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8화. 투종 강자의 자폭
이준의 몸에서 터져 나온 해일과도 같은 에너지가 온 하늘을 뒤덮자, 거대한 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이준의 새카만 눈동자에는 일찍이 본 적 없는 진한 영혼의 에너지가 넘실대고 있었다. 흘러넘치는 영혼의 힘에 의해 그의 검은 색 눈동자는 점차 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마침내 영혼의 힘이 정점에 이르자, 그의 눈동자 전체가 신비한 은색으로 뒤덮였다.
“열 손가락을 못 쓰게 만든다고 했죠?”
이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공포를 느낀 심운의 등에서는 어느새 식은땀이 비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 놈이 대체 뭘 한 거지?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이건 7성, 아니 8성 투종에 맞먹는 수준의 에너지가 아닌가!’
제 아무리 최고급 비술이라 하더라도 8성 투황을 8성 투종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었다. 이에 심운은 상대가 모종의 수단으로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네 놈의 실력이 진짜인지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심운이 주먹을 불끈 쥐자, 그의 손바닥 안에서 은빛 섬광이 번쩍이더니 기다란 장창 하나가 불쑥 솟아났다.
이준은 저 멀리 상공에서 평온한 눈빛으로 바닥에 서 있는 심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상대를 내려다보던 이준이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순간 영혼의 힘이 요동치며 형태 없는 거대한 에너지가 심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펑!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에너지에 담긴 무시무시한 힘을 직감한 심운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저 정도 영혼의 힘이라면 최소 7레벨 연금술사는 되어야 할텐데! 설마 저 놈이 7레벨 연금술사란 말인가!’
상대의 실력이 눈속임이 아님을 확인한 심운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투종급의 요괴에 천지의 불꽃, 7레벨 연금술사급의 영혼 에너지에 8성 투종급의 염력까지, 무엇하나 이준의 나이에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 힘을 증폭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비술에는 분명히 시간 제약이 있을 터, 지금은 싸우는 것보다 철수해서 놈의 실력이 약해지면 다시 돌아오는 게 낫겠어!’
그렇게 결론을 내린 심운은 곧바로 몸을 돌려 전력으로 번개의 움직임을 펼쳤고, 입으로 휘파람을 불며 빛의 속도로 산을 벗어났다.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에 공중에서 요괴와 싸우고 있던 홍천효와 다른 홍씨 가문 사람들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이 잘못 듣지 않았다면 이는 분명히 사전에 약속한 철수 신호였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어떻게 저 애송이의 실력이 갑자기…….”
홍천효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거대한 영혼 에너지는 보고만 있어도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이에 그는 손에 들린 붉은 대검을 크게 휘둘러 요괴를 떼어낸 뒤 심운의 뒤를 따라 자리를 피하려 했다.
“어딜 가시려고요?”
이준은 곧바로 손바닥을 들어 도망가는 심운을 향해 겨눈 뒤 손바닥을 쥐었다. 지금의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는 없으니, 천화존자의 도움으로 얻은 힘이 사라지기 전에 그를 죽여 버리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이준이 주먹을 쥐자, 백 미터도 넘게 떨어진 곳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공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벽이 형성됐다.
쾅!
정신없이 달아나던 심운은 갑자기 생겨난 공간 벽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부딪혀 버렸고, 공간 벽이 가진 특유의 탄성이 그의 몸을 뒤로 날려 보냈다.
공간 벽에 의해 뒤로 튕겨나간 심운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 그의 가슴을 향해 영혼의 힘이 실린 주먹을 뻗었다.
지금 이준의 주먹 위에는 투종 강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무시무시한 공간의 힘이 덧씌워진 주먹에 놀란 심운은 사력을 다해 염력을 쏟아냈다.
펑—!
다음 순간, 이준의 주먹과 심운의 염력이 응집되어 만들어진 은빛 장막이 부딪히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4성 투종에 불과한 심운의 염력으로 8성 투종에 육박하는 이준의 주먹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심운이 죽을 힘을 다해 만들어 낸 은색의 보호막은 채 1초도 버티지 못 하고 산산이 부서졌고, 그와 동시에 묵직한 에너지가 그의 가슴을 강타했다.
“쿨럭!”
거대한 영혼 에너지와 공간의 힘이 깃든 주먹에 얻어맞은 심운은 거의 백미터 가량을 날아가며 정신없이 피를 토했다.
천화존자의 힘을 빌린 이준의 실력은 7성 내지는 8성 투종에 육박했고, 심운은 겨우 4성 투종에 불과했다. 투종급 투사들 사이에서는 1성 정도만 차이가 나도 승부를 뒤집기가 지극히 어려웠으니, 4성 차이라면 털끝만치도 승산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닥을 나뒹굴며 피를 토하던 심운은 제 자리에 멈추고 나서도 몸을 일으키지 못 하고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방금 전 이준의 일격에는 공간의 힘 뿐 아니라 영혼의 에너지까지 깃들어 있었으니, 주먹이 닿는 순간 영혼의 힘이 그의 몸속에 파고들며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큰 손상을 입고 말았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저 녀석 손에 죽을 수도 있겠어.’
