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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26화 (426/818)

제426화. 희망

백열의 무시무시한 속도에 감탄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게 투존 강자의 속도구나…….”

“투존이라니? 네가 저 친구를 과대평가했구나. 저건 대충 공간의 힘을 부릴 줄 아는 정도란다. 진짜 투존과 비교하면 아직 멀었지.”

천 장로의 말에 깜짝 놀란 이준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되물었다.

“백 장로님이 투존 강자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나와 백열은 모두 9성 투종이다. 반쪽짜리 투존도 못 되지. 둘이서 수십 년이나 공을 들였지만 아직도 투존의 경지에는 발조차 들이지 못 했다.”

천 장로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노인의 말에 이준은 ‘불개’가 얼마나 대단한 수련법인지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불꽃을 삼키는 것으로 남들이 몇 십 년에 걸쳐 쌓아야 할 에너지를 단번에 흡수할 수 있으니, 약로가 말했던 ‘1격 염력 수련법보다도 대단한 수련법’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새삼 실감이 났던 것이다.

“뭐, 마로의 지금 상태로는 백 장로의 손을 벗어날 수 없을게다. 게다가 오래 전 일이기는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원한이 있으니 백 장로도 저 놈을 절대로 곱게 보내려 하지 않겠지.”

말을 마친 천 장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서천우를 바라봤다.

“이 일만 마치면 우리는 다시 돌아가겠네. 뒷일은 맡겨도 괜찮겠지?”

“네, 알겠습니다. 장로님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준은 어느 새 한샘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이 개자식……! 대체 어느 틈에!”

“괜찮아. 나중에 또 기회가 있겠지. 그보다 지금은 네 몸부터 챙겨.”

이준이 주먹을 쥐며 주위를 둘러보자, 아라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금 이준의 상태로는 한샘을 찾는다 해도 그를 붙잡기는커녕 목숨이나 잃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괜찮아. 조금만 쉬면 금방 회복할 수 있어. 그것보다 너……. 아까 재난독체를 개방한 거 맞지?”

이준이 입가에 흐른 핏자국을 닦으며 물었다.

하지만 아라는 새하얀 머리카락을 넘기며 살며시 미소를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휴……. 빨리 마지막 약재를 찾아야겠어.”

이준의 말에 아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저 두 장로님이라면 악마의 반점을 없애줄 수 있지 않을까? 실력이 대단하시던데.”

순간 이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가 가람아카데미에 찾아온 목적은 가람 아카데미의 숨은 강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나타났으니, 정말로 악마의 반점을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준의 표정을 읽은 서천우는 침착하라는 의미로 가볍게 손짓을 한 뒤 천 장로 곁으로 다가갔다.

“천 장로님, 먼저 내려가 쉬고 있는 게 어떻겠습니까? 오랜만에 본원에 모습을 드러내셨으니 밀린 이야기라도 나누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서천우의 제안에 천 장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가볍게 몸을 움직여 본원의 안쪽으로 향했다. 이에 서천우는 말없이 손짓으로 이준을 부른 뒤 함께 그 뒤를 따랐다.

* * *

서천우와 천장로, 이준, 이찬과 본원의 장로들은 본원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한 뒤 넓은 방 하나를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 서천우는 천 장로에게 아카데미의 두 수호자가 은거해 있는 사이 본원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천 장로는 본원의 구름불꽃이 결국 이준에게 넘어갔다는 얘기에 조금 놀란 듯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허허, 자네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인재로군. 원장님께서 구름불꽃을 봉인한 것은 그것을 흡수하는데 실패하셨기 때문이거든. 헌데 그걸 자네가……. 껄껄. 이거 원장님이 아시면 억울해서 어떡하나.”

노인의 칭찬에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아아, 탓하는 것이 아니니 신경쓰지 말게. 무릇 천지의 불꽃 같은 보물은 힘만으로 복속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천운이 따라야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 천운이 갔다고 해서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구름 불꽃이 계속해서 봉인을 부수고 탈출하려는 바람에 우리도 여간 골치가 아팠던 게 아니니까. 그 물건이 폭발했다면 아마 가람 아카데미는 투기 대륙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걸? 게다가 나는 처음부터 그 물건을 봉인하는데 반대했거든. 그러니 자네에게 감사하면 감사했지 책망할 일은 없어.”

노인의 말에 한시름 놓은 이준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장로가 천 장로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사이,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돌연 건물 안에 나타났다.

귀신처럼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그 그림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시체 한 구를 바닥에 내던졌다.

피투성이가 된 시체의 정체는 바로 마염곡의 곡주, 마로였다.

백장로는 넋을 잃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빈자리를 찾아가 자리를 잡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오늘 일이 다 마무리 됐으니 나와 백 장로는 다시 돌아가 수련을 시작하지. 다음에 또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본원을 잘 부탁하겠네.”

말을 마친 두 명의 장로가 막 자리를 뜨려는 찰나, 서천우가 벌떡 일어나 천 장로를 붙들었다.

“천 장로님, 백 장로님.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무슨 일인가?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남았나?”

천 장로의 물음에 서천우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이준을 향했다.

“이 녀석이 맹독에 중독됐는데, 투존 강자만이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의 맹독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어디에 가서 투존을 찾겠습니까. 해서 혹여 두 장로님이 힘을 합치면 이 독을 제거할 수 있을까 싶어 결례를 무릅쓰고 여쭤보는 것입니다.”

