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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46화 (446/818)

제446화. 신묘한 경지

이준이 청홍색의 액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 때, 갑자기 멀리 떨어져 있던 보람이 공간 봉쇄를 뚫고 평상 위에 나타났다.

“미안한데, 지금은 집중해야 돼.”

이준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보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그 에너지를 없애지 못할 거야. 나도 이 자식이 어떤 마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오랜 시간대를 이어온 이형의 마수인지도 몰라.”

말을 마친 보람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뗐다.

“내 피를 써…….”

이준이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보람은 자신의 혀를 깨물어 피를 내며 이준에게 다가왔다.

“네 피가 있으면 저 위압감을 없앨 수 있다는 거야?”

“어떤 종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피가 저 녀석보다 더 강하다는 느낌이 와.”

잠시 망설이던 이준은 손가락을 굽혀 보람의 피를 약솥 안으로 던져 넣었다. 다음 순간, 청홍색 액체 안에서 피어 나오던 강한 에너지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이준은 멍한 표정으로 보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보람의 피에 의해 청홍색 액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에너지가 가라앉자, 붉은 영지 버섯을 비롯한 주재료의 약효가 발휘되며 혈액의 힘과 천천히 섞어 융합 되어갔다.

그렇게 보람의 도움으로 이준은 간신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게다가 보람의 피가 들어간 탓인지 약솥 안에서는 더욱 강한 에너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보람의 본체가 얼마나 강한 마수인지는 모르지만, 방금 전 난동을 피우던 혈액의 힘을 완전히 눌러버린 것으로 보아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힘을 가진 존재인 것만은 틀림이 없어보였다.

청홍색 혈액에서 느껴지던 사나운 기운이 가라앉은 것을 확인한 보람은 곧바로 공간 결계를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준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천우를 비롯한 사람들은 보람이 돌아오자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설마 그녀가 이런 식으로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하. 이번에는 네가 정말 큰일을 했구나. 어쩌면 녀석이 정말 한 번에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7레벨 연금술사조차도 7레벨 연금비약을 한 번에 만들기는 어렵다고 하던데…….”

서천우가 보람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자, 다른 장로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7레벨 연금비약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약재로, 흑각성에서는 꽤 오랜 세월 동안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들어 낸 연금술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약황’이라 불리던 한샘조차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은 단 한 번에 불과했다.

한편, 결계 안에 있던 이준은 다시금 약 솥에 신경을 집중하며 영혼의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청록색 불꽃으로 뒤덮인 액체는 얼룩덜룩했지만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에너지가 융합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영혼의 힘으로 난폭한 힘이 잦아든 것을 확인한 이준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들이쉬며 약솥 안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약재의 힘이 완전히 융합되며 형태를 갖춰갈 수 있게 해야 할 시점이었다.

통상 이 과정은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고, 일주일을 넘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후 이준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6일 동안 약재를 달궈야했고, 그 사이 주변에 모여 있던 구경꾼들도 하나 둘 자리를 떴다.

하지만 이준의 모습은 본원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으니, 사람들은 틈틈이 평상 쪽을 바라보며 7레벨 연금비약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확인했다.

몇 번을 보아도 사람이 6일 동안 저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사를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천계의 탑 앞에 있는 이준의 동상이 평상 위에도 생긴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보면 이준이 죽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약솥 안에서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만이 작업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렸다.

그 자리에 상급 연금술사가 있었다면 지금 이준의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지금 이준의 상태는 연금술계에서 ‘연금혼의 경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영혼의 힘이 무한으로 확대되고 연금술에 절대 실패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연금혼의 경지는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뛰어난 연금술사라 하더라도 평생 한 두 번 연금혼의 경지를 경험할까 말까하는 실로 진귀하고도 신비한 상태였다.

그렇게 7일째 되는 날 새벽이 찾아오자, 햇빛이 대지의 속박을 벗어나 아주 먼 바닷가에서부터 쏟아지며 이준을 포근히 감쌌다.

이준이 눈을 뜨자 잠든 사자가 깨어난 것처럼 그의 몸 안에서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에너지가 쏟아졌다. 지금 이준이 뿜어내는 기운은 6일 전보다 훨씬 순수하면서도 농밀했다.

자신의 몸에서 일렁이는 기운을 느낀 이준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다. 지금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틀림없이 승급을 할 때 느껴지는 에너지였다.

지난 7일간 그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신묘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토록 복잡한 연금비약을 제조하는데도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7일 내내 영혼 에너지를 최대치로 사용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온 몸에서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 상태’가 염력의 상승에도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7레벨 연금비약의 제조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게다가 보람의 피까지 섞여 본래의 조합표와는 완전히 다른 배합이 되어버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조합표에 나온 약재가 더하거나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제조 방식이나 그 양에 약간의 오차만 있어도 제조에 실패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번에는 모든 것이 원만하게, 아니 일찍이 상상해 본 적이 없었던 수준으로 부드럽게 이어졌다.

약 솥을 들여다보니 불꽃 속의 연금비약이 점점 다이아몬드 형태로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연금비약의 크기는 용의 눈알 크기 정도였고, 온통 보라색과 붉은색이 섞인 자홍색을 띠고 있었다. 표면은 울퉁불퉁해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서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순수하고 거대한 에너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본래 ‘재능’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후천적인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재능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무기의 정수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으니, 과연 전설속의 영약이라 부를 만 했다.

