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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73화 (473/818)

제473화. 영혼의 흔적

등골이 오싹해지는 섬뜩한 목소리에 홍천효의 동공이 순식간에 작아졌다. 방금 전까지 이준이 있던 곳에는 이미 서서히 흩어져가는 잔상만이 남아 있었다.

당황한 홍천효는 황급히 몸을 뒤로 돌리며 마구잡이로 대검을 휘둘러댔다.

콰앙!

날카로운 칼날과 거대한 영혼 에너지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치익!

홍천효의 염력과 이준의 영혼 에너지가 충돌을 일으키자, 허공 위에 거대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그러나 제 자리에 선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이준과 달리 홍천효의 입에서는 또 다시 새빨간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봐, 친구. 이건 자네와 풍뢰북각 사이의 문제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네. 나도 등 떠밀려 억지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야.”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노인이 애원하듯 말하자, 이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처음은 우리 홍씨 가문이 잘못한 게 맞긴 하네. 그, 그래서 우리 홍씨 가문에서도 이에 대해 보상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네!”

살기 어린 이준의 표정에 홍천효의 얼굴이 점점 더 뻣뻣하게 굳어갔다.

“보상이요?”

이준이 흥미를 보이는 듯하자 홍천효는 입가에 흐르는 피조차 닦지 않은 채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뢰 장로의 말대로라면 이 녀석의 힘은 다른 강자에게서 빌린 것이니 일단 시간을 끌어야 해. 흥, 빌어먹을 애송이. 누구의 힘을 빌린건지는 몰라도 그 힘이 빠져나가는 순간 바로 네 놈의 심장을 터뜨려주마.’

홍천효는 속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간을 벌기 위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 젊은이, 자네만 괜찮다면 우리 홍씨 가문에서는 온 힘을 다해 자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네. 그래, 이참에 아예 우리와 좋은 관계를 맺어보는건 어떻겠나?”

계속되는 노인의 설득에 이준은 짐짓 고민에 빠진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 장로님 생각이 그러시면 전 당연히…….”

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돌변하더니 또 다시 해일과도 같은 영혼 에너지가 폭발했다.

“이 애송이 놈이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형의 영혼 에너지에 홍천효는 즉시 몸을 일으켜 대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하늘 요괴가 갑자기 몸을 날려 그를 덥썩 끌어 안았다.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사지가 꽉 묶인 홍천효는 화들짝 놀라 미친 듯이 발버둥치며 염력을 폭발시켰지만, 요괴는 묵직한 바위마냥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놈이! 내가 그리 호락호락하게 죽어줄 성 싶더냐!”

요괴에게 붙잡힌 홍천효는 상대가 필살의 일격을 날릴 것을 감지하고는 광기 어린 목소리로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곧이어 그의 몸에서 심운이 자폭할 때와 비슷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홍천효가 자폭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이준은 번개처럼 몸을 날리며 청록색의 화염으로 날카로운 검을 만들어냈다.

푹…….

다음 순간, 살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홍천효의 가슴팍에 청록색의 장검이 꽂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목숨을 잃은 홍천효의 몸에서 곧바로 투종 강자의 힘이 담긴 영혼체가 빠져나온 것이다.

“이준, 너 이 개 같은 자식!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홍천효의 영혼체는 생기를 잃은 육신에서 빠져 나오기 무섭게 자폭을 시도했지만, 폭발을 일으키기도 전에 이준의 영혼 에너지가 그의 영혼체를 세차게 가격했다.

영혼끼리 충돌을 일으키면 둘 중 한 쪽의 영혼이 상처를 입기 마련이었다.

이준은 본래 영혼의 힘이 강한데다가 지금은 천화존자의 힘까지 빌린 상태였으니 홍천효의 영혼체 따위가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홍천효의 영혼이 눈에 띄게 허약해지자, 이준은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그의 영혼체를 붙잡아 옥병 안에 넣은 뒤 무형의 불꽃으로 입구를 틀어막았다.

“5성 투종의 영혼과 몸이라니……. 7레벨 마정핵 하나만 더 있으면 요괴 하나를 더 만들어낼 수도 있겠어.”

홍천효의 영혼체를 포획하는데 성공한 이준은 곧바로 그의 시체를 저장 반지 안에 넣은 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풍뢰북각의 장로와 강자들을 단신으로 물리치고, 천북성 전체를 주름잡던 강자인 홍천효가 시신으로 변하는 모습에 천북성의 주민들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진 투사가 이제 갓 스물을 조금 넘긴 젊은이라는 점 이었다. 앞으로 이 젊은이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가문의 최고 실력자인 홍천효를 잃었으니, 홍씨 가문이 무너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어디서 온지도 모를 젊은이 하나에 의해 수백 년간 천북성을 양분해오던 가문 중 하나가 몰락하고 만 것이다.

* * *

홍천효를 처리한 이준은 요괴를 다시 반지 안으로 회수한 뒤 날개를 펄럭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한편, 한씨 가문 사유지 깊은 곳에 위치한 한 작은 뜰에서는 한설이 다급하게 염력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이준의 뒤를 따라가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막 허공으로 날아오르려던 찰나, 이준의 목소리가 뜰 안에 울려 퍼졌다.

“앞으로 풍뢰북각에서도 한씨 가문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 한씨 가문이 외부에 내 존재를 알리지만 않는다면 계속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거고.”

