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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38화 (438/818)

제438화. 척살

천화존자가 완전히 잠에 들자, 이준은 곧바로 저장 반지를 빼내어 옷 사이에 감춘 뒤 허영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눈에 보기에도 그가 크게 쇠약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운 좋게 이 자리를 빠져나간다 해도 실력이 투황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힘을 빼앗긴 허영호의 눈빛에는 독기가 가득했지만, 이전 같은 힘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혼을 돌려줘. 그럼 당장 이곳을 떠나겠다고 영혼을 걸고 맹세하지. 네가 원한다면 한샘을 대신 처리해줄 수도 있다.”

허영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해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이준 저 놈은 절대 영혼을 돌려줄 놈이 아니야! 당신과 나를 놔줄 놈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차라리 저 녀석과 끝까지 싸워! 아직 희망이 있다고.”

“닥쳐!”

허영호 역시 지지 않고 한샘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한샘의 꾐에 빠져 흑각성까지 와 싸움에 참여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을 뿐더러 애써 모은 영혼을 잃고 자신의 영혼체까지 상했으니, 허영호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말을 마친 허영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시 이준을 바라봤다. 악령이 사라지며 받은 타격이 생각보다 더 큰 모양이었다.

“돌려줄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에 이준은 피식 웃으며 턱짓으로 한샘을 가리켰다.

“정말 한샘을 죽인다면 고려는 해보지.”

“영혼을 돌려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저 놈을 죽여주지.”

허영호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이준의 제안에 응했다.

그러나 한샘은 놀라기는커녕 한심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대답을 들은 이준이 말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코웃음을 치고 나서야 허영호는 눈앞에 있는 어린 것이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개자식이!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 당장 저 놈을 죽여라!”

허영호가 소리를 지르자, 절벽에 있던 열 개의 검은 그림자가 동시에 시커먼 사슬을 휘두르며 이준을 향해 돌진했다.

이준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허영호의 수하들이 휘두른 사슬을 붙잡은 뒤 온 몸에서 청록색 화염을 폭발시켰다.

치이익—

청록색 화염이 사슬을 타고 퍼져나가자, 열 사람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안개가 순식간에 옅어지기 시작했다.

허영호의 수하들은 이를 악물고 버텨보려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그들의 실력으로는 이준을 공격하기는커녕 천지의 불꽃에 의해 타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영혼의 사자들이 사슬을 끊고 달아나자, 이준은 곧바로 불타는 열 개의 사슬을 그들의 등 뒤로 날렸다.

쉭! 쉭! 쉭!

불타는 열 개의 사슬이 번개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영혼 사자들의 가슴을 꿰뚫는 모습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영혼의 사자들은 모두 투왕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 평범한 투황이라면 그들을 죽이기는커녕 공격을 막아내는 것조차 버거워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준은 마치 벌레라도 쫓아내듯 순식간에 열 명의 투왕을 죽여 버린 것이다.

그러나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영혼의 사자 열 명을 살해한 이준의 몸이 어느새 허영호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이준이 가볍게 손을 뻗자, 또 다시 청록색 불꽃이 폭발하며 허영호를 덮쳤다.

이준의 재빠른 공격에 허영호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빠르게 뒤쪽으로 몸을 날려보았지만, 지금 그의 상태로는 이준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아아아아악!”

청록색의 불꽃이 검은 안개에 닿자, 허영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불꽃을 떨쳐내기 위해 발악을 했다. 이준은 벌레마냥 꿈틀대는 허영호를 굳이 공격하지 않고 조롱기 섞인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한참동안 허공을 굴러다니며 청록색의 불꽃을 떨쳐내는데 성공한 허영호는 비틀비틀 거리며 다시 한샘에게로 날아갔다.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이러나저러나 한샘도 허영호도 이준을 죽이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둘이 손을 잡는 방법 외에는 이 자리를 벗어날 수단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영호의 생각일 뿐 이었다.

퍽-

“이…… 이게 무슨…….”

허영호가 돌아오자, 한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가슴에 염력으로 뒤덮인 자신의 손을 쑤셔 박아 그의 심장을 움켜잡았다.

“걱정 마. 네 놈의 원수는 내가 갚아주지. 어차피 살아 있어봤자 별 쓸모도 없지 않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허영호를 상전 모시듯 하던 한샘이 그를 죽여 버리자,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시, 영산 노인을 비롯해 한샘을 도우려 했던 강자들의 머릿속에 퍼뜩 자신들도 언제든 허영호와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씨 가문과 가람 아카데미에 저항하기 위한 연맹을 만드는 자리에서 자신을 돕기 위해 온 자를 제 손으로 죽였으니, 누구라도 한샘과 연맹을 맺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허영호의 몸이 사라지고 영혼만 남자, 한샘은 곧바로 입을 벌려 검은 연기와 함께 허영호의 영혼을 흡수했다.

다음 순간, 세찬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그의 몸 안에서 새카만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영혼 에너지로 이루어진 검은 기포가 그의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지금 한샘의 실력으로는 허영호의 영혼의 힘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 했고, 이에 흡수되지 못한 영혼 에너지가 밖으로 새어나오며 일어난 현상이었다.