이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다시 자리에 앉으며 이준을 바라봤다.

“흐음……. 그 정도의 맹독은 우리도 몇 번 본 적이 없는데,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하군 그래. 우선 한 번 보지.”

“막내야, 이게 무슨 소리냐?”

가만히 서천우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찬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됐어, 별거 아니야…….”

하지만 이준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으며 형을 안심시킨 뒤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가슴팍에 새겨진 악마의 반점을 드러냈다.

“투종 강자가 목숨을 불어 넣어 새긴 독입니다. 독성이 너무 강해 투존 강자가 아니라면 해독이 불가하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거참, 투종 강자에게 그런 일을 당할 정도라니……. 갈수록 자네 정체가 궁금해 지는구만.”

이준의 가슴에 새겨진 시커먼 문양을 바라보던 서천우와 두 장로는 약속이나 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곧이어 백 장로와 천 장로 두 사람이 동시에 손가락을 뻗자, 짙은 염력이 흘러나오며 단단한 수정체가 형성됐다.

두 사람의 염력이 고체화가 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찬 숨을 들이켰다. 전설에 따르면 오직 투존 강자만이 염력을 고체화 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투존이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염력을 고체화 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평생가도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 앞에 이찬은 물론이고 가람 학원의 장로들마저 한시도 그 수정체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염력 수정체가 두 사람의 손끝을 벗어나 이준의 심장 부근으로 다가가다가 갑자기 폭발하며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가루가 되어 검은 반점에 떨어졌다.

수정 가루가 떨어지자 이준의 몸이 격렬하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반점은 염력 수정체 가루에 닿자마자 마치 생물처럼 요동치며 흉흉한 검은 빛을 뿜어냈다.

그렇게 2분 정도가 지나자, 빛이 천천히 사라지며 반점 안에서 검은 연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심해, 독이야!”

확산되는 검은 연기의 모습에 아라의 표정이 돌변했다.

황급히 사람들을 물린 그녀는 번개처럼 회색 염력을 소환해 그것으로 검은 연기를 감싸 없앴다. 그녀는 본래 독술사였기 때문에 이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독소가 너무 강하구나…….”

그 순간, 두 장로가 어두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접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염력 수정체는 악마의 반점을 아주 조금 없애는 것이 한계였다.

“미안하네. 우리 실력으로는 어려워. 우리 두 사람이 진짜 투존이 아니라 조금 전 같은 염력 수정체를 많이 만들어낼 수가 없네. 독을 새긴 놈도 참 독한 놈이군.”

“두 분도 어떻게 할 수 없단 얘긴가요?”

이준은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며 쓴 웃음을 지었다.

“자네도 방금 봤듯이 우리가 어느 정도의 독소는 제거할 수 있겠지만 한 번에 제거할 수 있는 양이 너무 적네. 이 속도라면 적어도 수년은 걸릴 텐데……. 자네가 그 시간을 버티긴 힘들지 않겠나?”

백 장로가 말했다.

이준의 입가에 또 다시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수년이 걸린다면, 해독을 마치기도 전에 죽어버릴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투존 강자를 찾거나 세 번째 천지의 불꽃을 찾는 편이 나았다.

실망한 듯한 이준의 표정에 서천우도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는 두 장로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내 힘으로 해결해야겠군. 세 번째 천지의 불꽃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스스로 해독할 수 있을 거야.’

천, 백 두 장로는 본원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나타날 때처럼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종적을 감췄다.

두 사람이 가져다 준 마로의 시체를 꼼꼼히 살펴보던 이준은 저도 모르게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시체에는 단 한조각의 영혼의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도 백 장로의 손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 듯 싶었다. 대체 얼마나 원한이 깊으면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사람을 죽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로를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준은 얼음 계열의 염력을 잘 다루는 장로에게 부탁해 마로의 시체를 냉동시킨 뒤 저장반지 안에 보관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7성 투종 강자의 시체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만, 그에게는 약로의 새로운 몸이 되어줄 육체가 필요했다. 운산의 시체가 있긴 했지만, 마로가 3성이나 위였으니 그의 시체를 보관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시체를 챙긴 이준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오늘의 전투는 정말이지 몇 번이나 목숨을 잃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격전이었다. 만일 두 장로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염력을 회복하기 위해 섭취한 연금비약의 약효가 폭주해 목숨을 잃었거나, 화염구가 폭발해 목숨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나마 두 장로가 약효를 통제해 주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운 좋게 목숨을 건졌다 해도 혈관이 갈기갈기 찢겨 몇 년은 제 실력을 찾지 못 했을지도 몰랐다.

방에 도착한 이준은 곧바로 침대에 쓰러져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이준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수련 자세를 취했다.

마음 같아서야 며칠이나 드러누워 잠을 자고 싶었지만, 이렇게 혈관을 상한 채로 채 흡수하지 못한 약효가 몸 안을 돌아다니게 놔둔다면 상처가 더욱 악화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영혼 탐지 능력을 통해 몸 안을 살펴보니 역시나 온 몸의 혈관이 누더기처럼 찢겨 있었고, 아직 흡수하지 못한 연금비약 속의 에너지가 이 곳 저 곳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몸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이준은 다시 정신을 집중해 청연의 불꽃을 불러냈다.

이번처럼 마구잡이로 연금비약을 먹어대면 약효끼리 충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약효를 정련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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