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1화. 영혼의 샘
흥분한 이찬을 보며 이준은 곧바로 두 번째 은색 두루마리를 들어올렸다.
“이것도 번개 속성 2격 중급 무투기네. ‘번개의 서’랑 묶음으로 사용하는 무투기인가 봐. 헤헤. 둘째형 오늘 완전 계 탔네.”
이준이 또 다시 두루마리를 이찬에게 넘기자, 그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진귀하다는 2격 번개 무투기를 두 개나 손에 넣었으니 환호성을 지르는 것도 당연했다.
이어서 새로운 나무 상자를 열자, 새빨간 두루마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뭐야, 악마의 불꽃이잖아?”
악마의 불꽃은 이미 가지고 있는 무투기였다. 하지만 그 앞에는 한 글자가 더 적혀있었다.
“참 진(眞)자 잖아?”
이준은 넋 놓은 채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방언을 죽이고 얻은 악마의 불꽃이 가짜라는 소리란 말인가? 그렇다고 치기에는 위력이 너무 강했다.
그는 곧바로 두루마리를 펼쳐 아래에 적힌 글자를 읽어보았다.
「이 무투기는 본좌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개선한 것으로, 이전의 악마의 불꽃은 세 사람이 함께 수련해야 가짜 천지의 불꽃 하나를 만드는데 그쳤다. 하지만 이제 본좌는 혼자서도 악마의 불꽃을 만드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새로이 개선된 악마의 불꽃은 이전의 불꽃보다 훨씬 더 강력하며, 후유증은 더욱 가벼워졌다. 수련 방법이 결코 쉽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수련에 성공한다면 진짜 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순간 이준의 입술이 흥분으로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방언에게서 얻은 악마의 불꽃은 가짜 천지의 불꽃을 만들어 내는 대신 큰 후유증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도저히 익힐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당장 큰 힘을 얻을 수는 있으나 진짜 천지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이준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힘도 아니었고, 부작용으로 인해 실력을 키우는데 방해가 될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진〮·악마의 불꽃’ 이라는 무투기는 그런 걱정 없이 강력한 불꽃을 만들 수 있는 무투기였다.
“이 정도라면 중주를 가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마로가 이런 선물을 남겨놓고 갔을 줄이야.”
이준은 완전히 입에 귀에 걸린 채 붉은 두루마리를 저장반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나머지 두 개의 상자 중 하나에는 빨간색의 구슬 하나가 들어있었고, 나머지 하나에는 회갈색의 대나무로 만들어진 죽간 하나가 들어있었다.
붉은 색의 구슬은 마치 용암을 품은 것처럼 엄청난 불 속성의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이건…… 마정석인가?”
이준은 홀린 듯이 그 붉은 구슬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뚫어져라 붉은 구슬을 바라봤다. 이렇게 높은 등급의 마정석을 직접 보는 것은 그에게도 처음이었다.
“마정석이구나. 등급이 아주 높아. 아마도 사람으로 변한 마수에게서 빼낸 마정석일 거다. 그러니 이런 색에 이런 에너지가 나오지.”
서천우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으음……. 7레벨 불 속성 마정석이구나. 설마 그 노친네가 이런 것까지 갖고 있을 줄이야.”
7레벨 마수는 인간으로 치면 투종 계급의 마수였다. 이 정도 실력을 가진 마수는 그 힘도 대단하지만, 지능이 사람과 비슷해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의 마정석을 폭발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적이 가져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니 이 등급의 마정석을 얻는 것이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그 옆에 놓인 평범한 죽간으로 시선을 옮겼다.
죽간의 얇은 실을 풀어 천천히 펼치자, 피로 쓴 것 같은 붉은 글자가 눈앞에 드러났다.
‘하늘 요괴?’
하늘요괴라니, 듣도 보도 못한 무투기였다. 이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죽간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하늘요괴. 이는 염력 수련법도, 무투기도 아니다. 하늘 요괴는 오랜 시간 전승되어 내려온 요괴의 기술로, 이를 익히기 위해선 세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육체, 영혼, 마정석. 육체를 무기로, 영혼을 끌어들이며 마정석을 심장으로 삼는다. 추가로 다른 재료들을 조합해 하늘요괴를 만들 수 있다. 요괴는 1~3급까지 세 등급으로 분류된다. 등급 차이는 연금술에 쓰이는 재료와 불꽃에 따라 달라지며, 이를 통해 무궁무진한 위력을 갖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통증을 느끼지도 상처를 입지도 않는 살생병기를 만들 수 있다.」
죽간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 하늘 요괴라는 것을 만들 수만 있다면, 중주로 갈 때 든든한 경호원 하나를 달고 가는 셈이었다.
이준이 서천우와 다른 사람들에게 죽간을 건네주자, 다른 사람들 역시 그와 똑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요괴의 기술이라는 건 나도 고서에서 한 두 번 본 게 전부인데……. 마로가 생각보다 엄청난 보물들을 잔뜩 가지고 있었구나. 아마 이 7레벨 마정석도 이 ‘하늘 요괴’를 만들기 위한 재료였던 모양이구나.”
한참동안이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던 서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이준에게 죽간을 넘겼다.
“그런데 ‘하늘요괴’ 제조방법이 조금 섬뜩하구나. 사람 몸에, 영혼에 마정석까지. 강자의 영혼이나 몸을 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텐데…….”
하지만 이준의 저장 반지 안에는 이미 영혼과 마정석, 투종 강자의 시체까지 들어있었다. 몇 가지 재료만 더 구할 수 있다면 정말로 하늘 요괴를 만들 수 있을지 몰랐다.
이준은 죽간과 붉은 색의 두루마리를 저장반지 안에 넣은 뒤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다른 공법이나 무투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제 챙길 것은 창고 안에 보관되어 있는 진귀한 약재들이었다.
