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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96화 (496/818)

제496화. 도발

쾅!

한 차례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지고, 광장 내에 뿌옇게 먼지가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몸에서 아무런 충격도 느껴지지 않자, 임동수가 멍한 표정으로 눈을 떠 앞을 바라봤다.

지금 그의 앞에는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 자가 강신의 공격을 막아준건가? 헌데 왜? 아니 그보다 이런 참가자가 있었나?’

“어휴, 선배. 그래도 할 때까지 해봐야지 눈을 감아버리면 어떻게 해요. 겁쟁이가 다 됐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목소리에 임동수는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쉿,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임동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이준이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네, 네가 어떻게 중주에……. 아니 그보다 어떻게 여기에…….”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임동수를 보며 이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순간, 광장 주위를 지키고 있던 풍뢰각의 강자들이 나타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왜 대회를 방해하는 것이냐!”

곧이어 염력날개를 단 십 여 명의 투사들이 하늘에 나타나 이준을 포위했다. 그들의 손에는 날카로운 장검이 들려 있었다.

“대회 규칙상 항복한 이후에는 상대방을 공격할 수 없는데, 이 사람은 규칙을 무시했소. 그런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서는 지금 나보고 대회를 방해한다고 하는 것이오?”

이준이 임동수의 어깨를 잡았던 손을 내려놓으며 풍뢰각강자들을 향해 말했다.

이준의 말에 풍뢰각의 강자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강신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상황을 그들도 봤지만, 황천존자가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손을 쓰지는 못했던 것이다. 아무리 규칙이 있다 하더라도, 투존이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강신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도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할 뿐, 감히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 일은 확실히 강신이 잘못한 것이었다. 이준이 사람을 구한 것은 규칙에 맞지 않지만 사리에는 맞는 일 이었다.

“운으로 이 자리까지 온 쓰레기를 죽이겠다는데 뭐가 문제지? 저 놈의 존재 자체가 사대각 대회에 대한 모욕이다.”

모두가 이준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뻔뻔하게도 강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신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이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황천각의 대표라는 이유로 실력도 없는게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것은 대회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보지?”

갑작스레 나타난 강자가 대놓고 황천각의 대표를 비난하자, 관객들은 물론이고 광장에 서있던 다른 참가자들마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준을 바라봤다.

“무모하군.”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이준의 실력은 8성 투황 정도에 불과했으니 다른 참가자들의 눈에 이준은 죽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봉연은 이준을 보자마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감히 황천각을 조롱해? 네 놈의 스승이 누구냐?”

이준의 언행에 분노한 황천존자가 광장 중앙의 귀빈석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역시 봉연과 마찬가지로 이준에게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느끼기에 이준의 실력은 최소한 투황 최고 단계나 투종이 되기 직전의 상태였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무언가 기묘한 기운이 이준의 몸을 감싸고 있어 그의 실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투존 강자가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애송이의 실력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없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정필, 풍존자, 검존자 등 세 명의 투존 역시 이준의 몸에서 풍겨오는 기묘한 기운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황천존자님, 선생님의 제자는 방금 전 실수로 상대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고의로 규칙을 어긴 것임을 시인했습니다. 그런데 스승이신 황천존자님께서 제자를 나무라기는커녕 제자를 감싸고 계시니, 이래서야 세상 사람들이 황천각과 황천존자님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투존 강자 앞에서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또박또박 바른 말을 하는 이준을 보며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감탄이 섞인 탄식은 내뱉었다. 그의 용기와 대범함은 실로 영웅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지만, 감히 투존 앞에서 저런 말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준의 맹랑한 태도에 황천존자의 얼굴에는 감출 길 없는 살기가 돌았다.

“말은 잘 하는군. 풍뢰각주. 이 귀찮은 것을 어서 해결해 버리시지요. 대회의 진행에 방해가 되고 있소.”

황천존자의 말에 나정필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의자를 가볍게 두드리다가 곁에 있는 풍존자와 검존자를 바라보았다.

“허허, 두 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나정필의 행동은 참으로 교활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강신의 행동은 명백히 대회의 규칙을 위반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편든다면 풍뢰각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이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하자니 황천존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나정필은 이 문제를 풍존자와 검존자에게 떠넘긴 것이다.

“규칙에 따라 해결하지요. 규칙을 깬 자는 그게 누구든지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규율에 따라 번개 곤장 50대를 치고 쫓아냅시다.”

하지만 황천존자는 두 사람의 의견을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이준을 처벌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 이유라면 황천존자님의 제자도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소?

바로 그 때, 풍존자가 입을 열었다.

