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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10화 (510/818)

510화. 화적산

중부 지역 서남쪽에 위치한 화적산 속에 있는 불의 협곡 주위에는 활활 불에 타오르는 화산이 가득했고, 산 정상에서는 끊임없이 하얀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마그마가 끓고 있었다.

화적산은 중주 전체에서도 꽤 유명한 장소 중 하나였다.

물론, 불의 협곡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험난한 환경으로 인해 더욱 이름이 높았다.

이곳의 풍경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계속해서 끓어오르는 화산덕에 불 속성 에너지가 가득했다.

이런 곳에서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한다면 틀림없이 큰 효과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 속성 공법을 수련하기 위해 이곳을 찾곤 했다.

화적산은 천황성에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적화 장로의 거대한 새의 속도 덕에 불과 네 시간만에 화적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대한 새의 등 위에서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자, 온통 새빨간 색으로 뒤덮인 산과 대지가 선명하게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하하, 저곳이 바로 화적산입니다. 불의 협곡 총부가 바로 저 곳에 있지요.”

적화 장로가 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적산 안에는 불 속성 에너지가 매우 풍부합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화산이 끓어오르는 까닭에 불 속성 에너지를 흡수하려면 반드시 그 거칠고 강한 에너지를 잠재워야 하지요.”

이준은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평범한 불 속성 염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천지의 불꽃이 있는 이준에게 이 정도의 불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화적산 속에는 많은 마수들이 살고 있습니다. 불 속성 에너지가 풍부하니 이곳의 마수들은 다른 곳의 마수들보다 더 강하고 괴팍하지요.

게다가 화적산이 끝도 없이 넓다보니, 우리 불의 협곡이 아직 탐색하지 못한 곳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혼자 다닐 때는 최대한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적화 장로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거대한 새의 속도가 더욱 속도를 높여 끝이 보이지 않는 산 속으로 돌진했다.

화적산에서는 푸른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녹음을 내뿜는 푸른 나무도, 파릇한 잔디도 없이 적홍색의 토지만이 가득했다.

산을 훑어보던 적화 장로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자, 적색의 거조가 천천히 속도를 늦춰 산기슭 위에 내려앉았다.

두 사람의 눈앞에는 웅장한 두 개의 적홍색 산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두 개의 산 위로는 구불구불한 돌계단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하하, 따라오시지요.”

적화 장로가 앞장서 돌계단을 오르며 말했다. 이준 역시 그의 뒤를 따라 천천히 계단 위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따라 한참 걸음을 옮기자, 공간 장벽 하나가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무심코 공간 장벽 위에 손을 올려본 이준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강한 반발력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주 튼튼한 공간 장벽이네요.”

“허허, 이 공간 장벽은 우리 불의 협곡의 역대 곡주님이 친히 쌓아 올리신 겁니다. 평범한 투종은 절대 깰 수 없을뿐더러 투존 강자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지요.”

적화 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투존 강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공간 장벽이라구요?”

이준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껌뻑거리며 공간 장벽을 살피는 사이, 적화 장로가 저장 반지에서 홍색 옥패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가 옥패로 가볍게 공간 장벽을 누르자 기이한 파동이 일며 단단한 공간 장벽이 천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임현 선생님, 들어가시지요.”

말을 마친 적화 장로는 앞장서서 장벽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서서 공간 장벽을 구경하던 이준 역시 그의 뒤를 따라 갈라진 공간 장벽 사이로 발을 내딛었다.

공간 장벽을 통과하는 순간, 눈부신 섬광이 이준의 눈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반사적으로 질끈 눈을 감았다 뜨자, 우거진 수풀 사이로 길게 이어진 청색의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선을 돌려 먼 곳을 바라보니 짙푸른 녹음 사이로 화려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와아……. 설마 이게 이공간이라는 건가요?”

새빨갛게 타오르던 곳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 이준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스스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건 오직 투성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역대 곡주님들이 일궈낸 이곳은 화산 세계 속 무릉도원이라고는 할 수 있겠군요.”

적화 장로는 짐짓 겸손한 말투로 손을 내저었지만, 그의 말투에는 감출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화산 세계 안에 이렇게 생명력이 넘치는 장소를 만들어 내다니, 이준이 생각하기에도 확실히 자부심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명력이 가득한 풍경과는 달리 이 곳의 불 속성 에너지는 공간 장벽의 바깥의 공간만큼이나 농후했다.

다만 화산에서 느꼈던 거칠고 강한 힘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 하늘 곳곳에 공간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불의 협곡 전체가 왜곡된 공간 속에 덮여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방식은 가람 아카데미에서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곳의 공간 결계는 아카데미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이준이 불의 협곡의 힘에 감탄하고 있는 사이, 돌연 십여 명의 건장해 보이는 사내들이 돌계단 위에 나타났다.