공포에 질린 심운은 산 안쪽으로 도망가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또 다시 이준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준! 네가 날 죽이면 풍뢰각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다!”
이준이 가까이 다가오자, 심운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외쳤다.
“글쎄요. 안 죽인다고 해서 앞으로 절 가만둘 것 같지도 않은데요.”
“대체 원하는 게 뭐야? 말만 한다면……”
다음 순간, 심운이 뒤쪽으로 몸을 날리며 주먹만 한 크기의 은색 구슬을 집어던졌다.
펑! 펑! 펑!
은색의 구슬은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고, 심운은 그 틈을 타 황급히 숲 속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그가 채 열 걸음도 떼기 전에 그의 눈앞에 거대한 영혼의 힘이 담긴 주먹이 날아들었다.
“쿨럭!”
이준의 주먹에 맞은 심운은 또 다시 붉은 피를 뿜어내며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 사이 홍천효는 저 멀리 허공에서 피를 토하며 바닥을 나뒹구는 심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드려야 할까요?”
홍씨 가문 사람 중 한 명이 마른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철수한다. 지금 심운 장로를 도우려다가는 우리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하지만 이준을 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홍천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심운을 버리고 천북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한편,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는 심운의 입과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전신에 진흙이 묻어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영혼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타격을 받았고, 체내의 혈관 역시 너덜너덜 찢어져 걸레가 되어 있었다.
“또 도망가실 겁니까?”
이준이 싸늘하게 심운을 응시하며 물었다.
“이 개 같은 놈. 날 죽일 셈이라면 너와 같이 죽겠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심운의 눈이 갑자기 빨갛게 변하며 그의 몸이 눈 깜짝할 새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심운의 몸이 빠르게 부풀어 오르자, 이준은 황급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동시에 손바닥을 펼쳐 공간의 힘을 내뿜었다.
“공간 봉쇄!”
곧이어 심운 주위의 공간이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더니 공간의 힘이 창살 형태로 응집되어 감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공간의 힘을 실체화 시켜 공간을 봉쇄하는 것은 5성 투종조차 하기 힘든 일 이었지만, 천화존자의 힘을 빌린 지금의 이준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가 공간 통로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공간의 힘을 손에 넣지 못 했다면 이런 감옥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공간 감옥이 만들어지는 사이에도 심운의 몸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쾅!
곧이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심운의 몸이 터져나가며 생긴 충격파가 성난 파도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준이 만들어 낸 공간 감옥조차 투종 강자가 자폭하며 만들어 낸 에너지를 견디지 못 하고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뒤이어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온 숲이 뒤흔들리며 지면이 갈라지고, 거대한 바위가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이준은 해일처럼 사방을 휩쓰는 거대한 에너지의 파도를 피해 잽싸게 머나먼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아득히 높은 하늘 위에서 바라보니 투종 강자의 자폭이 만들어 낸 광경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발아래 펼쳐진 드넓은 산과 숲은 눈 깜짝할 새에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이준을 피해 저 멀리 달아나 있던 홍천효는 심운이 자폭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뱉었다.
“풍뢰각의 장로가 자폭을 선택하다니……. 저 어린 놈이 그리도 대단하단 말인가.”
홍천효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후회와 공포가 묻어나고 있었다. 설마하니 자신의 손자인 홍신보다도 어린 투황 하나가 이런 무시무시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었다. 이런 자를 적으로 돌린 이상 이제 홍씨 가문의 운명도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희망이.
“확실히 대단한 놈이긴 하지만 풍뢰각의 장로를 죽이고도 곱게 넘어갈 수는 없을 거다.”
* * *
한편, 폐허가 된 산의 다른 한 쪽 끝에는 하얀 옷을 입은 노인과 한설이 숲 속에 몸을 숨긴 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쳤나 봐요, 정말…….”
투종 강자의 자폭이 만들어 낸 무시무시한 폭발의 위력에 한설의 얼굴은 완전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투종 강자를 자폭하게 만들다니……. 저 젊은이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서운 실력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이준은 괜찮겠죠?”
하늘을 올려다보는 한설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래. 괜찮은 것 같구나. 설마하니 공간 감옥을 만들어낼 줄이야…….”
하얀 옷을 입은 노인의 얼굴에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앞으로가 걱정이구나. 그 친구가 심운을 죽였으니 풍뢰각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홍천효 그 놈의 성정으로 보아 천북성으로 돌아가자마자 풍뢰북각에 보고를 올려 풍뢰각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할게다. 오늘 일로 인해 저 젊은이가 홍씨 가문에 보복을 할까 두렵겠지.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풍뢰각에 심운의 죽음을 알릴게다.”
이 얘기를 들은 한설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됐다. 얘야, 너무 걱정할 거 없단다. 저 친구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니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게다. 실력도 실력이고, 성격도 무른 것 같지 않으니 중주 같이 위험한 곳에서도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게야.”
노인의 말에 한설은 조금 안심한 듯 표정을 풀며 다시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