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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79화 (479/818)

제479화. 천목산

화염의 온도가 변화할 때 마다 분신은 여러 가지 미세한 반응들을 보이곤 했고, 그 반응들을 통해 빠른 속도로 가장 적합한 온도를 가려낼 수 있었다.

이 과정은 화염에 대한 완벽한 제어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이었다.

특히 이 작업에는 어마어마한 정신력과 영혼의 힘이 필요했으므로, 제 아무리 강한 정신력과 영혼의 힘을 가진 이준이라 해도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이준은 더딘 수련 속도에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으나, 천태자나 풍뢰북각의 사람들이 그의 수련 과정을 지켜봤더라면 입을 다물지 못 했을 것이다. 그들이 번개 바람의 힘으로 분신을 수련시킨 속도에 비하면 지금 이준의 수련 속도는 실로 무시무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준이 구름 불꽃을 활용해 번개 분신을 완성해가기 시작하자, 천화존자도 만족한 듯 미소를 짓고는 다시 서서히 종적을 감췄다.

지금 영혼의 공간에서는 두 명의 이준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온 몸이 무형의 화염에 싸여 있었다.

* * *

마지막 어둠이 서서히 사라지고, 동녘 하늘에 연한 아침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다. 횃불 옆에 가부좌를 하고 있던 이준은 천천히 눈을 뜨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만 봐도 하룻밤 사이에 얼마나 많은 정력을 소모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휴우! 분신의 수련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 속도라면 아직도 두 달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이준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껄껄, 비천의 분신은 적어도 5년은 수련했을 걸세. 그런데 자네는 두 달 만에 그 수준에 오를 수 있으니, 그 정도로 만족해야지.”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은 민망한 듯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서두르게. 천목산은 이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을 걸세. 이번 기회에 투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 *

빽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산맥의 끝자락에는 비쩍 마른 그림자 하나가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림자가 나타나자, 짙은 피 비린내가 주위에 풍기기 시작했다. 그 냄새를 맡은 마수들은 하나같이 숨거나 도망치기 바빴다.

지금 이준의 온 몸에는 마수의 핏자국이 가득했고, 머리는 그야말로 봉두난발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20일 동안 편한 시간을 보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실력을 쌓는데 도움이 됐으니 기분만큼은 하늘을 날 것 같이 좋았다.

산 끝자락에 펼쳐진 굽이진 길에는 어느 새 드문드문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멀리 오가는 인영을 바라보며 이준은 천천히 손으로 양미간을 만졌다. 이 동작은 영혼의 영역에 있는 분신에게 구름 불꽃을 전해주기 위한 것 이었다. 이마에 새겨진 새하얀 불꽃 문양을 통해 영혼의 힘을 불어넣을 때마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됐지만, 이준은 그것 역시 수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목산의 에너지 폭풍도 곧 시작되겠는걸. 다행히 거리가 멀지 않으니 지금 내 속도라면 반나절 내엔 도착할 수 있겠어.”

이준은 저장 반지 속에서 지도를 꺼내 펼쳐보고는 등 사이를 움직여 천천히 날개를 폈다.

거대한 뼈날개가 펼쳐지자, 이준이 몸이 하늘로 솟구치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산 중에 울려 퍼졌다.

* * *

천목산은 3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피의 못으로 인해 중주 북부 최고의 명소로 자리잡은 장소였다.

사람들은 피의 못의 신비한 효능에 큰 관심을 가졌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3년마다 홀린 듯이 산으로 모여들었다. 젊은 사람일수록 피의 못의 신비한 힘을 흡수하기 쉬웠으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젊은이들이 피의 못에 몸을 담글 수만 있다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세력에 속한 젊은이들을 위해 나이든 강자들이 동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주에서 투황의 입지는 다른 곳과는 달랐다. 투황 역시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실력을 가진 강자라고 할 수 있었으나, 진정한 강자로 군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종이 되어야 했다.

투기대륙의 다른 곳이라면 투황만 되어도 어지간한 세력을 거느릴 수 있었으나, 중주에서는 최소한 투종 강자는 되어야 그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투종 강자 하나의 힘은 열 명의 투황에 비견할만 했으니, 투황과 투종 사이의 차이가 어느 정도 대단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가한제국이나 흑각성에서 한 명의 투종을 가지고 있다면 그 즉시 일류세력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중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 곳에서 한 명의 투종을 가진 세력은 잘해야 이류 세력으로 인정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투종을 넘어 투존이 된다면 이런 세력은 어린애가 쌓아놓은 모래성만도 못했다. 그저 가볍게 손을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철저히 짓밟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지금의 이준에게는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지금 이준에게는 투황을 돌파해 투종에 진입하는 것만도 버거웠다.

일단 투종이 되어야 이은과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녀의 뒤에 있는 신비한 세력의 힘은 연금탑과 영혼의 궁전을 능가하니, 투종이나 되어야 간신히 말이나 섞어볼 수 있었다.

표면으로는 9성 투황은 투종과 1성 차이밖에 안나지만, 투기대륙에는 고작 그 한 계단을 넘지 못하고 무너진 천재들이 모래알만큼이나 많았다.

그러니 수 많은 젊은 천재들이 투황을 투종으로 승급시켜준다는 피의 못을 얼마나 애타게 원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었다.

본래 이런 신비한 장소는 많은 강대한 세력들의 눈독을 들여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세력도 성공적으로 피의 못을 차지한 적이 없었다. 제 아무리 풍뢰각이라도 마음만 있을 뿐이지, 힘이 부족했다.

