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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502화 (502/818)

502화. 옛 봉황의 피

“정말로 봉황 마수의 황족을 죽였다고?”

“이게 무슨……!”

봉연의 머리통이 날아가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정작 봉연을 죽인 당사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다 돌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쾅!

이준이 주먹을 휘두르자, 놀랍게도 허공에서 진청색 옷을 입은 여인의 그림자 하나가 피를 흘리며 튀어나왔다. 봉연이었다.

“봉황 마수의 황족께서 이런 조잡한 눈속임이라니,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방금 전에 죽은 줄 알았던 봉연이 허공에서 나타나는 광경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게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알지 못 하고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봉연과 이준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봉연은 입을 꾹 다물고 분노에 찬 눈으로 웃고 있는 이준을 노려보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렇게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적이 없었던 터라 더욱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난 아직 지지 않았어!”

분노한 봉연이 체내에 남은 염력을 끌어내 다시 한 번 주먹을 날리려는 찰나, 뇌성과 함께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날아들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정말 끝까지 해볼까?”

봉연의 손목을 쥐고 있는 이준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순간 산 전체에 적막이 깔렸다.

정말로 봉황 마수의 황족이자, 풍뢰각에서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라고 공언한 봉연이 이런 정체불명의 젊은 강자에게 패배하는 것인가?

나정필의 얼굴은 완전히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다. 설마 정말로 봉연이 이준에게 패배했단 말인가?

하지만 그의 곁에 앉아 있는 풍존자는 완전히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사라진 벗의 제자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그 제자가 내심 사대각의 제자들 중에서도 으뜸이라 생각했던 봉연을 꺾었으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 고집불통의 눈은 여전히 대단하구만. 이렇게 우수한 제자를 대체 어디서 찾아온 거지?’

한편, 사람들은 정말로 이준이 봉연을 죽이는 것은 아닐까 가슴을 졸이며 허공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준의 눈에는 당장이라도 봉연을 죽일 것처럼 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봉연은 여전히 패배를 시인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신분과 실력으로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닥쳐! 네 놈 따위가! 어떻게 나를!”

봉연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또 다시 온 몸에서 기이한 검은 빛을 뿜어냈다.

그러나 이준의 몸에서 청록색 화염이 뿜어져 나오자, 봉연의 검은 화염은 마치 천적을 만나기라도 한 것 처럼 황급히 주인의 몸속으로 돌아갔다.

투기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불꽃 중 천지의 불꽃을 이길 수 있는 불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두 가지 천지의 불꽃이 융합된 이준의 불꽃은 천지의 불꽃 중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제 아무리 봉황 마수의 불꽃이라도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내가 진짜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지?”

그 순간, 이준의 손가락에 있는 저장 반지가 파르르 떨리며 청홍색의 혈액이 예고도 없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당황한 이준은 번개처럼 손을 움직여 청록색 화염으로 옥병을 감싼 뒤 귀신같이 황급히 저장 반지 속으로 그것을 회수했다.

이준의 번개 같은 동작에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의자 위에 앉아있던 나정필은 그의 저장 반지 속에서 강한 에너지 파동을 느꼈다.

빠르게 옥병을 저장 반지에 회수한 이준의 얼굴색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아마도 그녀와 가까이 있을수록 마수의 피가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모양이었다. 분명 같은 봉황 마수족의 황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이 피를 해결할 수 있겠군.’

그 때, 봉연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기이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아차!’

이준의 반응이 너무 빨라 그녀 역시 이 물건이 무엇인지 보지 못했지만, 그 물건이 밖으로 나오자 몸속의 피가 순간적으로 크게 들끓었었다.

“이 느낌은…….”

봉연은 깊이 생각하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방금 전 그 익숙한 감각은…….

“고대 봉황의 피?”

“무슨 뜻이지?”

봉연의 한마디에 이준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느꼈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되물었다.

“너 이 자식! 방금 전 그 물건, 당장 다시 꺼내봐! 감히 봉황 마수의 보물에 손을 대?”

광장 위의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한시도 두 사람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석 위에 있던 나정필 역시 당황하며 장내로 날아왔다.

“연아, 무슨 일이냐?”

나정필이 나서자, 풍존자 역시 곧바로 몸을 날려 이준의 곁으로 날아왔다.

“자네가 봉황 마수족의 황족이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난동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이네. 아니, 봉황 마수족의 황족이라면 더욱 품위를 지킬 줄 알아야지.”

풍존자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봉연은 더욱 화가난 듯 눈을 치켜뜨며 이준을 가리켰다.

“풍존자님. 이것은 제가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느낀 기운은 분명 고대 봉황의 피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풍존자님이라면 분명 우리 봉황 마수들의 규칙을 아실 겁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봉황 마수의 시신이 외부인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저 놈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틀림없이 봉황 마수의 피입니다.”

