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만이살길-445화 (445/818)

제445화. 이무기의 정수 제조

평상과 멀지 않은 곳의 높은 누대에는 비석의 구성원들이 모여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7레벨 연금비약이라면 투종 강자들도 목숨을 걸 정도의 물건이었으니, 그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평생 자랑할 만 한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다.

“오늘 이 장면은 본원 역사에 길이 남겠어.”

오하늘이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본원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이옥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준이 제조에 성공한다면 가람아카데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학생이 되겠지.”

“가람 아카데미 창시 이래로 딱 두 사람이 졸업 전에 투황이 됐지. 그 중 한 명은 투황, 또 한 명은 투종까지 승급했고. 오늘 이준이 7레벨 연금술 제조에 성공한다면 그 사람들도 뛰어넘게 되겠군.”

두 사람의 곁에 있던 이윤영이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자리에 있던 이들 중 누구도 선화보다 기대에 찬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준이 7레벨 연금비약을 제조하는데 성공한다는 것은, 그녀의 가문이 연금술사의 탑에서 장로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준은 본원에서 어떤 소란이 일어나든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후우…….”

잠시 후, 허공 위에 피처럼 붉은 약솥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수 문양으로 뒤덮인 묵직한 붉은 약 솥이 석판 위에 떨어지자, 석판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준은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정신을 집중한 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신비한 청록색 불꽃이 아름다운 꼬리를 그리며 약 솥 안으로 떨어졌다. 마침내 7레벨 연금비약의 제조가 시작된 것이다.

약솥이 적당히 달아오른 것을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자신의 저장 반지 안에서 하나하나 약재를 꺼내 석판 위에 늘어놓았다.

「이무기의 정수. 수련이 용이하도록 복용자의 체질을 바꾸어주는 효과가 있다. 제조에 필요한 재료는 대략 일흔 일곱 가지로, 주재료는 붉은 영지버섯, 신선의 열매, 남색 넝쿨, 7레벨 혹은 그 이상의 마수의 피이다.」

이무기의 정수의 제조 방법을 다시 한 번 떠올린 이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77종류의 재료가 필요한 연금비약이라니…….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구름불꽃을 흡수하기 위해 약로가 만들어준 땅의 정령의 비약조차 이 정도로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온 정신을 연금비약의 제조에 쏟아도 모자랄 판이었다.

다시 한 번 호흡을 고르며 잡생각들을 밀어낸 이준은 고개를 들어 불의 온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은은한 붉은 색을 뿜어내는 버섯이 그의 손바닥 위로 날아왔다. 붉은 버섯에서는 피 비린내와 함께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순수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신비한 버섯이 자라기 위해서는 세 종류의 뱀의 형태를 한 마수의 피가 필요했다.

그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붉은 영지버섯의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차갑고 순수한 에너지를 느껴본 뒤 그것을 약 솥 안에 던져 넣었다.

붉은 버섯이 솥 안에 떨어지자마자 이준의 열 손가락이 춤을 추며 수많은 재료들이 하나 둘씩 약 솥 안으로 날아들었다. 붉은 영지버섯은 찬 성질을 가진 물건이라 불과 접촉하면 곧바로 죽어버리기 때문에, 이런 반응을 중화 시켜줄 물건이 필요했다.

이렇게 많은 약재들을 한꺼번에 정련하려면 그만큼 많은 영혼 에너지를 섬세하게 조절해야 했기에 제련 난이도 역시 높을 수밖에 없었다.

불꽃 속으로 들어간 여러 약재는 청연의 불꽃과 만나자 마자 곧바로 시들었고, 가루로 변했다가 액체로 변해 붉은 영지버섯을 감싸기 시작했다.

약에서 나온 액체가 주재료인 붉은 버섯에 닿자 새빨간 표면이 하얗게 변했다. 사실 붉은 영지버섯에서 중요한 것은 버섯 자체가 아니라 그 표피였다.

몇 방울의 하얀 액체가 붉은 표피를 감싸자 솥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버섯을 붉은 액체로 변화시켰다.

첫 단계에 성공한 이준은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청록색의 불꽃으로 붉은 액체를 다시 한 번 감쌌다.

마침내 붉은 액체가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까지 줄어들자, 이준의 손바닥 위에 새하얀 열매 하나가 나타났다. 눈처럼 깨끗한 백색의 열매는 바로 ‘신선의 열매’였다.

나머지 주재료의 정련 방법은 모두 붉은 영지버섯 만큼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고도의 정련 기술이 없다면 이무기의 정수는 커녕 주재료를 정련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신선의 열매의 정련 난이도는 붉은 영지버섯보다도 훨씬 높아 무려 20종류의 재료를 배합해야했고, 중화 작업에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선령과 정련에 성공한 이준은 다시 남색넝쿨을 약 솥 안에 던져 넣었다. 남색 넝쿨은 쇠처럼 딱딱했지만, 나무도 금속도 아닌 기묘한 넝쿨이었다. 게다가 내열성이 몹시 강해 천지의 불꽃으로도 장장 두 시간을 달이자 간신히 표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열 종류가 넘는 재료를 던져 넣고 나서야 약재의 힘으로 넝쿨이 푸른 분말로 변했고, 이준은 영혼의 힘을 통해 그 푸른 분말을 한군데로 뭉쳐 공처럼 만들어두었다.

그렇게 세 가지 재료가 순조롭게 준비 됐다. 이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서천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연금술에 대해 잘 알지 못 했지만, 이준의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세 가지 주재료의 정련을 마친 이준은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 뒤 저장반지 속에서 옥병 하나를 꺼내 그 안에서 파란색과 붉은색이 섞인 액체를 따라냈다.

