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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70화 (470/818)

제470화. 호랑이 굴

이준이 빨아들이는 천지의 에너지의 양은 실로 방대했지만, 여러 차례의 담금질을 거친 뒤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순수한 에너지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준은 티끌을 모아 태산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차분히 천지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사실 황금단의 에너지는 이미 모두 흡수한 상태였지만, 이준은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에 2성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아직 에너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연금비약의 힘을 빌어 승급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 뿐 이었다. 이번 기회를 헛되이 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또 다시 사흘이 지났지만, 이준은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천지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었다.

이준의 곁을 지키고 있는 하늘요괴는 드문드문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은색 요괴가 주먹을 휘두를 때 마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마수가 핏덩이가 되어 쓰러졌다. 투종급 요괴가 곁을 지켜주는 덕에 마수가 득실대는 산 중에서도 이준은 조금의 방해도 없이 수련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에너지를 흡수하기를 8일째 되던 날, 마침내 머리 위에 떠 있던 에너지 소용돌이가 미세하게 떨리며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준의 몸 주위에 미미한 공간의 파동이 일어났다.

새까만 동공은 이제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초점이 없었다.

영혼의 힘을 활용해 몸 안을 훑어보니 혈관을 타고 흐르던 염력이 고삐 풀린 말처럼 온 몸 구석구석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 보였다.

요동치는 염력이 신체의 모든 부위에 녹아 들어가자, 이준의 검은 눈동자가 별처럼 빛을 발했다.

그는 이미 7성 투황 단계를 뛰어 넘어 8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8성을 돌파하고 나서도 에너지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염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이준의 옷자락이 폭풍을 만난 듯 펄럭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가 앉아 있던 거대한 돌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고, 주위를 가득 메운 구름마저 두 갈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염력이 막 8성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무렵, 형태가 보이지 않는 얇은 막 하나가 팽창하는 기운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이준은 주먹을 꽉 쥔 채 온 힘을 다해 9성으로 향하는 벽을 가로막은 얇은 막을 뚫기 위해 애썼다.

“뚫리란 말이야!”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지르자, 발아래에 있던 거대한 돌이 산산이 부서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탁!

그 순간, 마지막 방해물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잠시 멈춰있던 기세가 다시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9성을 넘어서는데 성공한 이준은 마치 시체처럼 바닥에 늘어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지에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의 눈빛은 환희로 가득했다.

이제 9성 투황이었다. 1성만 더 넘으면 드디어 투종인 것이다.

물론 이 1성을 뛰어넘지 못해 수많은 강자들이 투종이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지만, 이준은 그 벽을 넘어설 자신이 있었다.

“허허, 황금단의 힘을 빌었다고는 하나 정말 한 번에 두 단계를 뛰어넘을 줄이야. 이런 친구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걸. 재능도 보통이 아니지만, 인내심도 대단해.”

이준이 숨을 몰아쉬던 그 때, 천화존자의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아닙니다. 답답해서 소리를 한 번 질러봤을 뿐인 걸요. 이렇게 승급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천화존자의 칭찬에 이준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헤실헤실 웃음을 지어보였다.

“껄껄, 겸손하기까지, 정말이지 자네 앞날이 기대되는군.”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자, 사지에 힘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에서 일어나 천천히 몸을 비틀어보니 온 몸에서 활화산이 폭발하듯 염력이 용솟음치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9성 투황의 느낌인가?”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자, 공간에 파동이 일어나며 날카로운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7성 투황일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이준은 산 위의 맑은 공기를 깊이 들이마신 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늘 요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황금단도 먹었으니 이제 가봐야겠다. 심운을 죽인 이상 풍뢰각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아직까지는 풍뢰북각의 강자들을 당할 수 없으니 빨리 공간 통로가 있는 도시를 찾아서 북부를 떠나야겠어.”

무사히 승급을 마친 이준은 하늘 요괴를 다시 저장반지 안에 회수한 뒤 곧바로 뼈날개를 펼쳤다.

거대한 뼈 날개가 펼쳐지자 광풍이 일어나며 산 정상의 구름이 거짓말처럼 흩어지며 그의 앞길을 터주었다.

* * *

거대한 뼈 날개를 펄럭이며 몇 시간을 비행하자, 푸른 숲이 저만치 멀어지고 도시의 윤곽이 서서히 이준의 시야 안에 들어왔다.

이준은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상으로 내려간 뒤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채 걸어서 성의 입구로 향했다.

도시에 도착하니 성문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성벽에는 은색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방이 붙어 있었다. 아래쪽에 은색 휘장이 하나 달려 있었다. 심운의 가슴에 달려있던 풍뢰북각의 휘장이었다. 이는 풍뢰북각에서 수배령을 내렸음을 의미했다.

“저 이준이란 녀석이 풍뢰북각의 심운을 죽였다며. 지명수배령이 내려질 만도 하지.”

“말도 안돼. 저 친구 딱 봐도 스무살 언저리 같은데 심운은 투종이잖아.”

“에이, 그때 천북성에서 일어났던 사건 몰라? 홍씨 가문이 얼마나 처참하게 깨졌는데.”

“지금 와서 지명수배 한다고 무슨 소용이래? 벌써 도망갔을 텐데. 이미 북쪽 지역을 떠났을 수도 있고 말이야.”

