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화. 반혼의 비약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 때마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이 강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바로 이 ‘비뢰’ 때문이었다.
고급 연금비약일수록 제련 과정에서 더욱 많은 염력과 영혼 에너지가 필요했고, 연금비약의 제조가 끝나면 연금술사는 어김없이 파김치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친 상태에서 비뢰가 나타나면 제 아무리 7레벨 연금술사라 해도 부상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에 수많은 연금술사들은 고급 연금비약 제조 후 나타나는 비뢰를 막기 위해 투종급 이상의 강자들을 불러 모아야 했고, 비뢰를 막아주는 대신 적지 않은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물론 이준처럼 비뢰를 막아낼 정도로 강력한 요괴를 가지고 있다면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요괴를 가지고 있는 연금술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투존인 당진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만일 이번 일이 다른 곳에 알려진다면 연금대사가 아니라 연금종사들마저도 경악을 금치 못 할 것이다.
당진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귀청을 찢어놓을 듯한 굉음과 함께 또 다시 굵직한 은빛 섬광이 구름을 뚫고 대지 위로 날아들었다.
펑!
거대한 은빛 섬광과 요괴가 맞부딪히는 순간, 하늘 요괴의 몸이 땅속 깊숙이 처박히며 족히 삼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구덩이 주위에는 팔뚝만큼 두꺼운 균열이 거미줄처럼 생겨나며 끊임없이 갈라졌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강력한 번개의 위력에 불의 협곡 제자들은 모두 기겁을 하며 급히 뒤로 물러나 거대한 구덩이를 바라보며 놀란 듯 숨을 들이마셨다.
전에 없이 거대한 번개를 내뿜은 먹구름은 모든 힘을 소진한 듯 천천히 사라졌고, 이내 밝은 햇살이 비뢰가 휩쓸고 간 불의 협곡을 밝게 비추었다.
비뢰가 사라지자,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거대한 구덩이를 바라봤다. 그렇게 많은 번개들을 견뎌냈는데, 설마 그 마지막 번개를 버티지 못 했단 말인가? 너무나 아쉬운 결과였다.
“임현 선생, 괜찮습니까?”
당진 역시 마지막 벼락의 위력에 상당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준의 안색은 여전히 하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당 곡주님, 걱정 마세요.”
이준이 손을 움직이자, 깊은 구덩이 속에서 은빛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솟아올라 석대 위에 착지했다.
“와아!”
순간 광장 주위에 있던 불의 협곡의 제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을 내질렀다.
구덩이에서 빠져 나온 요괴의 몸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전에는 약간 탁한 은색이었다면, 지금은 순은으로 만든 것처럼 온 몸에서 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에 이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요괴에게 다가간 뒤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빛을 뿜어내는 요괴의 몸을 천천히 만져 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졌어.’
요괴의 몸은 번개 세례를 받기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다. 과연 이 정도로 단단한 물체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존재하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요괴의 몸은 여전히 은색 빛을 띠고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1급 하늘 요괴는 금색, 2급은 은색, 3급은 동색이었다. 그리고 하늘 요괴의 색이 은색이라는 것은,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 때 형성된 비뢰의 에너지로도 승급에 성공하지 못 했다는 의미였다.
“흠……. 조금 아쉽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요괴를 반지 속으로 넣으려던 순간, 이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요괴의 눈동자 속에서 어두컴컴한 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빛?”
너무나 미약한 빛이었지만, 틀림없이 금색이었다.
‘역시, 비뢰를 흡수하게 하면 강해지는 거였어.’
두근대는 가슴을 안고 요괴를 저장 반지 안에 회수한 이준은 곧바로 약솥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화염처럼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거대한 약솥 안에서는 붉은 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둥그런 연금비약이 빙글 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이것이 용암의 씨앗인가.”
약솥 안의 청홍색 연금비약을 바라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약솥 의 뚜껑이 열리며 그 안에서 연금비약이 튀어나왔다.
약솥 안을 벗어난 연금비약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마냥 잠시 허공에 떠 있다가 부리나케 동쪽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6레벨 이상의 연금비약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 인간의 손을 피해 달아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물며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이니 얌전히 사람에게 흡수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당진이 가볍게 주먹을 쥐자, 용암의 씨앗이 도망간 방향의 공간이 그대로 굳어지며 단단한 공간 벽이 형성되어 놈의 앞길을 막았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임현 선생.”
말을 마친 당진은 약병을 꺼내든 뒤 황급히 몸을 날려 ‘용암의 씨앗’을 회수했다.
그와 동시에 이준의 몸이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마냥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준 선생.”
이준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혼자서 7레벨 연금비약의 융합 작업을 마치느라 모든 염력과 영혼 에너지를 소진한 탓에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정신을 차린 이준은 자신이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방 전체에선 은은한 향기가 돌고 있었다.
이준은 침대 위에 누운 채 영혼의 힘을 사용해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이도 이렇다 할 부상은 눈에 띄지 않았다.
“허허, 이제야 일어났구만.”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하얀색 저장 반지를 한 번 쳐다본 이준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소천화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껄껄, 피의 못에서 천지의 에너지를 잔뜩 흡수한 덕에 나도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
“그럼 다시 투존이 되신 건가요?”
