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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17화 (517/818)

517화. 방해

끼이익-

천화존자와 대화를 마친 이준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 밖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화원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가볍게 꽃밭을 쓸고 지나가자, 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일어났어?”

이준이 가만히 눈을 감고 꽃향기를 즐기고 있을 때, 뒤편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홍색 옷을 입은 여자 하나가 화원을 가르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난 당화윤이야. 이번에 정말 고마웠어.”

화윤은 가볍게 웃으며 이준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십니까, 아가씨.”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어. 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편하게 화윤이라고 불러도 돼.”

이준이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자, 당화윤이 손사례를 치며 말했다. 당진이 용암의 씨앗을 제련한 이유는 바로 화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으니, 그녀가 이준을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네가 편할 때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전해달래. 휴식을 취하고 싶으면 조금 더 쉬다 와도 좋고, 바로 찾아오고 싶다면 바로 찾아와도 좋고.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럼 부탁 좀 하겠습니다.”

이준이 웃으며 말했다.

“따라와. 근데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천계의 불꽃에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당화윤이 갑자기 궁금하다는 듯 몸을 돌려 이준에게 물었다.

이에 이준은 잠시 멈칫거리다 짤막하게 그 이유를 밝혔다.

“그 천계의 불꽃이 제가 수련하기 딱 맞는 비술이라고만 말할 수 있겠네요.”

이준의 대답에 당화윤은 조금 의아스러운 듯 눈썹을 살짝 움찔거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래? 하지만 우리 아버지께서는 천계의 불꽃이 나에게 맞는 무투기라고 하시던데.”

당화윤의 말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그럼 네가 나보다 낫단 말이야?’ 하고 써 있었기 때문이다.

이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하지 않자, 당화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몸을 돌려 길을 안내했다.

‘어지간한 남자보다 승부욕이 강한 여자군.’

“어쨌든, 아버지가 허락하셨으니 할 수 없지 뭐. 하지만 아버지가 기회를 주셨어도 그만한 실력이 되지 않으면 천계의 불꽃을 얻을 수 없을 거야.”

당화윤의 말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 정도는 당진이 ‘기회는 줄 수 있다.’고 말했을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준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천계의 불꽃을 얻어야 했다.

* * *

당화윤을 따라서 정원을 빠져나와 협곡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안 많은 불의 협곡 제자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들은 당화윤을 보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곡주의 딸이자 불의 협곡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이 바로 그녀였으니, 많은 제자들이 그녀를 존경하고 부러워했다.

이준 역시 당화윤 못지않게 많은 시선을 받았다. 곡주를 도와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들어 낸 젊은 투종이니, 제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했다.

제자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십여 분을 걸어가자, 붉은 대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계의 불꽃은 불의 협곡의 가장 귀한 비술 중 하나야. 그래서 곡주인 아버지조차 독단적으로 이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는 없지. 우선 장로회의 승인이 있어야 해.”

대전 밖에 멈춰 서자 당화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걱정 마. 아버지가 승낙했으니 분명 널 도와줄 거야. 장로회도 7레벨 연금술사의 도움을 받아놓고 대가를 내놓지 않을 수는 없을 거고.”

이에 이준은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곡주님께서 저 같이 이름 없는 애송이에게 거짓말을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겸손은……. 그 나이에 7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하는 사람이 어떻게 이름 없는 애송이란 말이야?”

이준의 말에 당화윤은 못 마땅하다는 듯 입을 비죽 내민 뒤 몸을 돌려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는 완전 무장한 불의 협곡 제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전의 가장 높은 곳에는 당진이 앉아 있었고, 좌우로는 백발이 성성한 장로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두 노인의 체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이준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장로에게서 느껴지는 염력 역시 당진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백발의 장로 두 명 밑으로 앉아있는 십 여 명의 장로 역시 세 사람만큼은 아니었지만 매우 강해보였다. 이준을 불의 협곡으로 데려다 준 적화 장로 역시 그들 무리에 섞여 있었다.

“임현 선생이 왔습니다, 당 곡주님.”

수많은 시선이 집중된 가운에, 이준은 당당히 걸음을 옮겨 당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허허, 임현군, 몸은 어떠한가?”

“곡주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아주 좋습니다.”

“자네가 천계의 불꽃을 원한다는 임현인가?”

그 때, 당진의 옆에 앉아있던 백발의 장로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불의 협곡의 세 번째 장로, 오진이라 하네. 자네가 이번에 곡주님을 도와 용암의 씨앗을 제련했다 하니,불의 협곡을 대신해 자네에게 감사를 표하네.”

오진은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천계의 불꽃은 우리 불의 협곡의 비술이라 외부인에게는 가르칠 수 없네. 다른 조건으로 바꾸는 건 어떻겠나?”

‘역시……. 이렇게 나오나.’

이준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번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을 것이란 것은 그 역시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오 장로,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임현 선생과 약속한 일이오.”

당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오 장로가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뗐다.