병에서 흘러나온 액체는 부피는 아주 작지만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액체는 이준이 경매장에서 마수의 시체를 얻어와 정련해 낸 것으로, 이것을 이용해 제조에 성공한다면 연금비약의 품질이 훨씬 좋아질 게 분명했다.

이준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액체가 약솥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파랗고 빨간 액체가 약 솥에 막 들어가기 무섭게 안에 감추고 있던 에너지가 약 솥 안에서 광풍을 일으켰고 이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이를 악물고 붉은 영지, 선령과, 남색넝쿨 등 정련 해놓은 재료들을 액체 안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강한 에너지들끼리 만났음에도 아무런 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준이 의아해하던 그 때, 갑자기 폭풍 같은 에너지 파동이 일어나며 약솥 안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범한 약솥 같았으면 그 에너지를 버티지 못 하고 벌써 깨졌을 것이 분명했다.

곧이어 붉은 액체의 매끈한 표면에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며 붉은 성게 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에너지가 계속해서 약솥과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이준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대장로님, 어떡할까요?”

장로 중 한 명이 이준을 보며 소리 낮춰 물었다.

“뭘 더 어쩌겠나? 연금술이 누구랑 전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주겠나? 이준이 알아서 해야지. 게다가 7레벨 연금비약을 어떻게 한 번에 만들어내겠나. 실패하는 것이 정상이지. 다들 그리 호들갑 떨 것 없네.”

대장로의 한 마디에 다른 장로들도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때, 이준의 새까만 눈동자에 청록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청록색 화염이 깃든 눈으로 한참동안 약솥 안을 바라보던 이준은 액체 안에서 격렬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하고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거 때문이었구나…….”

연금비약 제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약재의 효능이었다. 약재의 효능이 완전히 결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밀한 계산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영혼의 힘이 연금술의 성패를 결정짓곤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긴 했지만 이준은 지금까지의 작업을 모두 조합표에 적힌 대로 오차 없이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특정 재료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이 문제는 약 가루나 액체가 아니라 바로 방금 넣은 청홍색 액체 한 방울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 액체는 마수의 시체에서 정련해낸 것으로, 난폭한 에너지를 담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에너지가 이무기의 정수를 만들 때 필요한 에너지의 양을 훌쩍 뛰어 넘는 바람에 붉은 영지버섯이나 신선의 열매 같은 다른 주재료들과 조화롭게 융화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만일 다른 재료로 바꿀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이준이 갖고 있는 7레벨 마수의 혈액은 청홍색 액체가 전부였다.

생각을 정리한 이준이 손을 휘두르자, 공중에 떠 있던 빛 덩어리가 약솥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투하됐다. 약재는 청록색불꽃에 달궈지며 빠르게 하늘색을 띤 액체로 변화했다.

하늘색 액체가 약솥 안에 떨어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게처럼 변했던 청홍색 액체의 가시들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정을 찾은 청홍색의 액체에는 은근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청홍색 액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에너지에 이준은 반사적으로 염력을 끌어냈고, 이에 돌연 평온하던 청홍색 액체가 들끓는 것처럼 솟구치며 섬뜩할 정도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쏟아졌다.

또 다시 일어난 기현상에 사람들의 표정이 또 다시 돌처럼 굳어버렸다. 액체에서 쏟아지는 위압감은 서천우 같은 투종 강자마저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무슨 일이죠?”

“저 파란색이랑 빨간색이 섞인 액체에 문제가 생겼나 봅니다. 대체 어떤 마수의 혈액이길래 저럴까요? 아무리 7레벨 마수라고 해도 이렇게 강한 위압감이 느껴지기는 힘든데…….”

여러 장로들이 평상의 상황을 지켜보며 수군거렸다.

서천우와 아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액체에서 새어나오는 힘으로 보아, 그 혈액의 주인이 살아생전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졌는지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8레벨 마수일지도 몰랐다. 대체 이준은 어디서 그 피를 가져온 걸까?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에 오로지 보람만이 눈을 반짝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준은 청홍색 혈액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역시 문제의 원인은 그 액체에 담긴 에너지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모천행의 말대로 이 마수는 엄청 강했던 것 같네. 아마 7레벨 최고 계급에서 8레벨 시작 단계였을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피 한 방울에 이렇게 강한 에너지가 담겨있다니.’

이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해서 그 액체를 가열했다. 마수의 혈액은 죽어도 연금비약이 되지 않겠다는 듯 미친 듯이 발버둥치고 있었다.

‘네 놈이 생전에 얼마나 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피 한 방울이야. 오늘 끝장을 보겠어.’

이준은 붉은 버섯에서 흘러나온 새빨간 액체를 다시 청홍색 액체 안에 던져 넣었다.

붉은 액체가 청홍색 액체 안으로 들어가자, 난폭한 힘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약에서 풍겨 나오는 위압감이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준이 여러 번 정련을 시도한 탓인지 이번에는 더욱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때, 돌연 흐릿한 마수의 머리 형상이 나타나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마수의 환영은 약솥 바깥으로 빠져 나오지 못했지만, 약솥 안에서 계속해서 영혼 에너지를 방출하며 이준의 영혼 에너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 에너지를 완전히 잠재우지 못 하면 연금비약의 제조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이준 선배는 대체 어디서 저런 마수의 피를 가져온 거지? 중주의 마수 가문에서는 가문 사람들마다 영패를 갖고 있고, 그 영패 안에 영혼이 들어 있어 영패에 남겨진 영혼을 없애지 않으면 몸 속 혈액을 아무도 얻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하지만 여기는 흑각성이고, 영패를 가진 마수가 있을 리가 없잖아. 대체 저 영혼은 뭐지?’

높은 누각 위에서 이준을 바라보던 선화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준도 그 마수가 중주의 강력한 세력의 구성원인지 아닌지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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