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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42화 (442/818)

제442화. 봉인

이준이 청록색 불꽃으로 더욱 단단히 몸을 보호한 뒤 문을 열자, 회보라색 연기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천지의 불꽃이 아니었다면 투종 강자라 하더라도 감히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짙은 독기였다.

“준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움을 청하거라!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대장로님! 너무 걱정 마세요. 일단 이 곳을 잘 봉쇄해 주세요! 다른 사람이 절대 못 들어오게요.”

이준이 방안으로 들어가자, 서천우의 손이 바삐 인을 맺어 염력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공간 봉쇄만으로는 도저히 아라의 독기를 모두 막아낼 수 없었기에 염력 보호막을 그 위에 덧씌워야만 했던 것이다. 만에 하나 그 독이 퍼져나간다면 본원의 모든 생명체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휴우. 이를 어쩐단 말이냐…….”

* * *

방 안에는 한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안개가 가득했다. 짙은 회보라빛 독안개 사이로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가 아니었다면 아라의 위치를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대략 열 걸음쯤 이동하자, 이불속에서 독을 뿜어내고 있는 아라의 모습이 보였다.

발검을 소리를 들었는지 이불 속에 숨어 있던 몸이 꿈틀대더니 이내 고통에 찬 아라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미안해. 재난독체가 예상보다 일찍 폭발했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나니 눈 앞이 캄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괜찮을 거야.”

본래 재난독체가 폭발하기까지는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모두 그녀가 이준을 돕느라 몇 번이나 재난독체의 봉인을 풀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이 묵직한 쇳덩이처럼 이준의 가슴을 짓눌렀다.

“손 좀 내밀어봐 아라야.”

이준의 말에 아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느다란 팔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팔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이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공포로 덜덜 떨리고 있는 아라의 손끝이었다.

아라의 온 몸은 이미 독에 잠식당해 있었다. 만일 그 독이 머리까지 타고 올라간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독기운이 뇌까지 파고들면 아라는 정신을 잃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주위의 모든 것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며 최후를 맞이하는 일만이 남아 있었다.

이준의 심각해진 표정에 아라의 표정도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준아, 이렇게 널 따라다니는 동안 너무 즐거웠어. 너는 내 첫 번째 친구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좋았어. 그러니 만일 내가 이성을 잃게 된다면…….”

“시끄러워! 쓸데없는 소리 할래?”

이준의 호통에 아라는 화를 내기는커녕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난독체를 통제하기 위해서 아직 전갈이무기의 마정석이 필요했다. 이는 재난독체를 통제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물건 중 하나였고,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재료였다.

이준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갑자기 천화존자의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재난독체로군? 흐음. 내 생에 이걸 한 번 더 볼 줄이야.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노인의 목소리에 이준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천화존자도 투존이니, 그라면 뭔가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선배님, 선배님께서도 재난독체를 아시나요?”

“허허, 이래 뵈도 투존이네. 재난독체를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보아하니 이미 재난독체가 폭발하기 직전이군. 어서 봉인하지 않으면 독 기운이 뇌로 흘러 들어가서…….”

“봉인이요?”

이준이 멈칫하며 물었다.

“설마 재난독체를 봉인하는 방법을 아시는 건가요?”

“그렇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자네 참 운이 좋군. 이런 봉인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온 대륙을 통틀어도 몇 안 될 테니 말이야. 내 어릴 적 친구 한 명이 재난독체를 갖고 있었거든. 그래서 내가 이 봉인법을 만들었지. 하지만 딱 한 번밖에 실행하지 못하고 유지 기간도 3년 정도 밖에 되지 못하네. 3년 후에도 여전히 재난독체 해결 방법을 못 찾아으면 그땐 결국…….”

천화존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자신을 돕다가 목숨을 잃게 된 친구를 구할 수만 있다면 3년 내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전갈 이무기의 마정석을 구해내리라 다짐했다.

“이 봉인의 이름은 ‘천화인’이네. 불 속성 공법을 이용해 독 기운을 억제하는 거지. 자네 몸속에 지니고 있는 천지의 불꽃을 사용하면 될 거야. 봉인 방법을 알려주지.”

그 순간, 봉인법에 대한 정보가 이준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준은 눈을 감고 그 봉인법을 몇 번이고 되새긴 뒤에 천천히 눈을 떴다.

“해결 방법이 생겼어.”

“얼른 이불 걷고 반듯하게 누워 봐.”

“뭐라고? 갑자기?”

천화존자와 이준의 대화는 모두 머릿속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니, 아라 입장에서는 갑자기 해결 방법이 생겼다는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어서! 시간이 없어!”

이준의 심각한 표정에 아라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이불을 걷고 침대 위에 반듯하게 몸을 뉘였다.

아라가 자리를 잡자, 이준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 청록색 불꽃으로 뒤덮인 손을 내밀었다.

“조금 아플 수도 있지만 잘 참아줘.”

