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의 움직임을 최대치로 사용한 그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잔상이 나타났지만, 잔상이 나타나기 무섭게 검은 빛이 그것을 지워냈다.501화. 봉황의 종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어.’
그 순간, 이준의 미간 사이에서 한기 서린 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이준이 주먹을 쥐자 청록색의 화염이 두 개의 빛으로 갈라졌고, 동시에 미간에서 새어나오던 하얀 빛이 백색의 화염으로 변화했다.
세 개의 천지의 불꽃이 모습을 드러내자, 산 전체가 뜨겁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천지의 불꽃? 그것도 세 개나?”
이준의 몸에서 솟아나온 세 개의 천지의 불꽃에 네 명의 투존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지의 불꽃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한 사람이 세 개의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이것은 설마 불개? 그 고집불통이 이것까지 제자에게 전수해주었단 말이야?’
하지만 자리에서 오직 하나, 풍존자만은 이준이 어떻게 세 개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 불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세 개의 불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고온에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서는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곧이어 네 명의 투존의 눈에 더욱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이준이 세 개의 천지의 불꽃을 하나로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미친!”
이준의 행동에 나정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천지의 불꽃은 그 하나하나가 비할 데 없는 에너지의 결정체였다.
그리고 에너지가 강한 만큼 반발력도 강해 다른 불꽃과 억지로 융합시키려들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중주에서도 몇 번인가 천지의 불꽃과 다른 불꽃을 합치려 했다가 대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 이준은 다른 불꽃과 천지의 불꽃을 합치는 것도 아니고 천지의 불꽃을, 그것도 무려 세 개의 불꽃을 하나로 융합시키려 하고 있었으니 투존 강자라 해도 공포에 질리는 것이 당연했다.
쉭!
거대한 검은 빛이 다시 돌진하자, 이준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불꽃을 융합시키며 계속해서 번개의 움직임을 활용해 봉연의 공격을 피했다.
봉연의 검은 빛이 네 번째 잔상을 지워나가는 순간, 돌연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진 것처럼 허공 위에 거대한 파문이 퍼져나가며 천지의 에너지가 미친 듯이 들끓기 시작했다.
“허허…….”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무시무시한 열기를 감지한 풍존자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과연 자네의 제자답구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이준의 손바닥 위에서 태양이 떠오른 듯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 이것도 받아낼 수 있는지 보자고.”
지금 이준의 손에는 백색에 가까운 옅은 옥색의 화염 연꽃이 들려 있었고, 연꽃이 회전할 때마다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부서지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연꽃에서 흘러나오는 섬뜩한 열기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이마에서는 어느새 비처럼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쉭!
다음 순간, 옥색의 연꽃이 허공 위에 새까만 꼬리를 남기며 봉연을 향해 날아갔다.
연꽃이 날아가자, 천지의 에너지가 폭풍을 만난 파도처럼 격렬하게 출렁이며 거대한 파문을 만들어냈다.
옥색의 작은 연꽃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와 열기에 시종일관 냉정을 유지하던 봉연의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앉아 당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풍뢰각의 으뜸가는 제자이자, 봉황 마수 일족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실력으로 이뤄낸 결과였다.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뜨내기에게 패배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봉연이 손을 휘두르자, 하늘을 헤집고 다니던 검은 빛이 팽이처럼 회전하며 다시 검은 봉황의 허상 속으로 들어가더니 흐릿해졌던 검은 봉황의 몸에서 방대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봉황의 종!”
이내 봉연의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인을 맺더니, 뒤에 있던 봉황의 허상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와 그녀의 몸을 감쌌다.
새카만 빛은 빠른 속도로 응집되어 종의 형태를 이룬 뒤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거대한 종의 표면에는 날개를 펄럭이는 봉황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로는 신비한 검은색의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종을 본 사람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봉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검은 종은 투종이 아니라 투존이라 해도 부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봉황의 종……?”
의석 위에서 검은 종을 바라보던 4대 존자의 얼굴 역시 빠르게 굳어졌다.
“정말 진귀한 것을 보게 되는군요. 투성급 봉황 마수가 만든 무투기를 여기에서 보게 되다니. 다만 아직 완전히 익히지는 못 한 모양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봉황의 종은 사방 수 킬로미터를 뒤덮을 수 있고, 그 종이 한번 울리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했는데…….”
검존자는 놀란 목소리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 놀랍군요. 저 무투기는 봉황 마수 중에서도 황족만이 사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황천존자 역시 놀랐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사실 중주대륙 전체를 통틀어도 사대존자를 놀라게 할 만 한 무투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 투존을 놀라게 할 만 한 무투기가 두 개나 나타난 것이다.
“글쎄요……. 진귀한 광경이기는 하지만, 아직 승부가 난 것은 아니지요.”
풍존자가 거대한 봉황의 종을 훑어보며 말했다.
확실히 봉연의 봉황의 종이 대단한 무투기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이준의 화련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 두 무투기 중 무엇이 더 강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승부가 결정될 것이 분명했다.
* * *
거대한 종의 크기와 비교했을 때 화련의 크기는 보잘 것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담긴 에너지도 작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먹만 한 크기의 옥색 연꽃이 결연한 기세로 거대한 종을 향해 돌진했다.