풍존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천존자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제자와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도 모르는 뜨내기를 똑같이 처벌하자는 것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허허, 풍존자님의 말도 틀리지 않소. 이 자가 대회를 방해했지만, 일이 일어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요. 처벌을 하려면 둘 다 해야 하지만 황천각의 체면도 있고 하니 모두 한 발짝씩 물러나서 저 자에게 저 자의 친구와 함께 결투에 참가하도록 한 뒤 대회를 계속 진행하도록 합시다. 어떻소?”

두 투존이 서로 신경전을 벌이자, 검존자가 중재에 나섰다.

황천존자는 다시 한 번 나정필을 바라보며 눈치를 줬지만, 나정필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사실 황천존자 입장에서는 나정필이 자신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풍존자와 싸우든지, 검존자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겨우 이깟 일로 어떻게 풍존자에게 칼을 들이댄단 말인가.

결국 황천존자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검존자의 중재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네, 방금 내 제자가 황천각의 이름 덕에 이곳에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내 제자와 겨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네. 한번 자네의 말을 증명해보게.”

황천존자의 말에 관람석에서는 곧바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준은 속으로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변장까지 하고 관람석에 앉아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굴러가서야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저 노인네는 신경 쓰지 말고 가자.”

이준이 아무런 답도 하지 않자, 임동수가 이준의 손목을 잡아끌고 출구로 향했다. 이준이 아무리 대단하다해도 강신의 상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만일 전투에 참가하지 않겠다면, 황천각을 모독한 것을 사죄하는 뜻으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해라. 그렇다면 용서해주지.”

그 때, 강신이 날카로운 비수를 만지작거리며 그들의 앞을 막아선 채 말했다.

계속되는 강신의 만행에 사람들은 이준이 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 관객들 중 누구도 갑자기 나타난 이 정체불명의 청년이 황천각의 대표인 강신을 이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안돼, 참아.”

이준의 표정이 점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것을 본 임동수가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이준의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걱정 말아요 선배.”

이준은 차가운 얼굴로 짤막한 한마디를 내뱉은 뒤 곧바로 임동수의 손을 뿌리친 뒤 광장의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굳이 망신을 당하고 싶어 하니 나도 사양하지 않는 게 좋겠군.”

이준이 앞으로 나오자, 광장은 함성 소리로 가득 찼다. 그 함성 소리는 강신의 적수가 되든 안 되든, 황천각의 횡포에 대항하는 의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응원이자, 찬사였다.

귀빈석 위에 앉아있는 황천존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준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강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목산에 다녀온 이후 그의 제자인 강신은 반쯤 투종 상태에 올라 있었고, 지금 상태로도 평범한 투종에게는 결코 밀리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황천각의 비술과 무투기가 있었으니, 눈 앞의 애송이가 무슨 수를 쓰든 강신의 상대가 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나정필님, 대회 시간을 잠시 쓰겠소. 괜찮지요?”

황천존자가 고개를 돌려 나정필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정필 역시 그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풍뢰각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 황천존자의 체면도 살리려면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군요.”

이에 황천존자는 웃으며 곧바로 광장 안에 있는 자신의 제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일은 네가 벌인 일이니 직접 해결하거라. 만일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어떨지 잘 알겠지.”

황천존자의 서늘한 한 마디에에 까만 비수를 잡은 강신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마음 놓으시지요, 스승님. 이 자가 황천각을 모욕하였으니 제가 본때를 보여주겠습니다.”

강신의 답을 들은 황천존자는 의자에 천천히 기대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존자와 풍존자는 이 상황을 보며 눈썹을 살짝 찌푸릴 뿐,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았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준을 위해 황천존자와 싸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장내에 남겨진 참가자들은 나정필의 말을 들은 후 한발짝씩 뒤로 물러나며 이준을 바라봤다.

대회가 중단되었었지만, 산 정상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젊은 강자가 강신과 대결을 벌인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해 주먹을 꽉 쥔채 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광장으로 들어서는 이준을 보며 임동수는 초조한 마음으로 발끝을 까딱거렸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이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그였지만, 상대는 투종 강자와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제 아무리 이준이라 해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상대가 바로 강신이라는 점 이었다. 강신은 뛰어난 실력 이상으로 잔인한 성품으로 유명했고, 지금까지 그의 상대는 모조리 죽거나, 폐인이 됐다. 실력이 약하다면 실력도 없이 자신에게 덤빈 벌이라며 죽이거나 폐인을 만들었고, 실력이 강하다면 앞날이 걱정된다며 죽이거나 폐인을 만드는 것이 강신의 방식이었다.

‘제길, 만일 네가 강신에게 패배한다면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하고 말겠어.’

임동수는 혼자 그렇게 다짐하며 강신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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