 그 아라가 그 전설 속의 재난독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네, 혹시 아라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류지안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챈 이준의 얼굴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내가 그 동안 사람들을 내보내서 연금성의 소식을 좀 알아봤는데, 지금 그곳에서 가장 떠들썩한 일이 바로 그 아라라는 사람과 관련된 일이었어. 그녀가 전설 속의 재난독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더군. 예전에 중주에서 재난독체를 가진 사람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재난이 벌어진 적이 있었거든.”

재난독체를 이야기하는 류지안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지금 아라는 어디에 있는데요?”

이준이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류지안의 반응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이곳에서도 두려움의 대상인 듯 했다.

그리고 그녀의 독성이 폭발하는 순간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를 찾아야 했다.

“그녀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 연금성 안에 있는 많은 세력들이 모두 그녀를 찾고 있거든.”

이준의 안색을 살피던 류지안은 역시 또 잠시 동안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빙하곡이 그녀를 미친 듯이 찾고 있다더군.”

“빙하곡이요?”

“응, 빙하곡에서는 예전부터 그 특이한 체질에 관심이 많았대. 그리고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미 빙하곡의 강자와 그 아라라는 여자가 한판 붙은 모양이더라고. 그 이후로 행적이 묘연해. 잡힌 것은 아닌 것 같아. 아마도 몸을 숨기고 있는 거겠지.”

옆에 있던 임동수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빙하곡…….”

순간 이준의 눈에 음산한 살기가 스쳤다.

이준의 싸늘한 표정을 본 류지안은 이 아라라는 사람이 이준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준, 어떡하려고? 빙하곡의 실력은 불의 협곡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임동수 역시 이준의 살기를 느끼곤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선 연금성으로 가야겠어요.”

“같이 가자. 연금성이라면 내가 잘 알고 있어.”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동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에요 선배, 이번에는 저 혼자 가야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이준은 고개를 저으며 임동수의 호의를 거절했다. 그는 재난독체가 중주에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만일 그가 아라를 돕는다면 자동으로 적이 될 만한 자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리고 투종 이상의 강자들이 나타난다면 임동수의 실력으로는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몰랐고,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임동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준의 진지한 표정을 본 임동수는 서운하다는 듯 눈을 내리 깔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을 돕고 싶어 나섰다가 괜히 걸림돌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 할 수 없지. 그럼 우리는 중부지역에서 기다리다가 아라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너에게 전해주도록 해볼게.”

류지안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한 이준의 태도에 별 말 없이 저장 반지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이준에게 건넸다.

“이건 중부지역의 지도야. 유씨 가문은 꽃잎성이라는 곳에 있어. 유선화를 찾으려 한다면 그곳으로 가 봐.”

이준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도를 건네받았다. 이 지도가 있다면 최소한 중부지역에서 방향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언제 갈 거야?”

“지금 가려고요.”

이준은 짤막한 답변과 함께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아라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급한 것은 하루라도 빨리 선화를 찾아 아라의 행방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류지안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공간 통로로 가. 내가 미리 준비시켜둘 테니까.”

말을 마친 류지안이 호위병을 불러 낮은 목소리로 명을 내리자, 그 호위병은 지체 없이 정원 밖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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