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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48화 (448/818)

제448화. 중주의 세력

다음 날, 따뜻한 햇살이 본원을 밝게 비췄다. 공터 안에 빼곡하게 들어 선 사람들은 모두 본원 밖의 작은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봉우리 위에는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서 있었다.

“대장로님, 형, 이제 돌아 가셔도 돼요.”

이준은 서천우와 이찬을 바라본 뒤 오하늘과 많은 본원 학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너희 쪽에 사람도 많고 선화는 아직 투황이 아니라 비행이 어려우니 이 비행마수를 쓰거라.”

서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검은 그림자 하나가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천천히 대지 위에 내려앉았다.

“대장로님 정말 감사합니다.”

어두운 분위기를 오래 끌고 싶지 않았던 이준은 곧바로 비행 마수 위로 몸을 날렸고, 보람, 아라 그리고 선화가 그 뒤를 따라 마수의 등 뒤에 올라탔다.

“준아, 조심해서 가!”

비행마수의 날개가 천천히 움직이자, 이찬이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이준은 비행마수의 커다란 머리 위에 우뚝 선 채 대장로와 자신의 형,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과 비석의 후배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대장, 잘 가요!”

본원 입구 한 쪽에서는 비석의 구성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다들 꼭 만나자고! 인연이 된다면 중주에서 봐!”

거대한 비행 마수는 벌써 작은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한참동안이나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고 아쉬운 표정으로 이준이 떠난 방향을 멍하니 바라봤다.

“너무 걱정 말게. 저 녀석은 어딜 가나 잘 할 거야.”

서천우가 이찬을 보며 말했다.

“그럼요. 우리 이씨 가문의 자랑인 걸요.”

“가람 아카데미의 자랑이기도 하지.”

말을 마친 서천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본원으로 돌아갔다.

“저 녀석이 중주에서 원장님을 만나면 또 얼마나 재밌는 일이 벌어지려나?”

* * *

거대한 비행마수의 등 위에서 멀어져 가는 본원을 바라보던 이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형과 친구들을 두고 떠나자니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얘도 데려갈 생각이야?”

아라가 철없이 즐거워하는 보람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내뱉자, 이준이 어깨를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대장로님이 데려가라고 부탁하셔서 어쩔 수 없어. 어쩌면 중주에 이 녀석의 본 모습에 대한 단서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흥. 나도 투황이라고. 설마 내가 방해라도 될까봐 걱정하는 거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보람이 입을 삐죽이며 말하자, 이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중주로 가려면 먼저 ‘천아성’까지 가야 해요. 거기서 공간 통로를 지나야 중주로 갈 수 있거든요.”

그 때,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선화가 입을 열었다.

“공간 통로?”

생소한 명칭이었다. 이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선화가 설명을 늘어놓았다.

“중주에만 있는 통로예요. 투존 강자들이 공간의 힘을 발휘해 두 공간을 이어 놓은 거라고 설명하면 좀 이해가 되려나요? 흑각성이랑 중주 정도의 거리면 투종 강자들도 반년은 걸리니까요. 하지만 공간 통로를 통해 가면 한 달이면 갈 수 있죠. 통로를 만드는 게 힘든 데다 자주 보수 작업을 해줘야 해서 투종 강자가 많은 중주 외에 다른 곳에서는 쓸 수 없는 이동 수단이죠.”

투종 강자가 수리를 하는 공간 통로라니……. 이준은 왠지 도시로 상경하는 촌놈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천아성은 흑각성과 멀리 떨어진 ‘천경산’에 위치해 있는 성으로, 중주로 향하는 공간 통로를 가진 유일한 성이었다.

비행마수의 속도로 흑각성에서 천아성까지 가려면 최소 보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다고 비행 마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선화는 아직 투황 계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천아성까지 날아가려면 가다 쉬다를 반복해야 하니, 그럴 바엔 비행마수를 타는 편이 더 편하고 빨랐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는 하지만 며칠 정도는 큰 상관이 없었다.

날아가는 내내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선화는 이준에게 중주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설명해 주었다.

중주대륙의 넓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고, 그 안에 있는 일부 대형 도시들은 대부분 ‘공간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공간 통로의 창립자는 대부분 도시의 최고 강자 혹은 선조들이었고, 따라서 그 통로는 자연스레 그 통로를 만들어 낸 가문의 소유물이 되었다.

덕분에 공간 통로는 어지간한 강자라 해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이 통로에서 나오는 수익만으로도 한 가문을 지속적으로 먹여 살릴 정도의 수익이 나왔다. 따라서 공간 통로는 중주에서 부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다.

“역시 중주는 중주네. 흑각성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건데 말이야.”

이준이 멍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자, 아라 역시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보탰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공간을 공간의 힘을 이용해서 연결해야 하니, 투존 정도는 돼야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중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만들 수 없겠지. 수리에도 투종이 필요할 정도니까, 다른 곳은 만에 하나 공간 통로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해도 유지조차 할 수 없겠지.”

“음……. 공간 통로 말고도 놀랄 일은 얼마든지 많을 거예요. 중주는 그야말로 투기 대륙 최고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선화가 웃으며 말했다.

“중주에서 특별히 강한 세력들은 어디야?”

“마수 가문 쪽은 잘 모르고 인간 쪽 세력들만 조금 알아요. 중주에서는 가장 강한 세력들을 1전(殿), 1탑(塔), 2종(宗), 3곡(谷), 4방각(方阁)으로 분류하죠.”