그들은 적화 장로를 보고 나서야 경계의 눈빛을 풀며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들은 모두 붉은 색 의복을 입고 있었으며,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체내에서 퍼져 나오는 염력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상당한 수준을 자랑해 과연 이곳이 불의 협곡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적화 장로가 가볍게 웃으며 허공을 걸어 협곡 깊은 곳으로 날아가자, 이준 역시 허공을 밟으며 협곡 안으로 향했다.

“저 사람도 투종이야? 어떻게 저렇게 어린거지?”

“우리보다 선배인 분이 일부러 저렇게 모습을 만드신 거겠지. 연금비약이 노화를 늦추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

“분명 그렇겠지. 만일 진짜 젊은 사내라면 화윤 아가씨와 맞먹는 거 아니야?”

“맞아. 화윤 아가씨 같은 천재는 한 명이면 충분해. 너무 많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 * *

적화 장로의 뒤를 따라 수 분 정도 산을 오르자, 붉은 빛이 감도는 대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협곡의 중턱에는 붉은 색 건물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로 붉은 색 옷을 입은 불의 협곡의 투사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대전 밖에서는 수많은 불의 협곡 제자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연금술사들도 도착한 모양이군요.”

“곡주님은 무엇을 제련하고 싶으신 겁니까? 이렇게 많은 연금술사가 필요합니까?”

적화의 말에 이준이 눈썹을 살짝 들썩이며 질문을 던졌다.

“하하, 이렇게 많이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연금술사들 중에서 적합한 연금술사 한두 명을 뽑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선택받지 못해도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으니 그에 상응한 보상을 드릴 예정입니다.”

“선발을 거쳐야 하는 것 입니까?”

만일 이곳에서 선발되지 못한다면 천계의 불꽃도 모두 물 건너가는 것이었다. 불의 협곡이 아무리 후하다 해도 귀중한 비술을 아무에게나 퍼줄 정도로 후하지는 않을 테니까.

“음……. 그것만큼은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적화 장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자, 이준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나저러나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최선을 다해 선발에 임하는 것.

* * *

끼익-

대전의 문이 열리자, 적화 장로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 상석에 앉아 있는 붉은 장발의 깡마른 노인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곡주님, 천황성에서 연금술사를 모시고 왔습니다.”

대전 안에는 이미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로, 젊다고 하더라도 이준과 비슷한 연배의 연금술사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상석에 앉은 노인의 곁에는 홍색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서있었다. 여인의 가느다란 허리춤에는 암홍색의 채찍 하나가 둘러져 있었다.

적화 장로가 직접 데리고온 연금술사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의 눈이 이준에게로 쏠렸다.

“하하, 적화, 이번에는 자네가 가장 늦었구만.”

붉은 머리칼의 노인이 적화 장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게. 손님을 불러놓고 세워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

빨간 머리카락 노인의 말에 적화 장로는 급히 머리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려 대전 밖을 향해 외쳤다.

“임현 선생님,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임현?”

적화 장로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에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부에서 이름을 날린 연금술사라면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터인데, ‘임현’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 자리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젊은 사내 하나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임현이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임현’이 나타나자,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의 표정이 더욱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눈앞에 있는 젊은이는 아무리 봐도 적화의 초청을 받을 만큼 대단한 연금술사로 보이지는 않았다.

저 나이라면 잘해야 5레벨, 6레벨 연금술사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 정도만 되었어도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곡주의 표정이 자리에 있던 연금술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채 이준을 바라보다가 이내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나는 불의 협곡의 곡주인 당진이라고 하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투종이라니, 적화가 정말 대단한 친구를 데려왔군. 아주 보기 드문 인재야.”

당진의 말에 대전 안에 있던 연금술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이 정도로 어린 투종은 중주에서도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곡주의 곁에 서있던 홍색 옷을 입은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나 이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자신보다 더 어려보이는 사내가 투종이라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입니다.”

이준은 짐짓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속으로는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한 번에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다니, 역시 불의 협곡의 곡주다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상대가 최소한 풍뢰각의 각주인 나정필보다 몇 성 이상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정도 운이라면 그것도 능력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오늘 이곳에서 필요한 자는 투종이 아닌 연금대사인데……. 적화 장로, 확실히 데려온 것이 맞소?”

연금대사 의복을 입은 한 노인이 이준을 곁눈질 하며 말했다.

연금대사는 중주에서도 손에 꼽는 영향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호칭이었다.

연금 대사라는 호칭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 6레벨에서 최고 7레벨 연금비약을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했다. 8레벨 연금비약을 제련할 수 있는 자들은 ‘연금종사’라고 불렸다.

노인의 말에 적화 장로는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백 대사님 안심하시지요, 제 눈에 이 임현군은 곡주님이 내건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청년입니다.”

적화의 말에도 불구하고 백 대사라 불리는 노인은 못 마땅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어댔다.

“하하, 가히 중주 최고의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구려. 이 나이에 투종에 연금대사라니.”

하지만 당진이 웃으며 입을 열자, 이준의 실력을 의심하던 노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임현군, 이리 와서 앉으시지요.”

당진이 웃으며 이준에게 말했다.

이에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적화의 안내를 받아 대전 안에 있는 의자 중 하나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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