남은 물건들 중 이준의 성에 차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이씨 가문 입장에서는 큰 재산이 될 만한 것들이 많았다. 이씨 가문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 곳에 있는 무투기와 약재들을 가져가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찬은 이준이 충분히 물건을 가져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위에 있던 이씨 가문의 강자들에게 저장반지에 물건들을 넣으라는 명을 내렸다.
* * *
마염곡의 보물까지 남김없이 챙긴 이준은 곧장 날개를 펼쳐 본원으로 향했다.
‘하늘요괴’와 관련된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천화존자의 영혼에 에너지를 공급해줄 연금비약을 제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천화존자의 영혼이 사라지고, 그가 봉인해둔 악령이 다시 튀어나올 것이다. 투종급 악령 하나를 물리치는 것이야 서천우와 아라, 자신이 힘을 합치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투존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천화존자를 부활시키는데 성공한다면, 영혼의 궁전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그가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그는 곧 중주로 가야했다. 그 곳에는 강자들이 셀 수 없이 많았으니, 투존 정도는 있어야 목숨을 보장할 수 있었다.
* * *
본원에 돌아온 이준은 곧장 본원의 약재 창고로 들어가 필요한 약재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영혼에 활기를 불어 넣는 연금비약은 잘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한 때 투기대륙 전체를 들었다놨다 하던 대 연금술사 약존이 아니던가.
한시간 정도 약로가 남긴 연금비약 조합표를 뒤적이자, 역시나 영혼의 힘을 회복하는 효과가 있는 연금비약의 조합표를 찾을 수 있었다.
「영혼의 샘.」
이 연금비약은 5레벨 정도라 만들기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필요한 약재들이 대부분 엉뚱한 것들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지만 이준의 저장 반지에는 온갖 진귀한 약재들이 가득했고, 운 좋게도 그가 가지고 있지 않던 약재 몇 가지도 마염곡의 창고와 본원의 약재 창고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둘러 ‘영혼의 샘’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모은 이준은 곧바로 약솥을 소환한 뒤 청록색의 불꽃을 피워냈다.
하지만 영혼의 샘을 제조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해 마음이 급해서였는지, 두 번이나 연달아 연금비약 제조에 실패했다. 그래도 두 번의 실패를 통해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 어떻게든 시간 내에 천화존자를 부활시킬 연금비약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영혼의 샘’은 만들기 어려운 연금비약은 아니었지만, 등급에 비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약이었다. 이제 더 이상 실수를 했다가는 천화존자를 깨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준은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한 뒤 다시 약솥을 달구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불을 지피기를 5일째, 마침내 녹색 광택을 내는 액체가 약 솥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새하얀 저장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낸 뒤 그 위에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녹색 액체를 들이부었다.
천화 존자의 영혼이 담긴 백색의 저장반지는 빠른 속도로 ‘영혼의 샘’을 흡수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지에서 신비한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한 방울의 ‘영혼의 샘’까지 완전히 반지 안으로 흡수되자, 감격에 찬 노인의 목소리가 이준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허허. 정말 고맙네. 자네에게 큰 빚을 졌군.”
천화존자가 부활한 것을 확인한 이준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지었다.
“아닙니다 선배님. 선배님이 악령을 퇴치해 주셨으니, 저도 선배님을 도와드리는 것이 당연하지요.”
“아닐세, 내가 그 악령에 담긴 영혼의 힘을 흡수하기 위해 한 일인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더 미안하지. 정말 고맙네.”
소천화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이준은 약솥을 다시 저장반지 속에 넣고 간단히 정리를 끝낸 뒤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선배님. 이제 막 일어나셔서 피곤하실 텐데 조금 더 쉬시죠. 악령은 천천히 처리하시고요.”
“그래야겠네. 지금 내 상태로는 이 녀석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도 버거워서 말이야.”
대문을 열고 나가자, 근 일주일 만에 보는 태양이 그의 눈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그는 몸 위로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하며 천천히 길가를 거닐었다. 일주일 내내 골방에 갇혀 있었으니 햇볕이라도 쬐며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 했다. 이찬이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니며 그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표정으로 보아 예삿일은 아닌 듯싶었다.
“형, 무슨 일이야?”
“드디어 나왔구나. 빨리, 빨리 가서 봐! 아라 상태가 안 좋아!”
이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준의 등에서 거대한 뼈날개가 솟아났다.
이준이 아라가 머무는 곳으로 갔을 때는 이미 그 주위 전체가 에너지 장막으봉쇄되어 있었다. 에너지 장막 주변에는 본원의 장로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장막을 펼치며 학생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이준이 도착하자, 본원의 장로들은 곧바로 에너지 장막의 한쪽에 자그마한 길을 내주었다.
“대장로 님이 안에 계시니 어서 가보거라. 독 기운 조심하고.”
장로 한 명이 이준에게 말했다.
이준은 초조한 표정으로 청록색 불꽃으로 온 몸을 감싼 뒤 곧바로 장막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에너지 장막 안에 들어가자마자 코를 찌르는 비릿한 악취가 느껴졌다.
“대장로님, 무슨 일인가요?”
이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서천우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와 어두운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나도 영문을 모르겠구나. 오늘 갑자기 장로들에게 연락이 와서는 여기서 독 기운이 퍼지고 있다고 하더구나. 이미 몇 친구가 독으로 쓰러졌다기에 실력 있는 장로들을 불러 일단 독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내가 들어가서 상황을 살피고 싶었지만, 독기운이 너무 강해 나도 이 이상은 들어갈 수가 없구나.”
순간 이준의 심장이 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조심하거라.”
“네, 대장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