“1전, 1탑, 2종, 3곡, 4방각?”

이준은 입에 붙지 않는 생소한 표현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탑이라는 건 연금술사의 탑을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탑은 연금탑이고 전은 영혼의 궁전이죠.”

대장로에게서 들은 게 있는 모양인지 선화는 이준의 눈치를 살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영혼의 궁전이라고?”

순간 이준의 표정이 급격히 얼어붙으며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영혼의 궁전은 중주 안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세력 중 하나예요. 중주라고 해도 평범한 사람들은 영혼의 궁전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요. 총본부도 마찬가지죠.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영혼의 궁전의 본부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라요.”

이준의 살기등등한 표정에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쉰 뒤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선배님이 영혼의 궁전과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들었어요. 하지만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영혼의 궁전은 그 대단한 연금탑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 하는 세력이에요. 연금술사의 탑의 삼대 강자만 해도 중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강자이지만, 그들조차 영혼의 궁전의 궁주 앞에서는 감히 얼굴조차 내밀지 못 한다고 해요.”

선화의 충고에 이준의 살기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 역시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 영혼의 궁전에 맞서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2종, 3곡 그리고 4방각이라는 건 뭐야?”

“2종은 천명종이랑 화종이라는 두 종파를 말해요. 종파 내에 셀 수 없이 많은 강자를 데리고 있고, 연금술사의 탑이나 영혼의 궁전만큼은 아니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요. 3곡은 빙하곡, 음곡, 그리고 불의 협곡을 가리키는 거예요.”

“불의 협곡이라고?”

이준은 친숙한 명칭에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불의 협곡이라면 분명히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그 종파였다. 만일 불의 협곡에 간다면 지금까지 수련한 천계의 불꽃을 뛰어 넘는 마지막 두 단계 비술까지 익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준의 실력으로는 천계의 불꽃을 1장까지만 시전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그는 일시적이나마 어지간한 투황 강자를 아득히 뛰어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니 다른 두 단계까지 익힐 수 있다면, 투종 강자에게도 지지 않을 수 있을지 몰랐다.

이준의 속 마음을 알 리 없는 선화는 이준의 눈빛이 변한 것이 천지의 불꽃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다급히 한마디를 덧붙였다.

“불의 협곡에 있는 구룡의 불꽃에 손댈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세요. 전에 말했다시피, 그건 불의 협곡의 보물이라 다른 세력 사람들은 손에 넣는다 하더라도 길들일 수 없어요. 괜히 쓰지도 못할 불꽃 때문에 중주의 3곡이라 불리는 세력을 건드리지 말자고요.”

“그런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정도로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게다가 별의 불꽃 쪽이 훨씬 손에 넣을 가능성이 높잖아.”

이준의 답변에 선화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준을 중주로 데려가서 괜한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 역시 중주에 연고가 있었지만, 불의 협곡 같은 세력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운각, 만검각, 황천각 그리고 풍뢰각까지 중주의 네 끄트머리에 위치하고 있는 네 세력을 사방각이라 불러요. 이쪽 역시 중주의 일류 세력과 맞먹는 힘을 가지고 있죠.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방금 말씀드린 세력들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세요.”

“풍뢰각?”

또 익숙한 이름이 언급 되자, 이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의 기억으로는 ‘번개의 춤’이 바로 풍뢰각의 무투기였기 때문이다.

“일단 여기까지가 중주에서 가장 유명한 세력들이에요. 하지만 이건 정말 일부분이고, 알려지지 않은 숨은 세력들도 많고, 엄청난 강자들도 많죠. 그리고 인간들이 만든 세력을 제외한 다른 세력들에 대해서는 저도 아는 바가 없어요. 하지만 그쪽도 연금술사의 탑 못지 않게 강하다는 것만은 확실하죠. 그러니까 중주에서는 마수에게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돼요. 만일 그 마수가 일류 세력의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보복을 당할테니까요.”

순간 이준의 등 뒤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과연 투기 대륙 최고의 강자들이 모여 있는 지역답게, 조심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 것 같았다.

“아아, 물론 평범한 마수는 괜찮아요. 제가 얘기하는 건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지능 있는 마수예요. 게다가 마수 가문도 강한 세력이 있고 아닌 세력이 있으니, 건드린다고 해서 무조건 큰 일이 나는 건 아니죠.”

이어지는 선화의 설명에 이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설명 덕에 중주의 여러 세력에 대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바로 그 때, 선화가 지면 위로 우뚝 솟아 오른 산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게 천경산이에요.”

* * *

비행마수가 평원지대를 가로질러 산맥 안으로 들어서자, 산 속 이곳저곳으로 이어진 널따란 대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길마다 사람들이 가득해 먼 거리에서도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공중에는 이준이 타고 있는 비행마수 외에도 비행 마수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산맥 구역 안으로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기괴한 모습의 비행 마수들이 날개를 움직이며 날아갔다.

흑각성 위에서도 이렇게 많은 비행마수가 동시에 나타난 적은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평범한 교통수단으로 이용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곳에 있는 비행마수는 대부분 1레벨 혹은 2레벨 마수였고 3레벨 이상의 마수는 보기 드물었다. 따라서 이준이 타고 다니는 비행마수는 자연스레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서너 명이 탈 수 있는 크기의 비행마수이니,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400 킬로미터 안에서는 가장 번화한 곳이라고 하더니 정말 대단하네!”

이준이 발을 구르자 비행마수가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산맥 깊은 곳으로 빠르게 날아갔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거대한 도시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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