봉연의 말에 관객들은 물론이고 풍존자마저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나정필은 굳이 말을 보태지 않고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만일 이준이 정말로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봉황 마수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제아무리 풍존자라 해도 봉황 마수들로부터 이준을 지킬 수는 없었다.

봉황 마수들과 전쟁을 벌인다면 사대각 중 가장 강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성운각이라 해도 결코 무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요.”

이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금 너한테 누명을 씌운단 말이냐?”

이준이 오리발을 내리자, 봉연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마음만 먹으면,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겠죠.”

“그렇다면 너의 저장 반지를 봐도 되겠네?”

봉연은 자신의 느낌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 피가 끓는 듯한 감각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봉연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눈썹을 찌푸렸다. 다른 사람의 저장 반지를 본다는 것은 상당히 무례한 요구였기 때문이다.

특히 투종 강자 정도되면 그 안에 온갖 보물들이 가득했으니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자네, 너무 무례한 요구를 하는군. 봉황 마수들은 예의를 중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자네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내가 직접 자네 가문의 어르신에게 이 일을 고하겠네.”

풍존자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제 아무리 봉황 마수라 하더라도 투존은 그리 쉽게 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풍존자는 봉황 마수 가문의 장로들과도 제법 안면이 있었으니, 이준의 저장반지를 뒤진 것만으로도 가문에서 문책을 당할것이다.

“그럼 저장 반지는 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문의 규칙에 따라 저 자의 몸을 살펴보아야겠습니다. 만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곧바로 사과하겠습니다.”

봉연의 말에 풍존자는 살짝 당황하며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이준을 바라보았다.

저장 반지를 들여다 보는 것은 어찌어찌 막았지만, 이런 요구까지 거절하기에는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정말로 이준에게 봉황 마수의 피가 있다면……. 자신이 목숨을 건다 하더라도 그를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 수색술은 옛 봉황의 피에만 반응을 한다. 만일 지금 네가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이준이 대답을 하지 않자, 봉연이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준의 답변은 그녀의 예상을 빗나갔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이준의 승낙에 봉연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만일 이준에게서 정말로 고대 봉황 마수의 피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는 봉항 마수의 황족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괜찮은 게냐?”

풍존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이준의 대답에 풍존자도 조금은 마음이 놓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정말 자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대답이었다.

“만일 네 몸에서 정말로 고대 봉황 마수의 피가 나온다면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봉연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이 있는 듯 싸늘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살기로 눈을 빛냈다.

“제 몸에서 봉황 마수의 피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가씨는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제게 사과를 해야 할 겁니다.”

이어지는 이준의 답변에 봉연은 피식 웃으며 곧바로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러자 빨간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기이한 빛을 내뿜었다.

선홍빛을 띄고 있는 피 속에는 옅은 청색 빛이 돌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마른 시체의 피에서 봤던 청색 빛이 봉연의 피보다 더 진했다. 이로 미루어보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피에는 아마 봉연의 피보다 더 강한 힘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봉연이 자신의 피를 이용해 기이한 문양을 그려낸 뒤 살짝 손을 들자, 붉은 색 문양이 이준의 머리 위에 멈춰서면서 붉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곧이어 붉은 빛이 섬뜩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이준의 몸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준은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봉연이 수색술을 사용하는 동안, 이준의 얼굴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가 관중 앞에서 봉연에게 수색술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준을 감싼 빨간빛은 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저장 반지를 몇 번이나 오갔지만, 끝내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 했다.

봉연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풍존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이준의 몸 전체를 샅샅이 훑어보기를 몇 분째, 마침내 붉은 빛이 서서히 옅어지며 하얗게 질린 봉연의 몸속으로 되돌아갔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옛 봉황의 피를 어디에 숨긴 것이냐!”

이준에게서 고대 봉황의 피를 찾지 못한 봉연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채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 수색술은 고대 봉황의 피에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상대가 봉황 마수의 피를 가지고 있는 한 찾지 못할 리가 없었다.

“자네가 제 아무리 봉황 마수의 황족이라 해도 다시 생트집을 잡는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풍존자의 말을 들은 봉연의 얼굴빛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이에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던 나정필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연아, 오늘의 일은 너의 오해인 듯하구나.”

“하지만…….”

봉연이 미련을 버리지 못 하고 다시 한번 입을 열자, 나정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정필의 살벌한 표정에 봉연은 나오던 말을 다시 집어삼키고 이준을 노려볼 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그녀는 나정필의 제자였기에 그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게다가 풍존자가 이준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상 더 이상 억지를 썼다가는 정말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준의 몸에서 정말 고대 봉황 마수의 피가 나왔다면 풍존자라 해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대결에서 패배한 사람이 생떼를 부리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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