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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66화 (466/818)

제466화. 번개의 움직임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피화살을 발견한 이준은 잽싸게 날개를 펼쳐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심운의 피는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빠르게 이동해 이준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통증은 없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자명했다.

“우리 풍운각의 피의 각인을 새겨 놨으니 네 놈이 어딜 가든 우리 풍운각이 찾아갈 것 이다! 어디 한 번 숨어 보거라!”

이준은 잠시 살기 어린 눈으로 잠시 심운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한씨 가문 사람들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뼈 날개를 움직여 천북성 상공을 가로 질러 빠르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사라졌다.

이준이 사라지고 몇 초 되지 않아 홍천효가 천석대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처참한 몰골로 가는 숨을 몰아쉬고 있는 홍익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심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천석대 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설마 하니 새파랗게 어린 투황 하나가 투종 강자 두 명의 포위를 뚫고 무사히 달아나다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 한 일이었다.

* * *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위에는 별똥별처럼 밝은 형체 하나가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전력으로 달아나면 홍천효도 금방 따라오진 못할 거고, 심운은 부상이 심하니 감히 쫓아오지 못 하겠지. 홍천효 한 명 정도라면 하늘 요괴와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자 이준의 마음에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고개를 돌려 멀어져 가는 천북성 쪽을 힐끗 바라봤지만, 아직까지는 누구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쫓지 않는 것은 아마도 심운의 부상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몸에는 이미 피의 각인이 새겨진 상태이니 괜히 홍천효 혼자 자신을 쫓다가 각개격파 당하느니 심운의 부상이 회복되면 두 사람이 함께 자신을 찾아 올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염력이나 외상을 치료할 연금비약이 들어있는 그의 저장반지를 훔쳐왔으니, 빠른 시간 내에 그들이 자신을 추격하지는 못 할 것이라는 점 정도였다.

생각을 정리한 이준은 그대로 날개를 펄럭이며 멀리 떨어진 산속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산의 산등성이 위에 내려 앉은 그는 외진 곳을 찾아 동굴을 하나 만든 뒤 돌로 입구를 막고 월광석으로 주위를 밝혔다.

“실수였어. 풍뢰각이 번개의 움직임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몰랐는데. 아무리 유용하고 신기한 공법이라도 그렇지 그래 봤자 2격인데…….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있는건가.”

바닥에 주저 앉아 혼잣말을 하는 이준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져갔다.

“이제 풍뢰각도 완전히 적이 돼 버렸군. 그래도 중주가 이렇게 넓은데 갈 데가 없겠어? 풍뢰각 세력이 중주 모든 곳에 있지는 않겠지 뭐.”

이준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 하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의 손 위에는 아직도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심운의 은색 저장반지가 들려 있었다.

슬며시 영혼의 힘을 밀어넣자, 반지가 강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이준의 영혼의 힘을 밀어냈다.

“이 안에 영혼의 각인이라도 새긴 건가?”

하지만 영혼의 힘을 다루는 것은 이준의 특기였다. 투사로써의 실력만 놓고 보자면야 심운이 그보다 몇 수는 위였지만, 영혼의 힘만 놓고 따지면 오히려 이준이 더 강했다. 그러니 심운이 새겨 넣은 영혼의 흔적을 없애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신 뒤 자신의 영혼의 힘을 이용해 은색 저장 반지를 허공에 띄운 뒤 정신을 집중해 영혼을 힘을 뿜어냈다.

곧이어 그의 영혼의 힘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다이아몬드 형상으로 응집되어 심운의 저장반지와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쨍!

두 물체가 충돌하자 무형의 파동이 저장반지를 중심으로 퍼져 나가며 동굴 벽을 때렸다.

이준은 동굴이 어떻게 되든 말은 오로지 진동을 일으키는 저장반지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그의 몸에서는 거대한 강물처럼 영혼의 힘이 끝없이 쏟아져 나와 계속해서 저장반지를 때리고 있었다.

투종 강자가 새긴 각인은 역시나 강력했다. 하지만 각인은 그저 각인일 뿐이었다. 각인을 새긴 주인은 멀리서도 각인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부상을 입은 심운이 이렇게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이준의 영혼의 힘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쩅그랑’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영혼의 각인이 깨진 순간, 천석대에 앉아 염력을 회복하고 있던 심운이 눈을 부릅뜨며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댔다.

“이준! 감히! 반드시 네 놈을 죽여 버리겠다.”

천석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거의 다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빨리 상처나 고치시오, 소리 지른다고 뭐가 해결 됩니까?”

심운을 보던 홍천효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놈이 내 저장반지에 새겨진 영혼의 각인을 깨뜨렸소!”

심운의 한마디에 홍천효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투황밖에 안 되는 놈이 어떻게 당신이 만든 영혼의 각인을 푼단 말입니까? 그 요괴도 보아하니 염력을 다루지는 못하는 것 같던데요.”

“제가 알 턱이 있나요.”

심운이 어둡게 내려앉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내 상처만 치유되면 곧바로 움직입시다. 내가 녀석 몸에 각인을 새겨 놨으니 어디로 가든 놈을 쫓을 수 있을 거요.”

“물론이요. 우리 홍씨 가문의 투사들을 이렇게나 많이 죽인 놈을 살려둘 수는 없지요.”