연금비약의 모양이 완성되자, 길고 긴 작업이 마침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이준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청록색 불꽃 온도를 서서히 낮췄다.

마지막 단계를 끝내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추 열 시간 정도가 지나자, 불꽃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연금비약이 점차 매끈한 원형으로 변화했다.

마침내 연금비약이 완성되는 순간, 본원의 하늘이 급속도로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은빛 번개가 간간이 내리치며 어두워진 천지를 환하게 밝혔다.

이 신비하고도 장엄함 광경에 본원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응시했다.

하늘에서 펼쳐진 이상 현상에 서천우를 비롯한 모두가 화들짝 놀라 공중을 바라봤다.

“비뢰라니…….”

서천우가 먹구름 속에서 뱀처럼 요동치는 격렬한 천둥번개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서천우 옆에 있던 아라와 보람 역시 두 눈을 크게 뜬 채 멍하니 비뢰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장로들은 대기하고 있다가 본원으로 번개가 내리치면 곧장 결계를 만들게!”

“네!”

서천우의 명령에 본원의 장로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너희들은 당장 기숙사로 들어가라!”

장로들에게 명령을 내리고도 여전히 불안했는지, 서천우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본원의 학생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서천우의 심각한 표정을 본 학생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빠르게 기숙사 안으로 달려갔다.

“이럴 수가…….”

대장로는 쉴 새 없이 내리치는 벼락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 역시 7레벨 연금비약이 만들어 지는 것을 목격한 것은 이번이 고작 두 번째에 불과했다.

“무사할 수 있을까요?”

아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자, 서천우가 잠시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렵구나. 예전에 중주에서 7레벨 연금비약이 성공한 것을 보았을 때는 3성 투종이 셋이나 모여 간신히 벼락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준이 만든 번개는 그 때보다 훨씬 더 강해보이니 조금 걱정이 되는구나.”

서천우의 답변에 아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염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준의 연금비약이 만들어 낸 번개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 서천우 뿐 이었다.

“일단 지켜보자. 우리 둘이 나선다고 저 번개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한층 짙어지며 온 천지에 그늘이 드리웠다.

하지만 정작 그 천둥번개 한복판에 서 있는 이준은 조금도 겁을 먹지 않은 듯 담담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먹구름을 뚫고 또 다시 굵은 빛줄기 하나가 떨어졌다.

수많은 연금술사들의 평생의 꿈은 바로 번개를 소환할 정도의 고급 비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그런 연금비약을 만든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스승님……. 언젠간 제가 연금술을 통해 번개를 만들어내면 스승을 뛰어 넘었다 할 자격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이준이 이마에 새겨진 불꽃 각인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장면을 가장 보았으면 하는 이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팠다.

콰광!

몇 분 후에 먹구름이 갈라지며 은빛 번개가 거대한 이무기 마냥 이준을 향해 덮쳐왔다.

“육합자의 검!”

그와 거의 동시에 이준의 손 위에 검은 송곳 하나가 나타나더니 날카로운 잔상이 바람 하나 새지 못 할 정도로 빽빽하게 그의 몸 주위를 감쌌다.

콰-앙!

다음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무수히 많은 은색 섬광이 작은 뱀들처럼 아래로 쏟아지며 평상을 향해 돌진했다.

“열화!”

이준이 소리치자 눈부신 검광이 은색 번개와 충돌을 일으켰다.

간신히 번개를 막아낸 이준은 손바닥을 몇 차례 쥐었다가 펴본 뒤 검은 송곳을 들어 돌로 이루어진 평상 위에 내리 꽂았다.

잠시 후, 이전보다 두 배는 굵은 빛줄기가 다시 한 번 이준을 향해 날아들었다.

“산의 힘!”

이준이 두 손으로 인을 맺자, 방대한 염력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또 다시 은빛 섬광 앞을 가로막았다.

퍼—엉!

그 순간, 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면서 거대한 에너지 결정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산의 힘’을 파괴한 번개는 마치 먹이를 노리는 짐승마냥 포기를 모르고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이준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자, 또 다시 거대한 에너지 인이 나타나 번개와 맞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다.

쾅! 쾅! 쾅!

계속해서 공격에 실패한 먹구름은 화가 난 듯 무수히 많은 은색 번개를 만들어내며 이준이 있는 평상을 향해 날아갔다. 어느새 어두운 허공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은빛 섬광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겁을 먹기는커녕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뜨리며 당당히 번개에 맞섰다.

쿵! 쿵! 쿵!

거대한 폭발 소리가 끝도 없이 하늘에 울려 퍼지고, 쉼 없이 폭발음이 일어났다.

평상 위에 서서 수 십 갈래의 번개와 맞서는 이준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하게 질려가고 있었다. 이준의 저항이 약해지는 듯하자, 기세가 오른 번개가 더욱 사납게 평상 위로 내리쳤다.

콰과광!

번개의 매서운 기세에 서천우와 아라가 약속이나 한 듯 이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그들이 몸을 움직여 자신을 구출하려던 순간, 이준의 입에서 기묘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와라, 하늘 요괴!”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빛 그림자 하나가 이준 앞에 나타나 망설임 없이 번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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