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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만이살길-424화 (424/818)

제424화. 광기

아라의 염력으로 만들어진 뱀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노인은 곧바로 자신의 검은색 염력을 이용해 또 다시 거대한 얼음 조각을 만들어냈다.

이번에 노인이 만들어 낸 것은 동해의 그것과 유사한 거대한 얼음 거울이었다.

회보랏빛 뱀들은 노인의 앞을 막아선 얼음 거울을 향해 미친 듯이 독 연기를 뿜어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 거울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러나 얼음 거울이 사라지는 순간, 돌연 두 개의 손이 나타나 염력으로 만들어진 뱀들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쾅!

검은 색 염력으로 둘러싸인 노인의 손에 의해 두 마리의 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두 뱀이 부서지는 걸 보고도 아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심지어 그녀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그게 뭔 줄 알고 그렇게 덥썩덥썩 만지는 거야?”

“흥, 독 말이냐? 그딴 것으로 이 마로를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곧이어 노인의 살갗에 검은 색 얼음 수정이 돋아나더니 얼음 수정의 색이 점점 더 붉은 색으로 변해갔다. 아마도 염력을 이용해 아라의 맹독을 몸 밖으로 빼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독을 몸 밖으로 밀어내는 것을 보고도 아라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자신이 상대보다 실력이 떨어지니 그 독을 몰아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지금 그녀의 목적은 상대를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 아무리 7성 투존이라 하더라도 재난 독체를 가진 아라의 독을 몰아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라에게 발이 묶인 마로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이준을 바라봤다.

이준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두 덩이의 불꽃을 융합시키고 있었다.

‘저게 한샘에게 들었던 그 무투기인가? 하지만 나를 죽이기에는 한참 부족하군.’

* * *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화련을 준비하고 있는 이준 역시 마로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흥, 그래. 나도 알아. 이 정도로는 당신을 죽일 수 없지.’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자신의 미간에 새겨진 불꽃 문양에서 하얀 불꽃을 소환해냈다.

세 번째 불꽃이 모습을 드러내자, 돌연 천지사이에 가득한 자연 에너지의 흐름이 뒤틀리며 온 천지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눈앞에 세 이화를 바라보던 이준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세 이화를 접촉 시켰다.

갑작스레 천지가 열기로 뒤덮이며 주위의 에너지가 요동치기 시작하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느낀 마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온 몸에서 냉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애송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곧이어 노인의 입에서 붉은 빛을 띤 얼음 조각이 튀어나왔다.

자신의 맹독이 생각보다 빠르게 상대의 몸 밖으로 배출되자, 아라는 이를 악물고 상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쿨럭!”

하지만 그녀의 손이 향한 것은 상대의 몸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쳐 상대를 향해 피를 뱉어낸 것이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아라의 검붉은 피를 본 노인은 황급히 소매를 휘둘러 한기를 뿜어냈다. 이번에 또 다시 중독된다면 등 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기묘한 무투기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간발의 차로 거대한 얼음 거울을 만들어 아라의 피를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쳇!”

그러나 상대는 정말로 죽기를 각오했는지 또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 * *

멀리서 초조하게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이준의 손에는 어느새 거의 완성된 화련이 들려 있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이 세 가지 불꽃을 합친 화련을 맞고 견딜 수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지금 이준은 처음으로 상대가 이 공격을 맞고도 버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 마로의 힘은 운산의 영혼을 삼킨 도영호보다 훨씬 강했다.

그리고 이 불꽃은 그의 마지막 수였다. 지금 이준의 실력으로는 세 개의 불꽃을 합쳐 화련을 만들어내면 며칠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으니 이 공격으로 반드시 승부를 보아야 했다.

“쿨럭!”

그 때, 저 멀리서 자신을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 아라가 또 한 번 피를 토하고 있었다.

“좋아. 이제 진짜 마지막이야.”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불길한 회색 빛을 띤 불꽃 하나가 튀어나왔다.

마염곡의 장로들에게서 훔친 악마의 불꽃이 세 개의 천지의 불꽃과 만나자, 바람소리, 비명소리, 심지어 자리에 가득한 사람들의 숨소리마저 모두 사라졌다.

천지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미친 듯한 열기를 내뿜고 있는 불꽃 덩어리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소음뿐이었다.

펑!

두 개의 인영이 공중에서 부딪히며 또 한 차례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일었다.

서천우와 한샘의 옷은 이미 완전히 찢어지고 헤져 있었고, 머리 역시 봉두난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천우의 기운이 조금 더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천우는 입가의 피를 닦으며 싸늘한 눈으로 한샘을 노려보았다. 그의 등 뒤로는 거대한 염력이 일렁이며 광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서천우 대장로, 나이를 먹어서인지 공격이 영 시원치 않군.”

한샘이 몸속에서 요동치는 염력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입가에는 상대를 조롱하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 하지만 천지의 불꽃을 바치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몸이 되어서 고작 이 늙은이와 비슷한 실력을 손에 넣은 네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서천우의 서늘한 말투에 한샘의 얼굴이 곧바로 돌덩이처럼 굳어가며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가!”

한샘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소매를 휘두르자, 뜨거운 열기를 실은 염력이 터져 나오며 서천우의 기운을 짓눌렀다.

