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화. 비뢰
정신을 집중해 영혼의 힘을 짜내자, 무형의 에너지가 청색과 홍색의 빛을 단단히 둘러싸기 시작했다.
청색과 홍색의 액체는 고작 한줌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백가지도 넘는 진귀한 약재들의 에너지가 농축되어 있었고, 그만큼 하나로 융합하기도 어려웠다.
이준은 두 방울의 액체 안에 있는 에너지가 점점 격렬해지며 서로를 밀어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융합은커녕 서로 접촉시키는 것도 어려워 보였다.
이런 상황은 이준이 몇 년 동안 연금비약을 제련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번 아카데미에서 연금비약을 제련할 때도 이 정도로 까다롭지는 않았다.
“젠장! 이건 완전히 태풍 두 개가 맞부딪치는 거나 다름이 없잖아.”
연금비약의 에너지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거대한 에너지에 이준은 잠시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목숨을 걸고 영혼의 힘을 쥐어짜내 어떻게든 두 개의 에너지 덩어리를 융합시키는 것 것이었다.
펑-!
이준이 전력을 다해 영혼의 힘으로 두 물체를 맞붙여놓자, 순간적으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대지가 뒤흔들렸다.
두 개의 에너지가 폭발을 일으킬 때 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천지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좋아! 한번 붙어보자고!”
생전 처음 보는 기현상에 덜컥 겁이 난 이준은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넘쳐나는 영혼의 힘을 하나의 소용돌이로 만들어 강하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영혼의 힘이 소용돌이가 되어 빠르게 회전하자, 약솥 안의 압력이 미친 듯이 강해지며 두 액체가 서서히 뒤섞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청록색 화염이 나타나 청홍색의 액체를 집어삼켰다.
“됐어!”
두 개의 액체가 하나로 융합되는 순간, 청록색의 화염이 약솥을 가득 채우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한편, 석대 바깥에서 이준을 지키고 있는 당진은 초조한 듯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땅이 흔들리고 천지의 기운이 요동치는 것으로 보아 융합이 성공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과연 저 젊은 연금술사가 정말로 용암의 씨앗을 만들 수 있을지 너무나도 걱정이 돼서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 때, 약솥 안에서 청록색 화염이 폭발하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진은 이 상황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는 이것이 제련 성공의 전조현상 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에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하니 정말로 저 젊은 연금술사가 혼자서 7레벨 연금비약을 완성해내는 것인가!
당진이 흥분을 참지 못 하고 주먹을 불끈 쥐는 순간, 돌연 붉은 색 약솥 안에서 치솟아 오르던 화염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응고 작업에 들어갔군! 정말로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 * *
응고 작업은 꼬박 하루에 걸쳐 계속됐다. 7레벨 연금비약의 성공을 눈 앞에 두자, 광장에 있는 연금술사들은 물론이고 불의 협곡의 제자들마저 숨죽인 채 자리를 지켰다.
열흘 하고도 꼬박 하루가 더 지나 열한 번째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협곡 안에 깔려있던 짙은 천지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꽈르릉!
곧이어 온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며 은빛 번개가 내리쳤다.
“이럴 수가…… 비뢰라니! 정말로 성공했단 말인가!”
하늘 위에 깔린 짙은 구름의 모습에 평대 위를 지키고 있던 연금대사들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갔다.
고개를 막 내민 아침 햇살이 구름에 가려져 한순간 협곡 전체에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오직 하늘 위에서 은색 번개가 두꺼운 구름을 가를 때만이 협곡에 빛이 번쩍였다.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석대 위에 있던 약솥에서 진한 약향이 폭발하듯 퍼져 나오며 온 천지를 뒤덮었다.
약 솥 안에서는 여전히 청록색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청색과 홍색이 어우러진 둥근 연금비약이 쉴 새 없이 약솥 벽에 부딪히며 쨍, 쨍, 하는 소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약 솥 안을 휘젓는 연금비약을 바라보던 이준의 창백해진 얼굴에 웃음 꽃이 피어올랐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피로가 느껴졌지만, 기분만은 하늘을 날아갈 듯 좋았다.
“임현 선생, 정말 고맙소. 내 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소. 비뢰는 나에게 맡기고 쉬도록 하시오.”
이준의 지친 얼굴을 본 당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말을 마친 당진이 하늘 위로 올라가 비뢰를 처리하려는 순간, 이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당 곡주님, 비뢰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준의 요청에 당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임현 선생,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무리하지 마시지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안돼, 내 하늘 요괴를 단련하려면 비뢰가 필요하단 말이야.’
이준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저장 반지 안에서 은빛 요괴를 꺼내들었다.
“당 곡주님. 저 비뢰가 저에게 쓸모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디 저에게 양보해 주시지요.”
지난 번 비뢰가 나타났을 때, 이에 맞서던 하늘 요괴가 강화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한 번 더 번개를 맞는다면 더 강해질지도 몰랐다.
어쩌면 은색을 넘어 황금색 요괴로 변할지도 몰랐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는 천계의 불꽃 못지않은 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괴가 나타나자, 당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준과 요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임현 선생의 뜻대로 하지요.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해 주십시오.”