한샘의 몸속에서 요동치는 기세에 이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영혼을 삼키는 역겨운 장면은 결코 처음 보는 일이 아니었다. 영혼의 궁전 놈들은 대부분 이런 추악한 방식으로 동료의 영혼을 집어 삼키고 자신의 힘을 키웠었다. 물론 이런 방식에는 적잖은 후유증이 동반됐지만, 그래도 한 순간에 엄청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맡을게.”

아라가 눈으로 한샘을 끊임없이 쫓으며 말했다.

“아니야. 같이 하자. 일단 시간만 좀 끌어줘.”

이에 이준은 한숨을 푹 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난독체 봉인은 최대한 풀지 마…….”

아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은 해볼게.”

“난 네가 재난독체를 통제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옆에 있는 거야. 그런데 오히려 나 때문에 폭발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잖아. 만에 하나 네가 잘못되면…….”

이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아라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혼자 구름제국에서 지내는 것보다 즐거웠어. 그러니까 내가 잘못 되더라도 네 탓 아니야.”

“나도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

하지만 이준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만류했다.

이준의 질문에 아라는 입술을 깨물며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다시 한번 웃어보였다.

“아마 아니겠지.”

“시시덕거리는 건 다 끝났나? 그렇다면 이제 죽기만을 기다려라.”

그 때, 살기가 가득한 한샘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끊어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안개를 둘러싸인 한샘의 모습이 보였다.

허영호의 영혼의 힘을 완전히 흡수한 한샘은 마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마처럼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라는 회색 염력을 뿜어내며 가볍게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고,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독 속성의 염력이 허공 가득 퍼져 나갔다.

이준은 한숨을 푹 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대지의 불꽃, 구름불꽃 그리고 얼음불꽃의 정수까지 모조리 소환했다.

“흥.”

이준이 천지의 불꽃을 불러내는 것을 본 한샘은 곧바로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알아차리고는 사악한 기운이 가득한 검은 염력을 폭발시켰다.

아라는 회보라색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곧바로 자신의 회색 염력으로 거대한 염력 장벽을 만들었다.

한샘이 손을 움켜쥐자, 검은 안개가 한곳에 응집되며 눈앞에 삼 미터 크기의 거대한 검은 장검이 나타났다. 장검에서는 처량한 비명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라.”

한샘이 손가락을 굽히며 명령하자 거대한 검은 장검이 파르르 떨리더니 순식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갔다.

검은 장검에 담긴 무시무시한 염력을 느낀 아라는 즉시 기다란 손가락으로 인을 맺었다. 한샘이 만들어 낸 장검에는 염력과 영혼의 힘이 뒤섞여 있어 염력으로 만들어 낸 무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저주의 비!”

아라의 염력이 빠르게 응집되며 회색 구름이 형성됐고, 이내 그 안에서 수 만 갈래의 회색 액체가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보기에는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액체였지만, 빗방울이 지나는 모든 곳에 새까만 흔적이 남았다.

비가 땅에 떨어지자, 바닥에서 독 기운이 올라오며 다시 구름을 형성했다. 그렇게 또 다시 비가 구름이 되고 구름이 비를 만드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쏴아!

계속되는 독비에 한샘의 장검이 빠르게 힘을 잃으며 부식되자,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한샘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아라의 독 공격이 영혼와 염력을 합쳐 만들어 낸 장검을 녹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널 상대하기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다르지…….”

하지만 한샘이 냉소를 지으며 인을 바꾸자, 전보다 더 강력한 영혼의 힘이 그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영혼의 곡소리!”

위잉—

그 순간, 검은 장검이 격렬한 진동을 일으키더니, 돌연 귀를 찢을 듯한 음파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음파가 귀로 흘러 들어가자 아라는 몸을 살짝 떨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검은 안개로 만든 장검은 상대의 영혼까지도 공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영혼에 상처를 입은 아라가 고통으로 몸을 떠는 순간, 검은 장검이 장대비를 뚫고 아라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아라의 양 쪽 눈동자가 각각 회색과 보라색으로 변했다.

재난독체의 봉인이 다시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재난독체의 봉인이 풀리자, 그녀 앞의 공간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검은 안개로 만들어진 장검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어둠의 독!”

곧이어 보라색의 거대한 염력 손바닥 두 개가 나타나 아라를 노리는 검은 장검을 붙잡았다.

보라색 손바닥에 붙잡힌 장검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 했다. 하지만 검이 뿜어내는 기운만으로도 아라의 피부에 쓰라린 통증이 느껴졌다. 허영호의 영혼을 삼킨 한샘의 실력은 확실히 그녀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에, 한샘의 공격을 막아 내기가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투종 강자 단계에 들어서면 1성차이 만으로도 엄청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아라가 다시 한 번 기합을 넣자, 염력 손바닥이 단숨에 팽창하며 한 손으로 검 끝을 잡고 한 손으로 검 손잡이를 잡은 뒤 회색 염력으로 검을 휘감아 이를 반으로 접어버렸다.

캉!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검은 장검이 두 동강 나자, 검이 품고 있던 염력과 영혼의 힘이 빠르게 회보라색 염력으로 인해 부식되기 시작했다.

“여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한 건 인정하지. 그렇지만 이미 영혼을 다친 것 같은데 계속 싸울 수 있겠어?”

아라는 냉담한 표정으로 한샘의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힐끔 눈을 돌려 뒤에서 화련을 만들고 있는 이준을 바라봤다. 이미 그의 손에 들린 세 개의 불꽃은 반쯤 융합을 끝마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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