서천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심호흡을 한 뒤 몸속의 염력을 쏟아냈다.

“서천우! 오늘을 네 제삿날로 만들어주마!”

한샘이 열기를 내뿜으며 하늘 위로 솟구치는 순간, 갑자기 멀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천지의 에너지가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깜짝 놀란 한샘은 황급히 그 에너지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린 뒤 상황을 관찰했다.

서천우 역시 충격 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에너지가 폭발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그 섬뜩한 에너지를 느낀 듯 멍한 표정으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에는 옥색에 가까운 청록색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 위로는 드문드문 회색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옥색의 불꽃 위에 회색 불꽃으로 무늬를 그린 것만 같았다.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어내며 타오르는 그 신비한 불꽃의 형상은 신비하고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에너지는 투종 강자라 해도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믿을 수 없군. 어떻게 이런 위력을……!”

서천우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키며 한샘과 마찬가지로 그 불꽃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서천우의 맞은편에 있던 한샘은 멍한 표정으로 이준을 응시했다. 그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느낀 이준도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준과 눈이 마주치자 한샘의 온 몸이 떨리며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만에 하나 상대가 그 불꽃을 자신에게 던진다면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이준의 불꽃이 마로를 향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가 마음이 바뀌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공포에 질린 한샘의 모습에 이준의 입가에는 조롱 섞인 미소가 피어올랐다.

‘악마의 불꽃’은 천지의 불꽃에 비하자면 그 위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마수의 불꽃이나 다른 불꽃에 비하자면 한없이 천지의 불꽃에 가까운 위력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불꽃을 ‘화련’에 섞어 넣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세 개의 불꽃에 또 하나의 불꽃을 더하는 것은 이준으로서도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만에 하나 조금이라도 불꽃의 힘을 조절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면 자신의 코앞에서 네 개의 불꽃이 폭발하여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목숨을 건 모험은 성공했고, 지금 그의 손바닥 위에는 그 불꽃을 만들어낸 당사자조차 가늠할 수 없는 위력의 불꽃이 들려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 앞에 천하의 마로라 해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불꽃의 위력 앞에 그는 이미 반쯤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4성 투황에 불과한 애송이가 이런 무투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이 정도 무투기라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다음 순간, 노인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 여기서 나가주겠네…….”

마로의 목소리는 공포로 인해 가늘고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라를 한번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비열한 노인네, 어딜 도망가려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얼룩덜룩한 옥색의 불꽃이 이준의 손을 벗어나 노인을 향해 날아갔다.

불꽃이 이준의 손을 벗어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는 저장반지에서 재빨리 연금비약 몇 알을 꺼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얼룩덜룩한 불꽃은 소리 없이 기다란 꼬리를 남기며 창공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순간 마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에서 검은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늘을 덮을 듯한 기세로 뿜어져 나온 검은 한기에는 섬뜩한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얼음의 피!”

곧이어 칠흑 같은 검은 기운이 빠르게 팽창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3미터도 넘는 거대한 구름이 형성 되어 그의 몸을 완벽하게 가로 막았다.

차가운 구름이 솟구치자마자 주위의 온도가 삽시간에 차갑게 얼어 붙었고, 공중에는 미세한 얼음 결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노인의 몸에서 퍼져 나온 한기는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본원의 반 정도에 하얀 서리가 꼈다. 학생들은 갑작스레 덮쳐 온 추위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학생들의 체내 염력까지얼어 붙기 시작했다는 점 이었다.

7성 투종이 뿜어내는 상상을 초월하는 냉기에 실력이 그리 강하지 않은 학생들은 물론이고 마염곡과 본원의 일부 장로 강자들까지도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들은 이를 악 물고 염력을 움직이며 그 무서운 한기를 몰아내려 애썼지만, 머리칼에는 어느 새 얇은 서리가 끼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유성처럼 긴 꼬리를 남기며 날아오던 불꽃이 시커먼 구름과 맞닿으며 새하얀 연기가 솟구쳤다.

불꽃이 가까워지자 열기가 냉기를 몰아내며 새하얀 서리가 빠르게 물로 돌아갔다가 다시 새하얀 연기로 변했다. 사람들은 모두 빠르게 고개를 들어 검은 한기 구름과 얼룩덜룩한 옥색의 불꽃이 충돌하는 장면을 응시했다.

쉬익!

곧이어 얼룩덜룩한 불꽃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은 구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구름의 표면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고, 허공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던 그 때, 불꽃이 구름의 냉기와 뒤섞이는 것을 확인한 서천우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본원의 장로들은 속히 후퇴하라! 학생들은 모두 엎드려! 어서!”

본원의 장로들은 서천우의 말에 따라 황급히 뒤로 물러섰고, 땅에 서 있던 학생들은 반사적으로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서천우가 후퇴하자 아라도 사색이 되어 보람의 곁으로 날아간 뒤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 황급히 몸을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줄곧 고요했던 검은 구름의 표면이 맹렬히 떨리더니 돌연 묵직한 소리를 내며 폭발을 일으켰다.

퍼엉! 콰앙!

굉음과 함께 검은 구름이 뒤흔들리며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뻗어나가기 시작하자, 멍하니 서있던 마염곡의 장로 중 몇이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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