피의 못을 원하는 자는 널리고 널렸으니, 그것을 독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머지 강대한 세력 모두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풍뢰각 뿐 아니라 감히 그 어떠한 세력도 피의 못을 독점하지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이준은 다섯 시간의 비행 끝에 구름으로 덮여 있는 한 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천목산은 이준이 평생 봐 왔던 산 중 가장 웅장한 산 이었다. 가한제국의 천둥산도, 운남산도, 이 곳에 비하면 동네 뒷산이나 다름이 없어보였다.

농염한 구름이 산 전체를 덮고 있어 어디가 어딘지 구분조차 가지 않았다. 산 전체에 자욱하게 끼어있는 불길한 기운은 뭇 강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고 남았다. ‘죽음의 산’ 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수 백 명의 강자들이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인파들 중 열 명만 뽑는다고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준은 구석진 곳을 찾아 자리를 잡은 뒤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목산의 높은 나무 위에 다리를 틀고 앉아 이준처럼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때, 맑고 청량한 울음소리가 허공을 뚫고 이준의 귓등을 때렸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곧이어 칠색 날개를 가진 큰 두루미 한 마리가 날개를 움직이면서 빠르게 천목산 쪽으로 날아왔다.

햇빛에 반사된 칠색 날개는 기이하고 신비한 빛을 발하며 사람들의 눈을 잡아끌었다.

“아니 저건 칠색두루미잖아! 풍뢰각의 봉연 아가씨인가?”

칠색두루미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이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양미간을 찌푸렸다. 또 풍뢰각이라니…….

거대한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저으며 날아오는 순간, 거대한 광풍이 산 전체를 휩쓸었다.

중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칠색 날개를 가진 두루미의 등 위에 올라탄 아가씨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름다운 데다 천부적인 무예까지 가지고 있으니 중주의 내로라하는 세력들이 모두 그녀를 제자로 들이고 싶어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평생을 노력해도 못 오를 자리에 이미 올라 있으니, 수많은 강자들이 그녀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나무 위에 다리를 틀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천태자도 같이 오려나? 그 늙은이도 같이 오면 일이 하나 더 늘겠군.”

잠시 후, 하늘을 날고 있던 칠색 두루미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면서 아래로 내려오다가 땅에서 100미터쯤 떨어진 상공에서 멈춰섰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거대한 새의 등 뒤에 올라타고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멀리서 봤을 때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더 이준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녀의 곁에 서있는 두 명의 노인이었다.

두 백발의 노인은 바람이 불어도 넘어질 정도로 깡마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준은 두 사람을 훑어보자마자 새어나오는 한숨을 참기가 어려웠다. 비천과 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6성 투종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저 자들에게 발각된다면 적잖이 골치가 아플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천태자 비천이 온 것보다는 나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들리는 소문 그대로 선녀같이 아름답군.”

“이 피의 못이 저 여인까지 불러오게 할 줄 몰랐구려. 보아하니 열 명 중에 저 여인은 꼭 들겠군.”

“그건 모르는 일일세. 중주에 숨은 실력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이 천목산은 실력이 너무 높은 사람이 들어오면 에너지 폭풍이 일어나니 결국 피의 못에 들어가는 건 본인 능력 아니겠나?”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이준은 귀가 솔깃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비천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곳에서 그 공포스러운 8성 투종과 마주친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온 몸의 털이 거꾸로 곤두서는 것 같았다.

이준은 다시 시선을 거둬 산의 입구를 내려다 봤다.

산 아래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아무도 쉽게 안으로 발을 들이지는 않고 있었다. 천목산 안에는 제법 강한 마수가 많아 어지간히 실력이 대단한 자가 아니고선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었다.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만히 그 곳에서 에너지 폭풍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가 되면 산 속 마수들이 많이 약해져 손쉽게 숲을 통과해 피의 못으로 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조용하게 때를 기다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군.’

이에 이준은 가볍게 숨을 들이쉰 뒤 눈을 감고 정신 수련에 들어갔다.

* * *

“목 장로님, 이번에 나머지 세 각에서도 여기 천목산에 온 사람이 있어요?”

칠색 도포를 입은 여인이 담담한 눈길로 아래를 굽어보다가 옆에 있는 노자에게 물었다.

“허허허, 안 올 리가 있겠습니까? 만검각의 승용, 황천각의 강신, 성운각의 모청연 이 세 사람은 각 세력에서 가장 걸출한 젊은이들로, 모두 투황 끝자락에 이르러 있으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요.”

녹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번에 꽤 볼거리가 많겠군요.”

“아가씨, 어르신께서 하신 말씀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이번 이 피의 못 때문에 많은 강자들이 왔으니 결코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조금 전 얘기했던 세 사람 외에도 막강한 실력의 젊은이들이 피의 못을 노리고 있습니다.”

“혹시 그 이준이라는 사람은?”

여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되물었다.

“비천의 손에서도 도망을 갔다면서요. 이 또래에 비천의 손에서 달아날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게다가 풍․뢰․전 세 장로를 꺾었다지요?”

칠색 도포를 입은 여인이 머리칼을 매만지며 질문을 던지자, 두 노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9성 투황이 무슨 수로 투종 셋을 상대하겠습니까. 비천의 말을 들어보니 그 놈의 몸 속에 힘을 빌려주는 강대한 영혼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저희도 쉬이 힘을 빌려 들일 수 없으니 결코 방심하지 마십시오.”

“네네, 두 분의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거듭되는 노인의 충고에 여인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휘저었다.

“저도 그저 노파심에 의해 한 말이니 너무 기분 상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준이라는 자가 여기에 왔을지도 의심스럽군요. 아무리 비천의 손에서 도망쳤다 해도 감히 이곳에 얼굴을 들이밀 용기가 있겠습니까?”

붉은 도포를 입은 노자의 말에 여인은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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