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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19화 (519/818)

519화. 어둠 속에 가려진 손

‘속도가 엄청나잖아…….’

자신과 맞먹는 속도로 이동하는 오진의 움직임에 이준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무투기 자체의 속도로만 놓고 본다면 번개의 움직임이 한 수 위였지만, 이준과 오진 사이에 실력 차이가 있다 보니 둘의 속도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안되겠어. 이대로 가면 곧 따라잡혀서 박살이 나고 말거야.’

더 이상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이준은 곧바로 검은 송곳을 꺼내들었다.

‘육합자의 검, 합일!’

이준이 육합자의 검을 시전하기 무섭게 붉은 색 그림자가 번개처럼 다가와 무시무시한 힘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쨍!

거대한 검은 송곳과 붉은 색 주먹이 맞부딪히는 찰나, 맑은 금속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지며 격렬한 파동이 물결처럼 하늘로 퍼져나갔다.

쿵!

다음 순간, 이준의 몸이 화살처럼 반대쪽으로 튕겨나가며 광장 구석에 있던 바위에 처박혔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이준과 부딪힌 바위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생겨 나 있었다.

“쿨럭!”

모두가 이준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작은 기침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 일격으로 대결이 끝났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바위에 기대어 잠시 숨을 돌린 이준이 입꼬리에 묻은 혈흔을 닦아낸 뒤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이제 다섯 번 남았습니다…….”

이준의 입에서 새어나온 한마디에 불의 협곡의 제자들과 장로들, 그리고 당진 역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8성 투종인 오진은 중주에서도 상당한 강자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당화윤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이준이 그의 공격을 얻어맞고도 일어났다는 사실에 모두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진이 바닥에 착지하자, 강한 힘이 솟구치며 발밑에 있는 단단한 돌판이 산산조각 났다.

“굉장한 무투기군. 자네와 나의 실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면 이번 공격은 나도 받기 어려웠겠어.”

오진이 말을 하는 내내 이준은 말없이 체력을 회복하며 머리를 굴려댔다.

육합자의 검을 통해 어떻게든 상대의 공격을 상쇄하지 않았더라면 방금 전의 일격으로 끝났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계의 불꽃 없이 오진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천계의 불꽃을 사용하면 그 이후로는 풍뢰각에서의 일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 뻔했다.

‘할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인건 저 노인이 방금 사용한 무투기가 번개의 움직임보다는 느리다는 것 정도인데…….’

이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청록색 염력이 온몸을 감싸며 사방으로 열기를 뿜어댔다.

“하지만 그 무투기로는 나머지 다섯 번을 버티기 어려울 것이네.”

말을 마친 오진이 주먹을 쥐자, 또 다시 붉은 염력이 화염처럼 타오르며 주변의 공간에 미세한 왜곡이 생겼다.

곧이어 돌판이 깨지며 노인의 몸이 사라지더니 백 미터 정도 떨어진 이준 앞에 나타났다.

새빨간 그림자가 번개처럼 나타나자, 이준의 안색이 변하며 발밑에서 은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퍽!

그러나 이번에도 오진의 공격을 완벽히 피해낼 수는 없었다.

간신히 직격을 피한 이준은 어두워진 얼굴로 자신의 팔뚝을 흘겨보았다. 그의 팔뚝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생겨나 있었고, 그 상처에서부터 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반응이 재빠르군. 하지만 더 이상은 피할 수 없을걸세.”

상대가 손을 쓸 때 마다 이준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확실히 8성 투종과 1성 투종간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만일 번개의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이미 오진의 손에 끝장이 났을 것이다.

‘젠장, 화련을 써야하나.’

오진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급히 후퇴하는 이준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발을 굴러 매섭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달아나던 이준의 몸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강하게 발을 굴러 단단한 석판을 가루로 만들었다. 그가 가볍게 팔을 휘두르자, 먼지가 퍼져 나가며 사람들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먼지가 퍼져나가는 상황에서도 오진은 멈추지 않고 보잘 것 없다는 듯 픽, 웃으며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돌진했다.

오진이 먼지 안으로 돌진하자,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그 안을 뚫고 나왔다.

“이런 조잡한 눈속임으로 내게서 달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오진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단숨에 몸을 돌려 이준의 등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다음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이준의 몸이 백 미터 가까이 날아가 힘없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준이 죽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의 일격이었다.

계단 위에서 이를 바라보던 당화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얀 손을 파르르 떨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준은 또 다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이에 오진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이준의 등 뒤로 날아가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항복하게. 내가 선생을 죽이려 했다면 선생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오진에게 목을 잡힌 이준의 창백한 얼굴에는 오히려 의미심장한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홉 번째입니다…….”

“후…….”

오진이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는 찰나, 그에게 잡혀있던 이준이 ‘펑’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안개처럼 흩어졌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 심지어 당사자인 오진마저 모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그 순간, 방금 전 먼지가 일어났던 곳에서 먼지가 걷히며 웃음을 먹은 익숙한 얼굴 하나가 사람들 앞에 형체를 드러냈다.

