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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25화 (425/818)

제425화. 두 장로

열기를 머금은 에너지파가 휩쓸고 지나가니 단번에 본원의 건축물들이 무너져 내렸고, 이 무시무시한 광경에 자리에 엎드린 학생들은 사지를 떨며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 했다.

“아직 한 번 더 있어! 어서 도망가라!”

서천우의 외침에 마염곡의 장로고 본원의 장로고 할 것 없이 죽어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모든 학생들은 각자 숨을 곳을 찾아!”

서천우가 소리치자 본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수많은 학생들은 앞 다투어 몸을 숨길 곳을 찾아댔다. 검은 구름 사이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거대한 불꽃은 이미 이준의 통제를 벗어나 미친 듯이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잠시 후, 눈부신 빛기둥이 검은 구름을 뚫고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열기와 함께 불씨를 뿌려댔다.

뒤이어 수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염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화염구가 나타나자,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열풍이 불어 닥쳤다.

화염구가 품고 있는 거대한 에너지에 이준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만일 저 무시무시한 물체가 폭발한다면 본원은 물론이고 그 에너지가 닿는 반경 내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만들어 낸 불꽃이 이렇게까지 흉악한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이준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미 그 불꽃은 미쳐 날뛰는 마수처럼 그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만에 하나 폭발이라도 해버린다면 본원의 모든 학생들을 제 손으로 죽이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둘 수는 없어……!”

자신이 만들어 낸 불꽃에 휩싸여 재가 될 학생들의 모습을 떠올린 이준은 곧바로 깊은 숨을 들이키며 또 다시 저장 반지 안에서 연금비약을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에너지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혈관이 찢어질 듯 팽창하며 목구멍을 타고 비릿한 피가 터져 나왔다.

이 불꽃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니 한 번 통제 능력을 잃었어도 충분한 염력만 있다면 다시 그의 통제 하에 둘 수 있었다.

다만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러야할 뿐…….

그는 빨간 피로 물든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인을 맺었다. 그의 까만 눈동자는 점점 붉은 기를 띄고 있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화염구의 폭발을 막으려 애쓰던 그 때, 돌연 태양처럼 빛나는 구체 옆에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귀신처럼 홀연히 나타난 두 노인의 모습에 이준은 화들짝 놀라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췄다.

“그 불꽃은 곧 폭발할 겁니다. 어서 물러서세요!”

거대한 불덩이 옆에 서 있던 두 노인은 서서히 고개를 들어 덤덤한 눈빛으로 이준을 쓱 바라봤다. 이준의 외침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 순간, 이준은 자신의 몸에서 미친 듯이 들끓던 연금비약의 에너지가 점차 평정을 되찾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상대의 몸속 약 기운을 잠재울 정도의 능력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수준의 염력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노인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놀란 이준이 멍하니 넋을 놓고 서있을 때, 거대한 화염구 곁에 서 있는 두 노인을 발견한 서천우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드디어 저 분들이 나서시는구나!”

“대장로님 저 분들은 누구시죠?”

서천우 곁에 있던 몇 명의 장로들이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서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눈앞의 두 노인에게는 흘러나오는 에너지가 그들의 살갗을 뚫고 몸 속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람아카데미의 수호자들이시다.”

서천우가 천천히 입을 뗐다.

“본래 가람아카데미가 사라질 정도의 위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으시지. 다행히 이번에는 나타나 주셨구나.”

“수호자라니요?”

수많은 본원 장로들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두 노인은 사방에서 집중되는 눈빛을 무시한 채 방대한 화염공을 응시했다. 그 안에 감춰진 파괴적인 에너지를 느낀 노인들은 진지한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주름진 두 손을 앞으로 뻗어 천천히 기이한 인을 만들어냈다.

두 노인이 움직이자 격렬한 파동이 일어나며 주위의 공간에 엄청난 굴곡이 일어났고, 텅 빈 공간 이곳저곳이 비틀어지고 접히며 종잇장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두 갈래의 새까만 빛이 두 사람의 손끝에서 쏟아져 나오더니, 돌연 텅 빈 허공이 칼로 벤 듯 쩍하고 갈라졌다.

“가라!”

노인이 소리치자 폭풍이 일며 태양처럼 타오르는 화염구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고, 검은 색의 빛이 빠른 속도로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요동치던 화염구가 서서히 안정을 되찾자, 두 노인은 다시 빠른 속도로 인을 맺었다.

두 사람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에너지는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화염구의 균열을 단단히 봉합했고, 어느 새 완전히 안정을 되찾은 듯 일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모든 과정을 마무리한 두 노인은 그제서야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큰 규모로 공간을 조작하는 것은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눈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공간을 갈라 그 틈 사이로 에너지를 흘려보낸 뒤 다시 공간의 균열을 봉합하다니, 이런 일이 인간에게 가능한 것이란 말인가.

화염 구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한 이준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그 불꽃이 계속해서 팽창했다면 본원이 통째로 날아갈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준은 하루아침에 본원을 멸망시킨 원흉이 되는 셈이었다. 그런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었다.