“풍뢰북각 쪽에도 소식을 전했으니 이제 곧 풍뢰북각의 강자들이 지원을 올 것입니다. 우선 녀석의 날개부터 부러뜨려 도망부터 못 가게 합시다!”

심운의 눈과 말투에서는 감출 수 없는 짙은 살기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 * *

어두운 동굴 한 가운데에서는 은빛의 저장 반지가 은은한 빛을 발하며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저장반지를 둘러싸고 있던 밝은 빛이 차츰 흐려졌다.

이준은 눈을 뜨기 무섭게 저장 반지 안에서 은색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쥐었다.

그 은색 두루마리의 크기는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컸고, 자세히 보면 표면에 가느다랗게 빨간 문양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이게 뭐지?”

이준은 은빛의 두루마리를 손에 든 채 잠시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가 그 물건을 요괴의 손에 쥐어주었다.

“얼어.”

족자를 받아든 요괴는 이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망설임 없이 그것을 펼쳐보였다.

펑!

족자가 열리자, 눈부신 은빛 섬광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돌연 허벅지만한 두께의 굵은 번개가 요괴의 가슴을 강타했다.

번개에 얻어맞은 요괴는 그대로 날아가 동굴 벽에 세차게 부딪히고 말았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는지 동굴 벽이 쩍 갈라지며 동굴 전체가 뒤흔들렸다.

“역시 뭔가 있었어…….”

두루마리 안에 담긴 번개의 위력을 목격한 이준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일 자신이 그 공격을 받았다면 뼈도 못 추리고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역시 튼튼한 요괴에게 맡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 되었던 이준은 가만히 앉아 바닥에 떨어진 은색 두루마리를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지나도 아무런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자, 바닥에 앉아 있던 이준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은색의 신비한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번개 분신은 고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2격 상급의 무투기로, 이 무투기를 최종 단계까지 익히면 번개의 힘을 이용한 분신술을 할 수 있다. 단, 번개 분신을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번개의 움직임을 익혀야 한다. 분신의 실력은 본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며, 본체가 죽지 않으면 분신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1격 무투기에 상당할 정도의 신비로운 능력이다.」

은색 족자 안에 담긴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이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본체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분신이라니. 게다가 본체가 죽지 않는한 사라지지 않는 분신이라면 시전자의 실력이 투황이라면 두 명의 투황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시전자가 투종이라면 갑자기 투종 한명이 더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래서 번개의 움직임의 소재에 대해 그렇게 민감하게 굴었던 거로군……. 이것만 잘 익혀놓으면 같은 계급의 투사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소리잖아.”

본래대로라면 외부인이 운 좋게 이 두루마리를 손에 넣는다 해도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이미 번개의 움직임을 익힌 상태였다.

“과연……. 이 정도라면 그 늙은이가 날 죽이려 들었던 것도 이해가 가는걸.”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이준의 영혼의 힘이 빠른 속도로 은빛 두루마리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이준의 눈앞에는 어느 새 처음 보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루마리 안의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번개 빛이 하늘에서부터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고, 쉴 새 없이 천둥소리가 귀를 때렸다.

폭포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강렬한 번개 빛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쉴 새 없이 내리치고 있는 번개는 사실 진짜 번개가 아니라 족자 안에 남아 있는 영혼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흩어져!”

이준이 손을 들어 영혼의 힘을 내뿜자, 농후한 영혼의 힘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며 은빛의 번개를 와르르 무너뜨려 자그마한 은색의 점으로 변화시켰다.

족자 안에 남아 있던 영혼의 힘을 모두 부순 뒤 주변을 둘러보자, 시선이 닿는 곳마다 신비한 은빛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발 아래로는 거대한 은색 호수가 출렁이고 있었으며, 아름다운 호수의 수면 위로는 전기로 만들어진 뱀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공간 안에는 오로지 은빛 에너지와 번개만이 가득했다. 번개 분신과 관련된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그 때, 멍한 표정으로 은빛 호수를 내려다보던 이준의 눈에 무언가 이상한 물체 하나가 포착됐다.

웅장한 영혼의 힘이 부드럽게 은빛 호수의 수면 위를 쓸자, 그 위를 휘감고 있던 번개 빛이 빠르게 흩어지며 거울 같이 맑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맑아진 호수 위로는 잔잔한 물결이 일어났고, 그 위로 번개가 모여들어 글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날개를 펄럭여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자, 수면 위에 새겨진 은빛 글자가 하나하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준은 수면 위에 새겨진 글자를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가며 머릿속에 담았다.

그러나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정보들이 번개 분신의 수련 방법인 것은 확실했으나,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갈피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풍뢰북각의 장로가 가짜를 들고 다니는 것은 아닐텐데……. 왜 수련법이 이 모양이지? 빠진 부분도 많은 것 같고 순서도 엉망이고…….”

이에 이준은 가만히 눈을 감고 차분하게 자신이 읽은 글자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이 지났을 때, 이준은 ‘번개 분신’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만 이 무투기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수련법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아마도 나머지는 또 다른 장로들의 손에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모두 모아야 비로소 완전한 번개 분신의 수련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준의 입가에서 아쉬움 섞인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 생각해보면 이렇게 나눠서 보관하는 게 맞지. 이 정도 무투기를 장로 한 명이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풍뢰각으로써는 엄청난 손실일 테니까. 어쨌든 기회를 봐서 나머지 두루마리를 손에 넣어야겠어. 번개 분신만 제대로 익힌다면 앞으로 엄청난 힘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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