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4화. 연금술 성공
다음으로 이준은 죽간에 적힌 설명대로 시체의 가슴에 뚫어 놓은 작은 구멍에 마정석을 넣었다.
마정석과 육체를 결합시킨 뒤 남은 것은 바로 요괴의 ‘영혼’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준은 말없이 저장 반지 안에서 도영호의 영혼이 담긴 옥병을 꺼냈다.
“이준, 어떻게 해야 날 놔줄 텐가?”
“걱정할 거 없어. 곧 나오게 해줄 테니까.”
이준이 손을 움켜쥐어 옥병을 깨뜨리자, 병 밖으로 나온 도영호의 영혼이 번개처럼 동굴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동굴 입구에는 이미 구름 불꽃으로 만들어 진 그물이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줄마냥 펼쳐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날 놔줘!”
“닥쳐. 네 더러운 영혼이 쓰일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
도영호의 영혼을 옭아맨 그물을 축소시켜 작은 주머니 형태로 만든 이준은 곧바로 온도를 올려 그의 영혼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결국 한 때 투기대륙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도영호의 영혼은 그렇게 주먹만 한 불꽃 주머니 안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도영호의 영혼에서 그의 정신이 사라지자, 이준은 손바닥에 남은 주인 없는 영혼에너지를 시체의 이마 쪽 구멍으로 날려 보냈다.
검은 색의 영혼 에너지가 이마의 구멍을 메우자, 이준은 곧바로 반지 안에서 요괴의 몸을 강하게 만들어 줄 금속들을 줄줄이 꺼내 늘어놓았다.
곧이어 이준은 불꽃을 조종해 한쪽으로는 시체를 정련하고, 한쪽으로는 바닥에 놓인 금속들을 녹여냈다.
시체를 정련하기 위해서는 온도가 낮은 불, 금속을 녹이기 위해서는 아주 온도가 높은 불꽃이 필요했지만, 오륜이화법을 익힌 지금의 이준에게 이 정도 작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정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특히나 영혼과 마정석, 신체가 완전히 결합되려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왼손으로는 시체를, 오른 손으로는 금속을 정련한지 어언 7일째.
금속들은 어느새 신비로운 금색 광채를 내뿜은 액체로 변해 있었다. 영혼, 마정석 그리고 몸이 완벽한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준은 이것 때문에 초조해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조급하게 굴수록 오히려 그르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 귀한 투종의 시체는 물론이고 7레벨 마정석과 영혼까지도 잃게 되는 셈이었다.
이준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또 3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3일이 지났을 무렵, 바위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있던 이준의 몸이 움찔거리며 꼭 감겨있던 그의 눈꺼풀이 열렸다.
이준이 인을 맺자, 마로의 시체가 파르르 떨리며 도영호의 영혼이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곧이어 시신의 가슴에 박혀있던 마정석에서 기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폭발적인 에너지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마로의 피부가 회백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휴우…….”
이준은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반대편 손을 움직여 눈앞에 떠다니던 금색의 액체를 시체 위에 들이부었다.
치익, 치익.
그러자 시체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용액과 닿은 피부는 조금도 녹아내리지 않았다. 조금 전의 정련을 통해 요괴의 몸이 상당히 강해진 모양이었다.
영혼의 힘이 물결처럼 요괴의 몸 위를 쓸고 지나가자, 금색 용액이 회백색의 피부 위에 들러붙으며 계속해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청록색 화염이 요괴의 몸을 뒤덮으며 요괴의 몸이 구리와도 같은 색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준은 갑자기 까맣게 변한 요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구리 색깔이 된 거지?”
죽간의 기록에 따르면 하늘요괴는 총 세 등급으로 나뉘며, 1급은 금색, 2급은 은색 그리고 3급이 동, 즉 구리색이었다. 지금 요괴의 모습은 영락없는 3급이었으니 실망스러운 것이 당연했다. 어찌됐든 이 상태로 제련을 멈췄다가는 아까운 재료만 날리는 셈이었으니, 실망스럽더라도 계속해서 불꽃을 유지해야 했다.
‘하늘요괴’를 만들 때 사용하는 금속재료는 요괴의 신체 강도를 결정짓는 요인이었다. 만일 산 사람이었다면 바로 타 죽었겠지만, 요괴는 애초에 통각이 없었기 때문에 격한 통증이 느껴질 만 한 상황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고통을 모르니 무투기를 몰라도 무시무시한 살육병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열하자 어두운 금색 용액이 요괴의 몸에 스며들며 돌연 구리빛 피부 위에 찬란한 은색 빛이 돌며 더욱 강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은빛이 천천히 어두워지더니, 순식간에 모든 빛이 요괴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완성인가……?”
어느 색깔이 되었든, 색이 어두워지고 모든 빛이 요괴의 몸 안에 흡수된다는 것은 요괴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했다.
청록색 불꽃으로 뒤덮여있던 요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이준이 혀를 깨물어 자신의 영혼의 흔적을 품은 피를 공중으로 날려 요괴의 이마에 떨어뜨렸고, 피는 천천히 안으로 스며들며 엄지 손가락만한 붉은 점으로 변화했다.
다음 순간, 요괴의 검은 동굴 같던 두 눈동자에 서서히 생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깨어난 요괴는 곧바로 이준에게로 걸어와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살짝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마치 자신의 영혼이 두 개로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이제 눈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 요괴는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살육 병기가 된 것이다.
