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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49화 (449/818)

제449화. 천아성

마침내 그들이 도시 위쪽에 이르자, 노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 하나가 염력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왔다.

“자네들 천아성에 처음 오는 건가? 도시 상공에서는 비행마수를 타선 안 되네.”

노인에게 앞을 가로막힌 비행마수는 돌연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살기로 눈을 번뜩였다. 그러나 이준이 가볍게 발을 구르자, 바짝 긴장하고 있던 마수의 날개에서 힘이 빠졌다.

“천아성에 처음오는거라 그런 규칙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투황 강자로군?”

그 때, 이준을 바라보던 노인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비행마수 쪽을 훑어보던 노인은 그 위에 올라탄 네 명 중 셋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특히 하얀 옷을 입은 여자를 바라보는 순간에는 몸속의 염력이 둔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정도로 무서운 실력을 가진 여자는 우리 노씨 가문에도 거의 없는데 어째서 이런 강자들이 천아성에 찾아온 것이지?’

네 사람의 실력에 겁을 집어먹은 노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이준에게 천아성의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자네의 실력이 강한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천아성 상공에서는 비행마수를 탈 수 없네. 도시 입구 쪽에 우리 노씨 가문이 운영하는 비행마수 정류소가 있으니 그 곳을 이용해줄 수 있겠나?”

“선배님, 천아성에 있는 세력 중 가장 오래된 세력이에요. 천아성의 공간 통로 역시 그들의 소유죠. 그리고 노씨 가문의 가주는 5성 투종 강자라고 들었어요.”

선화의 말에 이준은 가볍게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노란 옷을 입은 노인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수는 바로 정류장에 가져다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천아성의 공간 통로가 어디 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이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지금 공간 통로는 수리중 일세. 그래도 우리 가문 강자들이 최선을 다 하고 있으니 얼마 안 지나 다시 열릴 걸세.”

“닫혔다고요?”

이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하필이면 공간 통로가 고장이라니,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수리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라가 물었다.

“그건 확실하지 않네. 천아성의 공간 통로는 백 년 전 우리 선조님께서 만들어 준 것으로, 그 뒤로 백 년이나 사용했으니 이것저것 잔 고장이 많거든. 만일 통로를 사용해야 한다면 도시에 며칠만 머물다 가게. 금방 고칠 거니까.”

아라가 입을 열자 노란 옷의 노인이 다급히 설명을 늘어놓았다. 자신의 가문에도 투종 강자가 있으니, 아마도 아라가 투종 강자임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일단 도시로 들어가자.”

이준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한 번 노란 옷을 입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준 일행이 탄 비행 마수가 땅으로 내려가자, 노란 옷을 입은 노인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공간 통로에 꽤 큰 문제가 생긴 모양이네. 그게 아니고서는 또 투종 강자의 도움을 받을 리가 없으니…….”

이준은 노인의 말을 따라 굳이 비행마수를 정류소에 대지 않고 조용한 숲 속에서 내렸다.

“다시 돌아가.”

비행마수는 이준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날개를 펼쳐 천천히 상공으로 날아가 시야에서 벗어났다.

“준아, 공간 통로가 닫혔다는데 어떡할 거야?”

아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일단 천아성에서 하루 정도 쉬면서 소식을 기다려 보자. 내일까지도 안 고쳐진다면 도시 중심부로 가봐야지.”

* * *

도시에 들어간 이준 일행은 깔끔한 숙소를 찾아 숙박을 예약한 뒤 다시 거리로 나갔다.

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번화가로 나가자, 어렵지 않게 이런 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노인의 말대로, 천아성의 공간 통로는 이미 닫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과 달리 문제가 제법 심각한 듯 노씨 가문의 5성 투종이 수리에 나섰음에도 문제가 나아지지 않고 있었고, 이에 노씨 가문에서 천아성의 유명한 강자들을 불러 도움을 청했지만 아직도 공간 통로를 고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내일 직접 가서 살펴보는 수밖에 없겠는걸.”

결국 이준은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날, 햇살이 창문을 지나 대지를 비출 무렵이 되자 이준 일행은 산길을 지나 공간 통로가 있는 도시의 중심으로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걸어 다니고 있었고, 공기에는 산림 특유의 습기가 느껴져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길거리 양 옆의 상점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상품들이 깔려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 나왔다.

“노씨 가문에서 공간 통로를 수리할 조력자를 초대하고 있다더라고. 일단 한 번 가보자. 나설지 말지는 상황을 보고 결정하고. 천아성 안에는 실력 있는 세력들이 워낙 많아서 우리에게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

“응.”

다그닥, 다그닥.

이준과 아라가 대화 나누는 사이에 거리 앞 쪽에서 갑자기 말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붉은 옷을 입은 소녀 하나가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 한복판에서 말을 몰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나가신다! 다들 꺼져! 밟혀 죽어도 책임 못 집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 무리가 미동도 않자,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눈썹을 치켜 세우며 소리를 질러댔다.

본래 한 쪽으로 피해주려던 이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는지 표정을 차갑게 굳히며 들었던 발을 다시 내려놓고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너 뭐야!”