목소리를 들은 한설과 한율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마당에 나타난 청년을 바라봤다. 한설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는 한설의 모습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풍뢰북각 사이의 문제 때문에 고초를 겪은 한씨 가문의 딸이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다.

“하하, 괜찮아. 내가 저지른 일인걸. 나중에 풍뢰각도 두렵지 않을 정도의 실력이 된다면 다시 한씨 가문에 찾아올게. 그 때 가서 내쫓지나 말라고.”

이준의 천연덕스러운 태도에 한설은 붉은 아랫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고마워.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 거야!”

그러자 곁에 있던 한율이 한설을 끌어안으며 대신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니에요. 제가 벌인 일을 제가 수습했을 뿐인데요 뭐. 다른 분들에게도 저 대신 안부 좀 전해주세요. 중주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기분이 좋네요.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났으면 좋겠네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이준의 등 뒤에 달려있던 거대한 뼈 날개가 가볍게 움직이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곧이어 한비와 한철을 비롯해 한씨 가문 사람들이 마당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청록색의 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지는 이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분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준. 이 은혜는 언젠가 반드시 갚겠네!”

* * *

이준이 천북성에서 수키로 미터 떨어진 지점까지 날아갔을 무렵, 그의 몸속에서 요동치던 거대한 영혼 에너지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 된 건가…….”

몸속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자, 이준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그는 잠시 아래를 둘러보다 가까이에 있는 산으로 들어가 적당한 바위를 찾아 그 위에 내려앉았다.

“에너지를 너무 과하게 쓴 탓에 체내에 상처가 생겼구나. 빨리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좋겠다. 괜한 후유증이 생기지 않게 말이야. 그리고 앞으로는 정말 급한 때가 아니라면 내 힘을 빌려 쓰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 요 며칠 보니 네가 내 영혼의 힘을 쓸 때마다 네 몸에 조금씩 내 영혼의 흔적이 남더구나. 이게 많아지면 나중에 네 몸과 영혼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게 될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천화존자의 말에 이준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며칠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사실이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약로의 힘을 빌려 쓸 때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점 이었다. 물론 천화존자가 악의를 가지고 그런 일을 할 리는 없었으니, 아마도 자신의 스승에게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모양이었다.

‘휴……. 스승님이 계실 때는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문제였는데……. 어찌됐든 앞으로는 조심해야겠어.’

이준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산봉우리 아래에는 깎아지른 듯이 가파른 산 벽이 있었다. 이준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한 사람이 들어가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동굴이 만들어졌다.

당분간은 그 안에 들어가 몸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이번에 풍뢰북각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그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중주는 광활했고, 중주 북부만 해도 과연 아무 단서도 없이 자신을 찾을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넓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풍뢰북각의 세력 범위 내에서 한가하게 얼쩡거리는 것이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닐 것 같았다.

한씨 가문이 조금 걱정되지는 했지만, 설마하니 두 번이나 그들을 인질로 삼을 것 같지는 않았다.

중주 전체에서 손꼽는 풍뢰각이 천북성에 있는 작은 가문을 두 번이나 인질로 삼는 것은 그들의 명예를 스스로 짓밟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을 마친 이준은 몸을 움직여 동굴 속으로 들어가 연금비약을 한 알 집어삼킨 뒤 양손으로 수련의 인을 만들어 천천히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 * *

풍뢰북각과의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장장 3일이 걸렸다.

삼일이 지났음에도 그의 몸 안에는 여전히 미세한 영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체내에 남은 천화존자의 영혼의 기운은 아주 미약해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주 확실하게 몸 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영혼의 기운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휴……. 정말 조심해야겠는걸.”

몸 속에 남아 있는 영혼의 흔적을 확인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염력이나 이화를 이용해서 제거해 보려고도 했지만, 몸 속 깊숙한 곳에 새겨진 천화존자의 영혼의 흔적은 지워지기는커녕 옅어지지도 않았다. 일찍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영혼이 몸을 떠나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영혼의 흔적이 많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화존자가 일찍 알려주어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문제를 알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수련을 마쳤을 무렵, 이준의 염력은 다시 최고조로 회복되어 있었다. 확실히 9성 투황의 염력은 7성 투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흠……. 연금비약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까?”

눈을 뜬 이준은 중얼거리며 약로가 남기고 간 까만 저장반지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 안에는 약로가 남긴 연금비약의 조합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것은 얼음불꽃의 정수와 더불어 지금은 곁에 없는 스승이 남긴 가장 중요한 보물이었다.

그 안에서 한 시간 가량 조합표를 뒤적이자, 마침내 도움이 될 만 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청혼단……. 6레벨 최고급 연금비약. 자신의 것이 아닌 영혼의 힘을 모두 씻어낼 수 있으며 영혼을 따뜻하게 보양하는 효과가 있다. 필요한 재료는 청체초 얼음열매, 수정연꽃…….”

영혼의 힘을 이용해 조합표를 읽어 내려가자, 그 안의 내용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6레벨 최고급이면…… 만들 수 없는 물건은 아니네. 몸속에 영혼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고 당장 큰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천천히 약재부터 찾아봐야겠어.”

해결방법을 찾은 이준은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약방문을 다시 저장반지 속으로 넣어 두고 네 개의 은색 족자를 펼쳐보았다.

휘황찬란한 빛을 발하는 은색 족자에는 새빨간 문양이 한가득 새겨져 있었다. 이 네 개의 두루마리는 모두 풍뢰북각의 장로로부터 얻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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