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9화. 신비로운 뼈
넘실거리는 용암 바다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꽤나 큰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이 끝없이 펼쳐진 붉은 바다는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천지의 불꽃을 두르고 들어간다고 해도 투종급의 염력이 없다면 바닥에 이르기도 전에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불타 없어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곳은 구름 불꽃의 탄생지였고, 그는 구름 불꽃의 주인이었으니 지금 정도의 실력으로도 충분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전혀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름 불꽃이 이토록 애타게 소리를 질러댄다는 것은, 그 아래에 뭔가 엄청난 물건이 묻혀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이준은 검은 송곳에 영혼의 표식을 남겨 절벽에 박아놓은 뒤 아래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용암 바다의 아래로 내려가다가 방향을 잃고 돌아오지 못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모든 준비를 끝낸 이준은 청록색의 불꽃으로 온 몸을 빈틈없이 감싼 뒤 망설임 없이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어내는 용암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마그마 속으로 들어가자 청연의 불꽃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순식간에 온 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본 뒤 곧바로 손가락을 굽혀 작은 무형의 불꽃 하나를 피워냈다.
불꽃이 나타나자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조그마한 구름 불꽃을 저 아래로 툭 떨어뜨리자, 무형의 불꽃이 갑자기 생명을 얻은 것처럼 제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뜨거운 용암 바다의 심연 어딘가에 구름불꽃을 부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준은 이 용암바다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가 아는 유일한 정보는 이곳이 구름불꽃의 탄생지라는 것 뿐이었다.
손가락만한 크기의 구름 불꽃을 쫓아 아래로 내려간 지 어언 20분 가량이흘렀지만, 무형의 불꽃은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로 깊이 내려갈수록 주위의 압력도 점점 강해졌다. 청연의 불꽃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타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30분이 지나자, 이준의 마음속에 슬슬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때까지 청연의 불꽃을 유지해야 하는데, 너무 깊이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도중에 염력이 떨어진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시야에는 온통 붉은 색 뿐 이었다.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제 검은 송곳에 남겨 놓은 영혼의 표식만이 유일한 이정표였다.
“휴우…….”
하지만 탐색을 포기하고 위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서려는 순간, 돌연 구름 불꽃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여전히 붉은 빛만이 가득했다. 아직도 용암바다의 끝자락에 도착하지 못한 듯했다. 발밑으로는 온통 검붉은 마그마 뿐 이었다. 그 끝에 대체 뭐가 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도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이 구름 불꽃을 자극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바로 그 때, 눈앞에 있던 구름불꽃이 둥둥 뜬 채로 환한 불빛을 쏟아냈다. 그 불빛이 아래쪽을 비추자, 마그마가 천천히 요동치기 시작하며 회오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이준은 몸속의 염력을 끌어내며 달아날 채비를 했다.
하지만 이준이 막 등을 돌리려는 찰나, 투명하고 동그란 빛이 그의 시선을 붙들었다.
그리고 동그란 빛의 한가운데에는 반딧불이처럼 기묘한 빛을 발하는 백골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빛을 발하는 것은 백골이 아니라 그 위를 떠다니는 투명한 불꽃이었다.
“말도 안 돼…….”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이준은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 불꽃은 틀림없이 ‘구름 불꽃’이었다. 그것도 틀림없는 ‘진짜’ 구름불꽃이었다.
어떻게 한 장소에서 두 개의 같은 천지의 불꽃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 뼈는 또 누구의 것일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 때, 용암으로 가득찬 세계에 갑자기 타들어 갈 듯이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갑자기 불어닥친 열풍에 화들짝 놀란 이준은 잽싸게 은빛 섬광을 뿜어내며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열풍이 스쳐지나간 오른쪽 어깨에서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십여 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새빨간 형상 하나가 서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생명체는 용암과 완전히 동일한 색을 띠고 있어 눈을크게 뜨고 바라봐도 좀처럼 알아차리기가 힘들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한참을 바라보니 새빨간 비늘에 뒤덮인 생명체가 기다란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붉은 생명체는 마치 사람처럼 두 다리로 서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두껍고 큰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공처럼 둥근 머리에는 미세한 비늘이 가득했으며, 흉흉한 두 눈동자에서는 섬뜩한 기운이 풍겨 나왔다. 놈이 입을 벌리자, 칼날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보였다.
“캬아악!”
이준이 자신을 쳐다보자, 그 이상한 생명체도 이준을 사납게 노려봤다. 곧이어 용암 생물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들더니 돌연 이준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했다.
“이게!”
그 순간 이준의 손바닥에서 청록색의 염력이 터져 나오며 기이한 생명체의 몸뚱아리를 세차게 가격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놀란 괴수가 흉악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꼬리를 휘휘 젓자, 주위의 용암이 이준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이준 역시 지지 않고 손을 휘둘러 또 다시 청록색의 염력을 뿜어냈고, 이에 용암 괴물은 더욱 미쳐 날뛰며 계속해서 이준을 향해 용암을 쏘아댔다.
“젠장, 이대로는 끝이 없겠어.”
계속되는 상대의 공격에 이준은 다시 한 번 번개의 춤을 사용해 잽싸게 그 괴수의 눈앞으로 날아간 뒤 청록색 화염으로 휩싸인 손을 놈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공격을 받은 용암 생물체는 격렬히 발버둥 치며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질러 댔다.