“지명수배가 끝이 아니야. 천북성 한씨 가문 사람들 말이야, 풍뢰북각 사람들한테 붙잡혔어. 그들을 인질로 사용해 이준을 찾아내려는 셈이지. 그런데 이준이 바보도 아니고 천북성에 풍뢰북각 강자 세 명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걸 아는데 제 발로 불길에 뛰어들겠어?”

그 순간, 이준의 몸이 파르르 떨리며 살기 어린 한마디가 그의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풍뢰각…….”

한씨 가문이 풍뢰북각의 강자들에 의해 연금 됐다는 소식에 이준의 눈에는 곧바로 살기가 돌았다.

이번 일로 인해 한씨 가문이 풍뢰북각의 눈 밖에 날지도 모르겠다는 것 정도는 예상했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이준이었다.

한씨 가문은 천북성을 양분하고 있는 세력 중 하나였고, 엄밀히 따지자면 이번 일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홍씨 가문이었다. 게다가 풍뢰북각과 문제를 일으킨 것은 한씨 가문의 사람들이 아니라 외부인인 이준 자신이 아니던가.

풍뢰북각에서 굳이 한씨 가문 사람들을 데려간 이유는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이준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을 인질로 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중주 북부를 지배하는 세력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치졸한 수법이었다.

뻔한 함정이었다. 이준 입장에서야 한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여기부터는 알아서 해결하라며 돌아서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준은 그 정도로 냉혈한이 되지 못했다. 그는 적에게는 한없이 냉정했지만, 한번 자기편이라고 생각한 사람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다정했다.

사실 약로를 비롯해 동해, 아라, 메두사 그리고 천화 존자 같은 강자들이 그에게 몰려드는 것도 모두 이런 성격 탓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때 그 때의 이해관계에 따라 관계를 맺고 끊었지만, 이준은 언제나 자기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의리를 지켰고, 이것이 기라성 같은 강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비겁한 놈들……. 이런 놈들이 정말로 중주 최고의 세력 중 하나라고?”

이준이 분노로 눈을 빛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그의 머릿속에 천화존자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네 설마 천북성에 쳐들어 갈 생각인가? 엄청난 강자들이 함정을 파놓고 널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따지고 보면 한씨 가문이 화를 당한건 제 탓이니, 제가 그들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하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그 맞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정말이지 갈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군. 자네에게 이미 스승이 있지 않았다면 내가 제자로 삼고 싶을 정도야.”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천북성으로 가겠다는 이준의 말에 천화존자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끄럽습니다.”

이에 이준도 천화존자를 따라 살며시 웃음을 지은 뒤 천천히 뼈날개를 펼쳐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있으니 상대가 투종 최고 수준만 아니라면 목숨을 잃을 일은 없을 걸세.”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 * *

최근 며칠 사이 천북성의 분위기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수많은 풍뢰북각의 강자들이 명령을 받고 날아와 도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에 천북성에 자리를 잡고 있던 크고 작은 세력들은 풍뢰북각이라는 이름에 눌려 감히 입조차 벙긋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들이 걱정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풍뢰북각 의 강자들은 천북성의 다른 세력들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한씨 가문이었다. 그들은 천북성에 도착한 첫 날 한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가두고 대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에 격분한 한씨 가문의 대장로 한비가 풍뢰각 강자들과 싸움을 벌이려 했지만, 풍뢰각의 세 장로들이 나서자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실력으로는 풍뢰각의 장로 한 명을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비의 저항이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풍뢰북각의 강자들은 그들을 가둬놓기만 할 뿐, 안까지 들어와 괴롭히지는 않았다.

풍뢰북각의 이런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 그들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준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준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북성 곳곳에 풍뢰북각의 강자들이 가득했고, ‘풍․뢰․전’ 세 장로는 그 하나하나가 이준의 손에 죽은 심운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곳에 찾아온다는 것은 마른 장작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 * *

그 시각, 한씨 가문의 조용한 작은 뜰 안에서는 핼쑥한 얼굴을 한 여인 하나가 멍한 표정으로 앉아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설아, 매일 여기로 오는구나.”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던 여인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언니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니, 혹시…… 그 사람 돌아올까?”

“아마도…….”

한율의 대답에 한설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사실 난 이준이 안 왔으면 좋겠어. 그 사람이 강한 건 알겠지만 풍뢰북각의 장로 셋을 혼자서 상대할 정도는 아니잖아.”

한설의 기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런데 정말 오지 않는다면 실망하지 않겠어?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한율이 나지막이 웃음을 짓자, 한설의 입에서 또 다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조금 실망은 할 것 같아. 그래도 안 왔으면 좋겠어.”

“바보 같이 착해서는…….”

언니의 따뜻한 한마디에 한설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 같았다.

콰광!

한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북성 상공에서 천둥과도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이내 청록색의 빛줄기가 어두운 밤하늘을 찢고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준? 이준이 온 거야?”

“와, 정말 겁도 없네.”

“미쳤구만……. 제 정신이 아니야.”

“쯧쯧, 젊은 친구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이준의 등장에 며칠 동안 쥐 죽은 듯 고요했던 천북성 전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며 허공을 올려다봤다.

그 시각, 한씨 가문의 저택을 지키고 있던 풍․뢰․전 세 장로 역시 칠흑 같은 밤하늘 위에서 반짝이는 청록색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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