“곡주님이 이미 약속했다 하더라도 규칙에 따르면…….”

“내가 곡주인데, 이 정도 권리도 없단 말인가?”

“곡주님 진정 하십시오. 오 장로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고 천계의 불꽃이니 장로회에서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옆에서 시종일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한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을 마친 그는 아래에 서 있는 이준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저 임현이라는 친구는 아직까지 자신의 진짜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의심스러운 자에게 어떻게 불의 협곡의 비술을 넘겨준단 말입니까?”

그의 말에 당진이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이준이 얼굴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추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장로님의 눈은 속일 수 없군요. 개인적인 사정이 조금 있어 얼굴을 가렸습니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고깝게 생각하지 마시지요.”

이준은 살짝 웃으며 손을 문질러 가면을 떼어내고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가면 아래 숨겨진 진짜 얼굴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 보이자,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듯 찬숨을 들이켰다.

그러자 불의 협곡의 장로 하나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준을 바라보다 어두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런! 내가 아는 얼굴인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이준은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세상이 좁다지만 설마하니 불의 협곡의 장로가 자신을 알아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젊은이가 풍뢰각과 마찰을 일으키고 대범하게도 사대각 대회에 나타나 봉연을 쓰러뜨린 후 유유히 사라졌지.”

이 장로의 말에 당진 옆에 서있던 당화윤의 눈동자가 더욱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이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자가 그 이준이라는 청년과 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본 것이 맞소?”

이 장로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홍색 의복을 입은 장로의 말에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마르고 약해보이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대단한 연금술을 갖고 있는 청년이 중주 전체에서도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봉연을 이겼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풍뢰각의 실력은 불의 협곡과 비교하자면 조금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풍뢰각 역시 중주 최고의 세력 중 하나인 만큼 그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적어도 이렇게 젊은 투사들 중 그들과 맞서고도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중주 전체를 뒤집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 분명했다.

이 이야기에 당화윤의 시선이 못 박힌 듯 이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또래 중에서 아직 자신과 실력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눈앞에 서 있는 사내가 그렇게 강하다고 하니 당장이라도 맞붙어 그 실력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천계의 불꽃과 무슨 상관이죠?”

이준의 질문에 이 장로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알기론 풍뢰각이 자네를 쫓게 된 것이 자네가 풍뢰각의 비밀 무투기인 번개의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네. 하지만 자네는 풍뢰각의 제자가 아니지.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불의 협곡의 비술을 탐내니, 자네가 상습적으로 다른 세력의 무투기를 훔치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서 그러네.”

“번개의 움직임은 우연히 얻게 된 것입니다. 이 부분은 이 장로님께 설명할 이유가 없는 것 같네요. 그리고 천계의 불꽃은 제가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비술이 저에게 가장 잘 맞을 것 같아 원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훔치고 싶었다면 몰래 훔쳤겠지 굳이 제 입으로 먼저 천계의 불꽃을 요구했겠습니까?”

이준의 당돌한 언행에 이 장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준, 이곳은 풍뢰각처럼 자네가 멋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네.”

그 때, 불의 협곡의 세 번째 장로인 오진이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두 노인을 상대로 이야기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자, 이준의 시선이 다시 당진에게로 향했다.

“당 곡주님. 제가 불의 협곡에 온 것은 모두 천계의 불꽃 때문입니다. 만일 천계의 불꽃을 끝내 줄 수 없다고 하신다면, 저는 다른 조건을 제시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그냥 사람 하나 살렸다 치고 조용히 떠나겠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천계의 불꽃을 얻을 기회를 받기로 약속하고 한 일인데 저를 도둑으로 몰아세우시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천계의 불꽃이 불의 협곡의 보물이라 절대로 내줄 수 없다면 저도 무리하게 요구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럴 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절을 하시든지, 적어도 그에 준하는 보상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를 도둑으로 몰아세워 보물을 지키려 하는 것은 불의 협곡의 명성에 어울리는 행동 같지는 않군요.”

이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진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오 장로, 이 장로, 정말 너무하는군. 이준 선생이 정말로 도둑이라면 이렇게 당당하게 나에게 천계의 불꽃을 요구했겠나? 은인에게 감사는 못할망정 도둑으로 몰아세우다니, 세상 사람들이 우리 불의 협곡을 뭐라고 생각하겠나? 게다가 곡주인 내가 친히 약속을 했는데, 이준 선생에게 도둑이라니. 정말이지 못 하는 말이 없군.”

말을 마친 당진은 자신의 좌우에 서 있는 두 장로를 노려보며 살기등등한 태도로 다시 입을 열었다.

“됐소.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약속한 것이요. 그리고 협곡의 규칙은 나도 알고 있으니 천계의 불꽃을 곧바로 넘기지는 않을 것이오. 이 점은 이준 선생에게도 충분히 설명을 해두었으니 이준 선생도 이해할 것이고.”

곡주의 살벌한 눈빛에 두 장로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시선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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