이준의 움직임에 화가 난 소녀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채찍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준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손바닥을 들어 날아오는 채찍을 붙잡았고, 채찍을 통해 전해지는 강력한 힘에 빨간 옷을 입은 소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말 등에서 굴러 떨어졌다.

“너 뭐야!”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소녀는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또 다시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가정교육이 엉망이군.”

이준이 소녀를 힐끗 내려다본 뒤 등을 돌리자, 소녀는 바락 바락 악을 써대며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삼촌! 삼촌!”

소녀의 목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두 명의 노인이 빠르게 나타나 이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인의 실력은 대충 5성 투황과 6성 투황 사이였다.

“우리 집 아가씨가 조금 무례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자아이에게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한 눈에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의 기운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아 본 노인은 다소 정중한 태도로 이준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준은 노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어느새 몰려든 구경꾼들은 혀를 끌끌 차며 이준 일행을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천아성에서 빨간 옷 입은 소녀는 유명한 망나니로, 그녀와 마주치는 것 자체가 불운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행실에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천아성을 지배하는 노씨 가문의 가주가 가장 아끼는 손녀이니, 감히 누구도 그녀의 망나니짓을 막을 수 없었다.

“미친 놈! 날 다치게 해 놓고 무사할 줄 알아? 우리 할아버지가 절대 가만히 안 계실 거야. 그 때 가서 무릎 꿇고 빌 바에는 지금 사과하는 게 나을 걸?”

빨간 옷의 소녀가 바닥을 짚고 일어나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자, 돌연 새하얀 손 하나가 그녀의 뺨을 호되게 후려쳤다.

짝!

그 커다란 소리에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굳은 얼굴로 소녀의 따귀를 때린 주인공을 바라봤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의 얼굴에는 빨간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고 입가에서 피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감히 또 그딴 소리 지껄이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널 죽여주지!”

아라의 목소리에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짙은 살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어딜 감히!”

감히 투황 둘을 보호자로 데리고 있는 소녀의 따귀를 때리다니, 미치지 않고 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너무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잠시 넋이 나가 있던 두 노인은 노발대발 소리를 지르며 아라에게 돌진했다.

그 순간, 나지막한 뇌성과 함께 검은 그림자 하나가 두 사람의 막을 막아서며 주먹을 휘둘렀다.

펑!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아니면 더 해보시겠습니까?”

두 노인을 막아선 이준의 눈빛에도 살기가 가득했다. 이미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모양이었다.

이준의 주먹에 담긴 위력에 두 노인은 감히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연신 소녀의 눈치만을 살폈다. 이제 갓 스물을 넘어 보이는 소년이 이렇게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노씨 가문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까 그 소녀는 노씨 가문의 아가씨입니다. 노씨 가문의 체면을 생각해 더 이상 다치게 하는 일 은 없었으면 합니다.”

회색 머리의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이준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오만방자한 태도로 보아 제법 이름 있는 가문의 딸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설마하니 공간 통로의 주인인 노씨 가문의 여식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히 날 때렸다 이거지.”

뺨을 얻어맞고 잠시 정신이 나가있던 소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싼 채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아라를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빨간 옷의 소녀는 갑자기 저장반지 속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손으로 깨뜨리더니 미친 사람마냥 소리를 질렀다.

“감히 나한테 손찌검을 해? 우리 할아버지께서 절대 가만히 안 계실 거야. 네 년 손목을 잘라주마!”

소녀의 욕설에 기분이 상한 아라의 얼굴이 더욱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너 같이 못된 애는 살려두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드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또 다시 아라의 손이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그 순간, 돌연 허공 위에서 회색 빛이 번쩍이며 돌풍이 일었다.

“멈추게. 지금 그건 우리 노씨 가문을 모욕하는 짓이네!”

허공 위에서 터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에 모든 시선이 위쪽으로 향했다.

“설마 정말로 노씨 가문의 가주가 나타난 거야?”

“여기까지 직접 오다니……. 정말이지 손녀를 어지간히 싸고도는군.”

“어휴……. 가주라는 자가 저러니 저 아가씨가 저렇게 미친 망아지마냥 행동하는 거 아니겠어?”

두 노인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달려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오셨습니까!”

인사를 올리는 두 노인의 입가에는 쓴 웃음이 내려 앉아있었다. 설마하니 그 소중한 옥패를 이런 상황에서 부숴버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옥패는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라고 준 것이지, 이런 사소한 싸움에 가주를 부르라고 준 것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파란 옷자락을 흩날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던 노인은 손녀의 부어오른 뺨을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이준 일행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낯선 얼굴들인데, 천아성 사람이 아닌 것 같군?”

“할아버지! 저 사람들이 날 괴롭혔어!”

이준이 대답하기도 전에 빨간 옷 소녀가 대뜸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쏟아냈다. 오늘 아라에게 뺨을 맞은 것은 그녀가 평생 겪어본 일 중에 가장 수치스러운 일 이었다.

“그 손가락 안 치워?”

소녀가 자신과 이준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대자, 아라의 입에서 싸늘한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이에 소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한 아라가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쉭! 쉭!

그 때 바람 소리와 함께 열 댓 명의 사람들이 도로 양측에 세워진 건물 지붕위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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