정말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까지 휘말려 죽음에 이르게 만들 수 있는 무투기라면 그것은 이미 무투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시는 이 무투기를 사용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준이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서천우와 아라가 날아왔다. 이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서천우가 가벼운 한숨을 내쉰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 오거라. 괜한 소리 하지 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천우의 몸이 번개처럼 사라졌다가 두 노인의 앞에 나타났고, 이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라와 함께 같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백열 장로님, 천록 장로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천우가 두 사람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자, 두 노인 중 한 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호통을 쳐댔다.

“네 이놈, 대체 대장로란 놈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거냐! 만일 이번 일로 본원이 사라졌다면 그 책임을 어찌 하려고!”

“두 분, 오늘 일은 모두 저 이준의 탓입니다. 벌을 주신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대장로님과는 무관한 일입니다.”

이준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자, 두 노인은 입을 비죽거리며 천천히 그를 훑어봤다.

“네가 대지의 불꽃을 다루던 그 소년이냐?”

“네, 그렇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대투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투황이라니, 장천수 그 녀석이 보면 좋아서 뒤집어지겠어.”

두 노인 중 한 명이 말했다.

“게다가 몸속에 지닌 불꽃이 한 종류가 아닌 것 같군. 몇 가지 천지의 불꽃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군. 어찌됐든 천지의 불꽃은 천하에 둘도 없는 보물이니 주위에 적이 많겠구나. 항상 조심하거라.”

“새겨 듣겠습니다.”

“음? 이럴 수가…….”

아라가 도착하자, 두 노인은 흥미롭다는 듯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못 했다.

“허허. 재난독체라니……. 오래 살다보니 진귀한 것을 보는군. 그나저나 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딱하구만 그래.”

노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서천우는 더 이상 참지 못 하고 성을 냈다.

“정말 너무들 하십니다. 나타나자마자 새파랗게 어린 친구에게 악담이나 하고……. 그리고 원장님이 자리를 비운지 벌써 10년 입니다. 어떻게 10년 동안 한번을 안보이실 수 있으십니까? 마로의 실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다가 뒤늦게 나와서는…….”

서천우의 질책에 두 노인도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원장님이 아직도 안 오셨다니. 거의 십 년이 다 되어가는 데 말이야.”

“흥, 이럴 줄 알았으면 장로님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말걸 그랬습니다.”

서천우는 한껏 미간을 찌푸린 채 이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두 분은 백열 그리고 천록 장로님이시다. 본래 가람 아카데미의 대장로였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명예 장로로 남아계시지.”

대장로의 설명에 이준은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이에 두 장로는 가볍게 손을 저어 예의를 차릴 것 없다는 표시를 한 뒤 곧바로 고개를 돌려 텅 빈 허공을 향해 말을 걸었다.

“마로, 자네 맞지? 아주 오랜만이구만.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네 그려.”

두 노인의 언행에 이준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아주 작은 에너지의 파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쯧쯧, 이 사람아.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후배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간 은폐술이라니.”

천록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소매를 휘두르자, 허공에 격렬한 파문이 일며 균열이 생겨나더니 넝마가 된 노인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저 자가 살아있었다고!?”

서천우는 화들짝 놀라 허공에서 튀어나온 노인을 바라봤다. 그가 두르고 있던 옷은 완전히 발기발기 찢겨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온 몸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그의 몸 곳곳에는 끔찍한 화상 자국과 붉은 피, 수포가 가득했다. 얼굴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뭉개져 있었다.

마로는 원망과 독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이준을 바라보고는 두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노인은 마치 사자 앞에선 토끼 마냥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백열, 천록? 자네들이 아직 안 죽었을 줄이야.”

“네 놈이 살아 있는데 우리가 벌써 죽을 순 없지.”

두 사람이 건재함을 확인한 마로의 심장이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의 실력으로 두 사람과 맞붙는다면 멀쩡한 상태라 하더라도 목숨이나 건지면 다행이었다. 헌데 이렇게 엉망이 된 상태로 두 사람 앞에 서게 됐으니,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살아나가기는 어려워 보였다.

“장로님들, 저자를 절대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염곡 놈들은 이미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수 십 명이나 죽여 왔습니다.”

서천우의 말에 백열과 천록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한번 수련에 들어가면 오랜 시간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괜히 마로를 살려두었다가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모습을 감춘 사이 수십 명에 달하는 학생들을 죽였다고 하니 더더욱 마로를 살려둘 리가 없었다.

두 장로의 눈에 살기가 돌자, 마로는 잽싸게 피를 토해 붉은 안개를 만들어냈다.

“저 놈이 도망치려 하는군! 어서 잡아야 해!”

펑!

하지만 서천우가 소리치기 무섭게 붉은 안개가 터져버렸고, 마로의 몸은 그대로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힘들게 잡아 둔 상대가 도망치자 이준의 표정도 돌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행여나 마로가 마염곡의 전력을 재정비해 가람아카데미나 이씨 가문을 공격한다면 그 때는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로님들!”

“허허. 급할 거 없어. 걱정할 거 없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할 테니까.”

서천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자신들을 부르자, 천 장로가 피식 웃으며 곁에 있던 백 장로를 바라봤다.

“뭐하나 백장로.”

“거 참……. 귀찮은 일은 죄다 나에게 떠넘기는 구만.”

다음 순간, 백열의 몸이 소리 없이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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