이준은 서둘러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아라의 이마와 목 아래쪽을 짚었다. 그러자 아라의 피부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나 회색 연기가 조금 옅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아라의 온 몸에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으윽……!”

아라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뒤트는 찰나, 청록색의 불꽃이 그녀의 전신을 파고 들며 기이한 문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준은 온 몸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온 정신을 집중해 아라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간 청록색의 불꽃을 조종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제 손으로 아라를 죽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 돌연 아라의 몸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돌아다니던 독기운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하지만 독기운이 잦아드는 것과 동시에 점점 더 온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불 속성의 염력을 갖고 있지 않은 아라에게는 도저히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아아악!”

봉인을 위한 진이 완성되어가자, 돌연 아라의 몸 주위를 돌고 있던 회보라색 연기가 이준을 덮쳤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청연의 불꽃이라 해도 독 기운을 모두 막아내지 못 했다. 그러나 이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신을 집중했다. 자신이 정신을 놓는다면 아라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역겨운 악취를 풍기는 독 연기가 청연의 불꽃을 뚫고 이준의 코를 자극하는 찰나, 아라의 몸을 타고 흐르던 청록색의 화염이 아라의 복부에 모여들었다.

“천화인, 봉인!”

그 순간, 마치 봉인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 마냥 아라의 몸 전체에서 더욱 세찬 독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는 청연의 불꽃으로도 도저히 독기운을 막을 수 없었다. 이준의 얼굴은 어느새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복부 위에 생겨났던 불꽃의 흔적이 사라지자, 정신을 차린 아라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 순간, 방에 가득하던 독 기운이 격렬한 파동을 일으키더니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아라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독 기운을 모두 흡수한 아라는 불과 몇 분 만에 자신의 실력이 4성 투종에서 5성 투종으로 향상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화인으로 재난독체의 폭발을 통제할 수 있게 된 것뿐 아니라 실력도 향상된 것이다.

침대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미 자신의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은 이준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재난독체를 봉인하다 중독되어 쓰러진 이준을 발견하는 순간, 아라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고마워 정말로…….”

그녀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천천히 이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라가 침대 옆에 앉아 침대 위에 누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속의 독은 이미 완전히 없어진 상태였다.

“독 기운은 내가 빼냈으니 걱정할 거 없어.”

아라가 웃음을 짓자, 이준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

“네 실력이…….”

멍한 표정으로 아라를 바라보던 이준은 그녀의 염력이 더욱 강해진 것을 느끼고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재난독체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독 기운이 방출됐는데, 그걸 흡수하니까 실력이 늘더라고.”

“으음……. 내가 불꽃을 흡수하면 강해지는 거랑 같은 건가?”

이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라의 입가에도 또 다시 미소가 내려앉았다.

“비슷한 거지.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됐어. 내가 아니었다면 네가 재난독체의 봉인을 풀 일도 없었을 거잖아.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걸. 그보다 봉인은 어때? 잘 된 것 같아?”

이준의 질문에 아라는 턱을 아래로 당겨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재난독체가 억제된 게 느껴져. 3년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야. 3년이면 충분해.”

봉인이 무사히 끝난 것을 확인한 이준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아라의 손목을 붙잡고 방문을 열었다.

“가자. 대장로님이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거든.”

* * *

그 시각, 서천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문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준이 들어간 지 벌써 30분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독이 새어 들어가 큰 일이 난 건 아닐까 생각만 해도 눈앞이 아찔했다.

바로 그 때, 꽉 닫힌 방 문이 서서히 열리며 삐그덕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괜찮느냐?”

두 사람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서천우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빛의 장막 안에서는 아직도 회색 안개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곳의 독 기운은 방 안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퍼지게 되는 순간 평범한 학생들은 목숨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라가 손을 뻗어 바람을 일으키자, 독 기운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녀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라가 독 기운을 통제하는 모습을 본 서천우는 그녀의 실력이 크게 성장했음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승급했구나?”

아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서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이준보다도 훨씬 놀란 표정이었다.

서천우는 아라와 같은 투종이었으니, 투종이 1성을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지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투종이 승급을 하기 위해서는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밀도 높은 수련을 했을 때의 이야기지, 보통은 그 이상의 시간이 있어야 간신히 1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이 투종이었다.

“허……. 거참 놀랍구만.”

서천우의 말투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섞여있었다.

“대장로님, 이 약가루를 독 기운을 흡입한 학생들에게 복용 시켜주세요. 며칠만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아라가 옥병을 꺼내 서천우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보는 사람이 딱하게 느낄 정도로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하하. 알겠다. 그 청개구리 같은 녀석들도 이번 기회에 톡톡히 교훈을 얻었을 거다. 앞으로 괜한 호기심에 위험한 짓을 하지는 않게 되겠지.”

옥병을 건네받은 서천우는 아라를 달래주기 위해 일부러 더욱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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