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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62화 (462/818)

제462화. 변화

먹이를 집어삼키는데 실패한 붉은 번개는 마치 감지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다시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준의 몸은 또 다시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고, 붉은 번개가 다시 그 뒤를 쫓았다.

집요하게 자신의 뒤를 쫓는 번개의 모습에 이준의 얼굴에도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 공격은 홍신이 가진 최고의 기술임이 분명했다. 번개가 내리치는 곳 마다 공간이 뒤틀리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2격 무투기는 되는 것 같았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어.’

예닐곱번 정도 공격을 피했음에도 여전히 번개가 자신을 쫓아오자, 이준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내려앉았다. 이대로 피하기만 해서는 도저히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이에 이준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투기로 정면에서 상대의 기술을 깨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황금 사자의 포효!”

생각을 마친 이준은 곧바로 입을 벌려 기묘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실질적인 음파와 맞부딪히자, 붉은 번개는 마치 사지가 묶인 야수마냥 자리에 묶인 채 포악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붉은 번개가 이준의 속박에서 풀려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사이 이준은 번개의 움직임을 활용해 번개와 최대한 거리를 벌린 채 손으로는 바삐 인을 맺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붉은 번개가 그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이준의 손에서 눈부신 청록색 빛이 터져 나왔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청록색 염력 덩어리는 마치 진짜 수정인 것처럼 단단한 결정을 이루고 있었고, 보석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양과는 달리 그 안에는 가공할만한 에너지가 담겨 있었다.

“바다의 힘!”

두 물체가 충돌하는 찰나, 붉은 번개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섬뜩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깨져라!”

이준이 나지막이 소리치며 인을 바꾸자, 초록색 수정체가 더욱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붉은 번개를 집어삼키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모든 힘을 쥐어짜낸 필살의 무투기마저 허무하게 사라지는 모습에 홍신의 얼굴은 완전히 사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번개가 완전히 사라지자, 이준은 곧바로 인을 풀고 바다의 힘을 거두어 들였다. 이 자리에서 단순히 홍신을 이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자칫 그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이는 풍뢰각에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사안이 되어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무투기를 해제한 이준의 몸이 돌연 홍신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상대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자, 홍신은 황급히 망치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가 아직 자세를 잡기도 전에 난폭한 에너지가 그의 몸을 세차게 가격했다.

“커윽!”

복부에 전해지는 강한 충격에 홍신의 입에서는 또 다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가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검은 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쳤다.

“내가 졌어!”

아래로 떨어지는 검을 보며 홍신이 다급히 소리쳤다.

쾅!

다음 순간, 이준의 검이 홍신의 머리 조금 위쪽에 떨어졌다. 홍신은 이미 비굴한 자세로 잔뜩 웅크린 채 바닥에 붙어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천북성 최고의 천재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청년의 손에 패배하다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정말로 홍신을 이기다니…….”

한씨 가문 자리에 앉아 있던 수많은 한씨 가문 사람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려있는 홍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짝짝짝짝!

잠시 후,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젊은 천재들이 펼친 화려한 전투에 감탄한 사람들은 연신 환호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쳐대고 있었다.

한편, 홍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은 완전히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한씨 가문을 집어삼키기 위해 세웠던 계획이 물거품이 돼버린 것도 모자라 정체 모를 사내 하나에게 가문 최고의 기대주가 비참하게 패배했으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이준이 몸을 천천히 돌리자, 바닥에 누워 있던 홍신이 증오에 찬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보다가 손을 뻗었다.

“대단하십니다. 좋은 경험…….”

하지만 이준이 패배한 홍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팔을 내미는 찰나, 그의 소매 안에서 날카로운 은색 화살 하나가 쏘아져 이준의 몸을 관통했다.

홍신의 행동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준은 자신을 살려주고,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는데 도리어 상대의 목숨을 노리다니, 참으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홍신의 번개 화살이 이준의 몸을 꿰뚫었음에도 그의 몸에서는 피 한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잔상이었어?”

이준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형상이 서서히 흩어지자, 홍신이 잽싸게 몸을 일으켜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굳이 죽고 싶었나 보군요.”

그 때, 홍신의 귓가에 무서울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헉!”

다음 순간, 홍신의 가슴팍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홍신은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풀썩 쓰러졌고,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시체처럼 움직이지 못 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낼 이준이 아니었다.

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던 청년은 돌연 짐승처럼 돌변해 바닥에 쓰러진 상대의 배를 온 힘을 다해 걷어찼고, 이에 홍신의 몸은 끈 떨어진 연처럼 힘없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회색 옷의 노인은 재빨리 염력으로 그물을 만들어 홍신을 붙잡았다.

황급히 홍신의 상태를 살피던 노인의 얼굴이 전에 없이 어둡게 내려앉았다.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다행히도 아직 숨은 붙어 있었지만 방금 전 공격으로 인해 온 몸의 혈관과 단전에 위치한 염력 회오리가 박살나 치료를 한다 하더라도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할 것이 뻔했다.