하지만 놈의 비명 소리는 얼마 가지 않아 서서히 잦아들었고, 섬뜩하게 빛나던 눈동자도 빠른 속도로 빛을 잃었다.
마침내 놈의 몸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자, 이준은 긴 한숨을 내쉬며 놈의 가슴에 박혀있던 자신의 손을 빼냈다. 괴수의 가슴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그의 손끝에는 기묘한 빛을 내뿜은 붉은 구슬이 들러붙어 있었다.
놀란 눈으로 구슬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이준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기묘한 붉은 구슬에 강력한 불 속성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에너지는 용암 세계에 들어온 이래 이준이 흡수했던 불 에너지보다도 훨씬 더 순수하고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다. 작은 구슬 하나만 해도 이틀은 꼬박 수련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양의 에너지가 들어 있었다.
“마수로 따지면 마정핵 같은 거겠지. 이거 뜻밖의 보물을 건졌는걸. 하지만 난폭한 기운이 너무 많아서 바로 복용하긴 어렵겠어. 그것만 아니었어도 웬만한 상급 연금비약 수준이었을 텐데……/”
더욱 아쉬운 것은 구슬이 딱 한 알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 알 정도로는 고작해야 며칠 정도 수련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 밖에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이준이 막 백골을 향해 다시 몸을 돌리려는 순간, 돌연 사방에서 흉측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마리가 아니었군.”
수백 개의 붉은 눈동자가 향한 곳은 이준의 손에 들린 붉은 색의 구슬이었다.
“동료의 죽음 때문에 몰려 온 건가. 아니면 이 구슬이 가진 에너지 때문에?”
이준은 황급히 염력을 끌어올려 청록색의 화염갑옷을 만드는 동시에 붉은 구슬을 저장반지 안으로 숨겼다.
놈들은 이준의 몸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담긴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알아봤는지 그의 주위를 빙빙 돌며 흉악한 울음소리를 내뱉을 뿐 감히 앞으로 달려들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교착 상태가 지속된 지 수 분, 갑자기 서너 마리의 괴수가 일제히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괴수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이준은 이를 악문 채 불꽃에 휩싸인 주먹을 휘둘렀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 마다 붉은 용암 바다를 가르고 청록색 화염이 춤을 추며 파문을 일으켰다.
“캬아악.”
더 많은 동포들이 침입자에 의해 시신으로 변하자, 남은 괴수들은 겁을 먹기는커녕 더욱 더 흉흉한 소리를 내지르며 죽기 살기로 이준을 향해 달려들었다. 힘의 차이는 역력했지만, 놈들의 기세는 갈수록 흉폭해지고 있었다.
더욱 나쁜 것은, 괴수들의 시체가 쌓이는 것보다 더 빨리 놈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그의 실력이라면 백 마리 정도는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는 놈들의 숫자가 백마리 정도가 아니라는 점 이었다.
결국 이준은 그 백골의 정체를 확인할 틈도 없이 검은 송곳에 새겨둔 영혼의 표식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백골이 누구의 것이든, 그 주위를 떠도는 불꽃이 구름 불꽃이든 뭐든 지금은 일단 목숨을 건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그가 위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위쪽에서 격렬한 파동이 일더니 거대한 괴수들이 줄줄이 나타나 그의 앞길을 막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용암 괴물과 생김새는 똑같았지만, 덩치는 두 배 이상 거대했다. 게다가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또한 작은 놈들의 두 배 가까이 강력했다.
빽빽이 들어선 붉은 형체들은 빠르게 마그마를 가르며 날아와 단 몇 초 만에 이준을 포위했다.
이준은 굳은 표정으로 무리 중에 가장 거대한 괴수를 바라봤다.
가만히 살펴보니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몸을 뒤덮은 비늘의 색도 다른 놈들과는 조금 달랐다. 놈의 비늘은 새빨간 붉은 색이 아니라, 검은 빛이 약간 섞인 검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캬아악!”
거대한 괴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이준을 노려보며 계속해서 듣기 싫은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놈의 목소리나 눈빛은 다른 괴수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을 주었다. 마치 지성이 있는 것 같았다.
“갈수록 태산이군.”
급기야 놈이 나타나자 작은 괴물들의 움직임이 점차 체계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놈들에게 둘러싸여 염력이 바닥날 때까지 싸우다가 그대로 재가 되고 말 것이 분명했다.
이에 이준은 백골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결정을 내린 뒤 곧바로 번개의 춤을 사용해 전력으로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카아아악!”
붉은 색의 용암바다 속에서 돌연 눈부신 은빛 섬광이 폭발하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커다란 놈은 곧바로 손을 휘두르며 또 다시 듣기 싫은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작은 놈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분명했다.
쉬익!
이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새빨간 괴수들을 보며 청록색 불꽃을 채찍처럼 날리며 계속해서 위쪽으로 향했다. 청록색의 채찍에 얻어맞은 괴수는 곧바로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섰고, 실력이 약한 놈들은 아예 그 자리에서 죽어 버리고 말았다. 이준은 그 와중에도 할 수 있는 한 최대 한도로 놈들의 시신을 챙겼다. 처음 죽인 놈의 가슴팍에 들어있던 붉은 구슬이 탐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준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끝없이 밀려오는 불꽃 도마뱀인간의 숫자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문자 그대로 죽음을 불사하고 이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날카로운 손 날로 등 뒤에서 습격하는 괴물의 가슴을 찌른 이준은 재빨리 그 속에서 붉은 구술을 꺼내어 다시 저장반지 안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