당진은 이준이 요괴를 보내 비뢰에 맞서게 하려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 했다. 그저 은인이 그렇게 하겠다니 그 청을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이준은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어 요괴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거라.”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하늘 요괴가 눈부신 은빛을 뿜어내며 하늘 위로 날아올라 그대로 상공에 멈춰섰다. 요괴의 머리 위로는 시커먼 구름을 뚫고 눈부신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하늘 요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당진은 저도 모르게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스물을 조금 넘은 나이에 투종이 되고 7레벨 연금술사가 된 것으로도 모자라 천지의 불꽃에 투종급 요괴를 가지고 있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중주에서 손에 꼽는 세력 중 하나인 불의 협곡에도 이런 인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으음……. 대체 이런 젊은이가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절대로 혼자서 이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 했을 텐데.’
이준이 은색 요괴를 소환해 하늘 위로 올려 보내자, 광장 위에 있던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이준과 은색 요괴, 그리고 비뢰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요괴란 말이야? 설마 임현이 저 요괴로 비뢰에 맞서려는 건가?”
“말도 안 돼! 7레벨 고급 연금비약으로 형성된 비뢰는 5성 투종도 버겁다고.”
이준의 행동에 광장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준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마냥 허무맹랑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연금탑의 장로조차 나가떨어진 마당에 혼자서 7레벨 고급 연금비약을 만든 천재가 아무 생각도 없이 객기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진 것은 광장 주위를 둘러싼 불의 협곡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렇게 체력이 빠진 상태에서 정말로 비뢰에 맞설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스러웠다.
“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비뢰에 직접 맞서는 건 요괴라고 해도 임현과 연결이 되어있어서 요괴가 비뢰에 당하면 저 사람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당화윤이 가느다란 눈썹을 찌푸린 채 하늘 위에 있는 은색 형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 * *
한편, 이준은 주위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번 기회에 하늘 요괴를 승급시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쾅!
그 순간, 하늘에서 은빛 번개가 거대한 용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석대 위에 있는 붉은 약솥으로 돌진했다.
이에 하늘 위에 떠있던 은색 요괴가 바람처럼 석대 위로 날아와 두 팔을 벌린 채 거대한 은색 번개를 받아냈다.
펑!
은색 번개가 요괴의 몸 위에 부딪히는 찰나,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광장에 있던 사람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은빛 요괴는 그대로 번개에 의해 수십 미터나 뒤로 밀려난 뒤 가까스로 멈춰 섰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은빛 요괴가 그대로 파괴 됐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은빛 요괴는 파괴되기는커녕 거대한 번개를 몸속으로 빨아들이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설마 비뢰의 힘을 흡수하고 있는 건가?”
요괴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낀 당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쥔 채 석대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쾅! 쾅! 쾅!
비뢰가 은빛 요괴에 의해 흡수되자,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이 더욱 격렬하게 일렁이며 더욱 굵은 세 줄기의 번개를 내뿜었다.
펑! 펑! 펑!
하지만 번개가 얼마나 굵어지든, 하늘 요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은빛 번개 앞으로 달려들어 온 몸으로 그것을 받아냈다.
세 개의 은색 번개가 맹렬하게 부딪히자 요괴의 양발이 단단한 석판 안으로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하늘 요괴의 도발에 비뢰 역시 화가 난 듯 계속해서 거대한 빛줄기를 토해냈다.
석대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준의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 정도 규모의 비뢰라면 하늘 요괴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미친 듯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짙은 구름이 빼곡한 하늘에서는 은빛 번개가 용처럼 사방을 날아다니며 천지를 대낮처럼 환히 밝히고 있었다.
펑! 펑! 펑…….
석대 위에 서있던 은빛 형체는 비뢰가 떨어질 때마다 맹렬하게 그 곳으로 몸을 날려 온 몸으로 번개를 받아내고 있었다.
은색 번개와 형체가 부딪치며 폭발할 때 마다 울려 퍼지는 거대한 굉음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온 몸의 털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만일 인간이 저 정도 번개를 몸으로 맞았다면 이미 뼈까지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 요괴는 수 십 갈래의 번개를 몸으로 받아내고도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더욱 더 빠르게 움직이며 굶주린 맹수마냥 비뢰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하늘 요괴는 염력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강인한 육체만으로 5성급 투종과 맞먹는 힘을 낼 수 있었다. 게다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니 주인의 명령에 따라 미친 듯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번개를 흡수하고 있었다.
‘7레벨 고급 연금비약으로 만들어진 번개답게 힘이 대단하구나. 하늘 요괴가 힘을 흡수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2급 하늘 요괴라고 해도 버티지 못했을 거야.’
이미 수십 번이나 거대한 번개를 뿜어내고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먹구름을 보며 이준의 입에서 감탄 섞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곧 끝날 것 같군. 번개가 갈수록 약해지고 있잖아.”
“정말 이상한 요괴야. 이 정도 힘이라면 7성 투종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는데? 게다가 저 모습을 봐. 번개의 힘을 흡수해서 점점 강해지고 있잖아.”
석대 주위에서 이를 바라보던 연금술사와 불의 협곡의 제자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에 너나 할 것 없이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놀라기는 당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수준의 요괴는 투존 강자인 그 조차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허허! 정말 대단하군. 비뢰를 이용해 요괴를 강화하다니, 이런 것이 가능한 줄은 몰랐어. 정말 재주가 많은 청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