영혼의 각인을 새겨 넣은 뒤의 요괴는 이준과 가장 가까운 호위 무사라고 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평생 이준을 배신할리 없기 때문이다.
하늘 요괴의 몸에서는 5성에서 6성 투종 강자 정도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1급 요괴가 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중주에 가더라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요괴를 이리저리 뜯어보다 실실 웃으며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요괴는 마치 주인을 따르는 강아지처럼 곧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아직 걷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요괴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바닥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주먹 한 번 써봐.”
이준이 용암 바다 위로 날아올라 명령을 내리자, 요괴는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올라 용암 바다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그가 주먹질을 하자 눈앞에 있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거대한 용암 기둥이 솟아오르며 굉음을 냈다.
요괴가 보여준 상상 이상의 위력에 이준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볍게 주먹을 휘두른 것뿐이지만,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2성 투종 강자에게도 먹힐만한 공격이었다. 1성 투종이라면 한방에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눈앞에서 요괴의 힘을 확인하자, 다시 아쉬운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2급 요괴가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1급 요괴는 대체 어떤 위력일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2급 요괴를 만들어낼 때만 해도 7성 투종 강자의 몸과 7레벨 마정석 그리고 투종 강자의 영혼이 필요했으니, 1급 요괴를 만들려면 투종 끝자락이나 투존 강자의 몸과 영혼, 8레벨 마정석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의 그로써는 무슨 수를 써도 그런 물건을 구할 수 없었다.
요괴의 힘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팔을 휘둘러 요괴를 저장반지 안에 넣었다. 본래 저장반지 안에 살아 있는 생물을 넣을 순 없었지만, 요괴는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었으니 저장 반지 안에 넣는 것도 가능했다.
“후……. 이제 채린을 위한 연금비약만 준비하면 되겠네.”
저장반지를 만지작거리던 이준의 입가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무기의 정수를 만들기에는 아직 자신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준은 용암세계에서 나온 뒤 일단 방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는 최상의 상태라고 해도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드는데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물며 2급 하늘요괴를 만드느라 염력과 영혼 에너지를 소진한 지금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무기의 정수를 만들기 위한 약재도 아직 부족했다.
이준은 필요한 약재의 이름을 자신의 형에게 알려준 뒤 본원을 돌아다니거나 비석의 구성원들에게 연금술이나 수련에 대해 조언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남는 시간은 모두 자신의 영혼 에너지와 염력을 회복하는데 투자했다. 최대한 빨리 최고조의 몸 상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열흘이 흘렀고, 마침내 이무기의 정수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들이 모두 모였다. 수량도 제법 많아 몇 번 정도는 실패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약재를 모두 모은 지 삼일 뒤, 드디어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때가 됐군…….”
이준은 나지막이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날개를 펼쳐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 * *
본원의 중심지대에는 높은 돌계단이 설치돼 있었고, 돌계단의 끄트머리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작은 평상이 있었다.
평상 위에 서면 널따란 본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서천우의 말에 따르면 그곳은 원장님이 평소 수련할 때 사용하는 곳이기에 일반 학생은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본래대로라면 이준 역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무기의 정수를 만들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다는 말에 특별히 서천우가 그 장소를 이용하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전설과도 같은 존재인 가람 아카데미의 원장이 수련했던 장소인 만큼,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평상과 돌계단 주위에는 공간의 파동이 일어나며 마치 자석처럼 천지의 에너지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 곳에서 수련을 하면 평소보다 원활하게 천지의 에너지를 거둘 수 있을 뿐 아니라 공간의 파동이 지켜주고 있기 때문에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이준의 모습이 평상 위에 나타나자, 학생들은 물론이고 장로들까지 모여들어 계단 위를 바라봤다. 평상은 본원의 한복판, 그것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본원 어디에서든 그 곳을 볼 수 있었다.
장로들이 평상 근처로 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한 사람이 공중을 가르며 날아왔다. 장로들은 그를 보자마자 황급히 공손하게 인사했다. 현재 본원에서 장로들이 이렇게 예의를 갖출 만한 존재는 서천우 밖에 없었다.
대장로는 이준의 주변에서 요동치는 염력을 감지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옆에 있는 아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을 위해 아주 노력한 모양이구나.”
아라도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아래쪽에 빽빽이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곳에서 연금비약을 만들면 너무 방해되지 않을까요?”
“하하. 걱정할 거 없단다. 저 평상 주변에는 여러 대장로들이 결계를 설치해 두었으니, 누구도 저 아이를 방해할 수 없지. 7레벨 연금비약이 만들어지면 천지의 에너지가 모여들며 날씨마저 변하게 되니, 저 안에서 만드는 것이 훨씬 안전할 게다.”
서천우의 답을 들은 아라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뒤 말 없이 이준을 바라봤다.
평상 위에 이준이 나타난 것으로도 모자라 장로들까지 모여들자, 본원의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기 시작했다.
“저거 이준 선배 아니야? 왜 저기 있는 거지?”
“비석에서 들은 건데 이준 선배가 엄청 높은 등급의 연금비약을 만든다더라고.”
“진짜? 6레벨 연금술사가 직접 연금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마로와의 격렬한 전투를 목격한 이래, 이준에 대한 존경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게다가 7성 투종 강자와 대결을 펼친 장본인이 오늘은 7레벨 연금비약을 만든다고 하니, 본원의 학생들 중 거의 대부분이 구경을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