“허허, 아쉽게도 그건 아니네.”
이준의 질문에 천화존자는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영혼과 딱 맞는 육체를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투존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일단 힘이 제법 돌아오기는 했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육체를 제련하는 일은 제가 최대한 빨리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준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천화존자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을 만들 수 있는 연금술사는 중주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설마하니 정말로 이 젊은 청년이 자신의 몸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준을 알게 된 행운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천화존자에게 육체를 만들어주는 것은 이준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 이었다. 투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존인 천화존자에 1급 하늘요괴만 있다면 중주에서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약로가 해줬던 말에 의하면 투존 강자의 영혼이 담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총 세 가지 재료가 필요했다.
그 첫째는 7레벨 연금비약인 부활의 영약이었고, 둘째는 7레벨 마수의 피, 그리고 셋째는 투종 강자의 시체였다. 7레벨 마수의 피와 투종 강자의 시신은 그렇다 쳐도, 부활의 영약이 문제였다.
부활의 영약은 7레벨 최고급 연금비약으로,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의 연금비약이었다. 하지만 그 제조 난이도는 용암의 씨앗보다도 높았고, 효과로 보나 제조 난이도로 보나 왜 8레벨 연금비약이 아닌지 의문이 갈 정도의 물건이었다.
물건이 물건이다 보니 지금 이준의 실력으로도 부활의 영약을 제조할 자신이 없었다.
이준뿐 아니라 현재 투기 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7레벨 연금술사들 중에서도 부활의 영약을 제련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번에 용암의 씨앗을 만드는 것도 당진과 환 장로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지, 혼자서 만들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용암의 씨앗도 어려운데 그보다 더 등급이 높은 부활의 영약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부활의 영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생각해보면 아무 생각 없이 몇 번이나 제조를 시도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문제는 복잡했지만 답은 간단했다.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투종이 되고 난 이후에는 한 단계를 뛰어넘는 데만도 십 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렸다. 피의 못처럼 운 좋게 한 번에 실력을 올릴 기회가 있다면 모를까, 천천히 단계를 밟아 수련을 해나간다면 앞으로 수 십 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부활의 영약 말고 다른 연금비약으로 대신할 수는 없을까…….’
머리를 굴려대던 이준은 곧바로 약로가 남겨준 검은색 저장 반지 안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침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반지 안에서 연두색 족자 하나를 꺼내든 이준은 황급히 그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반혼의 비약, 7레벨 중급 연금비약, 영혼을 육체로 돌려보내 목숨을 다시 살려주는 신기한 효과가 있음. 제련에 필요한 재료, 요괴혼의 열매와 명혼귀신의 꽃.」
반혼의 비약은 부활의 영혼과 비슷한 효과를 가진 물건으로, 7레벨 중급 수준의 연금비약이었다.
당연히 부활의 영약에 비해 효과야 떨어지겠지만 이 정도 연금비약이라면 어떻게든 투존 강자의 몸을 만들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내 실력으로도 가능할 것 같은데. 효과도 부활의 영약과 비슷하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약재야 중주라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 같고.’
생각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천화존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선생님, 제 실력으로 부활의 영약을 만들려면 앞으로 몇 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 차라리 반혼의 비약으로 대신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부활의 영약으로 몸을 만드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선생님의 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네 생각대로 하게. 어찌되었든 지금보다야 낫겠지.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이 이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니 무조건 자네를 믿고 맡기겠네.”
천화존자는 이준의 생각에 딱히 이의를 표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반드시 선생님의 몸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천화존자가 군소리 없이 자신을 믿어주자, 이준의 입가에 또 다시 환한 미소가 번졌다.
“허허, 내가 고마워할 일이지.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주었던 오륜이화법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수련해두게. 그 무투기를 완벽하게 익힌다면 자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 될 걸세.”
오륜이화법(五輪離火法)은 총 다섯 단계로 구성된 무투기로,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준은 그 첫 단계를 간신히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투종이 되었으니 화염 늑대 외에 다른 것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일 그 다섯 개의 불정령 중 네 가지를 천지의 불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마지막에 형성된 오륜이화진(五輪離火陣)의 위력은 천화존자가 사용하던 오륜이화법의 위력을 아득히 뛰어넘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별의 불꽃을 손에 넣어야 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당시 내 오륜이화법은 투기 대륙에서 명성이 자자한 최고의 화염 속성 무투기였네. 하지만 자네라면 그 시절 내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러니 열심히 수련에 정진하게.”
천화존자의 말투에서는 자신의 무투기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준은 천화존자에 대해 잘 알지 못 했지만, 그가 중주의 투존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에 속했을 것이라는 것만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영혼체인 상태에서도 이렇게 강한 힘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별의 불꽃을 손에 넣고 그의 무투기인 오륜이화법을 완성한다면 영혼의 궁전과의 싸움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천화존자와 대화를 마친 이준 역시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인 후 방 밖으로 나왔다.
별의 불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먼저 천계의 불꽃을 손에 넣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