“영혼의 분신?”

오진의 굳어진 얼굴을 본 이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계단 위에 있던 당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방법을 사용해 오진을 따돌리다니. 만일 영혼의 분신이 좀 더 강했다면 그대로 열 번째 까지 버텨낼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옆에 있던 당화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살짝 웃었다.

“저런 재주가 있을 줄이야.”

잠시 후, 오진이 굳은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준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확실히 자네를 얕보았군. 하지만 그리 기뻐할 필요 없네. 아직 한번이 남아있으니까.”

말을 마친 오진의 눈빛이 전에 없이 싸늘하게 얼어붙으며 그의 몸에서 붉은 색 염력이 끊임없이 솟아나더니, 눈처럼 새하얀 백발이 빨갛게 물들었다.

펑!

곧이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천지의 기운이 폭발하며 오진의 몸 전체가 새빨간 화염처럼 변해 이준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태양신의 일격!”

다음 순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눈부신 빛을 내뿜는 거대한 손바닥이 수직선을 그리며 광장 위에 서있는 이준을 향해 떨어졌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 가운데 8성 투종 강자의 마지막 일격이 막 이준의 머리 위를 덮치려는 찰나, 신비한 빔을 내뿜는 옅은 옥색의 화염 연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옥색의 연꽃이 회전하며 흔들릴 때마다 주위의 공간이 갈라지며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이것은…… 천지의 불꽃?”

연꽃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감지한 당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 중 가장 크게 놀란 것은 오진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가까운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화련에서 느껴지는 파괴적인 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1성 투종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오진은 이를 악물고 온 힘을 쥐어짜냈다.

처음에는 이준을 제압할 정도의 힘만 내려고 했지만, 자칫했다가는 천계의 불꽃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서 힘을 뺏다가는 자신이 큰 부상을 입을지도 몰랐다.

마음속에 이 생각이 스치자, 오진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변하며 몸에서 방대한 염력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8성 투종의 모든 염력이 응집된 손바닥은 마치 작은 태양처럼 눈부신 빛과 열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자신의 머리 위에서 빠르게 팽창하는 새빨간 빛에도 이준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가볍게 손을 움직여 자신의 모든 힘이 담긴 화련을 날려 보냈다.

그 순간, 노인의 손바닥에 기이한 문장이 떠오르며 눈을 찌를 것처럼 밝은 빛을 내뿜던 염력이 폭발을 일으켰다.

마침내 두 개의 빛이 맞닿자, 하늘과 땅 전체에 무거운 적막이 깔렸다.

광장에 있던 불의 협곡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당진마저 숨조차 쉬지 못 하고 긴장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마지막 한 수를 지켜봤다.

쾅!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적막이 깔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투종 강자마저도 공포를 느낄 정도의 에너지가 서로 뒤엉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붉은 색과 옥색의 에너지가 뒤엉킨 소용돌이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두 사람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두 사람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두 개의 거대한 염력이 만들어 낸 에너지 폭풍은 작아지기는커녕 더욱 거대해지며 폭발하는 화산마냥 뜨거운 기운을 쏟아냈다.

옥색과 적색의 염력이 뒤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회오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주위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어느새 구름을 뚫을 만큼 높이 자라나 있었다.

두 강자의 힘이 만들어낸 회오리에서 발생한 열풍은 온 협곡을 휩쓸고 멀리 떨어진 숲속까지 퍼져나갔고, 거대한 나무들이 정신없이 흔들리다 허리가 부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이 장로를 비롯한 불의 협곡 장로들마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 크기의 에너지 폭풍을 없애려 한다면 장로들 중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이 장로라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일이 이 정도까지 커질 줄 몰랐던 당진 역시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단지 시험일 뿐인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 회오리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불의 협곡 전체가 쑥대밭이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나서야겠군.”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사태를 수습해야겠다고 생각한 당진은 곧바로 발을 굴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당진이 손을 휘두르자,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 마치 붓으로 획을 그은 것처럼 시커먼 선이 나타났다.

그 검은 선의 정체는 투존 강자가 만든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었다.

“합!”

당진이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거대한 공간의 균열을 잡아찢자, 새카만 선이 거대한 구멍으로 변화해 에너지 폭풍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에너지 폭풍이 새카만 공간 안으로 모두 흡수된 것을 확인한 당진은 번개처럼 손을 모아 인을 맺었고, 그가 인을 완성하는 것과 동시에 균열이 빠르게 아물며 천지를 헤집던 거대한 에너지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회오리가 사라지자, 주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불의 협곡 제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닦아 냈다. 당진이 아니었다면 이곳은 폐허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한편, 에너지 폭풍을 수습한 당진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 에너지 폭풍이 오진의 무투기가 아니라 이준이 사용한 정체불명의 무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군. 천지의 불꽃이 있다고는 하나 1성 투종이 이런 위력의 무투기를 사용하다니. 구룡 불꽃으로도 이 정도 파괴력은 낼 수 없는데…….’

화련의 위력을 직접 확인한 당진은 속으로 이준에게 엄청난 스승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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