“네 이놈! 감히 우리 풍뢰각 사람을 죽이려 들다니!”

기절한 홍신을 홍씨 가문에게 건넨 노인은 이준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러댔다.

잠시 후, 홍신의 상태를 확인한 홍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도 대번에 살기가 돌았다.

“이 자식! 감히 내 아들을…… 우리 신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죽여 버리겠다!”

아들이 눈앞에서 불구가 되자, 홍익이 곧바로 염력을 폭발시키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그 공격을 피하지 못 했으면 난 시체가 되어 있을 텐데, 이 정도에서 끝난 걸 다행인줄 아세요.”

이준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 게 뭐냐! 내 아들을 불구로 만들어 놨으니 나도 네 놈 목숨을 가져가야겠어!”

“그 전에 네 놈이 번개의 움직임을 어디서 배웠는지 말해 보거라. 풍뢰각에 너 같은 제자는 없어!”

바로 그 때, 회색 옷의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광장 안으로 날아왔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천석대 주위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준과 홍신의 대결을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천석대 위를 바라봤다. 홍신이 폐인이 된 것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상대를 해하려 한 대가가 아니던가.

“홍익!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이준이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한씨 가문의 투사들은 곧바로 높은 전망대 위에서 뛰어내려 이준의 곁으로 달려갔다.

“흥, 내 아들이 이렇게 다쳤는데, 저 놈을 살려 보내란 말입니까! 우리 홍씨 가문은 저 놈을 시체로 만들기 전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소! 설마 한씨 가문은 저 정체도 모르는 애송이 때문에 우리와 전쟁이라도 벌일 셈인가!”

“흥, 이준은 우리 한씨 가문이 데려온 손님입니다. 우리 한씨 가문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분을 외면한다면 앞으로 그 누가 우리 한씨 가문을 도우려 하겠습니까? 게다가 이 대결은 처음부터 홍신이 제안한 것이고, 정당한 대결 끝에 패배한 것입니다. 천석대에서 대결을 하다가 한쪽이 죽는다면 그 일에 대해서는 따져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거늘, 이 무슨 추태입니까! 전쟁을 하려면 하시지요!”

보통 자기 가문 사람도 아닌 외부인을 위해 전쟁을 치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씨 가문이 발을 뺀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한씨 가문을 돕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한철의 성품상 그런 이해득실을 떠나 자신의 두 딸을 위해 기꺼이 싸움에 나선 이준을 죽게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한철이 이준을 두둔하고 나서자, 홍익의 얼굴이 점점 더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유야 어찌됐든 가문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자신의 아들이 폐인이 됐는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한씨 가문이 이렇게 배짱이 좋은 줄은 미처 몰랐군요.”

바로 그 때, 대결이 벌어지는 내내 홍익의 곁을 지키던 회색 옷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노인의 가슴에는 익숙한 휘장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의 가슴에 달려있는 휘장은 풍뢰각의 일원임을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이에 한철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예의 바른 태도로 노인의 이름을 물었다.

“풍뢰각 분이시군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풍뢰북각의 심운이라고 합니다.”

노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 한철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설마 풍뢰북각의 사대장로인 심운 장로님이십니까?”

“아주 잘 알고 계시는군요.”

노인의 짤막한 답변에 한철의 이마에서는 곧바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리기 시작했다. 풍뢰북각의 사대장로라면 중주 북쪽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강자였으니, 만일 그가 이 일을 가지고 한씨 가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이준을 지키다가 정말로 가문이 멸망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꼬리를 말 수는 없다고 생각한 한철은 심운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 장로님, 정당한 대결에서 부상을 입는 것은…….”

그러나 회색 옷의 노인은 손을 들어 한철의 말을 끊은 뒤 곧바로 이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우리 풍뢰북각은 정당한 대결 중에 벌어진 일이라면 설령 제자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번 일은 홍신이 자초한 일입니다. 또, 한씨 가문에 살아 있는 대장로와 안면이 있으니, 오늘 신이가 다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설명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라서 그리도 다급히 천석대로 뛰어내려왔단 말인가?

모두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심운이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청년이 어째서 우리 풍뢰각의 번개의 움직임을 익히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풍뢰각이 중주대륙에서 지금 같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번개의 움직임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번개의 움직임 같은 무투기는 풍뢰각에서 새어나가지 않게 엄하게 통제하고 있었으며, 내각의 제자 중에서도 뛰어난 제자들에게만 비밀리에 전수되는 무투기였다. 그런데 그런 무투기를 풍뢰각과는 털끝만큼도 관련이 없는 인물이 사용한 것이다.

풍뢰각에는 수많은 고급 무투기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번개의 움직임은 단연 최고의 무투기 중 하나로 손꼽혔다. 게다가 수련 난이도가 극도로 높아 지금까지 풍뢰각 내에서도 이를 제대로 터득한 이가 없는 무투기인데, 생전 처음 보는 청년이 그것을 사용했으니 풍뢰북각의 장로인 심운 입장에서는 그 연유를 묻는 것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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