댕!
두 무투기가 부딪히는 순간, 천둥 같은 종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충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음파에 하늘 위에 떠있던 짙은 구름마저도 부르르 몸을 떨었다.
다음 순간, 옥색의 화염이 폭발하며 온 하늘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갑자기 상승한 온도에 풍뢰산의 산등성이 곳곳에 불이 붙기 시작했고, 하늘을 뒤덮고 있던 구름마저 증발해 자취를 감췄다.
많은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멍한 얼굴로 하늘에 끝도 없이 펼쳐진 옥색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어떤 염력으로도 그 고온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만에 하나 그 불바다가 밑으로 내려오면 풍뢰산 전체를 재로 만들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의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네 명의 투존마저 놀라게 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6성 투종 강자에게서도 볼 수 없는 이런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1성 투종의 손에서 나오다니,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준이 어떠한 외부의 힘도 빌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나정필의 옆에 있던 비천 역시 놀라 입을 벌린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일 자신이 이 무투기를 맞았더라면……. 그렇게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등 뒤에서 식은땀이 비죽 솟아나왔다.
“이 녀석, 정말 위험한 녀석이군.”
불바다의 중심에는 거대한 종이 우뚝 솟아있었지만, 종을 둘러싼 검은색 빛의 에너지는 잔잔히 일렁이는 옥색 화염에 둘러싸여 한 치도 뻗어나가지 못 하고 있었다.
검은 종이 옥색 화염을 막아내는데 성공한 듯 보이자, 나정필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봉연이 이 공격을 잘 버티기만 한다면, 이 싸움은 그녀의 승리로 막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직-!
하지만 나정필이 숨을 내쉬기 무섭게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불길한 소리는 똑똑히 나정필의 귀에 정확히 박혔다.
거대한 종에는 어느새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물론 그 균열의 크기는 아직 미미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금이 갔는지 알아차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정필의 눈에 그것은 봉연의 패배를 암시하는 불길한 징표처럼 보였다.
반면 풍존자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옆에 있던 검존자와 황천존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입조차 다물지 못 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준이 ‘봉황의 종’을 격파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강한 무투기를 가지고 있다니……. 게다가 이 천부적 자질 역시 정말 놀랍구려.”
검존자가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나이에 이정도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천부적 자질과 관계없이 뛰어난 스승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제자를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은 중주에서도 많지 않다. 하지만 그 스승들의 제자 중 ’이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청연과 승용, 그리고 강신 역시 창백한 표정으로 불바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강신은 완전히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 하고 있었다. 이 공포스러운 무투기가 자신에게 사용됐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사지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 * *
불바다 속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검은 종은 불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강하게 흔들렸고,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느다랗던 미세한 금이 점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우직-
그리고 미세하게 들리던 소리 역시 점차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적만이 가득했던 광장에 울리는 작은 소리에 관객들은 곧 이 대결의 승자가 정해질 것임을 직감했다.
허공 위에는 불바다를 머리에 이고 있는 이준이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눈에 띄게 창백해져 있었다.
이준의 시선은 줄곧 불바다 속에 있는 검은 종에 꽂혀 있었다. 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찌됐든 상대는 봉황 마수의 황족이 아니던가.
이준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연금비약을 한알 삼킨 뒤 빠르게 갈라지고 있는 검은 종을 묵묵히 지켜봤다.
우지직-
마침내 거대한 종의 모서리까지 균열이 번져 나가자, 옥색의 불바다에서 마치 파도가 치듯 거대한 불기둥이 일어났다.
쾅!
잠시 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종이 폭발하며 시커먼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거대한 검은 종이 깨지며 만들어진 파편들은 불바다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타올라 사라졌고, 파편이 증발될 때마다 귀청을 때리는 따가운 소리와 함께 옥색의 불꽃이 이리저리 춤을 췄다.
이준의 눈동자는 시종일관 거대한 종이 폭발한 곳에 멈춰있었다.
검은 파편들이 매서운 힘으로 쉭쉭 소리를 내며 날아왔지만, 그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검은 안개를 바라보던 그 때, 검은 안개가 수축하며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튀어나왔다.
그 그림자가 나타나자 이준의 눈에도 한기가 서리며 발밑에서 은색 빛이 반짝였다. 그의 주먹에서는 짙은 청록색의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쉭!
이준이 봉연의 뒤를 잡는 순간, 거센 바람과 함께 진청색의 비단이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준은 기다렸다는 듯 주먹으로 비단을 붙잡은 뒤 포탄처럼 강하게 온 몸을 날려 봉연에게 부딪혔다.
“윽!”
이준의 어깨에 가슴팍을 얻어맞은 봉연은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와 동시에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광장으로 날아들어 봉연의 옆에 착지했다.
바닥에 내려온 이준은 망설임 없이 한쪽 발을 들어 봉연의 머리를 짓눌렀다.
이준의 이런 행동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봉황 마수의 황족에게 이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준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어쩌면 그대로 봉연의 머리를 밟아 그녀를 죽여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윽!”
쾅!
“말도 안 돼!”
“미친!”
다음 순간, 굉음과 함께 봉연의 머리가 수박처럼 으깨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